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3 장

열 풍


14


길가는 비여있고 앙상한 나무가지에는 마른 이파리들이 애처롭게 매달려있었다.

그는 지난봄에도 어느 저녁에 이 길을 걸어갔었다.

그때 밤날씨는 쌀랑했으나 불어지나는 바람결에는 봄의 훈향이 풍기였고 앙상한 나무가지들엔 생명력이 넘치는 이파리들이 뻗고있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였다.

그때 흥분에 설레이는 서로의 감정인양 붕어들이 첨벙거리며 뛰여오르던 호수도 지금은 얼음장에 덮여있고 아이들이 즐겁게 떠들던 정각우에는 차거운 달빛만이 걸려있다.

그들이 걷는 길을 축복이라도 하듯 손풍금을 흥청거리며 청년들이 노래부르던 긴의자며 활기에 넘치던 공원안은 텅 비여버리고 겨울밤의 고요와 추위를 예고하는 랭기가 대기속에 도사리고있다.

그는 외투의 깃을 추켜세우고 주머니에 깊숙이 손을 찔렀다.

휴식이 차례진 이 밤에 혼자서라도 이 길을 걷고싶었다.

요즘 일터에서 바쁘게 지내는 속에서도 그 처녀를 잊은적은 없었다.

의자들을 맞붙여놓은 휴계실의 불편한 잠자리에 누워서도 생각했었다.

사업에 따라서 떠날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몹시도 우울하게 지냈었다는 옥희의 말을 듣고서는 어쩐지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다.

진작 만나보았어야 하지 않았을가.

떠나는 시각에 그 녀자는 무엇을 생각했으며 지금은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그는 혜영이를 찾아가리라고, 기어코 만나리라고 작정하고있으며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뭇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고 분에 넘치는 평가가 자기를 휩싸고있는 지금이 아니라 그 모든것이 생활의 일상적인 흐름속에 잦아버리고 평범한 하루하루가 지난날에 대한 추억을 더욱 정답게 불러올 그무렵에 찾아갈것이였다.

그 녀자를 사랑하는 열렬한 심정에 비추어보면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이 무슨 그리 대단한것이랴.

인간의 성품이나 생활관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니 고생을 모르고 자라온 처녀로서 운명의 풍파를 두려워했을수도 있는것이 아닌가.

언젠가 이 바다가를 거닐면서 자기의 가정형편을 털어놓았을 때, 긴장한 침묵끝에 그 녀자가 하던 대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난 동무를 믿어요. 동문 좋은 사람이예요.》

진정이 우러나온 그 한마디 말만으로써도 그 녀자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남음이 있으리라.

그는 혜영이를 사랑하고있었다.

그의 작은 쪽배가 키없는 난파선이 되여 풍랑속에 뒤채일 때에도 그 처녀를 못내 기다렸고 물결이 자고 배길이 훤해진 지금도 역시 기다리고있었다.

해변에 밀려드는 파도소리가 소란하게 설레였다.

그는 추위에 얼어든 모래불우를 걸어갔다.

그때 그들은 이 기슭에까지 왔었다.

밤바람에 몸을 옹송그리며 자기 가슴에 의지하듯 바투 다가서던 처녀는 자기곁을 떠나갔다. 그들이 남긴 발자욱도 사라져버린지 오래고 지금은 늦가을 어느 따뜻한 날에 이곳을 걸어간 알지 못할 사람들의 발자국만이 비바람에 씻기고 물기에 얼어들어 희미한 흔적을 남겼을뿐이다.

어느 누가 이런 계절에 바다가를 산책하랴.

바람없는 바다는 고요히 잠자고 달빛을 안은 물면은 은백색으로 찬란하다.

그는 어릴적부터 이 바다를 사랑했다. 봄철부터 가을까진 줄창 나와 살았었다. 기슭에서부터 멀리까지 승벽내기로 헤염쳐갔고 쪽배에 기여올라 낚시질도 했었다.

아버지는 이곳 제철소에서 로동자로, 직장장으로 철을 다루는 직업에 종사했으나 아들은 어쩐지 바다생활을 동경했었다. 한때는 가족들과 함께 서부지구의 야금로동자구에 옮겨갔댔으나 몇해후엔 또다시 이 도시로 돌아왔었다. 그는 또다시 바다로 다녔고 선원들을 부러워했다.

항구가 멀지 않은 이 백사장도 좋아했지만 새 나루고개너머의 깎아지른듯 한 절벽이 뿌리를 박은 그 험준한 해안선은 더욱 마음에 들었었다.

절벽우에 높이 솟은 산봉우리에 올라서면 끝없이 펼쳐진 바다 저쪽으로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이 푸른 언제마냥 앞으로 다가선다.

흐린 날이면 우주를 향해 열려진 대자연의 신비경이 숭엄하게 안겨오고 수평선우에 드리운 검은구름이 바다와 어울려 옛말같은 조화를 부리는상싶었다. 인간의 상상력을 억제하는듯 한 그 무시무시한 날바다를 향해 경쾌하게 달려가는 작은 배를 바라보면서 거기 탄 사람들을 영웅처럼 생각했고 그들의 슬기와 용맹을 부러워했었다.

그는 선원이 되려고 했으나 용해공이 되였다. 처음엔 로앞에서 일하기가 헐치 않았으나 생활에 부대끼며 몸도 마음도 자랐었다. 낮이면 쇠를 다루며 숙련을 쌓았고 밤이면 야금학을 배우며 지식을 쌓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지지도로정은 그의 어린시절의 회상, 수령님을 맞이하던 거리와 제강소안팎의 명절같은 분위기에 대한 생생한 인상과 더불어 그때엔 미처 알지 못했던 뜻깊은 사연과 크나큰 사상을 깨우쳐주었고 나라사정에 대한 웅심깊은 생각에로 그를 이끌어주었으니 바로 회전로가 야금공업의 주체화를 위한 원대한 구상을 실현할 담당자임을 깨달았던것이다.

그무렵부터 여름철에도 이 바다가에 좀처럼 나오지 못했었다.

그는 야금에 파고들었다. 숙련으로써뿐아니라 학문으로써.

그는 야금의 력사에도 관심했다.

그것도 원시인들의 광석동굴에서 우등불을 피우던 과정에 철을 얻게 되였다든가, 야금기술도 가장 오랜 고대문명의 발상지에서 발명되여 다른 많은 기술과 같이 주변지역에 퍼졌고 드디여 고대세계전체에 류포되였다는 식의 추리근거가 명백치 않은 틀에 박힌 통속적인 지식으로써가 아니라 쐐기형문자로 아로새겨진 헷트왕국의 점판문서로부터 시작하여 고고학적탐험이 발굴해낸 출토품들에 대한 방사성탄소에 의한 년대측정, 년륜의 보정에 의한 학문적고찰 등으로 풍부하여지고 과학화된 그 발전과정을 더듬어갔다.

력사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종사하고있는 사업의 실속있는 진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필요했던것이다.

그랬던만큼 그는 야금발전의 완만한 시기였던 중세에 이르기까지의 사회사, 정복과 반항의 풍부한 사료에 대해서는 흥미를 느끼지 않으면서도 (사실 그런 사료를 읽는다는것은 생활의 진실을 파헤치면서도 이야기에 완결미를 부여할줄 아는 재능있는 작가들이 쓴 책을 읽기보다도 훨씬 더 흥미있는 일이지만.) 그속에서 오로지 살륙과 생존을 위한 투쟁에 리용되였던 철기를 제작한 소박한 야금술에 대한 사료에만 흥미를 느꼈었다. 마치 파들어가는 광굴속에서 누렇게 번쩍이는 금맥엔 아랑곳없이 토사의 퇴적과 지층의 형성에만 마음이 끌리는 지질탐사자마냥…

그것은 그가 관심하는 직접제철- 콕스를 쓰지 않는 제철의 력사가 바로 쇠물과 숯, 풀무로 철을 얻어내던 저 보잘것없는 두드림철의 시기부터 시작되였기때문이였다.

철의 력사에서 중요한것은 콕스를 연료로 하는 용광로의 출현이며 용광로의 력사는 송풍의 가능성을 중대시키는 동력의 발전과 더불어 높이와 용적이 커지면서 오늘에 이르러 철생산의 기본을 담당하고있음을 잘 알고있었다.

지난 세기 70년대부터 시도되여 용광로와의 경쟁을 꿈꾸어오는 콕스를 쓰지 않는 직접제철법이 100년을 지나온 오늘까지도 이렇다할 발전을 보지 못한채 의연히 야금계의 공상으로 남아있는것은 용광로에 대한 어쩔수 없는 의존심때문이리라.

야금세계의 현실과 이러한 력사를 잘 알고있는 강기석이였기에 우리 나라에 필요한 철을 우리 나라에 풍부한 연료로 생산해야 하며 또 생산할수 있다는 존엄높은 사상에 깊이 경탄했으며 그 력사적인 사업에 기여한다는 당당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는터이였다.…

밤에 들어가면서 날씨는 더욱 차졌으나 랭랭한 대기를 가르며 걸어가는 기분은 상쾌했다.

구름없는 하늘에 반달이 떠가고있었다. 달빛이 어린 바다는 강철빛으로 번뜩였다.

창조를 지향하는 인간의 귀중한 벗인 사색을 길동무삼아 바다기슭 멀리까지 걸어왔다.

그는 래일의 로동을 위해 휴식과 안정이 기다리고있는 식솔많은 자기 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밤하늘에 우렷이 솟아있는 회전로굴뚝들에서는 철생산의 멈출수 없는 흐름인양 허연 연기가 뭉게뭉게 오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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