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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송선생

 

-김월송선생-

파란많은 인생사에 애국의 뚜렷한 자욱을 남긴것으로 하여 오늘도 영생의 삶을 누려가는 사람들속에는 김월송선생도 있다.

1877년 경상북도 안동의 한 봉건량반가문에서 태여난 선생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자 가정을 뛰쳐나와 반일의병투쟁에도 참가하고 상해림시정부에도 관여하였지만 얻은것이란 파쟁과 권력다툼의 쓴맛뿐이였다.

만주땅에서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신 김형직선생님을 만나뵙고 참다운 조선독립의 길을 걷게 된 선생은 1930년부터 해방될 때까지 중국 동북지방에서 반일지하투쟁에 참가하였으며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항일유격대에 대한 원호사업도 활발히 벌렸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선생을 잊지 않으시고 해방후 그를 몸가까이 불러 애국투사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업하도록 해주시고 남조선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오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 개회사도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국내외에서 장기간 굴함없이 싸웠으며 대표들중에서 년세가 제일 많은 김월송선생이 하도록 높이 내세워주시였다.

신앙과 정견, 과거를 불문하고 애국애족을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을 한품에 너그러이 안아주시는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께 여생을 다 바칠 충정의 맹세를 언제나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살던 선생은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초 뜻하지 않게 적들에게 체포되게 되자 수령님께 올리는 편지를 남기고 금강산 구룡폭포에 몸을 던져 깨끗한 량심과 의리를 지키고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사랑과 의리에 떠받들려 김월송선생은 첫 조국통일상수상자로, 항일혁명렬사로 오늘도 애국렬사릉의 높은 언덕우에서 영생하고있다.

 

    

애국렬사릉에 세워진 김월송선생의 묘비와 애국의 대를 꿋꿋이 이어가는 김월송선생의 유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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