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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5(2016)년 4월 3일
 

민족이 아는 작가

 

지금으로부터 3년전 공화국의 여러 신문들에는 조령출선생의 생일 100돐을 맞으며 그를 소개한 기사들이 실렸다.

기사들에서는 조령출선생만큼 겨레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고 사후에도 민족의 추억속에 그 이름이 빛나는 작가는 찾아보기 드물다고 하면서 눈물과 기쁨, 수난과 영광으로 이어진 그의 극적인 운명과 민족사에 새겨진 빛나는 이름은 작가라면 누구나 지니고싶어하는 부름, 민족의 작가라는 고귀한 영생은 어떻게 차례지는가에 대한 생동한 대답으로 된다고 썼다. 저명한 극작가이며 시인이였던 조령출선생은 1913년 충청남도 아산군 매곡리의 가난한 집에서 태여나 모진 생활난에 허덕이는 속에서도 문학에 뜻을 품고 고학으로 고등보통학교와 와세다대학을 졸업하였다.

식민지청년으로서 민족이 당하는 고통과 가난으로 인한 가정적인 고충까지 겪어야 했던 그의 불우한 인생은 그가 창작하는 시와 가사마다에 그대로 담겨졌다. 선생이 해방전에 창작한 《집없는 천사》, 《외로운 가로등》, 《락화류수》 등은 나라잃은 슬픔에 가슴을 치는 겨레의 비운을 담은 대표작이라고 할수 있다.

해방후 조령출선생은 조국을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존경과 흠모의 정을 안고 장막희곡 《혁명군》(《독립군》)을 창작하였지만 남조선을 강점한 미군정의 가혹한 탄압으로 얼마후 막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외세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조국과 민족을 위한 창작활동도 삶의 희망도 기대할수 없다는것을 절감한 선생은 민족의 얼이 살아숨쉬고 진정한 인민의 정치가 펼쳐지는 공화국의 품에 안기였다.

 

- 창작활동을 하던 때의 조령출선생과 이름있는 독창가수였던 부인 김관보 -

 

선생은 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조국보위의 노래》, 《어머니 우리 당이 바란다면》을 비롯한 국보적인 노래들과 혁명가극 《한 자위단원의 운명》, 《밀림아 이야기하라》, 《금강산의 노래》, 《밝은 태양아래에서》 등 여러 가극들의 대본과 노래들을 수많이 창작하였다.

재능있는 작가인 조령출선생은 생애에 가사, 시, 소설, 고전작품윤색 및 각색, 가극, 연극을 비롯한 수많은 작품들을 창작함으로써 주체문학예술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1993년 5월 여든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국립예술극장과 조선작가동맹 작가, 국립영화문학창작사 주필, 국립민족예술극장 총장, 교육문화성 부상,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한 선생은 문학으로 나라의 번영과 민족의 통일을 위한 애국성업에 이바지하였다.

김일성상계관인이며 조국통일상수상자인 조령출선생은 생전에 늘 내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재능있는 작가, 로동당시대의 조령출로 다시 태여나게 된것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을 위대한 스승으로 모시였기때문이라고 긍지에 넘쳐 말하군 하였다.

 

 

열렬한 애국심과 뛰여난 재능을 한생토록 지켜주고 빛내여준 한없이 고마운 품에 안기였기에 조령출선생은 조국이 사랑하고 민족이 아는 작가, 참된 애국자로 오늘도 영생하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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