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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소원과 성취


16


공장구내 도처에서 일이 들끓었으나 작업반으로 돌아온 장인숙의 생활은 오히려 단조로왔다.

동원에서 돌아온 뒤부터는 이전처럼 흥겹게 떠들지도 않았고 챙챙하게 웃어대는 일도 드물어졌다. 어찌 보면 봄, 여름사이에 숙성해지고 얌전해진듯도 했고 혹은 그의 가슴속에 알지 못할 은근한 사연이 깃들인듯도싶었다.

《인숙아, 넌 퍽 달라졌구나얘.》 하고 동무들이 롱삼아 말을 건네도 인숙은 당치않은듯 웃었다.

《달라지긴 뭘… 나야 언제나 요 모양이지.》

명랑하게 대꾸했으나 말끝은 어쩐지 쓸쓸하게 울리는듯 했다.

전차운전공의 일이란 단조롭다. 장입통들사이의 짧은 구간을 오락가락하면서 자동적으로 쏟아져나오는 원료를 평량하고 지하장입기에 떨구어주면 그만인것이다. 그러면 지하벨트가 그것을 회전로의 장입구까지 실어간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단조로운줄은 몰랐는데 이번에 동원갔다와서는 더욱 단조롭고 적적하게 느껴진다.

산기슭 바위벼랑틈의 자기 보금자리에 돌아와서도 고기배 떠다니던 바다를 그리워하는 갈매기마냥 장인숙은 로동이 긴장하고 사람들이 흥성거리던 공사장을 그리워했다.

공사가 오작으로 처리되는 바람에 그들은 경쟁에서도 제외되고 흐지부지 자기 일터로 흩어져버렸다.

직장에서는 일손이 딸리던터에 그들이 돌아온것을 다행으로 여겼을뿐 총화도 제대로 짓지 않고 자기 기대에로 돌려보냈다. …

저녁에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인숙은 6호로에 들렸다. 괜히 들려보고싶었던것이다.

현장지령실에서 나오던 기사장은 장인숙의 인사에 대답을 했으나 총화를 언제 짓느냐는 물음에는 터무니없는듯 웃었다.

《동무네야 뭐 총화할거나 있나? 혁신을 한다구 하다가 망태기를 쳤으니.》

《혁신이야 뭐… 그럴수도 있지요. 잰내비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데.》

자기가 친근하게 여기는 강기석이 말밥에 오르는것이 언짢았던것이다. 그가 제재까지 받았다는것이 장인숙에게는 부당하게 여겨졌다.

《한사람이 무책임한탓으로 얼마나 큰 손실이 있었다는걸 알아야지. 그렇지만 않았던들 동무네가 경쟁에서 1등쯤 했을거야.》

《1등을 못하면 뭐라나요! 난 그저 총화를 어찌는가 해서 물은거예요.》

실상은 총화에 관심이 있은게 아니라 함께 일하던 동무들을 그저 만나보고싶었던것이다.

하지만 박동길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총화요 뭐요 하는 말을 듣고는 귀찮은듯 로앞에서 훌 사라져버렸다.

다른 용해공들이 반기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바람에 마음이 누그러져 몇마디 말을 건네였으나 그곳을 떠나면서는 인젠 다신 6호로에 오지 않으리라 마음을 사려먹었다.

(내가 뭐 자기를 만나려고 여기 들렸던줄 아는 모양이지.

키크고 잘 생기기나 하면 뭘해!

별스레 시뚝해가지고, 흥…)

하지만 지어서먹은 마음은 열흘도 가지 못했다.

그때로부터 대엿새 지난 어느날 저녁무렵이였다.

학습이 있어 직장에 나왔던 장인숙은 후야근교대까지의 남은 몇시간을 집에 들어갔다와야 할지 그냥 여기서 보낼지를 망설이고있었다.

해가 구름속에 잠겨버린 을씨년스러운 저녁이였다.

마실다니기를 좋아하는 어머니는 집에 없을것이고 혹은 있다 해도 자기더러 국수바꾸러 보낼것이다. 가방속에 동무에게서 빌린 《안개속의 해안》이라는 탐정소설이 있으므로 여기 어디서 그것이라도 읽으리라 작정했다.

전차선로의 짧은 구간에서는 평량차들이 간단없이 움직이고 저쪽 경간에서는 원료를 퍼올리며 천정기중기들이 우르렁거렸다.

운전작업반의 교양실은 비여있었다. 창문가에 자리를 잡고 가방속에서 책을 꺼냈다. 많은 독자들의 손을 거치는 과정에 보풀이 일고 표지가 떨어져나간 책이였다.

적군 해안방첩대의 통역원으로 잠입한 아군정찰병이 외국인마약밀수업자들과 관계를 갖고있는 해상경비대의 장교에게 리용당하는척하면서 적들내부의 모순을 알아내여 활동범위를 넓혀가며 해안과 해상에서의 적들의 작전기도를 알아내는 이야기였다.

탐정소설일반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 책에서도 인간성격이 발현되고 성장해가는 다양하고 정서적인 생활들과 인간관계들은 거의 없고 주인공의 예리한 판단력과 강의한 의지, 대담하고 결단성있는 행동만을 보여주는 적들속에서의 긴박한 정황들이 부단히 제시되면서 사건을 긴장하게 끌고나가는것이였다.

인숙은 소설책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탐정소설도 역시 그랬다. 동무들이 재미있다고 돌려가며 보는 책이면 간혹 손에 넣어가지고 읽긴 했다. 그에게 흥미있는것은 책이 아니라 주변에서 벌어지는 생활이였다. 공장구내에서 벌어지는 일, 동무들의 일 그리고 거리에서 있은 일들이 언제나 호기심을 끌었다.

그것들은 책에서 읽게 되는 사실들보다 훨씬 더 리해하기 쉬웠고 인연이 있었고 생동하고 진실했으며 그만큼 흥미있었던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책을 읽다가도 문득 그것을 밀어놓고 생각에 잠기군 했다.

책에 나오는 주인공에 대해서 두루 아는 사람들과 비교해보다가도 생각은 어느덧 갈래를 쳐서 자기에게 가까운 생활에로 흘러드는것이였다.

그리하여 지나간 일, 동무에게서 들은 이야기 그리고 직장과 작업반에서의 일들을 두루 생각하면서 종작없이 앉아있군 했다.

바람이 씽하니 날아들며 창문이 덜커덩거렸다. 인숙은 앉은 자리에서 손을 뻗쳐 창문을 닫아버렸다.

춥고 으시시했다. 무릎우에 허리를 꼬부리고 다시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몸이 으시시해지니 위험을 뚫고나가는 주인공의 활동도 데시근해지는것이였다.

창턱에 비스듬히 어깨를 기댔다. 책을 읽으면서 가물가물 스며드는 졸음을 이기느라 눈을 흡뜨군 했다. 그러다가 보던 책우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솔곳이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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