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4 장

운명의 갈림길


4


생활은 모대기며 흘러가고있었다, 창조를 위해 사색하며 일하는 사람들 매 개인의 생활은 내줄기가 되여 흐르면서 골짜기의 벼랑부리에 막혀 맴돌이치다가도 해빛찬란한 어느 들판에서 문뜩 커다란 개울에 합쳐진다.

수백수천의 그러한 개울들은 다시 대하를 이룬 시대의 거세찬 흐름에 휩싸여 해묵은 나무뿌리며 간해의 락엽들을 물거품과 더불어 기슭에 남기면서 미래에로, 미래에로 흘러가는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움직이고 모든 생활이 그곳을 향해 내닫고있었다.

오로지 박성국이만이 그 흐름밖에 남아있는듯 했다. 그의 생활은 멎어버리고 흐르던 내줄기는 개울물에 합쳐지지 못했다. 그곳에 이르지 못하고 땅속에라도 잦아든듯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 서북풍이 불어치는 바다가의 얼어붙은 연진무지우에 지친 몸을 가까스로 지탱하며 서있다.

그동안 계속된 긴장한 사업으로 하여 피로할대로 피로한데다 거듭되는 실패로 하여 정신적으로도 타격을 받았던 그는 온몸이 쑤시고 기침까지 터져오르군 했으나 들어가서 쉬라는 동무들의 권고도 마다하고 혼자 여기로 나온것이였다.

마치도 공을 이루지 못하고 전장을 떠나가는 부상병마냥 쓸쓸한 눈길로 제강소구내를 돌아보는것이였다.

회전로의 열풍에 날아나 퇴수에 씻겨내리면서 뒤쌓여진채 버림받은 이 연진더미는 들끓는 생활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 자기의 처지를 상징하는듯 하여 마음은 더욱 쓸쓸했다.

무겁게 흐린 을씨년스러운 날씨였다.

저광장근처의 공지에 번듯하게 자리잡은 성구장건물이며 그곁에 일떠서는 경화장의 뚜렷한 륜곽이 그의 눈길을 끈다.

그것은 제강소의 이름없는 청년기사의 창안에 기초하여 꾸려진 생산공정이였다.

예상치도 않았던 그 《경쟁》에서 그는 패배자였다. 하지만 그 일을 두고서는 그래도 영예로운 패배자였고 연구사로서의 그의 명예는 조금도 흐리여지지 않았었다.

누구나가 그의 능력을 인정했으며 고심어린 탐구의 결과를 스스로 무시해버리면서까지 이름없는 청년의 창조과정을 성심껏 도와주고 높이 일러준 과학자다운 품성에 탄복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후에 있었던 연진의 리용을 위한 연구실험에서는 철저한 패배자가 되였다.

과학원이 자리잡은 도시의 자기 연구실에서 실험할 때에는 이곳에서 채취하여갔던 연진시료로써 훌륭하게 되여갔었다. 시료가 많이 요구된다는 제기를 받고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제철소에서 자동차로 실어다준 연진으로도 실험은 성과적으로 되였었다.

하지만 이곳 현지에서 대소한추위에 얼어붙은 연진무지를 까헤치며 끌어들여 실험했을 때엔 그것이 잘 빚어지지도 않았을뿐더러 간신히 빚어진 연진알맹이들은 뜨거운 로안에서 개개 폭발하고말았다. 폭발과 동시에 건조된 연진이 송풍의 세찬 기압에 날아나면서 또다시 연진실로 흡수되여버렸다.

그것은 철저하고 무자비한 실패였다.

실패에 대해서는 남다른 아량을 가지고 《다시 해보자우. 첫술에 배부르겠나.》하면서 고무해주군 하던 지형민이조차도 어제의 그 실험뒤끝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며 장입대곁에 오래동안 쪼그리고앉아있다가 슬며시 돌아가버렸다.

더는 어찌해볼 여지가 없는 결말이였다.

인제는 남들을 대하기조차 면구스러웠다. 연진의 회수리용대책이 탐구돼야 한다고 그를 설복하던 동료들도 락심하여 얼굴을 흐리였다.

리평에게는 그저 감사할뿐이다. 근면하고 활동적인 동무의 진실한 성품에 새삼스럽게 탄복했다.

《유능한 조수가 필요해. 원옥희동무를 그쪽에 떼돌리자우.》

처음 그 일을 시작할 때 리평은 그렇게 말했었다. 박성국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전날의 관계가 상서롭지 않았고 땅벌처럼 쏘군 하는 그 녀자의 성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자질구레한 일에 마음쓸 경황이 아니였고 조직하는 사업을 시비하고싶지도 않았다. 책임적인 과제를 앞에 두고 긴장되여있었던 그는 그러루한 일에는 이렇다할 의의를 부여하지 않았다.

연구사업은 어디까지나 연구사가 하는것이지 조수가 하는건 아니니까.…

자존심이 강한 박성국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리평은 자기 맡은 일만도 몹시 바쁜 형편이였으나 하루에 한번씩은 꼭 들렸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미소를 짓고 들어서면서 《일이 잘돼가나?》하고 서글서글하게 묻군 했다. 그렇게 찾아주고 관심해주는것이 고마왔다.

동무에 대해 지내 편협하게 생각했던 자신을 뉘우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리평의 웅심깊은 마음을 더욱 잘 알게 된것은 자기의 조수로 돌려준 그 메마른 처녀가 연구집단에 얼마나 필요한 인물이며 조수로서 자기 일을 얼마나 능동적으로 하고있는가 하는것을 깨달은 뒤부터였다.

원옥희가 박성국이와 더불어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연구사들이 이러저러한 자료와 분석치들을 알아보기 위해 그 녀자에게로 찾아오군 했다. 어떤 연구사들은 그가 자기 방에서 일하지 않고 다른 작업에 돌려진것을 불평도 했다. 원옥희는 그들의 물음에 싫어하는 기색없이 순순히 응했고 자료들을 뒤져보기 위해 자기 방으로 뛰여갔다오기도 했다.

박성국은 그 모든 일들에 마음을 쓰지 않았고 그 녀자가 없어도 무방하다는 태도로 자기 일에만 골몰했었다.

하지만 일주일 지나서 자기가 진행한 연구실험과정을 조수가 한장의 그라프로 작성하여 보여주었을 때 충격을 받았었다. 거기에는 실험실의 온도조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사용한 시료의 습도, 빚어진 알맹이의 경도와 강도, 기계의 진폭과 진동회수 등 모든것이 일목료연하게 나타나있었다. 그것은 그가 진행한 실험의 경향성을 뚜렷이 보여주었으며 앞으로의 방향을 생각하게 했다.

《이건 참 훌륭한데…》하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때 말없이 서있던 원옥희의 얼굴에 발그레하게 홍조가 피여나는것을 본 박성국은 야릇한 느낌을 금할수 없었다.

자기가 무심히 던진 한마디 칭찬이 그러한 반응을 나타내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무심했던만큼 가식이 없었던것은 사실이다.

허나 평가는 고사하고 자기라는 존재자체가 그 녀자의 관심하는바로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서로 알게 되여 일년이 되여가는 지금까지도 그 녀자에 대해 너무나도 몰랐으며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것이 이상스럽게 느껴졌다.

(자존심은 강하지만 소박한 동무야.)하고 생각했다.

지금 와보면 그 녀자가 자기를 경원하며 불친절하게 대했던것은 많은 경우 자기에게 그 어떤 결함이 있었기때문이리라.…

박성국의 마음속에서 이러한 생각들이 뒤엉키고있었으나 원옥희는 그에 아랑곳없이 관찰과 기록을 꾸준히 계속하고있었다.

연구사와 실험공들이 건네는 대화에도 참견하지 않았고 작업과 관련하여 필요한 말만을 했을뿐이다.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군 하던 활달하던 성미는 진동기의 소음이 간단없이 울리는 실험실의 분위기에 눌리워 사라진듯 했다.

날과 날이 흘러가는 사이에 박성국은 그 녀자의 주의깊은 눈길과 정중한 태도에서 사업의 성공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과 더불어 자기에 대한 존중과 은근한 고무를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말없는 진정이 고마왔고 그것이 또한 따뜻한 애착심을 자아내는것이였다.

원옥희는 관찰과 실험에서뿐아니라 그것을 준비하는 어려운 로동에서도 헌신적이였다.

중간로에서의 조업을 위해 빚어진 재료를 실어낼 때에도 그 녀자는 밤중까지 로동자들과 함께 상하차작업을 했었다. 무거운 방한화를 신고 벙어리장갑을 낀 손에 커다란 각삽을 들고 묵묵히 일했다.

그날 밤의 대기온도는 령하 20도였다. 머리수건밑으로 밀려나온 그 녀자의 검은 머리칼에는 성에가 얼어붙어 전등불아래서 은백색으로 빛났다.

벌써 여러날째 실험작업을 하면서 밤을 밝힌터였으나 피곤한 기색은 나타내지 않았다. 로동자들이 들어가서 쉬라고, 옥희동무가 없다 해서 일이 안되겠는가고 웃으며 권했으나 그 녀자는 《고마와요. 하지만 저도 함께 하겠어요.》하고 웃는 낯으로 대답하면서 일손을 놓지 않았다.

장입장치때문에 뛰여다니다가 그 장면을 목격한 박성국은 감동했었다. 이전날 그가 들여박혀 연구사업을 해오던 과학원의 연구실에서는 볼수 없었던 광경이였다.

언젠가 론쟁시에 그 녀자가 하던 《시대가 제기하는 문제를 해결하는것이 과학자가 아닐가요!》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그 말은 자기에 대한 당돌한 비난으로 도전적으로 울렸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르게 처녀의 모습과 더불어 숭고하고 의미심장하게 안겨오는것이였다.

하지만 정작 이튿날 아침, 시험조업이 진행되는 중간로에는 나타나지 않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와서 작업의 시작을 기다리는 그 긴장한 정황에서도 박성국은 그 녀자를 두루 찾아보았으나 모여선 사람들속에도, 장입대근처에도 없었다. 아침에 연구실에 나온것은 를림없는데 왜 현장엔 나타나지 않았을가 못내 기다려졌고 궁금했다.

그러나 개페기가 투입되고 전동기의 회전에 장입대가 우루루 떨리면서 작업이 시작되자 그 모든 생각들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오로지 눈앞에서 벌어지는 실험에만 정신이 쏠렸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무자비한 현실이였고 너무나도 참혹한 실패였다.

작업은 네시간이나 계속되였으나 박성국은 그동안 얼어터질듯 한 날씨의 추위도, 살을 지지는듯 한 열풍의 뜨거움도 감각하지 못했다. 흘러들어가면서 예열대에서 건조되는 알맹이들을 살피다가도 환원대에 이르러 폭발하며 날아나는 현상을 관찰하기 위해 열풍이 휘몰아치는 로앞으로 뚫고들어가기도 했던것이다.

정오무렵이 되여 몸이 얼고 실망에 싸인 사람들은 흩어져갔다. 박성국이 자기 연구실에 왔을 때 원옥희는 거기에 있었다. 외투를 입고 쟈크가 달린 아담한 방한화를 신고 난로에서 멀찍이 떨어진 의자에 단정히 앉아있었다.

어디로 떠나기라도 하는듯 한 차림이였으나 침착하게 내려깐 눈길에는 어쩔수 없는 피로가 어려있었다. 이미 모든것을 알고있음을 깨닫고 박성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을 좀 쪼이세요. 퍽 추웠지요?》

그 녀자는 조용히 그렇게 말했다. 그 평범한 한마디속에는 리해와 위로가 넘치고있어 박성국은 더욱 괴로왔다. 그는 아침까지만 해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걸 물으려고 했던것이지만 묻지 않았다. 비참한 실패가 있은 뒤인 지금에 와선 그러한 물음이 아무런 의의도 없을것 같았다.

맞은편 의자에 걸터앉았다.

난로쪽으로 손을 내밀고 기계적으로 불을 쬐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구실험작업이 한창이던 어제까지만 해도 바쁜 고비나 넘기고 한가한 시간이 생기면 그 녀자와 더불어 많은 이야기를 나눌것 같았는데 지금에 와선 그것도 다 부질없는 생각으로 되여버렸다. 오히려 하는 일없이 마주앉아있는것이 거북했었다.

원옥희도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면서 차분히 앉아있을뿐이였다. 숨가쁜 그 침묵은 공장장이 들어온것으로 하여 깨여졌었다.

공장장은 대수롭지 않은 말을 몇마디 건네고는 중간로에 새로 설치했던 장입장치들을 어떻게 할가 하고 의논조로 물었다. 그냥 두고 더 해보겠는지 어쩔는지 연구사의 의향을 알고싶었던것이다.

《철수해야지요. 가만… 제가 같이합시다.》

공장장은 만류했으나 박성국은 할일이 생겨 다행이라는듯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작업을 마치고 숙소에 가니 오한이 났다. 아침에는 가까스로 일어나서 연구실로 나갔다.

실패가 있은 뒤에 쓰러져 앓는것은 의지의 박약을 드러내는듯 하여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던것이다.

원옥희가 보더니 놀란듯 부르짖었다.

《아니, 얼굴이 말이 아니군요. 병나지 않았어요?》

화독을 손질하던 시험공들도 그에게 주의를 돌렸다. 얼굴색이 좋지 않으니 들어가서 쉬라는것이였다.

그러루한 말들까지 실패에 대한 동정처럼 들려 마음은 더욱 괴로왔다.

그는 다른 방에 가서 총화자료를 정리했다. 오후에 그것을 리평에게 넘겨주고나니 할일이 없었다.

원옥희며 다른 실험공들을 만나기도 거북하여 자기 연구실로는 가지 않았다. 하여 그는 지금 바다가의 얼어붙은 연진무지우에서 공을 세우지 못한 전장을 둘러보고있었던것이다.…

납덩이마냥 무겁게 내려드리운 구름장밑에서 백반같이 반짝거리는 가벼운 눈가루가 흩날리고있다. 발이 시리고 몸이 떨렸다.

자기의 의지력으로써도 스며든 병마를 어쩔수 없음을 느끼면서 지척지척 걸음을 옮겼다.

외래자합숙의 침대놓인 자기 방에 들어오자 방바닥에 이불을 들쓰고 누워버렸다.

밤에 의사가 와서 진찰하더니 병세가 좋지 않다면서 입원하라고 권고했다.

박성국은 열기띤 눈으로 천정을 쳐다보면서 종시 응하지 않았다.

의사도 할수 없었던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왕진하기로 했다.

《지금은 감기지만 페염으로 넘어갈 우려가 있습니다.》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하고 곁에 있는 리평에게 필요한 지시를 몇가지 더 주고 돌아갔다.

박성국은 그뒤 이틀동안은 고열에 허덕이면서 때로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사흘째부터는 병이 수그러지고 눈에 띄게 차도가 있었다.

이전페지차례다음페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