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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열 풍


9


박성국이 자기의 연구결과를 포기했다는 사실은 제강소사람들속에서 결코 감동만을 자아내지는 않았다.

진동식성구기에 의하여 공정을 준비하고있던 기술과 성원들을 비롯하여 설계실 기사들은 이 뜻하지 않았던 사태에 아연해졌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요?!》 하고 기사장은 기술과 성원들이 모여앉은 자리에서 박성국이를 엄하게 책망했다.

《연구사동무가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내놓은 말이라 해도 그건 우리 사업을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밖에 초래하지 않소.

이 사업의 중요성을 재삼 생각해보고 신중하게 처신해야 합니다.

이건 어느모로 보나 아주 심각한 문제요.》

한명택의 말에서는 호의와 아울러 당당한 위엄도 울리였으나 박성국은 더 다르게 생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것은 결과가 증명할겁니다. 그때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지요.》

보람없는 설복과 론쟁이 있은 뒤에 박성국이 돌아가버리자 한명택은 터무니없는듯 쓰겁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사업이라는게 무언지를 모르는 학자님의 변덕이지.》

그리고는 자기 견해를 증명해보이겠다는듯 현장에서 일하는 강기석이를 불렀다.

성구기에 대한 도안을 가지고 즉시에 오라는것이였다.

강기석은 그때까지도 자기가 해오던 일이 어떤 파문을 일으키고있는가를 모르고있었다.

며칠전에 박성국이 자기 도안을 보아주겠다고 찾아왔을 때엔 그 호의를 고맙게만 여겼었다. 실현에 대해서는 마음을 쓰지 않았으며 이미 진동식성구기가 인정되였을뿐아니라 그에 기초하여 공정이 준비되고있었던것이다. 다만 자기가 해놓은 일이 어느만 한 과학적가치가 있는가를 알고싶었을뿐이다.

그것은 새것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여온 사람으로서의 자연스러운 심정이였다.

도안을 놓고 여러차례의 질문과 해명이 있은 뒤에 다시 한나절동안이나 검토해보던 박성국이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그의 창안품이 훌륭하다고, 자기의 진동식기계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고 단언했을 때 강기석은 크게 충격을 받았고 감동으로 하여 가슴이 뜨거워졌었다.

그 말을 하는 박성국의 심정이 기쁠수도 만족스러울수도 없다는것을 문득 느꼈던것이다.

《…이건 어쩔수 없는 진실이요.

강동무의 창안품은 생산성이 높을것이고 신뢰성도 더 확고하오. 이 회전체와 경사각의 비례만 보아도…》

박성국은 침울한 표정으로 도면을 짚으면서 오히려 제쪽에서 그것을 증명했으나 강기석은 눈길을 떨구고 듣기만 했었다.

《제가 뭘 변변하게 했겠습니까!》라든가, 《연구사동지가 만든것이 아무래도 낫겠지요.》 하는 등의 겉발린 례의와 속빈 겸손으로 자기를 치장하기엔 너무나도 진실하고 소박한 청년이였다. 그러기에 그는 박성국이 하던 일을 다 했을 때 부드러운 눈길로 연구사를 바라보면서 《전 어쩐지 선뜻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고 솔직하게 심정을 고백했었다.

그 말에 박성국이도 비로소 유쾌해지며 빙그레 웃었다. 그것은 청년의 겸손을 다행으로 여기는 미소였고 동시에 자기자신의 아량에 만족해하는 미소였었다.

하여 무척 어색하고 따분해질수 있었던 그 환경이 서로 상대방에 대해 믿음과 애착을 느끼는 따뜻한 분위기로 되였던것이다.

그러한 강기석이였던만큼 기사장실에 들어서자 《동무가 착상한 성구기에 근거해서 공정을 꾸릴수 있다고 제기한 일이 있는가?》라는 물음을 받고 어리둥절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박성국동지가 보아주겠다고 해서 함께 토론한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에도 저는 그런 제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그는 얼떠름해져서 대답했다.

《그래 동무가 만들었다는 기계도안이 완성은 됐소?》 하고 기사장은 다우쳐물었다.

《제딴으로는 완성했지만 부족점이 많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박성국동지가 잘 알고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좋소. 알만 하오.》

기사장은 강기석이와의 긴하지 않은 이야기를 서둘러 아퀴짓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벌어진 사태를 다시한번 더듬어보고나서 지배인실로 향했다. 장차 복잡해질수 있는 일이였으므로 자기 주견에 따라 처리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기사장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오래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최병기는 지형민부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박성국이라는 연구사가 어찌하여 자기의 연구결과를 포기하려고 하는가, 그 사람의 성품이 어떤가 하고 물었다.

성구공정을 꾸리는 사업이 절박하게 나서는 때인만큼 신중하게 처리하기 위해 지형민의 견해를 듣고싶었던것이다.

부원장도 그 일때문에 생각이 많은 모양이였다.

《나도 어떻다고 말하기가 난처한 일이지만 연구사가 극력 주장해나서는 형편이니 그 동무의 말을 믿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글쎄 믿는것도 좋지만 우리한테는 담보가 있어야 하겠단 말이외다. 담보가! 한시가 바쁘게 성구계통을 꾸려놓아야 할 형편인데 무턱대고 기다릴수야 없지 않습니까!》

지형민은 송수화기를 잡은채 한동안 망설이는것 같더니 해결책을 의논하듯 나직이 물었다.

《지배인동무, 지금 바쁘지 않으면 나하구 함께 그 동무를 만나보지 않겠소?》

《좋습니다. 다른 일을 다 제쳐놓고 가겠습니다.》

반시간이 지나서 부원장과 지배인이 연구실로 찾아갔을 때 박성국은 책상우에 허리를 구부리고 도면을 완성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웃동을 벗어던진 그는 눈앞으로 흘러내리는 머리칼을 쓸어넘길 여유도 없는듯 계산기를 손에 쥔채 일에 열중하고있었다.

《성국동무, 지배인동무가 동무를 만나러 왔소.》하고 지형민이 일깨워서야 그는 허리를 폈다.

《이게 그 접시형성구기요?》 하고 최병기는 얼기설기한 도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그렇습니다.》

최병기는 삐주름히 웃음지은 얼굴을 연구사에게로 돌렸다.

《제강소기사가 만들었다고 하더니 연구사동무가 만들고있구만.》

《유감스럽지만 전 강기석동무가 해놓은 일에 형식을 부여할따름입니다. 기계적운동의 정밀성과 정확성을 산출하고 거기에 알맞는 설계요소들을 마련해줄뿐이지요.》

《훌륭한 일이지.》 하고 지형민이 말하자 최병기도 《결정적인 도움으로 되오.》 하고 공감하는것이였다.

박성국은 게면쩍은듯 맥없이 웃었다.

《사실은 저도 여러해전에 이 부문에 대한 연구를 했지만 강동무가 착안한것 같은 원리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일에서도 그렇지만 연구사업에서는 새로운 종자를 발견하는것이 중요하지요.》

자신의 제한성을 개탄하듯 그렇게 말하고는 덧붙였다.

《강기석동무는 기계공학을 전공했더라면 그 부문에서도 아마 두각을 나타냈을겁니다.》

《됐소. 우린 그런 평가를 듣자고 여기로 온것이 아니요.》

지배인은 어째서인지 기분이 상해서 강기석에 대한 칭찬을 밀막았다.

《그래 동무넨 이걸 언제면 합평에 제기할수 있소?》

《사흘만 더 여유를 주십시오, 그동안이면 도입공정과 관계되는 기초자료도 만들수 있을것입니다.》

최병기는 무엇인가를 타산해보는듯 한동안 생각을 더듬더니 심중하게 입을 열었다.

《시험생산을 궤도에 올려세우기 위해서는 성구계통을 꾸리는 사업이 시간을 다투는 절박한 과제요. 그렇지만 우리는 동무들에게 닷새동안의 시간을 주겠소. 그대신 모든 점에서 부족점이 없게 완성해야 하오.

그동안 우리는 금속설계부문의 책임적인 일군들과 권위자들을 초빙해서 방조도 하고 합평에도 참가하도록 조직하겠소.》

지배인의 말은 무뚝뚝했지만 박성국은 감격하여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인사는 오히려 우리가 해야겠소. 일이 다 완성된 뒤에… 안 그렇습니까? 부원장선생.》

최병기의 말에 부원장도 공감하듯 만족한 미소를 짓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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