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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4(2015)년 3월 8일
 

허정숙

(1908. 7. 16-1991. 6. 5) 정치활동가 -

 

 1927년에 다른 나라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얼마동안 《동아일보》기자로 일하였다. 1927년 10월 쏘련으로 가려다가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1929년부터 반일지하투쟁에 참가하였다. 광주학생사건, 조선공산당재건사건 등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감옥생활을 하였다. 출옥후 1935년부터 로동운동에 참가하였으며 1936년 11월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동만과 남만에서 조직선을 찾다가 일제군경의 추격을 받고 중국 관내에 들어갔다. 1937년 8월부터 연안의 항일군정대학에서 공부하였으며 그해 11월부터 중국공산당 팔로군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45년 12월초 조국에 귀국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처음으로 만나뵈웠다. 그후 《정로》사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1946년 2월부터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선전부 부부장, 11월부터 간부부 부장으로 사업였다. 1947년 2월부터 북조선인민위원회 선전국장, 1948년 9월부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화선전상으로, 1957년 11월부터 사법상, 1959년 12월부터최고재판소장으로 사업하였다. 1972년 7월부터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서기국장, 1981년 11월부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사업하였다. 1946년 8월부터 당중앙위원회 위원이였으며 1948년 9월부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였다. 그밖에 대외문화련락협회 위원장(1957. 1-1960. 1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부의장(1972. 12-1982. 2), 조선민주녀성동맹 중앙위원회 비서장(1975. 3-1978. 12), 조국통일민주주의전 의장(1978. 8-1991. 6),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1980-1989),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 위원장(1980-1989) 등을 겸임하였다. 우리 당과 공화국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이룩한 공로로 하여 김일성훈장, 조국통일상을 비롯한 많은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묘는 애국렬사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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