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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운명의 갈림길


9


도처에서 분망하게 일이 벌어지고있는 어느날 한명택은 금속공업부에로 출장을 떠났다.

경황없이 바쁜 형편에서도 오히려 기사장으로서의 자기 처지가 탐탁해지는것으로 하여 못내 안정을 느끼고있었던 그는 이번 길을 떠나면서도 마음이 가벼웠다.

박성국이 구상한 예열장치의 도안은 제강소 기술자들과 연구사들속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므로 상부에서도 만족하리라는 자신심이 있었던것이다.

자기가 없는 동안에도 일을 추진시키기 위해 사업조직을 빈틈없이 해놓았다. 설계에 경험있는 태호를 인입하여 설계실 기사들과 함께 설계를 맡겼고 강기석은 조업을 보면서 제작준비를 서두르라고 분담을 주었다.

도안작성의 주동이 되여 일하던 박성국에게는 얼마큼 여유가 생긴 이 기회에 문헌들도 더 조사할겸 자기네 연구소에 다녀오도록 했다.

이 사업이 반드시 성공한다고 장담할수는 없었으므로 질제고를 위한 다른 방도들도 의연히 추진시키도록 과업을 주었던것이다.

출장으로 금속공업부에 오게 되는 때면 한명택은 의례히 기술국장부터 찾아보군 했다. 직책상으로 보아도 련계가 많은 편이였지만 국장은 아래사람들의 의견을 곧잘 들어주기도 하고 제 말도 곧잘 하는 사람이여서 대하기가 어렵지 않았던것이다.

금속이나 공업일반에 대해서뿐아니라 생활상의 문제에도 해박하고 추세에 민감하며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많이 관심하면서도 분별을 잃지 않는 원만한 일군이였다.

국장과 더불어 이야기하고나면 무엇인가 많이 배운것 같은감이 나고 반면에 마음에 부담이나 자극을 받지 않는것으로 하여 존경과 호감을 품고있었다.

청사의 3층으로 올라간 한명택은 바로 복도에서 국장과 마주쳤는데 저쪽은 그를 알아보자 전에없이 반가와했다.

《마침 잘 왔소. 그러지않아 동무네 제강소이야기를 하던 참인데.》

국장은 의자를 권하고나서 사업수첩을 책상우에 던지더니 자기는 앉지도 않고 방안을 뚜벅뚜벅 거닐었다. 언제 왔으며 무슨 일로 왔는가는 묻지도 않고 무엇인가를 가늠해보는듯 생각에 싸여 말이 없었다.

언제나 평정을 잃지 않고, 유쾌한 롱담속에서도 례의를 지킬줄 알던 그였건만 지금은 흥분에 싸여있는듯싶었다.

한명택이 제강소에서 벌리고있는 시험생산의 난관에 대해 말했을 때 국장은 《알고있소. 알고있소.》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것이였다.

구단광 경화과정을 단축시킬 새 방법은 그의 마음에도 드는 모양이였다.

《그건 아주 적극적인 방법이요.》

예열장치도입준비에 대해서도 공감이였다.

《많이들 노력하는구만.》

아무 말도 더 묻지는 않고 탁자옆을 몇걸음씩 오고가더니 맞은켠에 와서 멎어섰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더니 천천히 앉았다.

한명택에게는 평가는 좋게 하면서도 따져묻지를 않는 국장의 태도가 이상스러웠다. 로조업에서의 난관을 그닥 크게 생각지 않는듯 한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그의 의혹을 눈치채기라도 한듯 국장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곤난하고 어떻고 해도 동무네는 제강소 하나를 안고있을뿐이요.

우린 여기서 강철생산에 대한 전국적인 과제를 짊어지고있을뿐아니라 전망목표에 제시된 가까운 장래의 강철고지를 어떻게 점령하겠는가 하는 방도까지 타산하고있소. 동무네가 겪고있는, 지금과 같은 난관이 극복될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종전보다 2배의 정상화를 보인다 해도 전국적인 범위로 볼 때 그것으로는 용광로의 배를 채워주지 못하오.

콕스를 적게 쓰자면 소결광대신에 새 구단광을 많이 먹여야겠는데 동무네와 같은 그런 지표로써는 전국적인 범위에서는 용광로가 늘 배를 곯을수밖에 없게 된단 말이요. 이게 제일 심각한 문제요.》

《그럼 우리가 헛일을 했단 말입니까?》

한명택은 의아해서 물었다.

《왜 헛일이겠소?》

국장은 빙그레 웃고나서 계속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나라의 강철생산지표를 완수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우리대로 머리를 짜고 토론도 많이 하겠소.

아직도 강재를 팔아서 콕스를 사오는것이 더 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아주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할수 있소.

또 최근에는 일부 일군들이 다른 나라들을 돌아다니다가 우리와 비슷한 연료조건에서 해면철공업을 발전시키는 경험을 연구하고 그런식으로 하는게 어떻겠는가 하는 방도도 제기했는데 우린 단호히 반대했소.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주체화로선에 어긋난단 말이요. 경제적효과성도 적고… 해면철이야 동무네 제강소에서도 이전에 해봤지.》

《해봤습니다. 공정은 단순하지만 생산량은 시원치 못합니다.》

《그렇단 말이요!》

다짐을 둔 국장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있더니 《우리는 끝까지 ㄱ철방향이요!》 하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역시 안목이 높은 사람이 다르구나!) 하고 한명택은 못내 감탄했다.

넓은 범위와 방법을 고려한 뒤에 뚜렷한 목표를 가리키는 지도일군다운 품격이 느껴졌던것이다.

그렇지만 곰곰히 생각하느라니 국장의 말에는 석연치 못한 점이 있었다.

그의 표정을 힐꿋 바라보고나서 국장은 말을 계속했다.

《물론 동무네와 같은 그런 수준을 가지고는… 안되오. 그렇지만 ㄱ철을 위해 애쓰는건 동무네뿐만이 아니요. 요즘 한 연구집단에서는 동무네가 달성한 성과에 기초해서 대단한 지표를 달성했소. 생산량이 5배요!》

《5배란 말입니까?》

한명택은 눈이 둥그래졌다.

《그렇소. 지표가 높을뿐만아니라 조업과정이 쉽고 난조도 없소. 안전조업이란 말이요. 혁신이요!》

《정말 혁신이구만요.》

한명택은 그렇듯 놀라운 성과가 자기네 제강소가 아니라 다른데서, 그것도 자기들의 경험에 기초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못내 아수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 경험을 도입해야겠습니다.》

《제강소 기사장이 역시 적극적이구만.》

국장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듯 유쾌하게 웃었다.

《저쪽건 아무래도 연구실적시험이고 공업적인 과정을 어디다가 맡기겠는가 하는것을 토론하던중이요.》

《토론할게 있습니까. 우리가 시작한 일인데 우리가 맡아안아야지요.》 하고 한명택은 주저없이 말했다.

여태까지 시험생산을 하면서 애를 썼는데 그 경험에 기초해서 이루어졌다는 보다 좋은 결과를 다른 기업소에 양보할수는 없었던것이다.

《시험자료를 연구하고 공정을 익히기 위해서 우리가 그쪽에 가봐야겠구만요.》

국장은 빙긋 웃으면서 책상우에서 타자친 문서장들을 찾아 내보였다.

《조작지표는 여기에도 있소.》

흥분한 한명택은 지표를 흩어보면서 그 과정을 추상해보았다.

(벌써 이렇게까지 준비돼있었군.)

비록 입밖에 내여 말은 하지 않았지만 웃사람들이 하는 일에 경이를 품고있는 그의 심정은 너부죽한 얼굴에 감동적인 미소로 나타나있었다.

《조작과정이 좀 다르지 않습니까?》

《원리는 같소. 그렇기때문에 연구한 동무들도 그걸 〈완경식ㄱ철〉이라고 부르는데 이름같은건 물론 아직 중요치 않소. 우리에게는 생산량이 관심이란 말이요. 어디에서건 공업시험을 해서 빨리 결과를 보아야 하겠는데… 부장, 부부장동무들도 그것때문에 론의하던중이요. 관심이 크오.》

국장의 마지막말은 한명택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조작지표를 가방에 넣으면서 확정적으로 말했다.

《이것만 있으면 구태여 저쪽에 가볼 필요도 없을것 같습니다. 저는 당장 이길로 내려가서 생산시험을 하겠습니다.》

국장은 만족하게 웃으면서도 어딘가 불안해하며 말했다.

《동무네 지배인동무랑 받아물자고 할가. 원래 자존심이 센 사람인데…》

《할겁니다. 우리 지배인도 시험생산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백사불구 하고 내밉니다.》

《좌우간 좋소. 한시름 놓았소. 동무네가 시험생산을 시작만 하면 우리도 곧 내려가보겠소.》

《정말 오시겠습니까?》

《물론이요. 정형을 지체없이 알려만 주시오.》

그리고는 일어서서 나가려는 한명택이를 다시 불렀다.

《가만… 강기석동무가 요즘 뭘하오? 성구공정이 완성됐으니 따로 할일이 없겠는데.》

《할일이야 얼마든지 있지요. 이것저것 기술준비작업을 하고있습니다.》

《흐음, 그렇다아-》

《당자만 동의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선선히 내놓겠습니다. 제강소에서도 필요한 사람이지만 이런데 올려오면 더 발전할수 있는 재목이지요.》

《그렇소!》

기사장의 사리밝은 견해가 마음에 드는듯 국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한명택은 마음이 흐뭇했다.

제 속심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공정한 사람으로 인정받는것이 만족이였다.

지금은 강기석이와의 관계가 무난한것 같지만 어쨌든 안심되지 않는 존재였다. 게다가 지난 가을에 강정민이 제강소에 찾아왔던 때의 일은 지금도 그의 가슴에 께름하게 남아있었다.

그때 강정민이 시험조업현장에 나가보자는것을 바쁘다는 핑게를 대면서 피해버렸었다. 그 사람과 함께 현장에 나가다닌다면 체면이 깎일것 같고 최병기가 좋지 않게 여길것 같아서였다.

허나 그뒤에 최병기가 말없이 데리고다니는것을 보고는 가책을 받았었다.

강정민은 그뒤로 더는 그를 찾지 않고 가버렸으므로 그 일이 노상 마음에 걸렸던것이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그 동무를 끌자면 아버지를 움직이는게 효과가 있을겁니다. 부모들이 늙었으니까 돌보기도 해야지요.》

《그러지 않아 나도 저번에 그 량반을 만났댔소. 자재상사에 오는게 어떤가 물었더니 대답이 없더란 말이요.》

《열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있습니까!》

《좌우간 이번에 나도 내려가겠으니 그때 강기석동무도 만나보겠소. 소환조치도 토론하고.》

한명택은 모든 일이 뜻대로 되여가는데 만족하여 그날 저녁으로 떠났다.

ㄱ철생산에서 암초가 사라지고 변혁이 일어날것도 기뻤지만 그 과업을 자기가 맡아가지고 가는것도 사뭇 보람있는 일이였다.

게다가 강기석이 일도 《너 좋고 나 좋은》식으로 여물궈질것이니 그것도 다행이였다.

려행도 한결 즐거웠다.

옆손님들에게 담배도 권하고 말도 건네고 하치않은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너그럽게 맞장구를 쳤다.

이야기도 진하고 피곤한 길손들이 저마끔 누워 쉬는 시간이면 그도 자기자리에 누워 이제 가서 해야 할 일들을 궁리하는것이였다.

(한데 이 방법을 선뜻 받아들이자고 할가? 이런 경우엔 아무래도 시비가 많은 법인데…)

그 점이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급행렬차는 점심때 목적지에 도착했다. 집에 들려 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한 그는 공장에 나가자 지배인실부터 찾아갔다.

최병기는 원료장으로 나갈 차비를 하고있었다. 이 제강소에 오던 때부터 늘 입고다니는 낡아진 검은 모직옷에 류행에 뒤떨어진 번들거리는 덧저고리를 걸치고있던 그는 들어선 기사장을 점잖게 맞았다.

경화장시설과 예열장치에 대한 도안이 좋게 평가되였다는 보고를 듣고도 기뻐하는양 없이 서있었으나 국가적인 철생산문제에 대한 론의를 전달받을 때엔 량미간에 주름이 가득해지면서 눈길을 떨었다.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철생산형편을 걱정하는 심정은 찌프린 얼굴모습에 나타나있었다.

ㄱ철생산을 5배로 높일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말을 듣자 눈길을 들어 기사장을 마주보며 의혹을 품었다.

최병기는 대체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대편의 얼굴을 마주보는 일이 드물었고 기사장과의 관계에서는 그런적이 거의 없었으나 지금은 등한할수 없었던 모양이다.

한명택은 가방을 열고 조업지표를 내놓았다.

지배인은 뚜벅뚜벅 책상쪽으로 걸어가 그앞에 앉더니 안경을 꺼내 썼다.

파고들듯이 글줄을 내리읽으면서 천천히 한장씩 번져갔다.

전화가 두번이나 울렸으나 그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문서를 다 읽고나서는 량손으로 책상모서리를 벌려짚은채 수굿하고 무엇인가를 가늠해보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 문제를 알고계신다오?》

《거야 더 말씀할것도 없겠지요.…》

또다시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더니 뜨직뜨직 말했다.

《한데 내 생각엔 환원과정이 없단 말이요. 그러니 철품위가 낮을테지.》

(국장동무가 공연히 걱정한게 아니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명택은 얼굴에 웃음을 보였다.

《그런 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우에서도 그렇게 보고있습니다.》

최병기는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더니 전화를 걸어 금속공업부의 부장실에 련결해달라고 청했다.

교환수의 기다려달라는 말을 듣고 송수화기를 놓으면서 《좀더 알아봐야겠소.》 하고는 현장으로 나가려던 생각을 바꾼듯 덧저고리를 벗는것이였다.

한명택은 자기를 못미더워하는 그의 태도에 피곤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 방을 나섰다.

현장일군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아 과제를 한시바삐 실현하고싶었다.

생산량이 높은 새로운 방법이라는 점이 마음을 끌었고 또 부의 책임일군들이 관심하는 일을 제가 맡아서 눈에 띄게 성과를 올리고싶었던것이다.

(낡았어. 낡은 사람이야.) 하고 그는 현장으로 걸어가면서도 류행에 뒤떨어진 덧저고리를 걸치고있던 지배인을 두고 생각하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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