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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열 풍


2


이튿날 엄학준은 강기석이와 더불어 접시형대형성구기를 진척시킬 실무적인 방도를 토론하고나서 방조를 받으려고 기사장을 찾아갔다. 그들은 오래전에 로에서 함께 일한 사이였다. 한명택은 로기사였고 엄학준은 전선에서 돌아온 제대병사-용해공이였었다.

그런 사이였던만큼 지금도 만나면 허물없이 지내는 처지였다.

《강기석동무에게 조건과 시간을 보장해줬으면 좋겠네. 성실하게 애쓰는 동무인데 우리가 너무 등한했어.》

찾아간 용건을 알게 되자 한명택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그 동무가 하는 일을 공식적으로 보장해줄수는 없네. 제재를 받은 사람을 비호해준다면 기사장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나? 사람들은 뭐라고 하고.》

한명택은 더 입밖에 내진 않았으나 실상은 지배인을 념두에 두고있었다.

저장탕크오작을 토론하는 회의에서 지배인이 단호하게 제재를 주장했던 일을 잊지 않고있었던것이다.

《비호하는게 아니라 도와주는거네.》

《마찬가지야. 백번 오해받을 일이지. 게다가 연구소사람들이 연구한 진동식성구기를 최종시험하겠다고 떠드는 판에 제강소에서 다른걸 벌려놓는다는것도 곤난해. 그러지 않아 기업소일군들이 실정이 어떻소, 공업이 어떻소 하면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제때에 받아물지 않는다고 의견이 있는 형편인데, 연구집단과의 관계에서도 마찰이 생길건 뻔한 일이네.》

《그게 두려워서?》

《두려워서보다도 립장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네.》

《중요한건 ㄱ철을 하루빨리 성과적으로 완수해야 한다는 그 립장이지. 그 점만 명백하다면 다른 말썽같은건 꺼려할것도 없지.》

《생활이란 결코 단순한게 아니야.》

저으기 유감스러운듯, 어쩌면 타이르는듯 한명택은 말했다. 동정하는것 같기도 하고 아량을 보이는것 같기도 한 그 어조가 엄학준에게는 듣기 거북했다.

《생활은 단순치 않지만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네. 단순하지 않은건 진리가 아니지. 그런데서는 빈말밖에는 나올것이 없네.》

한명택은 서글프게 웃었다. 그 웃음은 그의 입가에 오래도록 어리여 유감스러워하는 눈빛에 인정미를 더하여주는듯 했다.

이야기가 더 진전될수 없음을 께달은 엄학준은 돌아서고말았다.

(공식적으로 보장해줄수 없다면 우리가 동지적으로 도와주지.)

그렇게 결심하고나서 동무들에게 호소하였는데 모두들 열정적으로 동의해나섰다.

용해공들은 강기석이 일하는 작업실을 꾸려주며 이것저것 조건들을 마련했고 수리공들은 제작에 필요한 기계와 부속들을 해결하기 위해 뛰여다녔다.

직장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필요한 조건들을 적극 마련해주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초급당비서 심득수는 직접 그 현장에 나와보고 강기석이 하는 일을 지지하고 고무해주었으며 용해공들의 동지적지원을 못내 대견하게 여겼다.

그것은 실무적인 의미에서뿐아니라 ㄱ철의 완성을 위해 광범한 대중이 창조적지혜와 적극성을 발휘하고있다는 정치적의미에서 특히 만족스러웠던것이다.

당비서의 고무에 힘을 얻은 그들은 더욱 열의를 내여 일을 다그쳤으나 뚜렷한 결실은 맺지 못하고말았다.

박성국이 완성한 진동식으로 된 대형성구기의 최종시험이 벌어졌던것이다.

그날 강기석은 커다란 관심을 품고 그 시험현장에 가있었다.

찬바람이 부는 저녁무렵이였다.

현장에서는 벌써 성공적인 시험이 몇차례씩 거듭되였으나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날줄 몰랐다.

통에서 내려오는 혼합원료들이 진동하는 성구판우에서 알로 빚어지며 구단광이 되여 흘러가는것이 볼수록 구경스러웠던것이다.

《사람이 못하는 일이 없군.》

구경하던 한 로동자가 감탄하여 중얼거렸다.

《조화란 말이야, 철판이 진동하면 흩어질것 같은데 알로 빚어지거던.》

《그러기에 연구를 하지 않나, 이 사람!》

《허, 거참…》

유쾌하게 떠들며 말하는 속에서도 강기석은 기계의 작업과정을 주의깊게 관찰하고있었다.

진동의 원리를 리용했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과학자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기발한 착상이였다. 증대되는 장입량을 보장할수 있겠는가 하는 점은 진동판의 규모를 보고 쉽게 판단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무엇보다 큰 관심을 가진것은 이 기계가 각이한 계절조건에서, 환경과 원료상태의 다양한 변화속에서 련속되는 생산을 보장할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였다.

그는 새 설비나 장치를 대할 때마다 그것이 련속공정에 도입되여 나타내게 될 제반 사태를 먼저 상상해보군 했다.

기술공학적인 요구에 대한 검토는 그뒤에 하군 했다. 그것은 어디서 배운 방법도 아니고 경험을 종합하여 만든 도식도 아니였다. 오랜 현장생활에서 얻은 버릇이라고나 할지…

그런 시점에서 볼 때 지금 호기롭게 작업하고있는 진동식기계에도 결함이 있었다.

진동을 전제로 하는 기계인만큼 작업과정에 불가피하게 장치물이 파괴되거나 손상을 가져오리라는것도 있을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극복하기 어렵지 않을것이였다.

보다 중요한것은 추운 계절에는 원료에 대기온도의 영향이 미치지 않을수 없다는 점과 그로부터 성구공정과 그뒤의 여러가지 경로에서 구단광에 손색이 있을수 있다는 점이였다.

그 결함이 지금은 눈에 뜨이지 않으나 생산공정에 도입되여 겨울을 지나느라면 차츰 드러나게 되고 말썽을 일으킬것이다.

기석은 그 점을 우려하면서도 그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기뻐하고 연구사자신도 만족해하는 흥분된 분위기에서 그런 말을 꺼낼수도 없었거니와 다른 방법으로 같은 기계를 만들고있는 기석이로서는 오해를 받을수도 있었던것이다.

결함을 극복할만 한 방도가 없었기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렇다고 침묵을 지킨다는것도 꺼리끼는 일이였다.

공정을 꾸려놓고 생산을 진행하는 과정에 결함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때엔 일이 훨씬 복잡해질뿐더러 여러가지로 많은 손실을 초래할것이였다.

오래도록 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무거운 생각에 잠겨있는 강기석은 사람들속에서 혜영이가 자기를 주의깊이 여겨보고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최혜영은 처음부터 기대곁에 있었다. 조수로 일했던만큼 기계의 작업과정이 생소하지 않았다.

그 녀자는 시동에 대한 사람들의 반향을 들으면서도 강기석의 표정을 줄곧 살폈었다.

박성국의 성공이 그에게 어떤 충격을 주며 그가 여기서 어떤 교훈을 찾고있는가 하는것을 알고싶어서였다.

먼저번에 그가 연구실로 박성국이를 찾아왔을 때에도 불러세우고 따뜻하게 충고해주고싶었었다.

그런 혜영이였던만큼 오늘의 이 현실이야말로 백마디 충고보다 더 큰 충격을 주리라고 생각했으며 한가닥 기대를 품고 살피고있었던것이다.

혜영에게는 그것이 기계의 창안이라는 사업적인 범위를 훨씬 벗어난 생활에 대한 태도로 여겨졌던것이다.

시동시험이 한창인 때에 기사장이 나타났다.

기계의 성능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하고있었던 그는 잠시 돌아보고나서 찬사부터 늘어놓았다.

《이건 학위론문감이요!》

한명택은 그렇게 말하면서 빙그레 웃었는데 그 너그러운 표정속에는 연구사의 능력을 진작 알고있었으며 또한 누구보다도 그를 잘 리해하고있다는 자랑이 어리여있었다. 한명택은 저켠에 서있는 기석이쪽을 일별하고 말을 이었다.

《우린 곧 전면적인 도입을 준비하겠소. 자료와 함께 확정된 도안을 넘겨주시오. 설계도 다 우리가 맡아서 하겠으니.》

그 말은 박성국에 대한 찬사와 고무인 동시에 기석이에 대한 은근한 타격이였다.

박성국은 그 말에 깊이 감동되였다.

《고맙습니다. 기사장동무,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시오.》

《도움이야 우리가 받는거지요. 좌우간 일하는 과정에 애로되는 점이 있으면 아무때건 찾아오시오. 백사불구하고 해결해주겠소.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학위론문을 준비하시오. 누가 하라말라 할 일은 아니지만 공업적인 도입과 관련되는 보증은 우리가 하겠으니까.》

한명택은 사뭇 만족하였다. 중요한 고리가 하나 풀렸다는 점에서 기뻤고 또한 엄학준이와의 담화가 불쾌하게 남아있었던 그에게는 이 일이 자기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움직일수 없는 증거였던것이다.

《우리 계통으로 상부에도 보고하겠지만 해당한 출판기관에도 알리겠소. 공업을 위해서는 널리 소개해야 할 의의있는 과학자료니까!》

박성국은 그의 과분한 친절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있었다.

당일군들, 행정일군들과 함께 지배인과 당비서도 나타났다.

만족한 표정으로 작업과정을 지켜보던 그들은 박성국이와 지형민부원장에게로 다가가서 오늘의 성과를 뜨겁게 축하하였다.

자나깨나 새 야금법의 완성을 위해 마음을 쓰고있는 제강소의 책임일군들에게는 대형성구기의 완성도 하나의 큰 경사였던것이다.

강기석은 골똘한 생각을 아퀴짓지 못한채 그곳을 떠나다가 혜영이를 보았다. 그 녀자는 아버지의 눈에 뜨이기를 저어해서인지 아니면 쌀쌀한 바람세를 피해서인지 저녁해빛이 어려있는 급수실 담벽아래 서있었다.

《혜영동무, 좀 하고싶은 말이 있는데 괜찮겠소?》

강기석은 다가가면서 물었다.

《말씀하세요.》 하고 처녀는 심상하게 대답했으나 이쪽의 표정을 여겨보는 눈길에는 한가닥 호기심이 어려있었다.

《나는 오늘 많은것을 배웠소. 그리고 또 많은 생각을 했소.

진동식성구기는 착상이 기발하고 성능도 훌륭하오. 그 우월성에 대해서는 긴말을 하지 않겠소. 기계를 관찰하면서 한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어서 토론해보고싶었소.…》

처녀의 얼굴에 떠돌던 호기심 어린 부드러운 표정은 씻은듯 사라졌다.

강기석은 자기가 생각하는바를 설명하고있었지만 혜영은 해저무는 서쪽을 망연히 바라보면서 무심하게 듣고있었다.

말이 끝났을 때 그 녀자는 이렇게 물었다.

《나하고 하자던 이야기가 그건가요?》

《그렇소. 만일 내 우려가 공연한것이 아니라면 연구사동지에게도 알려주어 해결방도를 탐구하도록 하고싶었소.》

혜영은 서글프게 웃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기계의 성공을 기뻐하고있는 때에 결함을 꼬집어서 말한다는건 좋은 일 같지 않군요. 강동무의 립장에선 더욱 그렇지요.… 하긴 뭐 내가 상관할바는 아니지만…》

강기석은 흥미가 없다는듯 눈길을 내려깐 그 녀자의 얼굴표정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누구보다도 나를 리해해줄수 있는 혜영동무에게 말하는거지요.》

《그렇지만 전 강동무가 말하는 기계의 결함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강동무에 대해서도… 이즈음에 와서 더욱 그래요.》

한동안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있던 강기석은 《솔직하게 말해주어 고맙소.》 하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 갔다.

혜영은 오래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시험장근처에서 사람들이 다 흩어져간것을 보고서야 천천히 그리로 걸어갔다. 다른 동무들과 함께 뒤일을 처리하고 배선들을 거두는 작업을 기계적으로 거들면서 내내 기분이 흐리여있었다. 마음속에 있던 말이였으나 불쑥 던져놓고보니 어쩐지 불안해지는것이였다. 정리작업을 마치고는 함께들 돌아왔다.

혜영이의 심란한 기분에는 아랑곳없이 다른 사람들은 명랑하게 떠들었다.

《연구사선생, 한상 차려야겠수다.》

엉뎅이에 찬 뻰찌와 나사틀개를 건뎅거리며 걷고있던 전공이 시물시물 웃으며 말을 건넨다.

《이런 기쁜 날에 축하만 받고있겠소?》

《한상 차릴만도 하지.》 하고 리평이 유쾌하게 맞장구를 쳤다. 한옆에서 말없이 걷고있던 중간공장 공장장이 불쑥 말했다.

《한상은 내가 내지.》

그러자 모두들 웃었다.

《공장장아바이, 공연히 흰목 쓰지 마슈.》

전공은 당치않은 소리라는듯 시물시물 웃었다.

《상은 내가 차리겠소!》

옆사람들의 웃음에는 아랑곳 않고 공장장이 거듭했다. 그의 말은 호탕하면서도 롱기는 없었다.

《오늘 아침에 로친네하고 싱갱이가 있었소, 밤낮 일찍 아침밥을 독촉해 먹고 다니면서 일한다는게 잘됐다는 소릴 듣지 못했다고 지청구를 하길래 내가 욱박질렀지. 이런 날엔 한상 잘 차려주어도 모르겠다는데 재수없이 지껄인다고… 그랬더니 로친네 하는 말이 일이 잘되기만 한다면 열백번이라두 차리겠다구, 어처구니없이 굴더란 말일세.

조금전에 내가 사람을 우리 로친네한테 띄웠네. 일이 이만저만 됐으니 준비를 하라고… 총화들을 짓고는 거기서 기다리게.》

모두들 말이 없었다.

전공은 공장장의 말이 롱담이 아님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고 연구사들은 감동에 싸여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업전반을 놓고보면 하나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이 일을 두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고있는가, 이게 어찌 연구사 한두사람의 성과겠는가!)

생산계획도 없고 생산된 제품을 기다리는 수요자도 없는 시험공장사람들, 연구사들이 연구를 잘하지 못한다고 늘 의견을 가지고있으면서도 조작에 들어가서는 따분하고 결실이 보이지 않는 작업을 열번이고 백번이고 말없이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들… 일의 성취를 위해 안타까와하는 그들의 심정이 오늘따라 가슴에 사무친다!

푸접없이 무뚝뚝해보이는 다부진 몸매의 공장장아바이도 지금은 한평생을 같이 지내온 한집안사람인양 친근하게 느껴진다.

처음 내려왔을적엔 박성국이도 그를 좋지 않게 여겼었다. 시험대의 운반이며 설치에 마지못해 응하는듯 하던 그의 태도에는 허구한 나날 훌륭한 결실을 본적이 없는 그러루한 일에 하염없이 부대낀 사람의 불신과 불친절이 엿보였던것이다.

많이 도와달라고 웃으며 하는 말에 《별게 있소! 열성이 보이면 도와주고 열성이 없으면 못 도와주는거지.》 하고 심드렁하니 대답했었다.

그러나 첫 시동이 실패했을 때 구경하던 사람들은 다 흩어져갔으나 공장장은 쓸쓸히 오래동안 서있었다.

어느날 밤 해체해놓은 진동기계옆에 잠간 쓰러져 자는 동안에 모포를 가져다 덮어주고 가던 일이며 회전수가 맞지 않는 전동기를 교체할 때 다른 사람을 부르지도 않고 제가 스스로 팔을 걷고 맡아나서던 일들은 잊혀지지 않는다.…

진동성구기가 완성되였다 해서 학위나 표창이 차례지지 않을 사람들이언만 사업의 성과를 제 일처럼 기뻐하는것이였다.

중간공장근처에 이르러 공장장은 걸음을 멈추고 다시한번 당부한다.

《가지들 말구 기다리라구 엉, 리평이.》

연구실에도 어딘지 명절같은 분위기가 떠돌고있었다.

한발 먼저 들어온 동무들이 기다리고있었다. 언제나 책상앞에 마주앉아있는 늙은 연구사조차도 흥분에 들떠 서성거리고있었다.

《우리 사업이 또 한발자욱 전진했소.》

원옥희의 얼굴에도 담담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모두들 유쾌한 기분에 들떠있었던지라 전에없이 깊은 명상에 잠겨있는 혜영이의 모습에는 누구도 주의를 돌리지 못했다. 그 녀자의 얼굴에 떠도는 방심한듯 한 부자연스러운 미소가 마음속의 긴장한 번뇌를 가리우고있었던것이다.

《며칠간 완충기가 생겼는데 그동안 집에 다녀오는게 어떻소? 아이도 좀 돌보고 와야지.》 하고 리평이 박성국이더러 말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소. 새것은 언제나 완성된것이 못되니까! 좌우간 이 소식을 알리기는 하겠소. 당장 편지를 쓸테요.》

《어디에… 아이한테?》

《아이가 편지를 읽소?》

《아이를 맡아보는 교양원한테 말이요. 내가 다소나마 무슨 일을 했다고 하면 그 동무도 아마 퍽 기뻐하고 자기 수고에 대해서 얼마큼 보람이라도 느낄거요. 번번이 맡기고다니면서도 해놓은 일이 없다나니 돌아가서 만날적마다 얼굴이 뜨겁더란 말이요!》

《참 것두 그래. 평범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우리 과학자들에 대한 기대가 크단 말이야.》

리평은 공감하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남의 아이를 맡아 돌보아준다는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보아주겠지?》

《교양원은 여러 사람이지만 아마 아이가 더 따르는 선생이 자진해서 많이 수고하는것 같소.》

《대체 어떤 녀성이요? 미혼자라면 차라리… 그렇게 인연이 될수도 있지 않을가?》

박성국은 서글픈 미소를 지었을뿐 대답하지 않았다.

《가능한 일이지.》 하고 늙은 연구사는 턱을 쑥 내밀고 학술적인 문제를 론의할 때처럼 진지하게 나왔다.

《이전에 내가 어떤 소설책에서 그런걸 본것 같은데… 가능한 일이구말구. 아이가 두사람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셈이지.》

말없이 듣고있던 원옥희는 이야기가 세속적인데로 흘러가는데 기분을 상한듯 가방을 들고 일어서더니 리평이더러 말했다.

《우린 먼저 가보겠어요. 혜영동문 그새 일에 몰리다나니 퍽 피곤해하는것 같아요.》

《어서 가보우. 오늘은 더 할 일도 없지.》

녀성들을 내보내며 인사하는 바람에 흘러가던 이야기도 곬을 잃은듯 했다.

《하긴 성국동무도 이젠 가정을 이루어야지. 생활은 어디까지나 생활이니까.》

이야기의 아퀴를 짓듯 리평이 하는 말이였다.

《녀자가 없는 가정이란 불없는 난로와 같은거지. 어린애에게도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 있어야 하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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