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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사랑의 기슭


3


이날 저녁때 지배인실에는 손님이 찾아왔었다.

기사장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선 사람은 풍채좋은 몸집에 옷차림이 세련된 중년남자였는데 금속공업부의 국장이였다.

메마른 체구에 키가 꺽두룩한 지배인은 인사를 나는 후 기사장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비주름히 웃음을 띠웠다.

《어째 예고도 없이 이렇게 나타났소?》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구.》

국장이 소탈하게 받으며 의자등받이에 몸을 젖히고앉았다.

두사람이 지내는 형편을 이야기하는 동안 기사장은 길다란 탁상 저쪽끝에 앉아서 가벼운 미소를 짓고 듣고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드디여 지배인이 물었다.

《철생산을 내놓고서야 우리한테 무슨 다른 일이 있겠소?》

국장은 점잖게 대답했다.

《제철소에 용광로기술문제때문에 내려왔는데 제강소에서도 제기된 일이 있어서…》

《제기된 일이란건?》

《여기 회전로직장에 강기석이라는 동무가 있소?》

최병기는 이마에 주름이 가득해져서 기억을 더듬었다.

《모르겠는데… 사람이 하두 많으니.》

《사람이 많아두 그런 인재들이야 지배인의 안중에 있어야지.》

대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하는 국장은 혈색좋은 불그레한 얼굴에 너그러운 미소를 띄우고 핀잔했다.

《제진에 대한 새로운 방안을 창안한 동무요. 회전로에서의 습식제진장치…》

이쪽은 아리숭한 기억을 더듬으며 내키지 않는듯 대답했다.

《그런 사람이 있소.》

《회전로 현장기사입니다.》

참을성있게 침묵을 지키고있던 기사장이 조심스럽게 참견했다.

《바로 그 문제때문에 왔소. 회전로에서의 철생산과 관계되는 중요한 문제인데 기업소에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우리한테 제기해왔더군.》

《이를테면 신소를 했구만.》

지배인은 쓰거운 웃음을 띠우고 중얼거렸다.

《신소라기보다 가능성여부를 검토해달라는거지. 여러달전의 일이요.》

《일처리가 지나치게 빠른셈이군!》

《늦긴 했지만… 검토해보니 실효성은 있겠더군. 착상이 대담하고 현실적이더란 말이요.》

국장의 말에 지배인은 태연했다. 이전날 그것을 부정했던 사실을 두고는 자기대로의 견해가 있었던것이다.

가볍게 던진 지배인의 비난에 국장은 게면쩍게 웃었다. 당면과제에만 매달려 제기된지 오랜 의견을 도외시해오다가 요즘 산업기업소들에서의 제진 및 로동보호문제가 일정에 올라서야 비로소 관심했던것이다.

게다가 요즈음 새 구단광의 시험생산을 준비하고있는 지배인에게는 다른 일들이 통 안중에 없었다.

기사장은 벌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며 또다시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그래 어쩌자는거요?》

《정당한 제안이면 채택하고 추진시켜야지.》

지배인은 짤막한 호박물부리에 담배를 불여물고 연기를 내불었다.

《제진도 중요하지만 생산이 급하오.》

《세면도 안하고 다니는 사람이 일을 더 잘합디까?》

국장은 싱글싱글 웃었으나 최병기는 담배연기속으로 상대방을 넘겨다보며 흥심없이 물었다.

《당장 일을 벌릴 차비요?》

《해야 할 일이야 서둘러야지.》

그렇게 대답한 국장은 웃음을 거두고 정색해서 덧붙였다.

《물론 이건 일반적으로 하는 말이고 기업소들의 실정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을거요. 허나 우리로서는 바쁜 일이요. 그러니 제진장치에 대한 기술자료를 만들어줘야겠소. 시공계획에 이르기까지 열흘후에 다시 오겠으니 어김없이 만들어주오. 그때 와서 제강소에서의 시공전망도 돌아보겠소.》

《돌아보는건 반대없지만… 우린 지금 다른 일을 준비하고있소.》

《다른 일도 회전로에서 하겠지요? 그리고 회전로가 돌아가는 한 제진장치는 필요할거란 말이요.》

국장은 유페하게 웃었으나 최병기는 못마땅한 표정이였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할일이 많은 지배인은 손님이 떠나기를 바라는듯 했으나 국장은 선뜻 일어서지 않았다.

《도안을 보니 대담하고 로숙한 기사같은데 몇살이나 됐소?》 하고 이번에는 기사장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직 서른안팎의 젊은 사람입니다.》

《흠 장한데, 젊은 사람이… 장해, 제강소에서 일한지는 오라오?》

《7~8년 잘될겁니다. 회전로 용해공으로부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말한 기사장은 우묵눈에 눈섭이 시커멓고 하관이 긴 지배인의 얼굴표정을 돌아보고나서 덧붙였다.

《저… 국장동지도 잘 아는 강정민의 아들입니다.》

《강정민이라니?》

국장은 의아하게 그를 돌아보았다.

《이전에 여기서 지배인으로 일하던…》

《고집을 부리면서 허풍만 치다가 해임되여간 사람 말이요?》

《예, 바로 그 사람의 아들입니다.》

이 말은 두사람에게 다같이 강한 충격을 주었는데 그것은 서로 상반되는것이였다.

국장은 놀라와하면서도 호기심이 어린 얼굴에 야릇한 미소를 짓고있었으나 지배인은 저으기 미간을 찌프리고있었다.

《괜찮은데… 강정민령감한테 그런 아들이 있었구만.》

국장은 사뭇 감개에 싸인듯 중얼거리고나서 덧붙였다.

《그러니 아들은 그냥 여기 남아있었구만.》

《여기서 일하겠다고 고집한 모양입니다.》

《허 그래! 한데 그 령감이 지금 어디서 일하오? 이전에 ㄷ제철소에 갔다는 말이 있었는데.》

기사장은 그 말을 듣지 못한듯 대답하지 않았다.

《좌우간 왔던김에 그 동무를 좀 만나보기요.》

지배인은 내키지 않는듯 송수화기를 들고 회전로직장을 찾았다.

저쪽에서는 한동안 꾸물거리는 품이 현장에 알아보는 모양이였다.

이윽고 대답을 들은 지배인은 송수화기를 놓았다.

《교대를 마치고 돌아갔다누만.》

《후에 만나보지, 급한 일은 아니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용무를 마친듯 일어섰다.

《3일내에 우리 지도원을 보내서 구체적인 방향을 주겠소.》

지배인은 불빛이 환한 현관에까지 나와 무뚝뚝한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띠우고 손님을 바래웠다.

지령장을 불러 그날의 생산정형을 알아보고 직장장들의 모임을 마치고나서도 그는 퇴근하지 않았다.

책상앞에 앉아 계획했던 일을 두루 따져보던 그는 국장이 왔던 일을 상기하자 미간을 찌프렸다.

전 지배인 강정민이와는 서로 풋낯이나 아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 제강소에 처음 부임되여왔을 때 공장을 돌아보면서는 그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했다. 그때는 이미 강정민이 없었고 기사장이 사업을 대리하고있었지만 전 지배인이 남겨놓은 기업관리의 흔적은 도처에 엉성하게 남아있었던것이다.

조월되여오는 재정결손, 원료의 랑비, 쓰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쌓여있는 ㅁ구단광의 무지들, 불균형적으로 배치되고 회전로공정에만 지나치게 집중되여있는 로력실태, 풀밭과 늪을 에돌아가며 쇠줄과 쇠말뚝으로 엉성하게 둘러친 공장구획이며 자동차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다니는 구내도로들… 제강소안팎의 그 모든 형편들을 알게 될수록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먼저 지배인에 대한 강렬한 반감을 느꼈던것이다.

큰일을 해놓겠다는 그 한가지 생각에만 들떠서 기업관리전반을 돌보지 않고 한곬으로만 내민 일본새가 력력히 남아있었던것이다.

몇해가 지난 오늘에는 제강소가 면모를 일신했지만 헝클어진 일을 바로잡고 허물을 가시느라고 최병기는 그동안 어지간히 애를 태웠다.

떠나가버린 먼저 지배인에 대해서 입밖에 내여 탓하진 않았으나 속으로는 어지간히 불만을 품었었다.

그런데 오늘 전혀 다른 일이 그와 련관되여 최병기를 불쾌하게 하는것이였다.

당장 바쁜 일이 아닌데다 믿음성이 없어서 자기가 부결해버린 도안을 자기 의사를 거슬러 상부에 제기한 사실만으로도 불쾌한 일인데 그 풋내기기사가 바로 전 지배인의 아들이라는것이다.

문서를 앞에 놓고 그러루한 생각을 더듬고있던 최병기는 밖에서 나는 문기척소리를 듣고 대답했다.

《들어오시오.》

그러자 누군가가 방안에 들어섰다.

최병기는 문서철에서 눈을 떼며 안경을 벗었다.

검스레한 얼굴에 이마가 넓고 눈길이 침착한 중키보다 커보이는 청년이 그를 마주보고있었다.

《회전로직장에 있는 현장기사 강기석입니다. 찾았습니까?》

최병기는 그를 알아보았다. 사람을 대하니 생각났던것이다.

(오늘도 저 동무를 어디서 본것 같은데.)하고 생각했다.

《내가 찾은게 아니라 부에 있는 기술지도국장이 찾았소.》

불만스러운 눈길을 떼지 않은채 무뚝뚝하게 덧붙였다.

《이제 2~3일이내로 누가 올거요.》

마치도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듯 한 어조로 말했다.

묵묵히 서있던 청년은 지배인이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럼 가보겠습니다.》하고 돌아서나갔다.

최병기는 서류를 덮어버리고 의자에 비스듬히 젖히고앉았다.

(신소를 했단 말이지, 흐음.)

입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넓은 방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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