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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3 장

열 풍


7


박성국에게 반가운 손님이였던 공업잡지사의 기자가 원옥희에게도 반가운 사람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누가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밖에 나간 원옥희는 거기서 대학생시절의 가까운 동무를 만나게 된것이다.

《아니- 봉만동무, 언제 왔어요?》

처녀는 반가와하며 동무의 손을 꼭 잡았다, 보통키에 회색외투를 입은 젊은이는 점잖게 웃고있었다.

《난 누군가 했어요. 그렇게 차리니 몰라보겠군요.》

《차림새만 보아도 마음에 들거요. 거기에 많은 관심을 돌렸으니까.》 하고 차봉만은 롱조로 싱글거렸다.

《호호… 자랑할건 하나도 없어요. 동문 마치도 모든걸 빈틈없이 그려내지만 인상도 감동도 주지 않는 작품같아요.》

《옥희동무의 론평은 여전하구만. 한데 그 말은 어떻게 들어야 하오?》

《틀은 요란하게 차렸지만 홍미는 없단 말이예요. 주머니에 책을 찌르고 식당이요, 경기장이요 뛰여다니던 때가 훨씬 나았어요. 호호호.》

《평가가 그럴줄 알았더면 그때의 차림으로 나타났을걸 그랬는데…》

두사람은 유쾌하게 웃었다. 방안으로 그를 안내한 원옥희는 웃음을 거두고 동무들앞에 소개했다.

《공업잡지사 기자입니다. 대학때동무예요.》

인사를 마치고나서 차봉만은 원옥희의 책상앞에 앉았다.

《진동식성구기를 취재하러 왔댔소.》

《여기 기자가 한사람 왔다더니 동무였군요. 사흘전에 왔다는 사람이 인제야 들렸어요? 참.》

《임무가 있었으니까. 즐거운 상봉을 위해서도 일걱정은 덜어놓아야겠더군. 어제까지 끝냈소.》

다른 연구사들에게 방해될가봐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잠시후에 그들은 밖에 나섰다.

《동문 여기가 처음이지요?》

《이번 기회에 몇군데 돌아보았소. 하지만 옥희동무가 안내해준다면 한번 견학하고싶소.》

그들은 선별장을 거쳐서 회전로작업장에 들렸다. 불길이 이글거리는 6호로의 로앞에서는 용해공들이 로항을 측정하고있었다.

원옥희는 마치도 자기가 이곳의 주인이기라도 한것처럼 공장이 지나온 길을 설명하면서 시험생산의 경과를 조리있게 이야기했다.

《옥희동문 보람 큰 사업에 참가하고있구만!》

차봉만의 목소리엔 선망이 어려있었다. 로동자들은 원옥희의 인사에 친근하게 응대했고 자기들쪽에서 말을 건네기도 했다.

연진실과 자동화운행공정을 돌아보고는 원료장을 거쳐 해안으로 나갔다.

《옥희동무에건 야금연구사라는 직업이 아주 어울리는것 같애.》

《그건 어째서요?》

《본인이 자기 일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들도 녀성연구사에 대해 만족해하니 말이요. 물론 이건 전혀 피상적인 인상이요.》

《동무에건 역시 기자다운 통찰력이 있군요. 그러니 직업이 아주 제격이예요.》

차봉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외투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물고 성냥을 그었다. 바다바람에 불이 꺼지자 다시 켜서 붙였다.

《동무도 이젠 담배를 피우세요?》

《왜, 난 피우면 안되오?》

힐난하는듯 한 어조에 원옥희는 상글상글 웃었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동무에겐… 하지만 뭐 피울수도 있지요.》

원옥희에게는 지금도 차봉만이 대학생시절의 어리고 숫된 청년같이만 느껴졌다. 그들은 그때 가까운 사이였고 나이도 비슷했으나 원옥희는 항용 손아래사람을 대하듯이 그를 대했던것이다.

두사람을 가깝게 했던것은 공학에 열중하는 학우들속에서 남달리 애착을 품었던 문학에 대한 리해였다. 둘이는 잡지에 실리는 시들을 랑송했고 읽은 소설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었다. 생활에 대한 리해에서는 대체로 원옥희쪽이 더 깊이가 있었지만 론쟁에서는 차봉만이 더 열렬했다.

취미의 공통성은 그들사이를 가깝게도 했으나 한편 건늘수 없는 간격도 지어놓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정한 학우로 헤여졌던것인데 그 우정은 차봉만의 가슴에 미련으로 남았다. 지금도 그것은 타지 않은 나무등걸에서처럼 끄물거리며 불꽃으로 타오르는것이였지만 처녀는 너그러운 미소로써 가리워버리며 그의 앞에 의젓이 서있는것이였다.

《동문 문안하는 편지에 회답도 하지 않더구만.》

《왜요. 년하장을 꼭꼭 보내지 않았어요.》

《년하장은 편지라고 할수 없지.》

《편지란 가슴에 넘치는 사연이 있을 때에 쓰는거예요.》

말하고나서 웃으며 덧붙였다.

《문필활동을 하는 사람이니 물론 나보다 더 잘 알겠지요. 참 보세요. 저기가 바로 구단광경화장이예요. 연구를 많이 해야 할 중요한 대상이지요.》

그리고는 또다시 생산공정과 관계되는 문제에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박성국이 일하는 연구실에 들렸다. 기자는 취재를 하는 과정에 사귀게 된 그에게 원고를 완성했으니 래일은 떠나겠다는 인사를 하고싶었던것이다.

연구사는 없었다. 진동기옆에서 일하던 조수가 낯익은 기자를 반기며 연구사는 지금 공장기술과나 시험소 혹은 설계실중 어디에 있을것이라고 했다.

아침부터 줄곧 작업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것이다.

《기대의 설치때문에 무슨 토론할 일이 있는지.》 하고 중얼거렸다.

인사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그곳을 떠났다.


《연구하기도 힘들지만 도입하는것도 쉽지 않을거요.》

차봉만은 이런 경우를 많이 목격한 사람의 경험으로 미루어 그렇게 말했다.

《도입준비도 다 된것 같아요. 기업소에서 적극 보장해주니까요.》

《사업을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나 참 잘됐소. 력량은 있는 연구산데 이럭저럭 일이 꼬이다나니 이렇다할 결실은 여태 없었더군.》

《생활이 제기하는 문제에서 종자를 찾지 않고 학문만 파고들면서 발명만 부르짖다나니 그럴수밖에 없지요. 좀 신비주의냄새가 풍기는 사람이예요. 그런걸 못 느꼈어요?》

《그 비슷한 자책감은 토로하더구만. 당의 혜택을 많이 받으면서도 해놓은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 겨우 면무식이나 했다구… 그 말엔 나도 감동했소.》

《진실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하고 원옥희가 뜻있게 웃으며 말했다. 때아닌 그 웃음은 차봉만을 어리둥절하게 했으나 곧 그 뜻을 깨닫고는 빙긋이 미소했다. 그것은 대학시절에 자주 벌어지군 했던 《진실만이 감동시킨다.》라는 주제의 론쟁을 상기시켰던것이다.

성정이 다감한 차봉만은 문예작품을 보면서 곧잘 눈물을 머금었는데 그리고나서는 《참 좋은 작품이요. 꼭 보오.》 하고 권하군 했었다.

원옥희가 그 작품을 다 본 뒤엔 론쟁이 벌어졌는데 그런 때면 학부의 다른 동무들도 즐겨 모여들었다.

《동문 어느 대목에서 눈물을 흘렸어요?… 그다음엔?》

차봉만의 열정어린 말을 들으며 이쪽은 공감하듯 눈을 내려깔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때로는 웃음을 참으며 의향을 묻듯 다른 동무들을 돌아보기도 하는것이였다.

《눈물을 자아낸다고 해서 다 좋은 작품일가요?》

차봉만은 그렇노라고, 예술의 힘은 사람의 심정을 움직이는데 있는것인바 눈물이야말로 인간의 심정이 격동된 순간에 흐르는것이니 독자와 관중으로 하여금 눈물을 자아내게 했다면 그것은 벌써 성공한 대목이며 성공한 작품이라고 열렬하게 주장했었다.

그런 때면 원옥희는 눈을 반짝이며 주의깊게 끝까지 듣군 했는데 다 듣고나서도 한동안 그 말을 음미하듯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머리를 들고 자기 생각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으려는듯 어느 한 공간에 눈길을 머무른채 입을 여는것이였다.

《눈물을 자아냈다 해서 반드시 좋다고 할수 없어요.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여러가지로 있을수 있어요. 동정심에 사로잡혀 눈물을 흘릴수도 있고 감동에 싸여 눈물을 흘릴수도 있어요.

동정의 눈물은 등장인물들의 고상한 정신적풍모를 동반하지 않고도 자아낼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값싼거예요. 반면에 감동의 눈물은 인물들의 고결한 정신도덕적풍모가 표현되지 않고는 결코 자아낼수 없어요. 감동의 눈물이야말로 독자의 정신세계를 제고시키는 고상한 충격의 결과이며 창작가의 공적이라 할수 있지요.…》

그의 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는 동무들도 많았지만 갖가지로 반대하는 축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론쟁은 더욱 불타올랐고 끝없이 번져나갔던것이다.…

지금도 그들은 이 문제를 놓고 론쟁할수도 있었으나 아무에게도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다.

거리에는 외등이 켜져있었다.

왕래가 다사하고 주위가 번화해지는 저녁시간이였다. 차봉만은 상봉을 기념해서 함께 극장에라도 가자고 했으나 원옥희는 사정했다.

《난 이제 들어가봐야 해요. 기자선생을 안내해다니느라고 하던 일을 끝맺지 못했어요. 호, 내가 언제나 봉만동무의 미더운 벗이라는걸 잊지 마세요. 함께 식당에나 가요, 대학때처럼.》

식당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식탁을 마주하고 그들은 대학시절을 회상했고 공부하던 동무들의 안부를 서로 묻군 했다.

처녀의 태도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우의적임을 깨달은 차봉만은 짐짓 호방해지면서 생활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 옥희동무가 여태까지 결혼하지 않았다는걸 알고는 무척 많은 생각을 했댔소. 우린 옥희동무가 졸업후에 누구보다도 빨리 결혼하리라고 예상하고있었는데…》

원옥희는 정다운 눈길로 동무를 바라보며 말이 계속되기를 기다리고있다가 접대원이 가져다놓은 접시에서 굳은 빵 하나를 집어 천천히 맛있게 씹기 시작했다.

《왜 동무들은 그렇게 예상했댔어요?》

《나이도 그렇게 되였고 게다가 조숙한 축이고 또… 가정형편을 보아도 그렇고.》

차봉만이 가정형편이라고 함은 원옥희의 어머니가 이붓어머니이며 이붓자식을 그닥 사랑하지 않는다는것을 념두에 둔것이였다.

《봉만동문 일시적기분이나 동정심에 의해서도 사랑을 맺을수 있는 성격이지만 난 그렇지 못해요.》

이 말을 할 때 처녀는 자기 동무를 지그시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는것이였다.

《개인생활을 두고는 나에게도 자기대로의 리상이 있지요.》

《그래 그 〈리상〉을 붙잡았소?》

원옥희는 미소를 지은채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러단 여름도 지나고 가을이 닥쳐오겠소!》

《괜찮아요.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면 꿈만이라도 가슴에 고이 간직한채 겨울을 맞이하지요 뭐.》

《허! 여전하구만.》

기자는 어쩔수 없다는듯 그렇게 응대했다. 원옥희는 이러한 말을 더 하고싶지 않은듯 말머리를 돌렸다.

《어머니와도 이젠 괜찮아요. 나도 여러가지로 리해하며 존중해주고 어머니도 이전처럼 그러지 않고 살틀하게 굴어요. 세월이 많은걸 달라지게 했어요.… 물질의 존재방식과 시간과의 상대성원리인걸요.》

처녀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 순간 자기의 기억에 어렴풋이밖에 남아있지 않는 세상떠난 친어머니가 그리워졌던것이다.

두사람은 옛 학우로서, 또한 공업이라는 거창한 사업에 련관되여있는 오늘의 동료로서 다정하게 헤여졌다.

원옥희는 연구실로 돌아왔다.

밤이 늦은 시간에 그 녀자가 방에서 일하고있는데 박성국이 문득 들어섰다. 맨머리바람으로 외투도 걸치지 않은 그는 몹시 흥분되여있었다.

《원동무, 저녁에 그 기자동무를 바래웠소?》

옥희는 얼굴을 돌려 미심쩍게 쳐다보며 그렇노라고 대답했다.

《역두에서? 떠나갔소?》

《아니요. 래일 떠날거예요.》

《그 동무 숙소가 어딘지 모르겠소?》

《청송려관이라는것 같아요.》

《호실은?》

《모르겠어요. 왜 그래요?》

옥희는 꼬치꼬치 캐여묻는 물음에 불쾌감을 느꼈다.

박성국은 우두커니 서있다가 들어올 때처럼 휑하니 나가버렸다.

전에없이 흥분하고 조잡한 그의 행동이 리해되지 않았다. 그 일에 대해서는 더 관심하고싶지도 않아 일이 끝나자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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