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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4(2015)년 3월 13일
 

백남운

(1897. 3. 19-1979. 6. 12) 국가활동가 -

 

 서울 연희전문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하면서 《경제연구회》라는 비밀소조를 뭇고 학생들속에 선진사상을 보급하였으며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를 자부하는 마음으로 《조선사회경제사》를 저술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혁명투쟁의 영향하에 《경제연구회》를 《적색연구회》로 이름을 고치고 활동하다가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중생활을 하였다. 1941년부터 1945년 8월까지 《리조실록》발취사업을 하면서 조선력사연구사업을 심화시켰으며 민족적지조를 지켜 싸웠다. 그후 서울에서 근로인민당 창당사업에 참가하였으며 1948년 3월까지 이 당의 부위원장으로 사업하였다. 이 시기 조선학술원 원장, 민족문화연구소 소장, 민전 의장의 직책을 력임하면서 정치활동을 벌렸다. 1948년 4월 평양에서 소집된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에 근로인민당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이때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니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에 의하여 교육상으로 사업하면서 나라의 민족교육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56년부터 과학원 원장, 1967년부터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 사업하였다. 이 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애국적이며 혁명적인 가정과 유년시절, 초기혁명활동과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을 수록한 도서 《김일성동지의 영웅적위업》을 집필하였으며 많은 혁명사적자료들을 수집정리하였다. 1972년부터 사회과학원 부원장으로 사업하였다. 공화국의 부강발전과 조국통일위업에 기여한것으로 하여 김일성훈장(1972년)과 조국통일상(1990년)을 비롯하여 많은 훈장을 받았다. 묘는 애국렬사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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