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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4(2015)년 2월 25일
 

인민의 행복에서 기쁨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

 

우리 공화국의 그 어디에나 인민의 행복을 위해 모든것을 다바쳐오신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의 거룩한 헌신의 자욱이 뜨겁게 새겨져있다.

조국해방의 첫 기슭에서부터 인민들에게 문명하고 풍족한 생활을 안겨주시기 위해 바치신 우리 수령님의 어버이사랑은 《인민생활향상》이라는 이 글발이 숭엄히 전해주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들의 행복은 수령님의 기쁨이였고 락이였습니다.》

해방직후의 가을 어느날에 있은 일이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알아보시기 위하여 어느 한 시장에 나가시여 시장수요며 가격 등 인민생활과 관련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였다.

이때 한 할머니가 수령님께 풋당콩을 사달라고 청원하였다.

할머니는 치마가 없어 학교에 못가겠다고 칭얼대는 손녀애를 달래다가 풋당콩이라도 팔아 치마감을 마련하려고 장에 나왔던것이다.

할머니의 이런 정상을 헤아리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못내 가슴이 아프시였다.

지난날 침략자들에 의해 헐벗고 굶주리였던 우리 인민의 가긍한 모습이 그 할머니에게 다 비껴있는듯싶었다.

밥 한술에 목이 메여 머슴의 멍에를 져야 했고 고기 한점에 대대로 물려오던 가산을 팔아야 했던 사람들, 새 생명을 품고도 죽 한술 먹어보기 힘들었고 갓 태여난 귀염둥이의 작은 배마저 채워줄길 없어 남의 집 대문앞에 버려야 했던 녀성들, 변변히 입을 옷조차 없어 베잠뱅이 하나를 식구가 돌려입지 않으면 안되였고 짚오래기마저 얻을수 없어 맨발의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던 아이들의 그 설음을 다 말해 무엇하랴.

안색을 흐리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할머니에게 조금만 참아달라고,라가 해방되였으니 이제 다 잘살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이 풋당콩을 다 사면 집에서 아이들에게 풋당콩맛을 보일수 없지 않겠는가고, 그래서 자신께서는 한되박만 사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값을 치르시며 그 돈으로 손녀애치마감을 끊으라고, 앞으로 할머니같은분들이 애들 옷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 일이 없을것이라고 따뜻이 이르시였다.

마운 은인을 만나 풋당콩을 팔게 된 할머니는 너무 기뻐 걸음을 옮기시그이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돈을 세여보았다. 그런데 웬일인가. 풋당콩 한되박값에는 비길수 없이 엄청나게 많은 돈이 그의 손에 쥐여져있었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때의 일을 늘 가슴에 새겨두시고 인민들의 풍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위해 크나큰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새 조국건설의 그 바쁘신 나날에도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늘 마음쓰시며 토지개혁법령의 발포와 같은 여러가지 혁명적인 조치들도 취해주시고 양덕군 은하리와 같은 외진 산골마을에까지 찾아가시여 황금산의 새 력사를 펼쳐주시였다.

불비쏟아지는 전화의 나날에는 전재민들의 생활을 잘 돌봐줄데 대한 시책, 전반적무상치료제의 실시, 로동자, 사무원들에 대한 눅은 값의 보충미공급제를 비롯하여 세계 그 어느 전쟁사에도 있어본적 없는 인민에 대한 위대한 사랑의 서사시를 수놓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전후 페허속에서 락후한 농업의 후과를 가시고 인민을 위한 주체농법의 토대를 하나하나 마련해나가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농업협동화의 종소리에 이어 사회주의농촌테제의 발표로 농민문제, 농업문제해결을 위한 투쟁의 장엄한 포성을 울리시였다.

우리 수령님의 저택정원에 대한 이야기도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그이의 저택정원에는 여러가지 농작물과 과일나무, 경제식물들로 꽉 들어차있었다.

많은 세월을 두고 시험을 거듭하시고 여러가지 품종을 따로따로 심어 대비해보기도 하시면서 농업부문 지도일군들에게 우리 나라 기후풍토에 맞는 새로운 품종들과 재배방법을 일반화하도록 하신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두고 얼마나 려하시였으면 온 나라 방방곡곡의 포전들을 쉬임없이 돌아보시면서 농사문제와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농업과학자들의 연구사업을 세심히 지도하시며 주체적인 육종원리와 연구방법론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겠는가.

언제인가는 한 농장을 찾으시여 농장원들에게 새로운 벼농사방법을 가르쳐주시다가 자, 내 차에 타시오, 우리 집에 가서 직접 봅시다라고 하시며 그들을 댁으로 데리고가시여 서로 다른 벼종자들의 특성과 재배방법까지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주체75(1986)년 9월 어느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장소에서 우리 인민들의 식생활을 보다 윤택하게 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여러가지 제품들을 보아주시였다.

그것을 리용하게 될 인민들의 행복한 모습을 그려보시는듯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제품들을 보아주신 그이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고기생산을 늘일 방도를 의논하시였다.

얼마전에 유럽을 다녀온 그 일군은 어버이수령님께 어느 한 나라에서 풀밭을 리용하여 집짐승을 많이 기르고있는 사실을 비롯하여 유럽방문에서 보고 느낀 여러가지 문제들을 말씀올리였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퍼그나 흘렀다.

일군은 어버이수령님께 잠간만이라도 휴식하시기를 간절히 말씀올리였다.

버이수령님께서는 너그러이 웃으시며 이번에 유럽에 갔다와서 좋은 의견을 제기하였다고 하시면서 나는 그런 좋은 의견은 하루종일 들어도 피곤하지 않습니다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인민을 위한 일에서는 피곤이 있을수 없고 인민의 행복에서 찾은 기쁨은 모든 휴식을 대신할수 있다는것, 바로 이것이 우리 수령님께서 지니고계신 행복관이였다.

커가는 인민의 행복에서 더없는 기쁨을 찾으시였기에 우리 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나날까지 2만 600여개의 단위들을 현지지도하시고 2 530여일의 일요일과 명절날들을 쉬지 않으시고 인민을 위해 바치시였다.

하기에 언제인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새 세기를 맞으며 지나온 세기를 돌이켜보니 수령님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수령님께서 인민생활에 대하여 얼마나 마음을 많이 쓰시였으면 자신의 건강을 축원하는 일군들에게 우리 인민들이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부럼없이 살게만 되면 100살까지 살수 있다고 하시였겠습니까, 우리는 수령님께서 그처럼 바라시던 숭고한 념원을 하루빨리 현실로 꽃피워야 합니다라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은 인민의 행복에서 기쁨을 찾으시며 한평생 인민사랑의 길을 쉬임없이 걸으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하기에 우리 인민들은 누구나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그려볼 때마다 소리없이 눈굽을 적시는것이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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