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3 장

열 풍


11


저장탕크오작의 원인이 새롭게 밝혀졌다는 소문이 돌아가던 어느날 보수직장에서는 뜻하지 않게 자그마한 불상사가 생겼다.

절단한 공형강을 번져놓던 박운보가 그만 실수하여 발등을 다쳤던것이다.

부상자는 입원했고 즉시에 치료를 받았다. 발등뼈를 다쳤을뿐으로 상처는 대단치 않았으나 나이가 나이여서 쉬이 완치되지는 않으리라는 진단이였다.

오랜 세월 일해오면서 이런 경우가 없었던터이여서 사람들은 모두 걱정에 싸였었다.

보수직장사람들은 틈만 있으면 병원에 찾아갔고 무겁게 입을 다물고있는 로인을 위로하느라 마음을 쓰군 했다.

하지만 박운보에게는 사람들의 그러한 위로가 더욱 고통스러웠다.

뒤늦게야 소식을 들은 다른 직장 사람들과 일군들도 문병오군 했다.

로인은 가는 곳마다에서 제구실을 못하는 아들녀석때문에 속을 썩이게 됨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무진애를 쓰면서 사람들의 동정어린 말을 가까스로 듣는것이였다.

간단한 수술과 처치를 끝낸 후 발목을 붕대로 고정시켜 이제 완치될 때까지 절대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을 듣자 집에 가서 누워있겠노라고 고집을 부려 억지로 승낙을 받았다.

얼마동안은 누워있었으나 아픔이 덜해지고 상처가 나아가는듯 하자 갑갑해진 박운보는 지팽이에 의지하여 공장구내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날 왕진을 왔던 담당의사가 그 사실을 알고 대경실색하여 로인을 병원에 데려왔다. 검진해보니 아물어가던 상처가 다시 성하여져 치료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것이였다.

그때부터 박운보는 다시 병원신세를 지게 되여 더욱 안달아하고 집에서 김증녀는 령감걱정, 아들걱정에 마음놓을 날이 없이 지내게 됐다.…

사고의 원인이 새롭게 밝혀진 그무렵에는 장인숙이네 집안도 편안하지 못했다.

오갑녀도 《박동길이 일을 저질렀다.》는 소문을 어느 풍문에 얻어들었다. 밖에 나가 부질없는 소리를 하고다닌탓으로 은근히 벼림질당하던 오갑녀는 그 소문을 기발처럼 내들었다. 그 알량한 사위감을 나무랐던것이 무슨 잘못이였더냐고 남편에게 반격이였다.

이전 같으면 녀편네의 진소리에 귀찮아서라도 돌아앉고말았을 장덕칠이였지만 이즈막엔 그렇지 않았다. 언젠가 제관장에 찾아갔을 때 박운보가 결김에 던진 말은 가슴에 깊이 박혀있었다.

《임자가 그래 집에서 가장인가! 그 주제에 제강소로동계급인가?》

집안일에 무관심했던 자기를 때늦게나마 뉘우치게 되였고 주책머리없는 녀편네를 단단히 잡도리하리라 속다짐한터이였다.

남편의 이러한 속심은 알지도 못하고 이전만큼 여기고 넉두리하다가 된벼락을 맞군 했다.

게다가 인숙이마저도 어째 곰상스레 굴지 않았다.

처음 부모들의 입에서 자기의 혼담이 비치군 했을 때 장인숙은 속으로는 왼장을 치며 대수롭지 않게 들어넘겼을뿐이였다. 하지만 박동길의 량심적인 소행을 알게 된 뒤부터는 그를 이전처럼 호들갑스레 대하지 않았고 태도도 사뭇 진중해졌다. 어머니의 당치 않은 사설에 핀잔을 주면서 오히려 아버지 역성을 드는것이였다.

오갑녀에게는 집안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이 리해되지 않았고 놀랍기만 했다. 그래 녀인은 두루 속이 뒤집히고 안정을 잃어버렸다.…

제강소안팎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있었으나 현장에만 붙어있던 강기석은 감감 모르고있었다.

성구공정을 꾸리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졌던것이다.

어느날 점심때 직장사무실에 들린 그는 다시 처리된 사고심의결과에 의해 그전날의 조치가 무효로 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는 거기에 별로 관심하지 않았다. 그런 조치로 하여 자기 사업에 달라질것이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박동길은 어차피 제재를 받게 되리란것과 그 일이 사달이 되여 박운보로인이 입원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동길이를 만나볼 생심은 나지 않았다. 그에게 무슨 잘못을 저지른것 같은 죄스러운 심정이였다. 자기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남모르는 사연을 털어놓던 동길의 모습은 그때의 벅찬 감동과 더불어 가슴속에 남아있었던것이다.

그는 요즘 모든 일에서 극력 자중하고있었다.

ㄱ철생산을 시작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으나 그동안에 고해라면 고해도 겪었고 이럭저럭 생활에 대한 체험도 풍부해졌었다.

게다가 요즈음 일이 두루 펴이여나가는지라 집단에서도 일러주고 사람들도 그의 말을 귀담아들어주는터이여서 오히려 하고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고심의위원회는 기사장이 책임지고있었으므로 그를 찾아간다는것이 언짢았다. 이전날 자기를 로골적으로 랭대하고 멸시하던 때에는 오히려 대하기가 떳떳했으나 이즈음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이 일을 두고는 그냥 보고만 있을수가 없었다.

그는 기사장을 찾아갔다.

《그래 몸은 어떻소? 아픈데는 없소?》

웃으며 그렇게 물은 기사장은 건강하다는 대답을 듣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듯 진중하게 말했다.

《몸을 주의하라구. 뭐니뭐니해도 건강해야 한다니.… 박성국이도 떠나가면서 동무얘기를 많이 하더군. 능력있는 기사라구…》

《떠나갔습니까?》

기석은 뜻밖의 소식에 놀라 물었다.

《떠나갔소. 와있은지가 오랬으니까. 어머니없는 아이를 두고 와있으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겠지.》

《이젠 오지 않는가요?》

《왜, 곧 올거요. 연진의 회수리용대책을 해결하겠다더군. 이번엔 어떻게 하나 성공하겠지. 능력있는 사람이니까.》

기석은 문득 혜영이를 생각했다.

합평회가 있은 날 흩어져가는 사람들속에서 본것이 마지막이였다. 부르는 소리에 대답도 없이 달빛아래에 혼자서 걸어가던 모습은 지금도 그의 가슴에 쓸쓸하게 남아있었다.…

두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기석은 무엇때문에 여기 왔던지를 잊어버린듯싶었다.

무슨 일로 왔느냐고 기사장이 물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박동길동무 문제때문에 의견을 제기하러 왔습니다. 사고심의위원회에서 그 동무에게 제재를 주는것은 고려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으니 책임을 져야지.》 하고 기사장은 심상하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동길동문 아무도 알지 못하고 또 알수도 없게 된 일을 스스로 털어놓지 않았습니까. 그건 자기 잘못을 깊이 뉘우친것이고 집단을 믿는것인데 구태여 제재를 준다는건 옳은 일같지 않습니다.》

《그런 점도 있지만 국가재산에 손실이 있었는데 책임한계야 밝혀야 할게 아니요. 그런 일을 어물어물 넘겨버리면 사업에서 규률을 세울수 없고 책임성을 높이라고 요구할수도 없소.》

《그러나 이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문제로 됩니다. 사람을 믿고 진심을 털어놓았는데 거기에 제재를 가하는것은 믿음에 대한 배신으로 됩니다.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 강동무가 이젠 활동가가 됐구만.》

한명택은 사람좋게 웃으며 유쾌하게 말했으나 기석에게는 그 말이 고통스럽게 들렸다.

《저는 생색을 내거나 의협심을 보이자고 찾아온게 아닙니다. 동길동무를 동정해서 그러는것도 아닙니다. 똑똑히 살겠다고 결심을 다진 사람의 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백마디 좋은 말을 한다 해도 믿지 않을것이고 평생을 두고 가슴에 맺힐겁니다.

한사람의 성실한 심정을 짓밟는것으로 됩니다. 전 이것이 안타깝습니다.》

한명택은 망설이다가 중얼거렸다.

《그냥 무마해버리자니 또 지배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단 말이요.》

《지배인동지도 충분히 리해할겁니다.》

《리해한다구?》

어조와는 다르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조금전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오? 아들이 퇴원하는데 차를 좀 보내달라고 부인이 병원에서 전화를 걸어왔는데 지배인은 〈그건 내 자가용차가 아니라 제강소지배인의 차요.〉 하고 짜르더란 말이요. 그러니 저쪽에서 무엇이라고 긴말을 하더군. 내가 알기엔 아마 그 로친네가 차를 쓰자고 부탁해온게 평생 이게 처음일거요. 그런데 지배인은 〈의사들이 퇴원을 승인했다면 완치되였다는 소린데 회복기에는 조금씩 운동하는게 좋소.〉 하고는 송수화기를 놓더란 말이요. 그런 량반인데 리해를 한다구?》

《아닙니다. 그건 전혀 성격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건…》

기석은 그 의의를 선뜻 밝혀낼수가 없었다, 생각은 머리속에서 뒤엉키는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좌우간 그건 그거고…》

기사장은 다시 진중한 표정으로 돌아오면서 그렇게 허두를 뗐다. 그 표정과 어조는 이제부터 하는 말이 중요하다는것을 강조하려는듯 했다.

《…이러저러한 말들이 있긴 하겠지만 강동무가 제기하는 일이니 많이 고려해보겠소.》

기석은 무엇인가 반박하고싶은 생각이 울컥했으나 얼굴을 붉히며 나와버렸다. 자기 의견이 접수된것으로 하여 만족해야 할 기석이였으나 오히려 모욕감을 느꼈던것이다.

기사장이 자기 제의를 일축했거나 끝까지 실무적으로 대했더라면 오히려 그를 존경했을것이다.

남달리 호의를 보여주는듯 한 그 너그러운 태도속에는 공적인 사업을 개인적인 관계로 바꾸어버리는 께름한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마지못해 베푸는 호의였으며 그 어떤 조건부의 양보였다.

거기에는 진심이 없었고 정의가 오도되고있었다.

그것은 존엄이 무시된, 환경에 예민한 적응성이였다.

(아니다. 난 그런 호의를 바라지 않는다.) 하고 기석은 분개했다.

그는 마땅히 존경해야 할 사람을 존경할수 없고 자기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을 고맙게 여길수 없는 자기자신마저도 불만스러웠다.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이 더욱 많아지고 기사장과의 사업상관계도 더욱 밀접해져야 하는 때에 이런 형편에 놓이게 된것이 못내 불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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