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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4(2015)년 3월 18일
 

《우리는 수령복이 있습니다》 (1)

 

주체82(1993)년 3월 19일 조국의 품에 안긴 리인모동지는 자신의 실체험을 통하여 느낀 절세위인들에한 끝없는 매혹과 흠모, 우리 민족이 누리고있는 행운에 대한 글들을 써서 《로동신문》에 게재하였다.

리인모동지가 주체83(1994)년 3월 19《로동신문》에 발표한 《우리는 수령복이 있습니다》라는 글내용을 련재로 아래에 소개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인간에 대한 증오를 이긴 력사의 날로 말하면 아마도 제가 분계선을 넘어 사회주의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3월 19일일것입니다.

그날로부터 1년세월이 흘렀습니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 잊지 못할 나의 1년세월은 한생을 바쳐서도 잊을수 없고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가장 귀중한것을 얻고 깨달은 꿈같은 365일이였습니다.1년을 회고하면 감회가 뜨거워 자꾸 눈물이 납니다.

제가 남에서 보낸 43년이 삶을 빼앗기고 무덤으로 가는 죽음의 낮과 밤이였다면 북에서 보낸 1년은 새 생명을 받아안고 최상의 행운을 누린 새 삶의 분과 초였습니다.

지난날 사람들이 수십년간 타향에 나가 살다가 귀향할 때면 금의환향이라고 출세를 하고 돌아오는가 하면 재산을 모아가지고 온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어릴 때 서울이나 일본 동경에 갔다가 사각모자를 쓰거나 코수염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돌아온 사람도 보았고 《히로》담배를 피우며 깨끗한 향촌의 정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남쪽에서 인생의 고목이 되도록 40여년을 살다가 돌아왔지만 가지고온것이란 손잡이조차 떨어진 빈 트렁크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돌아올 때 가지고온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한가지 우리 수령님과 우리 당, 우리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뿐이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가지고온 가장 소중한 정신적재산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정신은 제가 남쪽에서 인생고초를 겪으며 굳혀진것이였고 남쪽의 많은 지인들의 가슴속에도 그러한 뜻은 간직되여있는것이라 보겠습니다.

저는 그사이 조국의 품에 안기여 살면서 많은것을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강하게 절감한것은 우리 인민이 수령복을 타고났다는 그 점입니다.

제가 50년도에 남으로 떠날 때에는 절세의 애국자이시고 만고의 영웅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만을 알고 갔는데 43년만에 다시 돌아와보니 또 한분의 장군이 계시여 정치를 하시였습니다.그분이 바로 만민이 숭상하는 우리의 김정일동지이시였습니다. 물론 저는 남쪽에 있을 때 《친지김동》으로 불리우시는 김정일동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조국에 와서 그분을 더 잘 알게 되였습니다.

남들은 자기 민족사에 참된 령수를 한분도 모시지 못해 곡절을 겪고있지만 우리 인민은 천하제일의 수령을 두분이나 모시고있어 가슴을 내밀고 살고있으니 이 얼마나 큰 행운입니까.

더우기 시국이 복잡한 이때 타고난 무에 천재적인 문을 겸비하시고 수령님에 대한 각별한 충효를 지니신 우리의 김정일동지와 같으신 절세의 영걸을 모시고있으니 지금 우리 인민이 얼마나 큰 덕을 입고있습니까. 

저는 김정일동지의 위인상과 인간상에 탄복할 때마다 저도모르게 무릎을 치며 우리 인민이야말로 수령복이 있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외우군 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듯이 우리는 정말 수령복이 있습니다.

 

1. 장군중의 장군을 모시였습니다

 

시국이 좋을 때에는 장군을 잘 몰라도 어려울 때에 장군을 알게 된다고 하였습니다.어려운 형세에서 위인의 높이와 장군의 위용이 돋보이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장군은 고난속에 있다고 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나가시는 장군님의 위인상을 보았습니다.

고난에 대하여 말한다면 제가 조국에 돌아와 생활한 지난 1년세월처럼 역경이 극한점에 이른 시기는 없었을것입니다.

미국과 서방자본주의련합세력이 동방에 있는 우리 조선의 사회주의를 압살하려고 《핵소동》을 일으켰을 때 우리 조국은 너무도 큰 어려움에 처하여있었습니다.

저는 남쪽에 있을 때 우리 사회주의의 운명에 대해 당국자들이 늘어놓는 험담도 들었고 언론매체들이 떠드는 어지러운 랑설도 들었으며 지어 북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걱정어린 말도 들었습니다.

제가 북으로 송환된다는 말이 돌아갈 때 하루는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정체불명의 한 요원이 찾아와 북으로 돌아가는것을 한번 깊이 생각해보는것이 어떻겠는가고 하면서 지금 모스크바도 넘어지고 사회주의도 다 없어지는데 북으로 꼭 가야 하겠는가고 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안기부》요원으로 보이는 그자에게 격한 심정으로 내 조국은 북이지 남이 아니다, 시국이 어떻든 내가 내 조국으로 가자고 하는데 무슨 상관인가, 내 북행길을 막지 말라고 쏘아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조국에 돌아온 후 시국이 하도 험악해서 늘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정세의 추향과 세계정치의 기상도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천하무적 김정일동지를 모신 우리 조국은 끄떡없었습니다.

미국이 남쪽으로부터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으로 우리를 위협하였을 때 명장의 지략과 담력으로 우리 조국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도 다칠수 없다고 위엄있는 명령으로 도발자들의 기를 꺾어놓으신분이 영명하신 장군님이시고 국제적으로 《핵특별사찰》소동으로 우리 공화국의 최고국익을 침해하려고 하였을 때 령장의 결단과 의지로 우리에게는 그러한 강도적론리나 강권행위가 통할수 없으며 그 어떤 위협과 봉쇄도 우리를 놀래울수 없다는 또 하나의 성명으로 조국의 운명을 지켜주신분도 우리의 장군이시였습니다.

저는 세계가 불안과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고있던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누구도 내릴수 없는 위인의 용단과 장군의 위엄으로 조국을 구원해주시였을 때 벌써 우리 조선이 장군을 잘 만난 덕을 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남쪽에서는 《한국》이라는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다스리는 미국을 보아왔는데 북에 와서는 그런 미국과 대등하게 마주앉아 할 말을 다 하고 받을것을 다 받아내는 공화국 존엄과 위상을 보면서 저는 이런 경이적인 사변도 다 우리의 김정장군을 모신 덕이라고 탄복하게 되였습니다.

미국이 우리 공화국과 한 약속을 저버리고 남쪽의 설익은 호전분자들을 대결과 전쟁에로 부추겼을 때 대화에는 대화로, 전쟁에는 전쟁으로 대응할것이라는 철의 의지로 무모한 광기를 제압하신분도 우리 장군이시였고 그들이 또다시 군사적인 압력의 방도를 선택하려 할 때 선택의 권리는 큰 나라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있다는 단호한 선언으로 형세를 뒤집어놓으신분도 천하제일명장이신 우리의 김정일장군이시였습니다.

참으로 우리 장군이시야말로 역풍을 순풍으로 바꾸시는 강한분이시였습니다.

저의 경우만 보아도 그토록 강하신 김정일동지가 아니시였다면 어떻게 그 준엄한 준전시상태속에서 제가 그분의 품으로 돌아올수 있었겠습니까.

그때 저는 생명이 위급했던탓으로 말은 못했으나 마음으로는 북쪽사람들의 얼굴에 넘쳐흐르는 필승의 신념과 락관을 느꼈습니다.

북쪽사람들은 당의 품으로 돌아오는 저를 환영하며 모두 울었습니다. 저도 울었습니다.

끝없는 인파와 꽃물결속에 흘러내린 그날의 눈물은 준엄한 정세속에서도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죽은자를 산자로 환생시켜주시는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한 감사의 이슬이였다고 봅니다. 그때 벌써 우리 평양의 사회주의는 서울의 자본주의를 이겼습니다.

제가 조국에 돌아와 본것은 모든것이 이기는것뿐이였고 강해진것뿐이였습니다.

작년 7월 전승 40돐을 경축하는 열병식과 군중시위를 보면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조선인민군창건 60돐경축 열병식과 무력시위를 기록영화에서 보고도 감탄했지만 저는 우리의 자위력이 강해진것을 보고 얼마나 힘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때마다 지난 전쟁때의 생각이 떠오르고 지리산빨찌산시절이 되살아나 눈물이 자꾸 났습니다.

지난 전쟁때에 비하면 오늘의 우리 나라 무장력이 얼마나 강해졌고 일심단결의 힘이 얼마나 세졌습니까.

이것이 다 수령을 잘 만난 덕이라고 생각하니 어버이장군님을 모신 행운이 가슴에 부풀어올라서 그날 저는 열병식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손자더러 우리 장군님의 노래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분이 너무도 좋아서 술을 한잔 하였습니다. 저는 원래 술을 좋아했으나 40년가까이 옥방에서 살다보니 술을 마시지 못했고 요즘은 의사선생님들이 만류해서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장군님덕에 국력이 세지고 천하에 무서울게 없다는 생각으로 너무 기분이 좋아 한잔 하였습니다.

술이란 이렇게 꼭 마셔야 할 때 마셔야 제맛도 난다는것을 알았습니다.

수령을 잘 만나면 작은 나라도 사상의 강국, 정치대국이 되고 군사강국이 된다는 말을 쉽게 들을 일이 아닙니다.

우리 장군님이시야말로 사상으로 이기시고 지략으로 이기시며 담력으로 이기시는 위대한 영걸이십니다.

흔히 사람들은 장군이라고 하면 용맹으로 싸우는 무인을 뜻하지만 우리 조국에서는 사상으로 세상천리를 밝히고 지략과 담력으로 대적을 무찌르는 문무를 겸비한 령수를 장군이라고 부른다고 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칭송하신것처럼 우리의 김정일동지이시야말로 문무를 겸비하신 령장이십니다.

세계의 정치가들치고 사람들을 묶어세우려고 하지 않는 정치가가 없지만 그런 욕망을 실현한 정치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을 묶어세우는것은 욕망이나 강요로는 될수 없습니다.그것은 오로지 위대한 사상의 힘, 정치의 힘, 사랑의 힘이 있을때만이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저는 이 진리를 우리 장군님의 사상과 정치와 사랑에서 깨닫고있습니다.

제가 평양에서 보아도 그렇고 백두산으로 갈 때 량강도에서 보아도 그렇고 인민군부대나 건설장에 가보아도 그렇고 온 나라 인민이 말을 해도 장군님의 뜻으로 똑같은 말을 하고 걸음을 걸어도 장군님의 의지로 발걸음을 맞추는 일심단결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우리 나라에 온 외국의 공산당 총비서들을 여러 사람 만났습니다. 어느 한 나라 공산당 총비서는 저의 손을 잡고 지금 조선의 사회주의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힘을 얻는다고 하면서 현 시대를 움직이는 지레대는 김정일동지의 손에 쥐여져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의 말이 옳다고 하면서 우리 장군님께서는상을 자신의 손바닥우에 올려놓고 움직이신다고 했더니 그도 나의 말에 동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겨야 장군이지 지면 장군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언제나 이기시는 장군중의 장군이십니다.

김정일동지만 계시면 우리는 언제나 이깁니다. 그래서 저는 시인이 아니지만 장군님께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는 가사를 써서 올렸습니다.

제가 남쪽에 있을 때 친분이 있던 한사람이 얼마전 3국에서 저에게 편지를 보내여왔는데 그는 리형이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는 가사를 썼다는 보도가 《부산일보》에 실렸다고 하면서 그 가사와 악보를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리형이 쓴 가사와 같은 세상이 반드시 올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김정일동지만 계시면 우리는 이긴다는 신념은 북쪽사람들의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남쪽사람들의 신념이기도 합니다.

사대풍토에서 제정신을 못가지고 큰 나라에 허리아프도록 절을 하며 매워사는 정상배들을 보아오다가 자기 철학을 가지고 대국에 당당하게 맞서 배심있게 민족의 대를 세워나가시는 김정일장군님의 정치상을 보고 남쪽의 뜻있는 사람들은 저저마다 령도자를 잘 만나야 인간의 존엄도 빛나고 민족의 자주성도 선양되며 나라의 앞날도 밝다고 하면서 절세의 위인을 모신 민족의 행운을 두고 더없이 기뻐하고있습니다.

참으로 단군이래 5천년의 우리 민족사에서 강성한 때도 있었지만 탁월한 수령과군을 잘 만난 덕으로 오늘처럼 우리 조국이 위대하고 우리 인민이 강대하며 우리 배달민족이 행성의 각광을 받는 때는 일찌기 없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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