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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사랑의 기슭


8


강기석은 새로 건설하는 원료장을 향해 걸어가고있었다.

오늘도 그는 생산로전반에 대한 장입을 맡아보면서 시간을 내여 공사장에 두번이나 다녀갔었다.

오후에 조립한 제관품들을 실어다놓은것을 보고 갔는데 연공들이 그것을 서둘러 설치할가봐 마음이 놓이지 않아 교대를 마치고 다시 나오는 걸음이였다.

내부벽체들이 충분히 양생되기 전에 설치작업을 벌려놓으면 구조물에 손상이 갈수 있었던것이다.

나오던 길에서 동길이를 맞띄운것은 우연이였지만 그러지 않아도 조용히 만나서 타일러주자고 생각했던것이다. 건설공사는 낮에만 하는터이여서 교대시간이 끝난 작업장은 조용했다. 연공들 몇명이 제관품을 들여앉힐 준비작업을 벌려놓고있었다.

설치는 다음날 하게 된다는 공정계획을 확인하고나서 돌아가려던 참에 지배인이 그곳에 나타났다. 철도인입선작업현장에 나왔다가 건설형편을 돌아보려고 들린것이였다.

연공반장을 불러 진행정형을 묻고나서 펼쳐놓은 도면을 한참이나 들여다본 지배인은 트라스를 올리지 않은 건물안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마지막구간까지 보고 밖으로 나오던 그는 안쪽에 쌓아놓은 제관품들을 유심히 살폈다.

연공반장을 불러 다시 도면을 펼쳐본 지배인은 수조관을 설치하게 된 내부벽체쪽으로 다가갔다.

《저건 어떻게 된 일이요?》하고 그는 연공반장을 돌아보면서 웃쪽을 가리켰다.

《왜 도면대로 돼있지 않소?》

연공반장이 얼떠름해있는것을 보고 보수직장장이 설명했다.

《벽체쌓는 동무들이 그렇게 해놓았기때문에 제관품을 거기 맞게 수정했습니다.》

그제사 연공반장도 영문을 깨달은듯 《설치에는 아무 지장도 없게 돼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래도 아무 일이나 다 법대로 해야지.》

진지한 어조로 그렇게 말한 지배인은 걸음을 옮기면서 《벽체는 어데서 쌓았소?》하고 물었다.

연공반장은 사람들뒤에 서있는 강기석이쪽을 돌아봤다. 대답하라는 뜻이였다.

《우리 회전로직장에서 나온 동무들이 쌓았습니다.》

그쪽을 돌아본 지배인은 강기석이앞에 와서 걸음을 멈추었다.

《동무가 한 일이요?》

기석은 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라고 할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할수도 없었던것이다.

《동문 그래도 제딴엔 뭘 창안한다는 기사지? 저렇게 건성으로 해치우는것두 다 창안이구 혁신이요?》

순탄하게 흘러갈듯 하던 분위기는 갑자기 삼엄해졌다.

《동문 이게 어디에 쓰일 원료창고인지 알기나 하오? 설사 모른다 해도 모든 일을 설계대로 해야지. 뭐가 잘났다구 제멋대루 해!

제관품을 수정해준 사람들도 잘못이요. 왜 제멋대로들 수정해주는가 말이야.》하고 지배인은 보수직장장을 돌아보면서 준절하게 책망했다.

보수직장장은 수정한 책임이 제관공들에게 없음을 발명하고싶었으나 자기가 직접 기사장에게서 지시받은 일이 아니였으므로 립증해주기를 바라듯 강기석이를 쳐다봤다. 하지만 강기석은 고개를 숙인채 잠자코 있었다.

잘못해놓은 일도 일이려니와 자기에 대한 불만때문에 지배인이 더욱 흥분해있다는것을 느꼈던것이다.

게다가 이전부터 지배인이 기사장을 좋아하지 않는 눈치를 알고있었으므로 공연히 기사장을 더 끌어들이고싶지 않았던것이다.

《망태기란 말이야, 제멋대로들… 무슨 일들을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거던, 엉?》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그뒤를 따라나갔으나 기석은 휑뎅그렁한 건물안에 말없이 서있었다.

마지막말은 그의 가슴을 아프게 때렸다.

지배인으로서는 혹 무심히 던졌을수도 있겠으나 아버지가 범한 결함을 잊지 않고 지내는 기석에게는 가슴에 맺히는 말이였던것이다.

아니다. 지배인이 결코 무심하게 한 말이 아니다. 명백히 공명심에 들떠 일을 망쳐먹은 아버지를 념두에 두고 했을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버지에 대해서보다 지배인에 대한 강렬한 반감을 어쩔수 없었다.…

밖에서는 연공들이 하던 작업을 계속하고있을뿐 지배인도 보수직장장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생각없이 걸어갔다.

제관장쪽에서 누군가 불렀으나 듣지 못했다.

길에까지 따라나온것은 박운보였다.

《지배인한테서 말을 들었다며?》

로인이 걱정스럽게 하는 말이였다.

《좀 들었습니다.》

쓰겁게 웃어보이며 그렇게 대답했다.

《잘못은 왕청같은 놈이 저질렀는데 애매한 사람이 봉변을 당하는군.》

《그럴 때도 있는거지요 뭐.》

《내 이 동길이녀석을 그저…》

로인은 제사 분해하며 윽별렀다.

《그냥 두어두십시오. 차차 깨닫게 되겠지요.》

그렇게 말하다가 문득 동길이더러 교양실에서 기다리라고 일러둔 말이 생각났다.

무엇인가 더 말하고싶어하는 로인과 헤여져서 직장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박동길은 교양실에 없었다.

휴계실이며 사무실, 있을만 한 곳을 다 찾아보았으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구태여 다른 동무들에게 묻지 않았다.

자기 말을 소홀히 대했다 해도 동길이가 가버린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를 만나서 조용히 타일러주리라고 생각했던것인데 가슴아픈 질책을 받은 뒤여서 그런지 그런 말을 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합숙에 돌아오니 옷을 차려입은 태호가 의자에 걸터앉아 기타를 타면서 영화의 주제가를 감정담아 부르고있었다.

방안에 들어선 강기석의 표정을 여겨보던 태호는 기타를 책상우에 밀어놓았다.

《여어,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그 물음에서 자기를 깨달은 강기석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심상하게 대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네. 정상이지.》

《모를 소리야.》

태호는 믿어지지 않는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강기석은 손에 들고있던 포장지에 싼 책을 책상우에 올려놓고 걸상에 앉아 실로 아무 일 없었다는듯 기타를 안고 줄을 골랐다. 책은 혜영에게 주려고 가지고 나갔던 《회전로에서의 환원행정》이였다.

동무의 거동을 살피고있던 태호는 아직도 무엇인가를 가늠해보면서 《또 중간공장에 갔었나?》하고 물었다.

《그래.》

《피곤하겠구나.》

《아니, 괜찮아.》하며 강기석은 우선우선했다.

《그렇다면 나하구 놀러가겠나?》

《가자구. 그러지 않아 속이 클클하던 참인데.》

안태호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는듯 싱글거렸다.

《영화관에 좋은 영화가 왔다고 우리 직장 처녀들이 날더러 표를 얻어달라는거야.》

태호는 어색하게 말하며 동무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가면 방해되겠는데.》

《오히려 도움이 될거야.》

기석은 그의 심정을 리해했다.

처녀들과 함께 구경은 가고싶은데 처녀들속에 혼자 끼우게 될 일이 난처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가보자구.》하고 대답하면서도 어째서인지 혜영이를 생각했다.

그는 낮에 구단광연구실에 전화를 걸었었다. 세번을 찾아서야 겨우 전화를 바꾼 최혜영은 어제 저녁에 급한 일이 생겨 약속한 시간까지 가지 못했다는 말을 듣더니 《됐어요.》하고 성이 나서 대답했었다. 책을 가지고 찾아가겠다고 했으나 《전 지금 바빠요. 후에 이야기합시다, 후에…》하고 사절이였다.

바쁘기도 한것 같지만 그 어조에서는 약속을 어긴데 대한 질책도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그들의 상봉은 기약도 없이 뒤날로 미루어졌다.

《옷은 갈아입지 않겠나?》 하고 태호가 물었다.

《이대로 가겠네.》

《그럼 좀 다듬기라도 하라구. 머리기름도 바르구.》

《괜찮아, 교대할 때 목욕은 했으니까.》하고 기석은 심상하게 말했다.

《에- 사람두. 할수 없군.》

그렇게 중얼거리며 안태호는 시계를 보았다.

《좀 이르지만 떠나가볼가?》

그들이 막 나가려는 참에 박동길이 불쑥 방안에 들어섰다.

삼면쟈크가방을 옆구리에 낀 그는 방안을 둘러보고나서 기석이를 마주서서 빙그레 웃었다.

《형님, 내 아까 교양실에서 기다리다가 들어왔소.》

허둥거리는 눈길은 그 말이 미덥지 못함을 나타내고있었으나 강기석은 구태여 묻지 않았다.

《괜찮아. 후에 조용히 이야기하자구.》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요?》

《놀러가는 길이네, 처녀들한테루.》하고 태호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구만. 난 인차 가겠소.》

박동길은 자기때문에 지체될 일은 없다는듯 가방을 손에 든채로 쟈크를 기분좋게 열어젖히더니 그속에서 셀로판지에 포장한 화려한 넥타이를 꺼내서 책상우에 깍듯이 올려놓았다.

《이런게 형님한테 필요할것 같아서 가져왔소.》

《그건 뭔가?》하고 기석은 뜨아하게 물었다.

태호는 책상앞에 다가가서 물건을 들여다보면서 호기심을 품고 칭찬했다.

《이건 고급비단이군, 멋있는데!》

《쌩한거라우.》

박동길은 우쭐해서 뇌였다.

《기석형님이 나때문에 수고했는데 나라구 모른체 하겠소.》

강기석은 아까 구내에서 박동길이를 만났을 때 《후에 말썽이 없게 잘 처리해주우.》하고 당부하던 말이 떠올라 미간을 찌프렸다.

그 너절한 선사품이 혜영에게 주려던 책과 나란히 놓여있는것으로 하여 의분은 더욱 끓어오르는것이였다.

《도루 넣으라구.》하고 그는 자기를 자제하며 타이르듯 부드럽게 일렀다.

《참 형님두, 나도 어린애가 아니요. 인사차릴줄 안단 말이요.… 왜 그러우?》

자기를 지그시 바라보고있는 강기석의 표정에 당황해하면서 손을 움츠리는 동길의 얼굴에 얼없는 웃음이 떠돌고있다.

《가지고 가라구.》

강기석의 목소리는 엄하고 심각했다.

《형님, 뭘 그러우… 나두 다 생각이 있어 가져왔는데.》

두루 그렇게 얼버무리고 구원이라도 청하듯 태호쪽을 흘끔거리면서도 박동길은 어쩔수없이 물건을 도로 집었다.

《난 사실… 여러가지로… 형님이 쳐다보이오.》

그 말이 아까 장인숙이에게서 들은 말이라는것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궁지를 모면하려고 급급히 섬겨올렸으나 오히려 결정적인 역효과를 내고말았다.

《가라구! 당장 돌아가. 너절한 자식.》

강기석은 참아오던 의분을 터뜨리며 숨을 헐떡이였다.

박동길은 눈이 둥그래져서 비실비실 물러서더니 문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강기석은 틀어쥔 주먹을 책상우에 올려놓고 우두두 떨었다.

《너절한 자식, 사람을 앞에 놓고 추어올리면서도 부끄러운줄을 모르니 그 인간이 얼마나 저속해졌느냐 말이야!》

그는 눈을 번뜩이며 흥분하여 혼자소리로 뇌이는것이였다.

《무슨 일인가?》

태호가 어정쩡해서 물었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겁게 한숨을 쉬고 두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더니 잠잠해졌다.

말없는 침묵이 오래동안 흘렀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답답해진 태호가 물었다.

《시시한 일이네.》

《그래? 여보게, 기분도 전환할겸 놀러가자구. 우린 떠나던 걸음이 아닌가.》

《미안하게 됐어. 태호, 혼자 가라구.》

《왜?》

《난 다른데 좀 가봐야겠어, 놀러갈 기분도 아니고.》

《어디로 간다는건가?》

《박운보아바이한테.》

《동길이때문에?》

《그래, 그녀석을 앉혀놓고 단단히 얘기해줘야겠어.》

《그만두라구, 괜히 그 허풍선이같은 녀석이 더 엇나가기가 십상이지.》

《그대로 두어둘순 없네. 들뜨기만 한게 아니라 너절하게 돼가거던. 신발은 단단히 신겨줘야지.》

안태호는 리해할수 없다는듯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우두커니 서있더니 할수 없는듯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뒤에도 오래동안 그렇게 앉아있던 강기석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서 알아들을만큼 말해줘야지.)

합숙을 나서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어두운 마을길을 걸어가느라니 어느해 겨울밤에 1호로의 대보수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박운보아바이가 청하여 그 집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용해공들과 제관공들 여라문명이 로인네 웃방에 둘러앉아 동태국과 고기볶음을 안주삼아 언몸을 풀었었다. 평소에 말이 없던 박운보도 그때 소주기운에 얼근해지자 한바탕 일자랑을 늘어놓았었다.

《임자네 용해공들이 늘 제일이라고 뽐내지만 제강소에서는 우리 제관공들 없이는 아무 일도 못해! 야금기업소란건 80프로가 제관품이거던… 회전로요, 전기로요 하는 쇠를 굽는 로들이 다 무언가? 제관품이지. 천정기중기, 문형기중기, 탑식… 할것 없이 기중기라고 생긴건 다 제관품이야. 탕크요, 콘베아요 하는 등속은 더 말할것도 없어. 자, 그러니 제강소에서 이런것들을 다 떼고보면 무에 남는가, 엉? 뭐가 남는가 말이여?》

그리고는 혈색이 좋은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지면서 즐거운듯 껄껄 웃는것이였다.

로인은 거나해진 기분에 아들사진도 내보였었다.

한장은 동길이 건설장으로 자원해 떠나면서 동무들과 함께 찍은것이였다.

림시로 편성된 대렬의 책임자로 지명되였던 박동길은 가슴엔 꽃을 달고 어깨에는 군관들의 야전가방 비슷한 가방을 메고 한복판에 의젓하게 앉아있었다. 그때 그가 림시로나마 대오의 책임자로 되였던것은 남달리 숙성해보이는 외모때문일수도 있었겠지만 그자신은 마치도 숙련된 지휘관과도 같은 자신만만한 표정이였다.

다른 한장은 철도인입선공사장에서 철길뚝우에 서있는 모습이였다.

동무들과 더불어 일하다가 찍은 모양으로 이른봄바람에 작업복자락을 날리며 한손으로 어딘가 멀리를 가리키고있는 모습이였다.

그 랑만적인 자세에는 쑥대와 마른 댑싸리만이 엉성한 벌판에 공장과 새 도시를 일떠세울 포부와 긍지가 넘치는듯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생활의 문어구에 들어선 청년의 기개였고 희망의 상징이였을뿐이다. 로동과 시련을 이겨나가는 참다운 랑만은 한두장의 사진엔 담지 못할것이다.

그뒤로는 박운보로인도 아들에 대해 자랑하는 일이 없었다.

언젠가 한번 강기석이 아들소식을 물었을 때 로인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거기 일이 어째 탐탁치 않은 모양이야.… 빈터에 공장을 세운다니 헐치야 않겠지.》하고 혼자소리처럼 뇌였을뿐이다.

그러던 박동길이 곡절을 겪으며 제강소에 옮겨왔을 때 로인은 어수선한 기분이였고 심란해 지내면서도 아들이 착심해서 일을 잘하도록 갖가지로 마음을 썼었다.

기석이도 동길이와 함께 일하면서 힘들어하는 눈치면 대신해주기도 하고 용해공의 직업을 두고 좋은 말도 많이 해주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하는 그런 말에 언제나 쉽게 거침없이 수긍하군 하던 태도를 탓하기에 앞서 자기의 단순함이 더욱 용렬하게 느껴진다.

(귀맛좋은 말이나 하고 비위를 맞춰주는것으로는 옳게 교양할수 없다. 진실을 느끼게 하고 진심이 우러나오게 해야 한다.

허위에 기초해서는 아무런 좋은 일도 이루어질수 없다는것을 깨우쳐줘야 한다.)

낯익은 아빠트의 현관에 들어서서 층계를 올라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문앞에까지 와서는 집안에서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말소리에 걸음을 멈추고말았다, 박운보의 성난 목소리가 밖에까지 울리고있었다.

《…일을 설치구 허풍을 치구 애비까지 얼렁뚱땅 얼려넘기구… 그리구두 턱을 쳐들고다녀!》

한쪽에서 볼부은 분명치 않은 동길의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그러자 로인의 성난 욕설이 터져나왔다.

《아직두 정신을 못 차려! 그래 강기사하구 맞째임을 하면 어쩔 작정이냐? 애비앞에서 그렇게 뻔한 거짓말을 하니 무슨 소린들 안하구 다니겠냐, 건달뱅이같은 녀석. 사람이 량심이 있구 도리가 있어야지 거들거리구 다니문 남들이 쳐다볼줄 알아?》

《아유, 왜 이렇게 떠드시유.》

나무라는듯 한 안주인의 목소리.

《말이나 하는거면 래일 해두 되겠는데 어째 저녁두 안 들구 떠드시우? 무슨 큰일이라구.》

《무얼 안다구 참견이요, 참견이… 크면 이보다 더 큰일이 어디 있어. 얼렁뚱땅 지낸 녀석은 평가를 받는다구 우쭐거리구 말없이 고생한 사람은 비판을 받구… 이런 억울한 일이 왜 큰일이 아니여! 건달뱅이같은 녀석. 하는 행실이 남보기 창피해서 낯을 쳐들구 다닐수가 없거던.

제강소에 오래 있은 사람이면 다 이 박운보를 알아. 당비서두 만나면 모자 벗구 인사한단 말이다. 사람이 잘나서 그런줄 아느냐?》

기석은 문앞에서 돌아서고말았다. 들어갈 계제도 못되였고 들어갈 필요도 없어졌던것이다.

(후에 만나면 더 따뜻이 대하면서 도와줘야겠어.)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박동길은 공사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알아보려고 기석은 6호로에 찾아가 로장을 만났다.

《동길이는 휴가를 핑게삼아 사구에 있는 누님네 집으로 갔소.》

로장은 좋지 않은 낯으로 무뚝뚝하게 말하고나서 계속했다.

《내 그러지 않아도 동무를 좀 만나자던 참이요. 기술지도를 맡았으면 잘못된 일을 밤이 열이라도 뜯어고치게 하고 제대로 해놓게 해야지 그렇게 어물쩍 넘겨버리게 하면 신입공들을 어떻게 교양하겠소. 그게 다 무원칙한 태도이고 쓸데없는 영웅심이란 말이요.》

기석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일을 잘못한건 사실이지만 제관품을 수정한건 기사장동지의 승인이 있었습니다.》

《기사장이 승인했다면 지배인이 알겠는데 왜 그게 말썽이 되겠소? 결함은 자신에게서 찾아야지.》하고 로장은 엄하게 말을 마쳤다.

기석은 자기 아버지가 지배인으로 일할 때 엄학준로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것을 상기했다.

(그러니 이 사람도 내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구나!)하고 그는 의분에 싸여 고통스럽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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