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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5(2016)년 4월 1일
 

70고령의 몸으로 결연히 북행길에 오른 애국지사

 

오호라!

위대하도다 현명하도다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

이내 인생을 구원해주셨소

이 한몸 죽은들 천만년 잊을손가

자애깊으신 김일성장군님

 

이 시는 량심적인 민주인사 김규식선생이 공화국의 품에 안겨 받아안은 한량없는 사랑과 은정에 감복하여 생의 마지막순간에 터친 심중의 고백이다.

경상북도 울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여나 일찌기 미국 프린스톤대학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받은 선생은 상해림시정부의 외무부장, 중경림시정부의 부주석 등을 하면서 반공을 주장해왔고 해방후에는 서울에서 미국에 의해 조작된 남조선《과도립법의원》 의장으로서 미군정청의 조종하에 중간정치세력내의 일부 인물들을 모아 《좌우합작운동》과 《반탁운동》을 벌리며 민주진영을 파괴하는데 앞장서기까지 했다. 이렇게 나라와 민족앞에 떳떳치 못한 생을 살아온 선생이 자기의 잘못된 지난날과 결별하고 참된 정의와 진리의 길로 삶의 좌표를 정하게 된것은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와서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뵈온 때부터였다.

 

-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군사분계선을 넘어선 김규식선생과 그 일행 -

 

불미스러운 과거보다 가슴속에 간직된 민족적량심을 더 귀중히 여기시며 련석회의초청장까지 보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넓은 도량에 감복하여 김규식선생은 불원천리하고 평양길에 올랐다.

선생은 평양에 체류하면서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민족애와 높으신 식견, 고결한 덕망에 연방 탄복을 금치 못하면서 김일성장군님만을 믿고 따르는 길에 자기가 그처럼 암중모색하며 찾아헤매던 참된 정의의 길, 진리의 길, 재생의 길이 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하기에 선생은 련석회의를 마치고 서울로 나가서도 자기의 애국적지조를 굽히지 않고 미군의 남조선강점과 《단선》, 《단정》책동을 반대하여 견결히 투쟁하였으며 전쟁이 일어나자 병약한 70고령의 몸으로 결연히 북행길에 올랐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전시의 그 어려운 조건과 환경속에서도 선생의 신변이 걱정되시여 그를 마중해오도록 하시고 경치좋은 곳에서 휴양생활을 하도록 념려해주시였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앓고있던 그의 신병을 치료하도록 유능한 의료진을 보내주시고 귀중한 약재들과 섭생에 필요한 식료품까지 보장해주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12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부주석으로 사업하던 김규식선생이 오랜 중환으로 하여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보고를 받으시고는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고,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할분인데 아깝게도 사망하였다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장례를 잘하도록 뜨거운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에 의하여 김규식선생은 오늘도 조국통일상수상자로, 조국과 민족이 잊지 않는 애국지사로 애국렬사릉의 높은 언덕에서 영생의 삶을 누리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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