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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3(2014)년 12월 1일

문익점과 목화

문익점(1329-1398년)은 고려시기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목화씨를 보급한 애국적문관이다.

자는 일신, 호는 삼거우사라고 하였다.

그는 경상도 진주에서 리부상서를 지낸 문여준의 아들로 태여났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20살 되는 해 봄부터 당시 유명한 학자인 리곡에게서 그 아들인 리색과 함께 배웠다.

23살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인차 관직에 등용되지 못하였다.

30대에 이르러 예문관 직강을 거쳐 사간원 정언, 좌사의대부 벼슬을 지냈으며 1363년에는 이웃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그 나라에서는 문익점을 강제로 억류하고 매수하여 고려를 침입하는데 리용하려고 하였다. 이를 단호히 거부한것으로 하여 그는 귀양을 가게 되였는데 그곳에서 목화를 재배하는것을 보고 조국에 돌아가 목화를 심어 보급시킬 결심을 하였다. 당시 그 나라에서는 목화가 자기 나라의 지경밖으로 나가는것을 엄격히 통제하고있었다.

문익점은 조국으로 돌아올 때 10여알의 목화씨를 붓대속에 몰래 감추어가지고 왔다.

그는 1364년에 경상도 진주에 있는 자기의 장인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를 재배하였는데 첫해에는 겨우 한대가 살았으나 3년만에는 고향사람들에게 목화씨를 나누어줄수 있게 되였다.

그후 씨아와 물레가 만들어져 10년안팎에 목화재배법과 무명짜는 법이 나라의 여러 지역에 퍼지게 되였다. 이와 같이 문익점은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목화를 들여오고 그 재배법을 보급시키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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