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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4 장

운명의 갈림길


13


혜영이 다시 현장에 나갔을 때 중기계들은 모두 철수하는중이고 조명등의 환한 불빛아래서 몇명의 로동자들이 뒤거둠을 하고있었다.

로항에서는 가설전등을 철수하고있었다.

혜영은 자기 실책을 뉘우치며 바삐 서둘렀다. 축조한 내화벽돌을 밟으며 로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안을 정리하고 나오던 용해공들이 의아하여 그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첫번째를 마치고 두번째 송풍관까지 다 보고는 나오다가 다시 그 송풍관에로 왔다. 어딘지 미타하여 재차 검토해보니 지침은 알릴듯말듯 편차를 나타내고있다. 2도의 편차다.

다시 측정해봤으나 여전하다.

(어쩌나?)

망설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굴속마냥 길다란 로안에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웅글게 퍼진다. 정리작업을 하는 낯선 청년을 붙잡고 하소연했다.

《두번째 송풍관은 편차가 있어요.》

청년은 느슨하게 허리를 펴며 바깥쪽을 살폈다.

《저기 어디에 제관공들이 있을텐데… 기사장도 있을거요.》

누군가가 밖에서 빨리 나오라고 소리치고있었다. 무엇엔가 걸려 허우적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기사장은 현장지령실로 가는 참이였다. 층계를 올라가는 그를 급급히 따라갔다.

《기사장동지, 두번째 송풍관은 편차가 있어요.》

《그럴수 없지.》

《방금 측정했어요. 2도의 편차예요.》

《2도?… 그게 눈에 뜨이오?》

너부죽한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혜영이의 긴장한 표정과 들고서있는 측정계기를 훑어본다.

《연구사가 다른데…》

허나 마지막 한마디는 주름진 입가에 더욱 넓게 퍼져가는 점잖은 미소와 함께 혜영이의 자존심을 아프게 건드렸다.

《괜찮아. 마음을 놓으라구, 이제 뜯어고칠수는 없는거고.》

혜영은 눈길을 떨구고 말이 없었다.

일단락지은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는것은 승부가 결정되였던 경기를 다시 벌리는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끝을 보고 흩어져가는 사람들을 돌려세워야 하니 말이다.

종결을 선포했던 사람의 체면이 보잘것없이 되여버릴거고 지휘하는 말에 날이 서지 않을것이다.

혜영이도 그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대로는 로를 돌릴수 없어요.

송풍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을것이고 송풍관의 안정성도 담보할수 없어요. 시험수치를 정확하게 잡을수도 없고…》

《그렇게 중요하다면 측정을 제때에 했어야지, 안 그렇소?》

오금박아 말하면서도 자기로서는 그 점을 거들고싶지 않다는듯 누그러진 어조로 덧붙인다.

《안되긴 했지만 일없소. 너무 마음을 쓰지 마오.》

《그럴수 없습니다, 다시 설치해야지.》

《안되오. 이젠 못한다니까.》

부드러우면서도 엄하게 기사장은 말했다. 그리고는 마치 보병들과 지원포병들이 철수해버린 진지를 둘러보듯이 어둠속을 굽어보고는 조명탄의 불빛같이 희미한 외등빛아래 시계를 내대고 보았다.

《시간이 다됐소. 글쎄 괜찮다니까!》

혜영은 기사장을 쳐다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쓰다듬는듯 한 은근한 태도와 호인같은 너그러운 웃음이 갑자기 싫어졌다. 흥분을 누르며 또박또박 말했다.

《로를 돌리지 말아주세요. 그건 안돼요, 안됩니다.》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군.》

피곤하게 웃으면서 그렇게 뇌인 기사장은 성큼성큼 층계를 올라갔다.

얼굴이 창백해진 혜영은 따라올라가다말고 주춤 멈춰서더니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려는듯 로쪽으로 향했다. 심장은 초조하게 떨리고 절망속에서 솟구쳐오르는 의분이 그 녀자의 온몸을 휩쌌다. 그속에는 기사장에 대해서뿐아니라 무턱대고 그 사람을 믿었던 자기자신에 대한 쓰라린 환멸도 깔려있었다.

자기를 잊고 로앞에까지 뛰여온 혜영은 발판을 찾아 허둥거리다가 갑자기 머리우에서 울려퍼지는 회전로의 동음에 놀라 층계우에 넘어졌다. 로앞송풍의 거센 바람이 전동기의 소음과 더불어 주변을 휩쓸었다.

로앞에 서있던 용해공이 다급하게 소리치면서 달려왔다. 운전실로 들어가던 기사장도 이쪽을 피뜩 돌아보더니 다급하게 층계를 내려오다가 돌따서 운전실로 뛰여들어갔다.

운행개페기가 떨어지고 소음이 그쳤다. 했으나 육중한 회전로는 관성에 따라 천천히 돌아가고있었다.

사람들이 모여왔다.

용해공들이 처녀를 부축하여 휴계실로 데려갔다. 그 녀자의 얼굴은 피기없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로안에 들어가려고 한것 같애.》

로앞에 있는 용해공이 얼없는 웃음을 띠우고 동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빨리 구급차를 부르오.》

그러나 곧 현장진료소의 의사가 나타나 진찰해보고나서 주사를 놓더니 집에 데려가서 안정시키라고 권했다.

《좀 놀랐을뿐입니다. 하루이틀 안정시키면 일없을거예요.》

혜영은 송풍관의 수정작업을 보기 전에는 아무데로도 가지 않겠노라고 고집했다.

《그건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보오.》하고 기사장이 권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한명택은 침울한 표정으로 서있더니 더 말하기도 따분한듯 나가버렸다.

회전하던 로가 멎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뛰여왔다.

예열장치현장에서 일하던 강기석이 들어섰을 때엔 휴계실안팎에 어지간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오는 길에서 연구소의 녀동무가 로앞층계에서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구석쪽의자에 앉아있는 혜영이를 보는 순간 가슴이 선뜩했다.

《어디를 다쳤습니까?》

사람들사이를 헤치고 나가면서 흥분하여 물었다.

눈을 감고 앉아있는 혜영은 대답이 없고 부축하고있던 송풍공처녀가 알려주었다.

《다친데는 없어요. 그저 까무라쳤댔어요.》

《몸이 불편하겠는데 왜 이렇게 앉아있습니까?》

《이제…돌아가겠어요.》

혜영이는 눈을 감은채 기운없이 속삭이고 고개를 갸웃이 돌려버렸다.

목소리로써 강기석임을 알았고 그러자 몸가짐이 더욱 불편해졌다. 자기의 사람됨이, 사업에서의 무책임성뿐아니라 처녀로서의 나약함이 오늘 이 자리에서 온통 드러난것만 같은 수치감을 금할수 없었던것이다.

혜영은 어서빨리 이 자리에서 떠나고싶었지만 수정작업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지 않고서는 떠날수 없었다.

고통을 참으며 팽팽하게 긴장되여있는 그 녀자의 심정은 이쪽을 외면하고 미간을 찌프린, 지그시 눈을 감고있는 해쑥해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있었다.

하여 그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있는 강기석의 마음도 사뭇 엄숙해졌다.

오후에 연구실에서 만났던 일이며 그뒤 전화로 나눈 사연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혜영의 심정이 더 절절하게 헤아려지는것이였다.

《어떻게 된 일이요?》하고 옆에서 직장장이 누구에겐가 묻고있었다. 그러자 전공이 자신없이 말했다.

《송풍관 하나가 편차났던것 같습니다. 그래 저 연구사동무가 기사장동지한테 제기하는 모양이더군요.》

《기사장동지가 아마 그냥 해도 괜찮다고 했는지… 로앞으로 마악- 뛰여가지 않아요!》

이때 기사장이 불쑥 들어섰다.

《아래에 자동차가 왔으니 어서 데리고 들어가라구.》하고 그는 송풍공처녀에게 일렀다.

혜영은 여전한 그 자세대로 까딱하지 않았고 부축하고있던 처녀도 딱한듯 망설였다.

《두번째 송풍관은 수정하기로 했소. 그러니 마음놓고 들어가우.》

혜영은 부축을 받으면서 말없이 일어났다. 그 순간 생각이 굳어진듯 표정없던 그 녀자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것은 너무나도 예상치 않았던 일이였다.

때아닌 때에 이런 자리에서 주체할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자기로서도 야속한듯 혜영은 입술을 잘근히 깨물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휴계실안은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에 잠겨있었다.

《녀자들이란 참 알다가두 모르겠거던.》

직장장이 게면쩍은듯 중얼거렸다.

《너무 흥분했던것 같구만.》하고 누군가가 말하자 다른 사람이 받았다.

《송풍관을 수정한다니까 기뻐서 그런거겠지.》

강기석은 말없이 묵묵히 서있었다.

그에게는 혜영이의 심정이, 고이고고인 괴로움이 차고넘치여 흘러내리는듯 하던 그 눈물이 리해되는듯싶었다. 그것은 자책감에 싸여 몸부림치는 고민의 흔적이였으며 참고참아오던 격정의 분류였으리라-

그리하여 눈물로 씻어낸 그 녀자의 심정이 지금은 더욱 깨끗하게, 더욱 귀중하게 느껴지는것이였다.

《가서 수정작업을 협의하기요.》

심란해서 서있던 기사장이 기석이와 직장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들이 함께 밖에 나왔을 때 기사장은 멈추어서서 무겁게 한숨을 쉬는것이였다.

《내가 잘못했지, 편차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적에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건데… 용단을 내리지 못했어.》

짧은 말이였지만 심각하게 들렸다. 그 진정에 감동된 기석은 기사장을 위로하고싶었다.

《하지만 로의 가동시간은 원료의 장입과 맞물려있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중기계들까지 다 철수해버렸으니…》

《그렇긴 해두… 내가 우유부단한탓이였지.》

《…》

두사람은 어둠속에 묵묵히 서있었다. 말없는 그동안에 그들은 서로 상대방에 대해 더욱 깊이 리해하면서 따뜻한 신뢰감을 느끼는것이였다.…

로앞에서는 협의가 벌어졌다.

방금전의 돌발사태가 빚어지지 않았더라면 이미 손을 뗀 작업에 여러 직장에서 나오기로 된 작업조들을 그밤으로 다시 동원시키기는 어려웠을것이다.

허나 지금 와선 오히려 각 직장 로동자들이 자진하여나섰다.

작업협의가 한창이던 때에 아래쪽에서부터 장인숙이 불쑥 나타났다.

목욕을 하고난 뒤라 발그스레 윤기도는 얼굴에 언제나처럼 명랑한 웃음을 띠우고 들쑹날쑹 모여선 사람들을 호기심 가득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박동길이 눈에 뜨이자 곧바로 그에게로 걸어갔다. 진지한 토론들을 벌리고있는 사람들축에 그러지 않아도 가까스로 끼워있던 박동길은 상글거리며 다가오는 처녀를 꺼리며 외면을 했다.

《아이 동길동무, 요새 뭔가 달라졌어요?》

제딴엔 나직이 말했으나 목소리가 너무나도 또렷했으므로 사람들은 문뜩 그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이젠 로에서 모래를 더 쓰지 않나요?》

들은척만척 하고 돌아보지도 않던 박동길은 모래가 어쩌고 하는 말에 울기가 솟아올라 얼굴이 험상하게 붉어졌다. 별치않은 일을 하고 사로청조직에서 분에 넘친 평가를 받은것만도 쑥스러울 지경인데 이런 자리에서까지 떠들어대니 망신스러웠던것이다.

《쓰지 않기야 뭐, 성분을 고려해서 섞어쓸뿐이지.》

로기사가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난 그저 모래실으러 또 가지 않나 해서…》

《쉬이- 떠들지 말어.》

저쪽에서 누군가가 제지했다.

주책머리없는 처녀가 가지도 않고 옆에 발쭉하니 서있는것이 박동길의 기분을 더욱 잡쳐놓았다. 그러지 않아 근근히 별러오던터이였다. 슬그머니 사람들속에서 물러선 그는 저쪽켠으로 걸어가면서 돌아보고 눈총을 쐈다.

《여기 좀 오라구.》

장인숙은 그의 뒤를 따라 뽀르르 교양실로 올라갔다. 방안에는 마침 아무도 없었다. 들어서자마자 후려치는듯 한 질책이 된바람을 일구었다.

《도대체 동문 뭐야? 그까짓 모래가 뭐이 대단해서 찾아와서 야단이야? 쓰건 안 쓰건 동무가 무슨 상관이야?》

마른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진듯 장인숙은 눈이 동그래졌다. 쌓였던 울분이 터져나오는 박동길의 얼굴을 놀라운듯 쳐다보며 당황히 얼버무렸다.

《월 그래요, 평량차운전공이 장입물에 관심하는게 잘못됐나요?》

《관심을 가지겠으면 가지란 말이야, 얼마든지! 뭣때문에 자꾸 날 따라다니면서 시끄럽게 굴어? 가는 곳마다에서… 창피하게시리, 왜 따라다니면서 야단이야?》

《따라다닌다구?-》

말꼬리를 길게 끌면서 숨막힌듯 눈을 흡떴다, 얼굴에 넘치던 얼떠름한 표정은 씻은듯이 걷히고 커다랗게 쏘아보는 눈에는 조소와 분노가 하늘거렸다.

《거두라요, 동무!》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던지고는 가쁜숨을 누르며 입술을 깨물었다.

《따라다닐 사람이 없어 동물 따라다녀요? 흥, 따라다닌다구? 그래도 난 동무가 가엾어서… 뭐 알아요? 저장탕크오작때도… 괴로와했어요. 양수기를 들어낼 때 내가 그 자리에 없었던게 가책이 되고… 내 잘못도 있었기에… 괴로와했어요.

또 우리 어머니가 쓸데없는 말을 한탓으로 아버지들사이가 틀려지고 말썽이 많아진것도 미안하게 생각했어요. 사과하고싶었고 도와주고싶었어요. 그뿐이예요! 따라다닌다구? 흥, 그런 말은 뒀다 하라요.》

분이 치미는대로 쏘아붙이고나서 홱- 돌아섰다. 문을 나서려다말고 직성이 풀리지 않는듯 되돌아섰다. 그러나 의혹에 질리고 불안에 허둥거리는 남자의 눈길과 부딪치자 누그러졌다.

《인숙동무.》

멈춰세우려고 부르는 소리에 탕! 하고 문이 닫혔다. 콩콩 울리는 발자욱소리는 층계를 따라 멀어졌다. 박동길은 박힌듯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벼르고벼르던 타격이 예상치 않은 반격에 부딪쳐 풍지박산이 되여버렸다.

하지만 그는 잘못 벌린 시작이나 볼꼴없이 된 종말을 생각하는것은 아니였다.

처녀가 쏟아부은 그 말에서 바라지도 않았고, 상상할수도 없었던 웅심깊은 심정을 엿보았고 그것으로 하여 뗑-해진것이다.

《쳇, 맹랑한데.》하고 그는 어정쩡해서 뇌까렸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두고 한 소린지 그 처녀를 두고 한 말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활발하고 일 잘하고 인정미있는 처녀야- 하고 뇌이던 매부의 말이 떠올랐다. 흐트러진 생각들을 갈피잡으며 지나간 일들을 돌이켜보려고 멍청하니 그 자리에 서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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