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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4(2015)년 3월 9일
 

김창준

(1890-1959) 사회활동가 -

 

중국 상해에 있는 그리스도교아시아총회의 조선그리스도교감리회 대표, 서울 종로중앙교회 목사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3. 1운동때에는 독립선언서를 발기한 33인중 한사람으로서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간 감옥생활을 하였다. 8. 15후 서울장안의 종교인들로 국제교화협회를 조직하고 민주세력을 규합하는 운동에 나섰다. 1947년 2월 그리스도교내 애국적량심을 가진 600여명의 교인들과 함께 서울의 천교당에서 남조선그리스도교민주동맹을 결성하고 그 위원장으로 선거되였다. 1948년 4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 초청장을 받고 평양에 도착하였으며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옵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그후 평안남북도일대의 그리스도교인들을 그리스도교도련맹에 묶어세우는 사업을 잘하여 그 80%이상의 교인들을 동맹에 망라시키는데 기여하였다. 1949년 2월 내각직속 간부학교를 졸업한 후 남조선 제 정당 사회단체협의회 부서기장으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초대서기국장으로, 의장으로 사업하였으며 전쟁시기와 전후시기에는 계평화대회에 조선대표로 참가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였으며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상임위원회 위원이였다. 그는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위한 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하여 1990년 8월 15일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묘는 애국렬사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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