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3 장

열 풍


4


두집사이에서 벌어졌던 혼담이 주택마을에서 소란스럽게 떠돌다가 제관장근처에서 절단기로 철판을 잘라버리듯이 끝이 났으나 당자인 박동길은 전혀 모르고 지냈다.

알았다손쳐도 그런 식의 혼사는 인정하지도 않았을것이였고 상대가 장인숙인 경우에는 더욱 그랬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일들을 알지도 못했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흥미도 없었거니와 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공사가 끝난 뒤에 저장탕크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그것이 자기 잘못과 관련되였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안했었다.

시작할 때부터 수렁판우에 모래다짐한 기초를 탐탁치 않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던만큼 잘못은 자연스럽게 강기석에게로 돌려졌던것이다. 즉 튼튼치 못한 바닥이 구조물의 중량을 견디지 못해 덜 다져진쪽으로 기울어진것이라고 인정해버렸던것이다.

경쟁에서 1등을 하지 못한 분풀이로 동무들과 맥주마시러 가서도 그는 강기석을 비난까지 했었다. 공연히 저만 잘하는체하고 중뿔나게 아무 일에나 덤벼든다고.

물론 비난하는 심정의 밑바닥에는 그에 대한 고까운 감정이 깔려있었지만…

로에 돌아와서 일하던 어느날 박동길은 문득 떠오른 한가닥 의혹에 사로잡혀 그때의 일들을 더듬어보았다.

양수기를 철수한 뒤에도 패인 자리에 물이 고이기마련인 집수정을 어떻게 처리했던지 생각나지 않았던것이다.

건설에 경험이 있다고 하여 자기를 그 일에 붙여놓았는데 중요한 고리를 등한하게 지나쳐버린것이다. 그때 한쪽에서는 벌써 철근이 운반되여오고 일손이 딸렸었다.

게다가 어디 가서 노라리치다 온 장인숙이 호들갑을 떨며 돌아치는 바람에 더욱 화가 치밀었던 그는 앞뒤일을 찬찬히 따져볼 경황이 못되였었다. 양수기놓았던 자리를 돌아보긴 했으나 녀자들이 흙을 공그르면서 다지고있었으므로 별다르게 생각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집수정이 묻힌것을 고려했더라면 그쪽을 응당 더 돋궈주었어야 했을것이다. …

로작업을 인계한 박동길은 돌아가는 길에 이전날의 공사장에 들려보았다.

오작난 탕크를 까부시기 시작한 때였지만 아래도리는 그대로 앉아있었으므로 탕크가 양수기를 놓았던쪽으로 기울어진것을 알아볼수가 있었다.

오작의 원인은 시공에 있었고 집수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자기가 잘못한것이였다!

그때 박동길은 속이 우두두 떨렸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밖에는 없지 않는가.

량심의 가책을 느끼고 괴로와하면서도 이미 다 처리된 문제를 제 잘못이라고 밝힐 용기는 나지 않았다.

강기석이를 비난하며 반감을 품고 지냈던 사정까지 고려에 넣으면 자기 립장이 더욱 불쾌해질것 같았다. 마치도 자기가 공사를 고의적으로 파탄시키려고 한것 같은 오해를 받을수 있고 그렇게 되면 처리는 간단치 않을것이였다.

그래 그는 속을 앓으면서도 입을 다물고있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던 가시가 차츰 독을 쓰듯이 날이 갈수록 그 일이 마음을 괴롭히기만 한다.

로장이 자진하여 성구기를 만들고있는 강기석동무를 도와주자고 용해공들에게 호소하였을 때에도 박동길은 속이 뜨끔했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속심을 번연히 알고있지 않나 하는 불안을 느끼고있었던것이다.

박동길은 별치 않은 말에도 신경을 쓰며 의혹을 품고 눈치를 살폈다. 기세좋게 어슬렁거리지도 않고 침울해졌으며 공연히 신경질을 부렸다.

그래도 강기석이를 돕는 일에서만은 군말없이 열성을 보였다. 제 잘못에 대한 가책을 느끼고있었던것이다.

진동식성구기에 대한 도입시험이 있은 뒤부터는 강기석이 하던 일도 활기를 잃어갔으니 당자가 우선 해오던 일에 관심을 돌리지 않았고 다른 동무들도 열이 식어지는것이였다. 했으나 박동길이만은 남모르는 애를 태우며 맡았던 분공을 수걱수걱 하고있었다.

오늘도 그는 휑뎅그렁한 경간사이에서 작업실에 달 널문을 만들고있었다.

자로 감을 마르고나서 톱으로 널판을 짜르고있는데 안태호가 나타났다.

안태호는 가끔 이곳에 오군 했는데 오늘은 도면두루마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한손에는 큼직한 보따리까지 들고오는것이였다.

《기석동무 어디 갔어?》

가까이에 온 태호는 보따리를 콩크리트바닥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모르겠소. 요즘엔 하던 일에 통 손을 대지 않으니…》

《손을 대지 않다니? 포기했는가?》

《모른다니까.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린것 같소.》

《무슨 놈의 도깨비소린지. 똑똑히 말하라구.》

《글쎄, 내가 알게 뭐요?》

《그래 나타나지도 않던가?》

《저녁엔 한번씩 오더구만. 오늘 저녁에도 오긴 올거요.》

태호는 판자칸 안팎을 두루 살펴보더니 실망한듯 중얼거렸다.

《이거 왜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 로장동진 어디 갔나?》

《생산총화에 참가했소.》

《다른 사람들은?》

《좀 늦어지는 모양이요. 수리공들은 치차 깎으러 가고…》

《허어, 타산을 잘못했군. 한데 오늘 저녁에 꼭 온다던가? 로장동지랑…》

《올거요.》

《온다- 그럼 제대로 되는군.》

태호는 도면두루마리를 판자칸의 널책상에 올려놓고 나오면서 동길이를 불렀다.

《여어- 넌 왜 요즘 털리고나앉은 장사군처럼 시쁘둥해서 그래? 기석이는 그래두 늘 너를 생각해주고 너의 아버지하고도 그렇지 않은 사인데… 일 좀 도와주는게 손이 시리니?》

《누가 그렇대요?》

찔끔 흘겨보고나서 박동길은 톱질을 계속했다.

《그렇지 않으문 좋은거고…》

태호는 사람좋게 시무룩이 웃고나서 다가왔다.

《나도 사실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야. 그런데 기석이와 함께 지내면서 그 친구가 열이 올라 뛰여다니는걸 보면 량심에 가책되는게 있단 말이야. 그래서 변변치 않게 도와주군 하는데 나와보면 동길이 태도가 제일 거슬리거던. 그래 그러는거야.

너 왜 요즈음은 우리 호실에 영 다니지도 않니?》

《놀러다닐새가 있나요 뭐.》

《하긴 그래. 요즘은 모두 바쁘지.》 하고 태호는 선선히 수긍했다.

그리고나서 안심이라도 된듯 보따리쪽으로 가더니 풀기 시작했다.

박동길은 그에 아랑곳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려 했으나 태호가 불러서 어정거리며 다가갔다.

《오늘 저녁이면 도면이 완전무결하게 끝난단 말이야. 그래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후방사업을 조직했지.》

꽃보자기에 싼것은 커다란 늄남비였다.

태호가 뚜껑을 여니 그속엔 비닐에 포장된 세마리의 통닭, 술 한병, 소금봉지 하나가 있었다.

박동길은 둥그래진 눈을 찌프리며 한걸음 물러섰다.

《이거 어쩌자고 이러오?》

《넌 맥주마시러는 저 혼자 다니더니 오늘은 왜 이래?》

《여기서 마신단 말이요?》 하고 박동길은 불안하게 물었다.

《그럼, 후방사업이지. 전투장에다가 식당을 꾸리고 작업을 하는건 흔히 있는 일이지. 이건 비공식적인 전투장이니까 역시 식당도 비공식적인거지.》

《그래도 술이야…》

《글쎄, 그건 좀 무엇한 점이 있지만 사실은 오늘 날씨가 추워서 가져왔어. 보라, 흐리구 을씨년스럽구 더러운 날씨야. 이런 날에는 장가가기두 싫을거란 말이야.》

박동길은 어설프게 웃으면서도 미타해하는 눈치다.

《그리고 또 기석이 수고하는데… 언제부터 별렀던 일이지. 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어.》

《그래두 여기서 술마시다가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떡하우?》

《오긴 누가 와! 여긴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데야. 그래도 오는 녀석이 있으면 같이 마시면 되는거지.》

그쯤되자 박동길이도 마음이 놓이는지 호기심을 품고 다가앉았다.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서야 어떻게 하오?》

《왜, 있을건 다 있지.》

그러나 남비안에도 밖에도 다른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보라구, 술잔은 남비뚜껑이면 되는거고, 술병도 용기니까 술잔과 같은 사명을 수행할수 있지. 닭은 쪄내는것이니 숟갈이 필요없고 닭고기엔 뼈가 있으니 절도 필요없어. 육붙이엔 소금이 제격이니 고추, 간장, 양념따위는 없어도 돼. 그러니 다 먹고나면 병사리와 뼈다구 한줌밖에 남는것이 없단 말이야.》

늘어놓는 사설이 그럴듯 하여 동길이도 벌쭉이 웃고말았다.

《내가 이전날 설계실에서 설계원으로 일했다는걸 알지?… 모르면 알아두라구. 설계원으로서는 다 능력과 소질이 있는 재목인데 주소가 잘못 돼서 보수직장 기술준비원이란 말이야.》

《설계가 여기 무슨 상관이요?》 하고 박동길은 불안하게 물었다.

《그것도 몰라? 설계원이란 치밀성과 정확성이 기본이거던. 시간과 공간, 평면과 용적의 합리적리용, 어떻게 하면 구조는 단순하면서도 용도는 다양하고, 시간은 단축하면서도 리용률은 높은 장치들을 만들겠는가? 어떻게 하면 두가지, 세가지 사명을 수행할수 있는 간편하고 견고한 용기를 만들겠는가- 이런거지.》

《그건 다 좋지만 술 한병 가지고서야 어느 코에 바르겠소?》

《그래, 그건 내가 타산을 잘못한게 아니라 원료조건에 걸린거야.

누님한테 사정했는데 한병밖에 없다고 딱 짜르더군. 그것마저도 매부가 알면 큰일난다나.》

《태호형님두 단수가 낮구만.》

《그래, 거기서는 동길이보다 떨어지는것 같애. 자, 이러지만 말고 일에 착수하자구.》

《난 하던 일을 해야겠소.》

《이 친구 봐라, 내 방금 말하지 않았어? 시간과 공간의 합리적리용이라구. 동무들이 오면 기다리지 않고 제꺽 한모금씩 마실수 있게 준비해야지. 고기를 안쳐놓고 끓는 사이에 일을 하잔 말이야. 나도 일감을 가지고왔어.》

《그럼 어떻게 하라우?》

《이제 내가 고기를 씻어올 동안에 동문 여기서 불을 피우란 말이야. 여기 이 판자쪼박이면 넉넉하겠군. 벽돌장 세개를 삼발이처럼 세워놓고. 종이는 나한테 있는거고 라이터는 동길이한테 있지?》

《없소. 난 이젠 담배를 안 피우.》

《그-래. 괜찮군. 이건 타산 못했는데. 여기 사람들이 있을줄만 알았거던.》

잠시 생각하고나서 말했다.

《좋아, 내가 갔다올 때 보이라실 아궁이에서 불을 가져오지.》

태호는 곧 고기담은 남비를 들고 경간 저쪽으로 사라졌다.

박동길은 벽돌장을 얻어다 돌가마자리를 잡고 종이를 놓은 우에 나무쪼박을 무드기 쌓아올렸다.

그리고나서 태호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때 수리공휴계실로 통하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급한 층층다리로 누군가가 뚜벅뚜벅 내려오고있었다.

박동길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귀를 강구며 가슴을 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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