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금강산》에로의 려행 (3)
민족의 슬기어린 법운암과 천연기념물들
《룡악산에 있는 력사유적과 유물들을 원상대로 복구보존하며 룡악산의 자연풍치를 잘 보호하여야 하겠습니다.》
룡악산의 대봉을 내려 룡악산 남쪽중턱에 이르면 고구려시기의 절간이였던 법운암이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안겨든다.
기묘한 바위들과 푸른 나무들, 조선식기와를 얹은 담장과 옛 모습 그대로의 단청무늬 등이 어울려 자못 그윽한 고풍을
법운암은 고구려시기에 세운 영명사에 속한 암자로서 조선봉건왕조중엽에 다시 고쳐지었다고 한다. 법운암을 고구려때
천수백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법운암은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법운암주변에는 우리 나라 천연기념물들로 등록된 룡악산은행나무와 느티나무, 1900년부터 자란 룡악산참중나무가 위세를
천연기념물인 룡악산은행나무에는 예로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임진조국전쟁시기 나라를 지켜 끝까지 싸울 굳은 마음을 다진 승려 셋이 한구멍에 세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어찌 이 나무뿐이랴.
룡악산느티나무도 500여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다.
대체로 나무의 가지는 뿌리우로 자라는데 이 나무는 천연바위우에 억세게 뿌리를 내리고 굵은 가지를 뿌리아래로 드리운
룡악산의 아늑한 곳에는 조선봉건왕조시기 량반자식들을 교육할 목적으로 세운 사립교육기관인 룡곡서원도 자리잡고있다.
룡악산의 력사유적들과 천연기념물들은 우리 민족의 열렬한 애국심과 뛰여난 재능, 훌륭한 건축술을 후손들에게 깊이 새겨주고있다.
룡악산은 결코 자연의 경치로만 아름다운 산, 유구한 력사로만 자랑높은 명산이 아니다.
오로지 인민들에게 기쁨과 행복만을 안겨주시려 온갖 로고를 다 바쳐오신
《평양의 금강산》―룡악산은 오늘도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