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마감장

지 향


2


제강소구내는 불도가니마냥 끓어번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교시관철을 위한 종업원궐기대회가 있은 뒤부터는 나머지 로들을 주체적인 야금로로 전환시키며 동시에 생산계통을 전면적으로 현대화하기 위한 개건전투가 벌어지고있었다.

방대한 공사량을 반년 남짓한 기간에 자기들 힘으로 해내겠다고 결의한 제강소로동계급을 지원하여 온 도시가 떨쳐나섰다.

공장악대는 북소리를 울리고 구리나팔을 번쩍거리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정문에서 혹은 로동현장에서 씩씩하고 명랑한 음악을 연주했고 거기에 더욱 기세를 얻은 종업원들은 일터마다에서 위훈을 떨치고있었다.

며칠후엔 또 하나의 감격적인 소식이 전해져 들끓는 전투장들이 환희에 휩싸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교시관철에 궐기한 제강소로동자들을 도와주라고 당중앙에서는 중기계들로 장비된 건설자부대를 파견해주었던것이다.

현지에 당도한 건설자들은 곧 대상을 맡아서 사업에 착수했다.

제강소에서 개건공사가 들끓고있을 때 과학자들은 하던 사업을 일단락 지었고 파견되여왔던 사람들은 돌아가게 되였다.

그들이 떠나기 전날 최병기는 집에 돌아와 딸을 불렀다.

《넌 어떻게 하기로 했느냐?》

《떠나지요 뭐, 래일 낮차로.》

《부원장선생도 말하던데 너만 좋다면 여기 연구소로 옮겨올수도 있다는구나.》

《그럴 필요는 없어요. 난 그냥 거기서 일하겠어요.》

최병기는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딸을 탓할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대견하게 생각할 일도 못되였다.

지난날을 새삼스럽게 돌이켜보면서 소리없이 한숨을 지었을뿐이다.

이튿날 아침엔 제강소로 나가면서 옷가지들을 꾸리고있는 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어디 가서나 성실하게 일해라, 앓지 말구.》

무슨 미진한 일이 있는것만 같아 미간을 찌프리고 한동안 묵묵히 서있다가 말없이 집을 나섰다.

청명하게 개인 봄날이였다.

떠나가는 연구사, 조수들을 바래우려고 연구소사람들, 중간공장사람들과 함께 제강소사람들도 여럿이 나와있었다.

강기석은 요즘 몹시 바쁜 몸이였지만 이날만은 시간을 내였다.

어버이수령님을 감격적으로 만나뵈왔던 그는 격동되고 앙양된 심정에 싸여 오로지 현지교시관철에 온 마음을 쏟고있었다.

교시관철을 위한 전투계획을 세울 때 당위원회에서는 개건하는 로현장에 효률이 높은 습식제진장치를 설치할것을 결정했었다. 워낙 공사량이 많은터이여서 주저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으나 지배인은 일을 벌려놓았을 때에 같이하는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하면서 극구 주장했었다.

성구직장을 돌아보시던 수령님께서 로동자들이 먼지없는데서 일하는것을 보시며 그리도 대견해하시던 일이 가슴에 깊이 새겨졌던것이다.

습식제진장치는 오래전에 강기석이 창안했던것이여서 그는 복잡한 공사를 실현하는데 중심에 서게 되였다.

한쪽에서 낡은 계통을 허물면서 일을 벌려놓았고 또 수백매에 달하는 설계도면이 다 완성될 때를 기다릴수 없는 사정이여서 도면을 만들면서 시공을 따라세우는 형편이였다.

몹시 바쁘게 지내는터이여서 아버지에게 보낸 감격적인 소식도 현장휴계실에서 휴식시간에 쓰지 않으면 안되였었다.

그러나 이날만은 시간을 내여 산뜻한 차림으로 역전으로 향했다. 더는 미룰수 없는 이야기를 이 기회에 아퀴지으리라고 작정했던것이다.

역두의 분위기가 번잡할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결코 중요한 문제는 아닐것이였다.

역전광장을 건너가고있던 그는 잎이 푸른 은행나무아래에 긴의자들이 놓인 소공원에서 혜영이를 보았다.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하던 혜영은 그리로 향해가는 기석이를 보자 어머니에게 무엇이라고 속삭이는것이였다. 두 녀인은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어머니만이 기다림칸으로 가버리고 혜영이는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리는것이였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강기석이 자기를 만나러 나오리라는것을 의심하지도 않는 그 거동은 기뻐해야 할 일이였지만 이쪽을 외면하고 웃음도 없이 침착하게 서있는 모습에서는 번거로운 생각을 누르고 마음을 도사린 그 어떤 도전적인 기분이 풍기고있었다.

《무엇하러 나오셨어요?》하고 그 녀자는 이쪽을 외면한채 표정없이 물었다.

위선을 부리지 않는, 가식없는 태도가 마음에 들긴 했지만 강기석은 대답을 선뜻 하지 못했다. 오늘 이렇게 만나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것이다.

《만나보고싶어서 나왔습니다. 그대로는 헤여질수 없는 처지니까. 심정도 그렇고.》

《전 할말이 없어요. 요전날 다 말했으니까요. 그리고 여기서 오래 지체할수도 없어요. 나가봐야겠어요.》

외워두었던 대사를 내리엮듯 거침없이 그렇게 말했으나 손가방고리를 만지작거리면서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강기석은 마음을 정한듯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가보오. 나는 이 자리에서 대답을 기다리지 않겠소. 그렇지만 앞으로 꼭 동무를 찾아가겠소.》

혜영은 꼼짝하지 않고 오래동안 서있더니 생각을 가다듬은듯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같은 말이예요. 난 그 말에… 그건 필요없어요. 이전에 동무가…》

처녀는 자기 생각이 헛갈리는것을 분하게 여기는듯 입술을 바르르 떨더니 미간을 찌프리고 계속했다.

《동문 다 알지 않나요! 더군다나 요즘은 동무가 성공과 영예의 자리에… 서있는데, 그럴수 없어요. 그건 나에게 고통이예요.》

강기석은 불만스럽게 그 녀자를 바라보았다.

《성공이나 명예가 인격의 저울추로는 되지 않소. 사랑의 담보나 장애물로는 더욱 될수 없소. 동무가 그걸 눈부시게 쳐다본다면 지금 이 자리에 찬란한 갑옷을 떨치고나서서 처녀에게 사랑을 구하는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천박하오!

정녕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나도 더는 아무 말도 하고싶지 않소.》

강기석은 흥분하여 그렇게 쏟아놓았으나 그 자리에서 떠나지는 못했다.

처녀는 무엇인가 발명이라도 하려는듯 고개를 쳐들었으나 비난이 번뜩이는 남자의 눈길과 부딪치자 힘없이 숙여버렸다. 그리고는 괴로운듯 한숨을 쉬더니 말없이 걸음을 옮겨놓았다.

《동문 그냥 떠나가오?》하고 청년이 소리쳤다.

《우린 이렇게 아무 기약도 없이 헤여지잔 말이요?!》

그의 목소리는 분노에 떨었다.

녀자는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갸웃이 돌렸을뿐 돌아서지는 않고 정겹게 말했다.

《내가 혹시 말을 잘못했을수는 있겠지만 심정은 그래요. 날 용서하세요. 부디…

난 동무를 잊지 않겠어요. 잊을수 없어요, 먼 후날까지…》

《그게 무슨 소용이 있소? 난 그런걸 바라지도 않소!

아니요. 이렇게는 헤여질수 없소. 절대로!》

처녀는 움직이지는 않았으나 돌아서지도 않았다. 역사 저쪽에서 차갈이를 끝낸 기관차의 기적소리가 시간을 재촉하고있었다.

강기석은 불시에 어조를 낮추며 타이르듯 말했다.

《어쨌든 지금 여기서 다 말할수는 없소. 떠나가오. 그러나 내가 동무를 반드시 찾아가리란걸 잊지 마오.》

혜영은 흥분으로 하여 달아오른 얼굴을 숙이고 초연히 서있었다. 촉박감을 느끼면서도 떠나지는 못하고 메마른 눈길로 발앞을 굽어보면서…

마치 자기 심장의 괴로운 고동소리에 귀기울이면서도 이제 옮겨놓을 그 한발자욱을 두려워하듯이.

《그렇지만… 그러지 마세요.》하고 그 녀자는 쏟아질듯 한 눈물을 참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뗐다.

《그럴수 없어요. 지금은… 혹시 후날이면 몰라도… 1년이나 2년이 지나… 내가 사람들속에서 떳떳한 존재로 인정될 때에…》

말을 마치지 못하고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보일가 저어하며 기다림칸 저쪽으로 총총히 걸어갔다.

가슴이 뭉클 뜨거워진 강기석은 따라가려다말고 멈추어서서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것이였다.

사람들이 붐비는 역구내로는 굳이 나가지 않았으나 감동과 믿음으로 뜨거워지는 지금의 심정을 범속한 작별의 분위기에 흐리우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시간이 흘러 떠나가는 렬차의 기적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질 때까지도 그는 귀중한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역사의 지붕우에, 광장에, 거리에, 눈길 닿는 모든 곳에 황금해빛이 넘치고있었다.

이전페지차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