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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4(2015)년 3월 23일
 

북핵이야기 (1)

 

우리 공화국이 2005년 2월 10일 핵보유국이라는것을 선언한 때로부터 10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중국인터네트신문 《1코리안뉴스》가 최근 《북핵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련재하였다.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0년전 2005년 2월 10일 조선외무성은 세계를 향해 핵무기보유를 선언했다. 조선이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이미 제조했다는것이다.

그 성명에서 한구절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이 핵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우리 제도를 기어이 없애버리겠다는 기도를 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고를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것이다.

우리는 이미 부쉬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고립압살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하였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우리의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자위적핵억제력으로 남아있을것이다.》

미국주도의 세력들이 조심스럽게 밟아가던 핵얼음판에 또다시 《돌》이 던져졌고 이 공식적인 천명은 최대의 파고를 그리며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이 《돌》이 력사에 끼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완화》, 믿지 않았다

 

그때 미국은 조선에 긴장완화의 신호를 보내고있었다. 부쉬 2기(2005년 2월 2일)임기 첫 년두국정연설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국무장관 라이스가 이미 조선에 대해 《폭압정치의 전초기지》라고 발언했던것을 부쉬는 반복하지 않았다. 부쉬는 국정연설에서 조선을 격분케 한 그 표현을 쓰지 않았다. 1월 20일 취임사에서 《폭정의 종식》과 《자유의 확산》을 강조했던것과도 달랐다. 이것은 조선에 대한 미국의 완화신호와 같은것이였다.

완화의 신호를 보낸것은 미국만이 아니였다. 2004년말 미국과 유럽 각국을 순방한 로무현은 미국이 조선에 대해 강경책을 실시하는것을 찬성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언명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랍치문제》때문에 여론들이 들끓었지만 수상 고이즈미 즁이찌로는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를 발동하지 않겠다고 (부쉬가 친서에서 권고한데 따라) 동의약속했다. 중국과 로씨야도 미국측에서 신축성있는 태도를 취할것과 각측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노력할것을 줄곧 호소하였었다.

세계가 조선의 립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바로 이러한 시기에 조선은 6자회담참가를 무기한 중단한다는것과 함께 핵무기를 가지고있다는것을 선포함으로써 전혀 예상밖의 승부수를 던졌다.

모두가 이것을 비합리적인 행동으로 보았다. 그러나 3차례 진행된 6자회담과정과 그즈음 벌어진 북미간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이것이 돌발적인 행동이 아님을 잘 알수 있다.

그 당시 잡지 《민족 21》은 《1, 2차 6자회담에서 미국은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수 없는 핵페기〉(CVID)라는 북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며 《3차회담에 와서야 3개월시한의 〈다단계의 포괄적비핵화안〉을 제시했지만 그것도 회담후 넉달을 넘기지 못하고 〈북한인권법〉을 채택하고 〈망명정부설〉을 류포하는 한편 소형라지오살포 등 대북심리전을 화하면서 북을 압박하였다.》고 론평하면서 《〈붕괴론〉을 대신한 〈정권변형론〉을 제시하는 한편 주〈한〉미군은 휴전선근방의 공중정찰 등을 통해 공공연히 무력시위를 벌리고 최근에는 미행정부 고위관리가 북이 정제된 우라니움을 리비아에 수출한 증거가 있다며 또 한번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아갔다. 부쉬 2기행정부의 련이은 강경발언도 6자회담복귀를 촉구하는 미국의 본심을 의심케 하는것이였다.》고 분석하였다.

석은 결국 북이 부쉬가 2월 2일 국정연설에서 보여준 다소 유화된 태도에도 불구하고 《북과의 공존이나 대조선정책전환》이라는 《충분한 조건과 분위기》가 마련되지 못했다고 최종결론을 내린것에 대한 당위성을 충분히 제공하고있다.

전 주《한》미대사인 도날드 그레그는 《내 생각에는 그들이 6자회담에서 정말로 의미있는 그 무엇이 나올것이라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6자회담에 참가하고싶지 않다는것을 알린것이라고 본다.》고 하면서 실망을 표시했다.

쉬 미국대통령과 뿌찐 로씨야대통령은 슬로벤스꼬의 수도 브라찌슬라바에서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조선핵보유반대에 합의했다. 고이즈미수상도 중의원예산위원회에서 조선이 6자회담에 돌아올것을 요구했다.

조선이 진짜 핵을 보유하고있는가 하는 의혹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자리잡으려 하고있을 때 미국방성 국방정보국의 보도가 발표되였다. 조선이 12개에서 15개 정도의 핵무기를 가지고있다는것이였다.

그후 조선은 6자회담탁에 앉았다.

6자회담에 참가한 조선대표를 보면서 대국들은 다소 안도의 숨을 내쉬였으나 그들은 이미 북핵스트레스에 깊숙이 빠져들고있었다. 조선은 그 어떤 경우에도 《완화》라는 설을 믿지 않았으므로 …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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