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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소원과 성취


13


최혜영은 명랑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연구실에 나타났다.

자기네 연구소에 갔다오면서 새로운 활기를 안고온듯싶었다.

사실 그곳 연구소에서는 경험이 많지 못한 조수로서 중요한 사업에 망라되여 노력하고있는 그 녀자의 수고를 치하도 했고 고무도 했었다.

혜영에게는 이번 길이 실로 행복한 걸음이였다.

강기석이를 만나 휴식일의 하루를 즐겁게 보낸것으로 하여 더욱 그러했다. 유원지에서 함께 보낸 그 하루는 행복에 대한 예감으로 가슴을 부풀게 했던것이다.

돌아와보니 각이한 부문에서 우수한 연구사들이 많이 와있어 홍성흥성한 분위기였으므로 그것도 혜영에게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능력있는 연구사들이 많이 온것으로 하여 일이 쉬워지리라고 믿었던 혜영이의 예상과는 다르게 연구와 실험은 날이 갈수록 더 넓은 범위로 심화되여가고 할 일은 더욱 늘어만 갔다.

려행에서 받은 인상이 사라져가고 사업에 분망한 나날들이 흘러가는 속에서도 혜영은 강기석이를 못내 그리워하였으며 그의 일이 잘되기만을 바라고있었다.

혜영은 이번에 새로 온 연구사와 함께 일하게 되였다.

오래동안 야금연구에 종사해온 중년나이의 연구사였다. 몸집에 비해 머리가 더 커보이는 그는 주걱턱에 이마가 넓었으며 과묵하면서도 요구성이 높았다.

박성국은 혜영의 제한성을 꿰뚫어 알면서도 그것때문에 오히려 혜영에게 관대했고 리평은 그의 제한성을 무의식중에 자기 힘으로 보충해주군 했지만 새로 온 연구사는 어디까지나 혜영이를 준비된 조수로 인정했고 모든것이 마땅히 준비되여있으리라고 믿으면서 연구사업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연료의 효률을 높이기 위한 연구실험에 착수하면서부터 혜영은 각종 탄의 립자반경이며 비중이며 열용량이며 공기의 열전도며 연료실벽의 복사곁수며 온도 등 각이한 부분에 대한 자료들을 분석하고 수집해야 했으며 미분탄공정에 뻔질나게 다녀야 했고 온도조건에 따르는 연소생성물의 조성을 분석하기 위해 시험소에 뛰여가야 했다.…

어느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합숙앞을 지나던 혜영은 정원쪽을 무심히 들여다보다가 전혀 뜻하지 않았던 광경에 어리둥절해졌다.

가지무성한 살구나무아래의 긴의자에 강기석이 앉아있었던것이다.

그곳을 지날적이면 버릇처럼 눈길을 돌리군 했지만 그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혜영은 자기 눈을 의심하면서 그 자리에 박힌듯 서있었다.

허리를 구부정하고 땅바닥을 들여다보면서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은 틀림없이 강기석이였다.

(아니, 저 동무가 어떻게 되여 여기 와있을가?)

그냥 지나칠수 없었던 혜영은 그쪽으로 다가가면서 나직이 불렀다.

그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듯 자기 생각에만 골똘하던 강기석은 그 녀자가 바투 다가가서야 얼굴을 들었다. 처녀를 알아본 순간 그는 놀란듯 했으나 천천히 일어서면서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되여 여기 있어요? 언제 왔어요?》

명랑한 미소가 어린 살틀한 눈길로 마주보면서 의아해하였다.

《내려온지는 퍼그나 되오. 혜영동문 언제 왔소?》

《며칠 됐어요. 난 동무가 여기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요.》

《왜? 난 여기 사람이 아니요?》

강기석은 빙그레 웃고있었으나 기분은 유쾌하지 못한듯 했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요. 아주 끝났는가요?》

《하다가 돌아왔소. 첫 과제만 끝내고…》

《그건… 어떻게 된거예요?》

력력한 관심을 나타내는 물음에 저으기 난처해하다가 마지못해 띠염띠염 대답했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을 두고는 거기 그냥 있을수가 없었소. 난 성구기를 만들 생각이였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생각은 어딘가 다른 곳에 가있는듯 했다.

내키지 않아하는듯 한 대답이며 활기없는 그의 모습이 혜영이를 불안케 했다.

《성구기를… 그래 만들었어요?》

《다른 일을 하다나니 완성하지 못했소.》

《성구기때문에 내려왔다면서 무슨 다른 일을 해요?》하고 혜영은 리해할수 없다는듯 걱정에 싸여 묻는다.

강기석은 눈길을 피하며 진지하게 대답했다.

《난 기사니까 직장에서 맡아하는 일에 무관심할수 없었소. 그리고 또 나자신도 그 일에 망라되였댔으니까.》

《모를 소리군요. 그 일이란건 뭔데요?》

《내화물기초공사요.》

강기석은 풀기없이 대답하는데 주름잡힌 그의 량미간에는 고뇌의 빛이 어리는것이였다.

《기초라니요?》

처녀는 의아해했다.

《아침에 규산염공학연구사들이 말하는데 그쪽 건설공사는 기본적으로 끝났다던데요!》

《저장탕크는 안됐소. 하긴 다 했지만…》

강기석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미간을 찌프렸다. 분명치 않은 그의 태도는 처녀를 더욱 불안케 했다.

(무슨 일인지 도무지 모르겠어. 아니야. 내려온데는 무슨 곡절이 있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혜영은 서글프게 말했다.

《대형성구기는 기계공학연구소에 있는 유능한 연구사가 만들고있어요.》

강기석은 그 말을 못 들었는지 아니면 거기엔 관심이 없는지 응대가 없다.

《무슨 생각을 하고있어요. 동문 여태 여기서 뭘하고있었어요?》

《난 모래다짐시기초공법을 더듬던중이요. 시공과정을 처음부터…》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군요!》하고 혜영은 기분이 상해서 중얼거렸다.

강기석은 의자에 걸터앉으며 혜영에게도 권했다.

《여기 앉소.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여긴 창피해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자꾸 보지 않나요!》

《괜찮소. 여긴 제강소청년들이 사는데니까. 창피할건 아무것도 없소.》

《싫어요. 난 가겠어요.》

그렇게 말하고나서도 혜영은 그냥 서있었다. 일어서려니 기다렸으나 강기석은 그대로 앉아있을뿐이다.

《동문 참 리해할수 없어요. 무슨 사람이 그래요?》

《난 지금 유쾌한 기분이 아니요. 량해해주오.》

《좋아요. 후에 조용히 만나서 얘기해요. 제가 찾아오지요!》

반응이 없는 그의 태도에 오금이라도 박듯 마지막말에 힘을 주었다.

《제가 찾아오지요!》라고 한 말은 자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강기석에 대한 비난의 음조를 띠였으나 이쪽은 그 뜻을 깨닫지도 못한듯 했다.

하여 혜영은 더욱 언짢았다.

안타까운 심정에 싸여 망설이던 그 녀자는 침울하게 말이 없는 그의 모습을 일별하고는 돌아서버렸다.

황혼이 어리는 합숙뜨락을 지나 행길에 나섰다.

가슴은 몹시도 허전했다.

(왜 내려왔을가. 무슨 일이 있었을가?)

그 모든 사연을 알지 않고는 안정할수가 없었다.

(통 말하려고 하지 않으니… 왜 그럴가.)

걸음을 옮기면서도 괴롭게 생각했다.

집에서는 저녁을 지어놓고 기다리던 어머니가 들어서는 딸을 유심히 살펴본다.

《너두 어디 아프냐?》

《아-니요.》

혜영은 어머니더러 병원에 갔던 일을 물었다.

《그저 그만하더라. 다시 수술한 자리가 아직 아물지 않았더구나.》

어머니는 당비서아저씨가 문병을 와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갔다는 말을 하고나서 보탰다.

《너의 아버지는 무슨 일이 그리 바쁜지?》

혜영은 저녁밥을 먹는둥마는둥 몇번 술질하고 일어섰다. 밖에 좀 나갔다오겠노라고 말하고는 기사장네 집으로 향했다.

제강소종업원들이 많이 사는 남강동의 단층주택마을은 저녁무렵이면 조용치 않았다. 집집마다 방문들은 활짝 열려있고 풍로에 불을 피우고 뜨락에서 저녁을 짓는 아낙네들의 웃음소리, 이야기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혜영은 마을형편을 잘 몰랐고 집집들의 사정은 더욱 알지 못했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은 혹 혜영이를 알기도 했으나 그자신은 그 사람들을 모르고 지내는터이여서 마을길을 다닐 때면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걸었다.

기사장은 진작 알고있는터이지만 집으로 찾아가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였다. 지금처럼 안타까운 사정만 아니였던들 이런 옹색한 걸음은 결코 내디디지 않았을것이다.

기사장네 집은 깨끗한 판자울타리가 둘러쳐있었다. 대문옆에서 망설이고있노라니 창고끝에서 똑딱거리는 망치질소리가 들렸다. 기사장이 퇴근한 모양이라고 다행하게 여기며 그리로 갔더니 부인인듯 한 녀자가 창고문을 고치고있었다.

다가가면서 인사하는 말에 그 녀인이 돌아봤다.

《아니, 혜영이. 어서 오우.》

마치 친근한 동생이라도 대하듯 다정하게 부르며 일어선다.

《왜 전혀 놀러 오지 않아요?》

나무라는 말에서는 손님을 반기는 기쁨이 울리고있었다.

《기사장동진 돌아오시지 않았군요.》

《방안에 계셔요. 만나자구?》

부인은 들었던 망치를 땅에 놓으며 손을 털었다.

《하던 일을 마저 하세요. 난 바쁘지 않아요.》

혜영은 미안하게 여겼으나 저쪽은 오히려 안심시키려는듯 다정하게 웃으며 손을 잡아 이끌었다.

《괜찮아요. 틈이 있을적마다 하는 일이니까.》

중년나이였으나 웃음지은 눈매와 동그스름한 량볼엔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이 간직되여있었다.

(참 선량한 아주머니구나. 집안일은 모두 제 손으로 하고…) 하고 혜영은 생각했다.

뜨락에서 나는 이야기소리를 듣고 텔레비죤앞에 마주앉아있던 기사장이 문가에 나타났다.

《어떻게 이렇게? 웃방으로 들어오우.》

《아니요. 전 여기서 잠간 물어볼 일이 있어서.》

열어놓은 웃방을 들여다보고는 불빛을 피해 한쪽으로 나섰다.

한명택은 신발을 꿰고 마루아래 내려섰으나 혜영은 눈길을 떨군채 망설이기만 했다.

어스름속에서 그 녀자의 태도를 살피며 찾아온 뜻을 어림하던 기사장이 물었다.

《강동무일때문에?》

혜영은 아직 말뜻을 다 깨닫지는 못하면서 그렇노라고 머리를 끄덕였다.

한명택은 잠자코 있더니 입을 열었다.

《그건 어쩔수 없는 오작으로 판정됐소.》

혜영은 기사장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모래다짐한 기초가 시원치 않소. 사달은 거기서 생겼소.》

《무슨 말씀이세요?》

《내화물저장탕크 말이요. 아니, 그럼 혜영동문 왜 이렇게 찾아왔소?》

《전 그저… 저장탕크가 어떻게 됐어요?》

한명택은 처녀의 실망한 모습을 바라보다가 눈길을 돌렸다.

《네? 그게 어떻게 됐대요?》

《완공해놓고보니 한쪽으로 내려앉았소. 기초가 튼튼치 못했던거요. 기석동무의 방안자체에 문제가 있었소.》

《그 동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요?》

아직은 모든 일을 막연하게 의식하면서, 그보다 더욱 불안에 휩싸여 처녀는 초조하게 묻는다.

《새로운 방법으로 한다고 우기다가 일을 망치고말았소. 로력, 자재, 시간을 훨씬 절약한다고 한 일이 오히려 숱한 랑비를 초래하게 됐소.》

한숨이라도 짓듯 침통한 기분으로 말을 이었다.

《제안을 가지고왔을 때 알아들을만큼 타일러줬지. 믿음성이 없는 일이니 중뿔나게 나서지 말라구… 그런데도 그냥 우기더군.》

혜영은 붉어지는 얼굴을 숙이고말았다. 눈물이 쏟아질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되나요?》

《처리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소. 구조물이 한쪽으로 약간 내려앉았을뿐이니 그대로 리용할수도 있겠지.》

처리와 관련해서는 한명택이자신도 생각을 정하지 못하고있었다.

강기석이 미운 마련으로는 재시공과 엄격한 제재를 주장하여 이 기회에 꽉 눌러버리고싶지만 지배인이 지지하고나섰던 일이여서 눈치를 살피는중이였다.

(그러니 이 처녀는 여전히 그 친구하고 사이가 좋은 모양이지. 나를 찾아온걸 보니 아버지한텐 아직 말하지 못한 모양이고… 말할수가 없었을테지.) 하고 한명택은 형편을 가늠했다.

《어떻게든 일이 잘 처리되도록 많이 도와주세요. 그 동문 기사장동지를 믿고있어요. 언제나 존경하고.》

한명택은 빙그레 웃었다.

《그 일이 되기만 했다면 나를 보수주의자로 몰았을거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동문 좋은 사람이예요.》

《강기석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건 아마 내가 혜영이보다 더 잘 알겠지. 부모들부터 시작해서…》

한명택은 그렇게 말하는데 입가엔 조소가 어려있었다. 전에없이 불쾌하게 말하는 그의 태도가 혜영에게는 뜻밖이였다. 혜영은 긴장하게 뒤말을 기다렸으나 한명택은 의미심장하게 침묵을 끌고있었다. 팔을 가슴에 엇걸고서서 불빛이 흐르는 뜨락을 쓸쓸하게 바라보면서.

그는 지금 혜영이의 심정을 충분히 짐작하고있었지만 부탁을 들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것이 사업상문제여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달갑지 않은 일이였기때문이였다.

강기석은 그에게 불안을 일으키는 존재였으며 이들의 사랑은 그가 조심스럽게 가꾸어가는 생활의 터밭에 그늘을 던질수 있는 인연이였다. 그는 그 인연을 달갑게 여길수가 없었지만 속심을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난 인정이 그렇지 않고 또 재간도 있는것 같아서 여러가지로 도와주느라고 했는데 공연한 일이였지.…》

한숨을 길게 쉬고나서 그는 온화하게 말을 맺었다.

《이건 그저 혜영이를 아껴서 하는 말이니 달리 생각지 마오. 은혜는 알든모르든 돌봐줘야지, 어떡하겠소! 그 일을 잘 수습해보겠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오.》

혜영은 부지중 어설프게 웃었다.

그것은 암담하게 뒤덮인 구름장사이를 스치고 지나간 엷은 가을해빛마냥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화기없는 웃음이였다.

그 녀자는 시름에 겨운듯 한숨을 짓고있는 기사장에 대해 한량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한데 그 동문 왜 내려왔나요? 기술국에 올라갔댔지 않았어요. 한데 왜 내려왔어요?》

《무얼 좀 해보겠다는거지. 아직 젊었으니까. 물인지 불인지 모르거던.… 그러기에 국장동지도 분수없는 친구라고 웃지. 남아서 일하라는것도 그냥 고집을 쓰고 내려왔으니… 그런 곳에 있으면 전문적인 야금설계가로 될수도 있고 혹은 행정일군으로도 발전할수 있소. 발전이 빠르고 유리한 점이 많지. 다시 올라가라고 권고도 했지만 제가 싫다는데야 어쩌겠소!》

《미안해요. 이렇게 찾아와서 …》

혜영은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기사장 부인이 바래우려고 뒤따라나오는것도 알지 못했다.

입술을 가볍게 깨문채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웃방에 올라가 책상앞에 앉자 안타까움으로 하여 눈물이 고여오르는것이였다.

늦어서 아버지가 돌아온것도 깨닫지 못했다.

최병기는 웃방에 들어와 물끄러미 앉아있는 딸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혜영은 붉어진 눈을 들어 아버지를 쳐다봤으나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얼마후에 저녁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자기 방에 올라갔을 때 혜영은 말없이 따라올라갔다.

《아버지, 저장탕크오작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요?》

벽에 등을 대고 물끄러미 앉아있던 최병기는 마치 낯선 사람이라도 대하듯 의아하게 눈섭을 찌프리고 한동안이나 딸을 여겨보았다.

그 일때문에 걱정하던터이지만 딸까지 그 일에 관심하리라고는 생각할수도 없었던 최병기였다. 또 이날이때까지 기업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렇게 물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왜 그러느냐?》하고 그는 딸의 표정을 심상치 않게 여겨보며 물었다.

《그저… 알고싶어 그래요.》

《그 일은 연구소사업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혜영은 잠자코 서있다가 다시 물었다.

《이제 어떻게 처리하나요?》

《토론해서 처리한다.》

《책임은 누가 져요?》

그러자 최병기는 딸이 아버지를 걱정해서 그렇게 묻는것이라고 생각되여 어조를 낮추며 범상하게 대답했다.

《책임이야 아무래도 지배인이 지지. 하지만 그것때문에 너희들까지 걱정할건 없다.》

혜영은 난처한듯 망설였으나 더 묻지 않을수 없었다.

《방안을 제기했던 사람은 별일없을가요?》

《방안을 제기했던 사람?》

딸의 표정을 지그시 바라보면서 최병기는 의아해서 뇌였다. 그러자 어렴풋이 가늠되는바가 있어 사뭇 긴장해진다.

《그건 왜 묻니?》

《…》

혜영은 아버지의 눈길을 피하며 입을 다물고있었다.

《너 그 사람하구 무슨 관계가 있느냐?》

《…》

《친한 사람인가 말이다.》

혜영은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허나 비켜앉은채로 까딱 움직이지 않는 굳어진듯 한 몸가짐은 팽팽해진 딸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고있다.

《으음-》

최병기는 저도 모르게 신음하듯 뇌인다.

《사람을 친하겠으면 제구실을 할수 있는 사람을 친해라. 밤낮 무얼 한다구 분주하게 뛰여다니지만 일생을 다 가도 아무것도 해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한테 눈이 끌려서는 안된다! 젊은 시절엔 허황한것이 뛰여나보이고 참된것은 오히려 평범해보이는법이다. 》

《…》

《저번에 기초방안을 제기했을 때 나도 처음엔 찬성하지 않았는데…》

최병기는 하던 말을 중둥무이하고 얼굴을 찌프렸다. 자기가 후회하는 일까지 털어놓은것이 역겨웠던것이다.

그는 기분이 언짢을 때면 의례 그러하듯이 물부리에 담배를 붙여물고 연기를 내불었다.

《아버지, 어떻게든 그 동무에게 큰 책임이 돌아오지 않게 잘 처리해주세요 》

혜영은 비로소 고개를 쳐들고 아버지를 외면한채 하려던 말을 했다.

《아니, 너 여태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있었니. 내가 말하는걸 듣니, 안 듣니?》

《다 들었어요, 아버지. 그렇지만 그 동문 좋은 동무예요. 포부도 있고 재능도 있는 좋은 사람이예요.》

최병기는 입을 꾹 다물고 딸을 노려보다가 시답지 않게 말을 뗐다.

《나는 긴소리하지 않겠다. 네가 스스로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해라. 그러나 그 사람이 너하고 어떤 사이든간에 사고처리와는 상관이 없다! 너한테 단단히 말해두지만 앞으로도 어떤 일이건간에 사업과 관계되는 문제를 집안에 들고와서 말하는건 용서하지 않겠다. 녀편네나 자식들이 부탁한다고 해서 내가 들어줄리도 만무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런 일이 있어본적이 없다.》

그리고는 더는 딸에게 주의를 돌리지 않고 돌아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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