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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소원과 성취


15


강기석은 몇달동안 본직을 떠나서 내화물공사장에서 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각오하고있었던만큼 그러한 조치를 의견없이 접수했다.

그날부터 그는 잘못된 구조물을 헐어내는 작업장에서 일했다.

간단한 폭파로 그것을 허물었을 때 기석은 가슴이 무너지는듯 했다. 작업장의 분위기도 유쾌하지들 않았다.

맞대놓고 욕하거나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자신은 바늘방석에 앉은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의기를 잃고 침울해진 그는 무겁게 입을 다물고 일만 했다. 실패의 과학기술적인 근거를 알수 없다는것이 그를 더욱 괴롭혔지만 그것을 밝히려고 마음쓸 여유도 없었다.

하루동안 복새를 치며 일을 마치고나니 저장탕크의 형체도 없어지고 휑뎅그렁해진 공지에는 콩크리트파편들만 어지럽게 남았을뿐이다.

땅거미 스며들고 늦가을 찬바람이 불어지나는 공지의 을씨년스러운 정경은 그것을 둘러보는 강기석의 가슴속처럼 쓸쓸했다.

작업을 마치고 모두들 흩어져갈 때 그는 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마냥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합숙에 들어가고싶은 생각도 없었다.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쳤으나 쉬고싶지 않았고 들어가야 할 일도 없었다. 일이 있었다쳐도 손에 걸리지는 않을것이였다.

그는 어둠이 짙어가는 공장구내를 터벅터벅 걸어갔다.

원료장에서는 모든것이 여전했다.

천정기중기는 무지로 쌓인 정광을 퍼올리고 벨트콘베아는 쉬임없이 흐르고 코구멍이 새까맣게 된 전차운전공들은 여전히 기사를 웃으며 반기였다.

했으나 강기석은 그들의 인사에 웃음으로 대할수 없었고 현장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사업토의에 참견하지 못했으며 작업공정에 대해 물어보는 로동자들의 물음에 얼굴을 붉히며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생산공정이나 기술관리뿐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열렬하게 관심해오던 강기석이였으나 지금은 변두리를 에돌다가 발길을 돌리는것이였다. 어둠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무거운 한숨을 지었다.

시험생산을 위해 긴장한 이런 때에 자기 잘못으로 하여 얼마나 큰 손실이 빚어졌는가를 뼈아프게 뉘우쳤다.

시험로에서는 류출이 한창이였다.

그는 란간곁에 걸음을 멈추고 불길이 너울거리는 로항을 바라보았다.

로앞에 오면 조업형편을 알아보는것이 의례히 나누는 인사였지만 그는 지금 그것을 물을수가 없었다. 기분도 그러했지만 여기 일에 관심한다는 사실부터가 주제넘은 일로 여겨졌던것이다.

자기 집 웃방처럼 드나들군 하던 운전실에도 휴계실에도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자기를 깨닫는 순간 가슴속에서 설음이 북받쳐올랐다.

퇴근하는 동무들이 곁을 지나가는데 누군가가 그의 손을 잡아이끌며 소리쳤다.

《뭘해? 돌아가자우.》

그는 말없이 이끌려갔다.

층계를 내려가면서 동무들은 유쾌하게 떠들었다.

《가다가 맥주집에 들려볼가?》

《로조작이 멋들어지게 된 날엔 그냥 돌아가기가 서운하거던.》

《그것도 괜찮아.》

강기석은 어둠속에서 처져걸으며 그들에게서 떨어졌다. 하루일을 보람있게 마친 사람들의 흥겨운 기분에 섭쓸리기가 괴로왔던것이다.

구내길에 나선 동무들이 어둠속에서 자기를 찾는것 같았지만 그는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동무들은 내가 제재를 받았다는것을 모르는 모양이지.) 하고 그는 서글프게 생각했다.

모든 생활이 다름없이 자기 궤도를 따라 흘러가고있는데 자기만이 거기서 떨어져나와 버림받은듯싶었다.

지향없이 옮겨놓던 걸음은 저도모르게 실패한 저장탕크공사장으로 그를 이끌었다. 가슴이 찢어지는듯 한 괴로움속에서도 한가닥 오작의 근거를 찾아보고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정리하지 못한 잔해들이 엉성한 그 터전은 어둠에 싸여 아무것도 분간할수 없었다. 성형장곁에 서있는 기중기의 불빛이 희미하게 어려올뿐이다.

커다란 콩크리트덩이우에 걸터앉아 어둠속을 물끄러미 굽어보고있느라니 며칠전에 받은 어머니의 편지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집안이 무고하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기석의 편지를 받은 뒤로 아버지도 훨씬 젊어진 기분으로 원기왕성하게 지낸다는것을 기쁜 마음으로 전하였었다.

하겠다던 일은 다 되여가는지(그것은 성구기를 두고 하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일에 못내 마음을 쓰고있으며 자기는 기석의 혼사때문에 무슨 소식이 없는가 해서 손꼽아 기다린다는것이였다.

조건이 허락한다면 그 처녀를 데리고 한번 놀러 오라고 신신당부했던것이다.

그 편지를 받을 때만 해도 그는 앞날에 대한 희망에 싸여있었고 신심에 넘쳐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들의 지극한 관심에 회답할 말이 없었다. 아니, 그러루한 일들은 지금 생각하고싶지도 않았다.

그는 생활의 흐름에서 밀려난 사람이였고 거창한 사업에서 쓸모없게 된 존재였다. 하여 지금 깊어가는 밤의 랭기가 온몸에 스며드는것도 의식하지 못하면서 고독감에 싸여 자기 앞날처럼 희미한 어둠속을 지그시 쏘아보고있었다.

성형장쪽으로 가던 사람이 이쪽을 의아하게 여겨보면서 천천히 다가오는것도 깨닫지 못했다.

《거기 앉아있는게 누구요?》

궁금해하는 목소리는 그의 의식밖으로 흘러갔다. 사람이 곁에 왔을 때에야 강기석은 흠칠 놀라며 쳐다보았다.

《누군데 이렇게 앉아있소?》

거쉰 목소리는 귀에 익었다.

강기석은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에 서있는것은 초급당비서 심득수였다.

《기석이구만, 왜 여기 있소?》

반기는듯도 하고 나무라는것 같기도 한 말투였다.

《…》

《허, 이 사람이 아주 락심했는가?》

강기석은 대답대신 머리를 수그렸을뿐이다.

《여기 이렇게 앉아있는다구 그르친 일이 바로잡혀지겠나? 돌아가자구. 자, 어서.》

심득수는 그의 어깨를 툭 치고는 구내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기석은 어쩔수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비서는 아마 내화물직장으로 가던 걸음인 모양이다.

불빛이 훤한 성형장근처에 이르자 심득수는 걸음을 멈추었다. 량미간이 넓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청년의 모습을 주의깊이 여겨보면서 말했다.

《기석이가 좋은 의도에서, 일을 더 잘해보려고 그 도안을 제기했다는걸 알고있소. 그렇지만 일이 잘못되였으니 책임은 져야지. 책임은 져야 해.》

《거기 대해서는 의견이 없습니다.》

《응당 그래야지. 그렇다고 의기를 잃고 실망해서는 안돼. 일을 하느라면 실패하는 때도 있는거지. 그럴수록 일을 더 잘하고 혁신적인 방법도 더 탐구해야 해. 움츠러들지 말고…

당의 보살핌속에서 자라난 세대들이 이런 때에 당을 위해 한몫 단단히 해야지 기가 꺾여서 주저앉아있으면 되나!》

진정이 넘치는 은근한 그 말은 기석이를 감동시켰다. 대답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으나 어둠속에서 유난히 맞띄운 비서가 더없이 고마왔다.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들속에 있어야 해. 지나간 일을 두고 자꾸 속을 썩이지 말라구.

이젠 돌아가보게. 돌아가서 푹 쉬여야 래일 아침일찌기 일나올수 있지! 원 사람두…》

그리고는 도로에 나서는 기석의 뒤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드러우면서도 엄하게 오금박았다.

《옹졸해져서는 안돼!》

강기석은 가슴이 뭉클 뜨거워졌다. 옮겨놓는 발걸음에 힘이 생겼다.

합숙에 돌아오니 태호는 자지 않고 책상앞에 덤덤히 앉아있었다. 들어선 기석이를 돌아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여태 어디 가있었나?》

《두루 돌아다녔지.》

강기석의 표정을 주의깊게 더듬어보면서 나직이 말했다.

《여기 비서동지가 오셨댔네.》

《비서라니?》

《초급당비서지. 한시간쯤 됐을가? 아마 합숙에 볼일이 있어 나왔다가 우리 방에 들렸던 모양이야. 기석동무가 어디 갔는가고 묻길래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지.》

(그러니 아까 공사장에서 우연하게 만난것이 아니였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비서는 그를 만나려고 찾아다닌것이다!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철없는 자식을 찾아다니는 걱정에 싸인 어머니마냥 그를 찾아다닌것이다.

전화로나 혹은 사람을 띄워 부를수도 있었으련만 직책상의 의무에서라기보다 손우사람의 인정으로써 괴로와하는 그를 걱정하며 마음을 썼던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느라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머리가 수그러지는것이였다.

깊은 생각에 잠긴 강기석의 심정을 눈치채지 못하면서 태호가 다시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장탕크기초에 대한 책임이 나한테도 있다고 솔직히 말했더니 비서동진 〈알고있소.〉 하고 툭 짜르더군. 그리고는 나를 맞대놓고 이렇게 말씀했어. 〈비록 제재는 받았지만 기석이는 용사요. 당원이고… 그런데 태호는 좀생원이란 말이야. 옹졸하거던.… 그러면서도 당원이 되고싶어한다지? 응? 태호, 정녕 그렇게만 살겠는가!〉 하면서 되게 비판하시더군.…》

강기석은 격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얼굴을 돌리고 물러섰다. 뜨거운 눈물이 솟구쳐올라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것이였다.

(그렇게 믿어주고 그렇게 손잡아 이끌어주는 사람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더 일해야 한다.) 하고 그는 마음을 굳게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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