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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4(2015)년 3월 18일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하는 통일애국투사 (1)

 

공화국의 수도 평양의 통일거리에는 신념과 의지의 전형인 리인모동지의 반신상이 있다.

 

 

조국통일상 금메달이 부각되여있는 화강석대돌우에 34년간의 옥중고초가 슴배여있는 수인복차림으로 철쇄에 묶인 두주먹을 억세게 틀어쥐고있는 리인모동지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떠나간 혁명전사에게 가장 값높은 영생의 삶을 안겨주신 절세위인들의 한없이 뜨거운 동지애의 세계를 가슴뜨겁게 받아안으며 절해고도에서도 변심없이 혁명적지조를 지켜 견결히 싸운 통일애국투사의 불굴의 삶에 대하여 돌이켜보군 한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종군기자로 활동하면서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을 영웅적투쟁과 위훈에로 고무추동하던 리인모동지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지리산인민유격대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불행하게도 1952년 1월 총상을 입고 적들에게 체포되게 되였다. 그때부터 그의 옥중생활이 시작되였다.

이때 그에게는 전향문을 쓰고 나가느냐 아니면 모진 옥중고초를 이겨내며 신념과 지조를 지키느냐 하는 두 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추악한 변절이고 배신인 전향을 거부하고 감옥에 남는 길을 서슴없이 택하였다.

리인모동지의 기나긴 옥중생활을 어찌 글로 다 옮길수 있으랴.

그가 갇혀있은 감방은 손으로 재여 너비 다섯뽐반, 길이 열세뽐짜리 해빛 한줄기 스며들지 않는 먹방이였다. 교형리들은 그를 이런 캄캄한 독감방에 가두어넣고 《전향 안한 빨갱이들은 영원히 해빛을 못 보게 해야 한다.》고 떠벌이며 뼈가 부서지고 살점이 짓이겨지는 야수적고문을 가하였다. 추운 겨울날 옷을 벗긴 알몸에 얼음같은 랭수를 퍼붓고 꽁꽁 묶어 공중에 매달아 두들겨패는 고문, 고문대에 묶어놓고 코에다 물을 부어넣는 고문, 무리로 달려들어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리는 고문 …

사람들이여, 잠시라도 자신을 그의 한생이 흘러간 그 캄캄하고 비좁은 독감방에 세워보라. 그리고 해볕을 받고 땅을 밟을 권리마저 빼앗긴채 갖은 악형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숨쉬는 화석》의 고통을 되새겨보라. 그러면 그 모진 고초를 과연 무슨 힘으로 이겨낼수 있었는가 하는 물음이 저절로 생겨날것이다.

서울형무소를 거쳐 대전형무소로, 거기에서 다시 광주형무소, 부산형무소로 이송되며 34년, 날자로만 세여도 그것은 1만 2 400여일에 달한다.

매일같이 가해지는 중세기적인 고문과 갖은 회유기만, 비렬한 모략과 끈질긴 위협공갈속에 참기 어려운 배고픔과 추위가 엄습하는 감옥생활은 이루 형언할수 없이 처절한것이였다.

그렇다면 리인모동지는 타고난 신념의 강자였던가?

아니다. 그도 인간으로서 소중한 꿈이 있었다. 또 삶에 대한 애착과 행복에 대한 지향은 누구보다도 강렬하였다.

하다면 그토록 강직한 그의 신념과 의지는 과연 어떻게 싹트고 자라난것인가.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한 시기 그는 량강도 김형권군의 가난한 화전농의 가정에서 태여나 나라잃은 망국노의 설음이 무엇인가를 뼈에 사무치게 체험하며 자랐다.  

개마고원의 궁벽한 벽촌에 파묻혀있던 10대의 어린 가슴에 커다란 충격을 준것은 1930년 8월에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선생님께서 울리신 파발리의 총성이였다. 이것은 일본도를 차고 거들먹거리는 왜놈들만 보면 증오심이 불같았으나 어떻게 울분을 터칠지 몰라 모대기던 그의 가슴에 비껴든 한줄기의 서광이였다.

(조선민족은 싸우고있다. 가자, 조국해방을 위해 싸우시는 김일성장군님의 항일무장부대를 찾아가자.)

이렇게 되여 그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찾아 온 동북땅을 찾아헤매였다. 그때로부터 몇해가 지난 1937년 6월 력사적인 보천보전투소식은 리인모동지의 가슴속에 민족구원의 위대한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존경과 흠모심이 더욱 끓어번지게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리인모동지는 뜻밖에도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만나뵙게 되였다. 김정숙어머님의 손길을 따라 혁명의 진리를 깨닫고 투쟁의 길에 나선 리인모동지는 조국광복회 풍산지구혁명위원회 서부지구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김일성장군님의 전민항쟁로선을 관철하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싸웠다.

그 나날은 리인모동지의 가슴속에 싹트고 자란 혁명적신념과 의지가 억센 줄기로 성장한 잊지 못할 나날들이였다.

리인모동지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을 따르며 자래운 신념을 위대한 우리 당만을 믿으며 억척같이 굳혔다. 하기에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영광스러운 우리 당을 창건하신 그해에 수령님과 당을 한생토록 받드는 혁명의 전위투사가 될 굳은 결심을 안고 당에 들었으며 새 조국건설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였다.

이렇게 성장한 리인모동지였기에 육체와 정신을 사정없이 파고드는 극도의 고통속에서도 그의 심장은 언제나 당원증을 가슴에 품고 한생을 수령의 전사로 충직하게 살며 싸울것을 다짐한 그 맹세, 조선로동당의 당원이라는 자각으로 맥박쳤다.

(내가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항일의 혈전만리길에서 겪으신 우리 수령님의 풍상고초에 어찌 비길수 있겠는가. 그리고 당원의 량심과 두고온 고향, 사랑하는 부모처자를 어찌 배신할수 있겠는가.)

리인모동지의 뇌리에는 항상 이 생각만이 고패쳤다고 한다.

바로 위대한 수령님과 당앞에 다진 맹세, 풍산에서 김정숙어머님으로부터 받은 각별한 믿음과 사랑,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세인을 놀래운 그의 완강한 신념과 의지의 버목이였던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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