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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사랑의 기슭


4

흥분과 기대를 품고 달려갔건만 걸음은 무거웠다.

(기술지도국에서 내려왔다면 제진장치때문이겠구나.) 하고 강기석은 어둠속을 걸어오면서 생각했다. 도안을 올려보낸 때부터 그뒤 얼마동안은 손꼽아 대답이 있기를 기다리던 그였으나 지금은 국장이 내려와서 자기를 찾았다는 사실도 그닥 반갑지 않았다. 새 구단광에 대한 시험생산의 기운이 떠돌고있는 환경이여서 제진장치는 벌써 차요적인 일로 생각되였던것이다.

다만 자기의 첫 창안품이, 자기의 창조적능력이 어떻게 인정되였을가 하는 점에서만 그 결과가 궁금했을뿐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 그 창안이 자기 처지를 몹시 난처하게 만들어버릴것 같은 불안도 느껴지는것이였다.

실용성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면 더 말할것도 없고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경우라 해도 지배인의 의사를 거역하여 상부에 제기했던만큼 지배인의 미움을 살것은 뻔한 일이다.

그것은 방금전의 지배인의 태도에도 벌써 나타나있다.

그런즉 앞으로 지배인이 자기를 어떻게 대하리라는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였다.

회전로직장의 현장기사가 지배인과 직접 상대할 일이란 별로 없는것이다. 랭대하고 도외시한다 해도 별로 구애될것은 없다.

하지만 회전로기사로서 야금공업의 주체화를 실현하는 길에 무엇인가 기여해보려는 지향속에서 사는 그의 노력은 걸음마다 인정받기가 어려워질것이다.

그 지향은 당의 보살핌속에서 자라난 야금기사로서의 희망이고 포부일뿐아니라 새 야금법을 완성하려다가 일을 잘못하여 국가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사람의 아들로서의 자각이며 스스로 지닌 의무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그는 남다른 열의를 기울여 회전로야금을 연구해왔으며 생산공정을 개선하고 헌신해보려고 고심했던것이다.

그러한 지향과 창조적활동속에서만 생활의 의의를 찾고 보람을 느끼는 강기석이였다. 그것이 구속받고 무시당하는 환경을 그는 결코 참을수 없을것이다.…

그런 생각을 두루 더듬노라니 장차 이 제강소에서 생활할 일이 무척 암담하게 느껴졌다.

지배인이 자기에게 중요한 과업을 주리라 생각하며 흥분했던것이 얼마나 가소롭고 허망한 일이였던가.

저녁무렵엔 그리도 설렁거리던 합숙뜨락도 지금은 고요했다. 텅 빈 복도를 지나 방에 들어서니 태호는 어느새 돌아왔는지 활개를 펴고 자고있다.

태평스럽게 코를 고는 동무의 모습을 말없이 굽어보던 기석은 잠결에 차버린 이불을 가슴까지 포근히 덮어주고나서 책상앞에 마주앉았다.

누워도 잠이 올것 같지 않았다. 책꽂이에는 회전로에서의 원료예비처리공정이며 성구작업과 관련되는 참고서들이 꽂혀있었으나 지금은 그 책들을 펼치고싶은 생각도 없었다.

무거운 머리를 두손으로 고이고 물끄러미 앉아있던 그는 문득 주머니에 넣어둔 편지생각이 났다.

봉투를 꺼내여 한동안 들여다보면서 어지간해서는 편지를 쓰지 않던 아버지가 손수 써보낸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봉투속에는 엇비듬하게 눕혀서 굵직굵직하게 써내려간 아버지의 낯익은 필적이 빼곡이 들어찬 종이가 다섯장이나 들어있었다.

아들의 건강과 사업에 대한 일반적인 물음에 뒤이어 집안이 모두 무고하며 자기도 여전한 몸으로 맡은 일을 원만히 하고있다는 소식을 전하고는 편지를 쓰게 된 경위를 밝히면서 심중한 이야기를 펼치는것이였다.

《…너의 어머니는 네가 부모들과 떨어져서 그곳에서 혼자 지내는 일을 두고 늘 걱정이다.

이전에 보낸 수삼차의 편지에서도 너더러 부모들 가까이로 옮겨왔으면 하는 소망을 써보내는것 같더라만 그것은 단순히 자식들과 함께 있고싶어하는 늙은이의 심정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반드시 부모들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는 법도 없거니와 현실생활이 그렇지가 않다.

당의 부름을 받들고 부모들과도 처자들과도 떨어져 사업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너의 동생도 지금은 멀리 북부철길공사장에서 일하고있다. 집을 떠나 궁벽하고 외진 곳에 가서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너의 생활환경은 오히려 유리하다고 할것이다.

이런걸 다 리해하고있는 형편이지만 나는 오늘 다시한번 널더러 그곳을 떠나 여기로 옮겨오라고 권고하는터이다.

이렇게 말하는것이 늙은 부모들이 적적하게 지내기때문이라고는 부디 생각하지 말어라.

그런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 어찌하여 너에게 이런 말을 권하는가 하는것을 한두마디로는 다 말할수가 없구나.

모든것이 다 내가 일을 잘하지 못했던데서부터 시작된다.

네가 알고있는 지나간 일을 새삼스럽게 말하지는 않겠다만 여러모로 생각해보건대 아비가 명예를 더럽히고 인심을 잃었던 곳에서 일한다는것이 헐치도 않으려니와 고통스럽기가 그지없을것 같다.

용해공으로 일한다면 또 몰라도 인제는 기사가 되여 무슨 일을 해보고싶다고 하니 더욱 난처한 경우가 많이 생길것 같다.

나도 그쯤한 경우는 짐작할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거기 제강소일군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당비서는 더 말할것도 없고 기사장인 한명택이도 모두들 호인이라고 말하는 인정있고 좋은 사람이다.

함께 일할 때에도 나하고는 남달리 관계가 좋았고 떠나올 때에도 네일을 부탁했으니 어려울 때 도와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지배인으로 있는 사람과는 잘 아는 사이가 아니지만 현장기사로 일한다는 네가 지배인이나 간부들과 관계되는 일은 그닥 없을줄로 안다.

내가 늘 후회하고 그만큼 걱정하는것은 아래사람들, 특히 회전로직장사람들과의 관계다.

지배인으로 사업하던 마지막시기에는 ㅁ구단광을 해보겠다고 회전로직장에 줄창 나가있었고 되지 않는 일을 성사시킨다면서 직권을 어지간히 람용도 했다. 직장간부들을 번번이 몰아세웠고 완성되지 않은 생산물을 제품통계에 넣으라고 로장들에게까지 은근히 압력을 가했다.

그러루한 연고로 하여 6호로의 로장이던 엄학준이 같은 동무들은 나를 드세게 비판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을 더욱 괄시하며 편견을 가지고 대했었다.

그때 나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었던 사람들이 지금 너를 좋게 대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 아버지의 잘못으로 하여 너의 처지가 어려우리라고 생각하면 두루 마음이 괴롭다.

이제는 기사까지 되였으니 이쪽으로 옮겨오는것도 괜찮을것 같다.

이곳 제철소도 기본이 회전로야금이여서 너에겐 생소하지도 않을것이다. 또 건설당초부터 그 제강소사람들이 많이 옮겨왔던터이므로 아는 사람들도 많다.

이 편지를 받아보고 깊이 생각해서 마음을 정하기 바란다.

끝으로 한가지 더 말할것은 (너의 어머니가 보태는 말이다.) 생활상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너의 이모부되는 원병호를 찾아가거라.

너의 이모가 일찌기 사망하여 후취한터이지만 우리가 거기 있을 때까지는 옛정을 잊지 않고 자주 왕래가 있었으며 나도 그 사람의 일을 이것저것 도와주었던만큼 반갑게 맞아줄것이다.

그 사람네 집은 너의 합숙에서 과히 멀지도 않을것이다.

사연은 두루 길어졌으나 요점은 하나이니 잘 생각해서 작정하여라. 기회가 있으면 집에 한번 다녀가기를 바란다.

몸성히 일을 잘하거라.

19XX년 3월 6일》

다 읽고나서 다시 몇군데를 흩어본 기석은 편지를 덮어놓았다. 책상우로 비스듬히 가슴을 내밀고 주먹으로 볼을 고인채 한시간나마 까딱않고 앉아있었다.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릴수 있었다. 거기에는 어쩔수 없는 진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권고를 따를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이즈음 새로운 구단광에 의한 시험생산이 준비되고있는 환경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것은 야금공업의 주체화를 위한 시도인것이다. 그러니 자기 처지가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제강소를 떠날 생각은 없었다.

편지를 써보낸 아버지의 심정은 절절하게 느껴졌지만 거기엔 받아들이기 어려운 충고도 있었다.

생활상 도움받을 일이 생기면 이모부되는 원 아무개를 찾아가라던 구절을 상기하면서 기석은 쓸쓸하게 웃었다.

그것은 처음 듣는 충고도 아니였고 또 그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였다. 하지만 그는 거의 찾아가지 않았다. 이모없는 이모부가 남과 같이 생각되여서가 아니라 특별히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없었기때문이였다.

다만 한번 태호가 합숙으로 옮겨올 때 그 수속을 도와주느라고 구역인민위원회에 갔다가 인사나 하려고 이모부의 사무실에 들린적이 있었다.

그때 그 사람은 혼자 있었고 바쁜 일도 없는듯 했지만 기석이를 저으기 딱딱하게 대했었다.

지내는 형편을 묻지도 않고 공연히 서류들을 꺼내 뒤적이면서 풍문으로 들은 그의 아버지의 과오를 비난했던것이다.

기석은 그런 사연을 부모들에게 알리지도 않았고 두번다시 이모부를 찾아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사람의 딸인 옥희만은 리해와 동정심을 품고 그전날보다 더욱 친근하게 대하는것이였다. 김책공업대학(당시)의 야금학부를 졸업하고 이곳 연구소에서 연구사로 일하고있는 그 녀자는 제강소구내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부모들의 소식을 물었고 기석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못내 관심했던것이다.

(아버지는 이 모든 사정을 알수가 없지.) 하고 그는 앞에 놓인 편지를 바라보면서 서글프게 생각했다.

태호의 코고는 소리도 잠잠해지고 합숙안팎은 기척없이 고요한데 봄밤은 시름을 안고 깊어가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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