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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2월 27일
 

누구나 다 아는 축구해설원

 

공화국의 품에서 영생의 삶을 누리는 사람들속에는 재능있는 축구해설원, 축구박사로 우리 인민뿐아니라 남조선과 해외동포들속에 널리 알려진 리동규선생도 있다.

일본땅에서 나서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축구를 남달리 좋아하였다.

1950년대에 도꾜조선중고급학교에서 축구주장으로 활동하면서 자기 팀을 당시 도꾜방면의 200여개 학교들중에서 가장 우수한 팀으로 이끈 그는 축구에 대한 남다른 포부를 안고 도꾜교육대학(당시) 체육학부에 입학하였다.

조선사람에 대한 민족적차별이 극심하고 돈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일본땅이였지만 리동규선생은 조국에서 해마다 보내주는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으로 학비걱정을 모르고 축구기술을 부단히 련마하였으며 졸업후에는 도꾜조선인체육협회 사무국장으로 사업하였다.

해외동포들에 대한 어머니조국의 극진한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애국의 열망으로 늘 가슴불태우던 선생은 조국의 체육발전에 보탬이 될수 있는 체육관련 도서들과 체육측정기구들을 마련하여가지고 1960년 10월 귀국의 배길에 올랐다.

조국에서는 그의 희망대로 체육과학연구부문에서 마음껏 연구사업을 할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제8차 세계축구선수권대회와 해외원정경기를 비롯한 중요국제경기들이 진행될 때마다 경기에 출전하는 우리 축구팀의 전술체계와 훈련방법을 연구할데 대한 믿음도 안겨주었다.

 

그는 세계축구발전추세와 축구명인들에 대한 자료를 깊이 연구한데 기초하여 우리 나라의 축구를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할수 있는 가치있는 체육과학론문들을 수많이 발표하였을뿐아니라 폭넓은 축구지식과 독특한 화술로 축구경기해설을 인상깊게 잘하여 인민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공화국의 축구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그에 대해 여러차례나 과분한 평가의 말씀을 주시였으며 친히 그를 곁에 앉히시고 축구경기를 함께 보아주시는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또한 그가 중병에 걸렸을 때에는 강력한 의료진도 보내주시였으며 끝내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을 보내주시고 영생의 높은 언덕에도 세워주시였다.

 

 

 

홍안의 24살 나이에 조국에 귀국의 닻을 내린 때로부터 반세기가 넘게 흘러온 그의 인생행로는 우리 공화국이야말로 민족성원모두를 따뜻한 품에 안아 키워주고 내세워주는 고마운 어머니품이라는것을 웅변으로 보여주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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