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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소원과 성취


12


하늘은 맑게 개이고 가을볕이 쨍쨍했다.

수남천하구에는 가벼운 운무가 떠돌고있었다.

그 파르스름하니 투명한 면막 저쪽의 바다우에는 닻을 내리운 기선의 자태가 검스레하게 보인다.

그곁으로 고기배들이 떠다니고있다.

식당 건너편에 있는 가지무성한 버드나무밑에서는 수남천하구일경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맡은 구간을 마저 끝내느라고 늦어서야 점심을 먹은 장인숙은 버드나무그늘에 놓인 긴의자에 앉아 쉬고있었다.

함께 온 녀인은 철근조립장에 들렸다가겠다기에 혼자 남은것이다.

오전내내 그 녀자와 짝손이 되였는데 마흔이 지난 아낙네가 어찌나 일손이 세찬지 어깨죽지가 얼얼할 지경이였다.

왕래가 설피여진 식당앞을 돌아보던 장인숙은 종종걸음쳐가는 낯익은 모습을 보았다.

《얘 금순아, 백금순이-》

저쪽은 돌아보고 주춤거렸으나 장인숙이 《얘기할게 있다. 오려무나.》 하고 힘있게 손을 젓는 바람에 길을 건너뛰여왔다.

《난 바빠. 언니, 무슨 얘기야?》

《암만 바빠도 거울은 좀 보고다니렴.》

백금순의 살결흰 얼굴에 기름얼룩이 진것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걸상우에 앉혔다.

《계량기를 고치느라고…》

백금순은 볼을 쓸며 변명하듯 중얼거리고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린 영 틈이 없어. 아까는 그 아바이 있잖아, 늙은 선생 말이야.》

《부원장아바이?》

《응, 그 선생이 두시간이나 장입을 지켜보지 않아! 우리가 뭐 지령을 어길가!》

코소리가 울리는 목소리로 열싸게 말한다.

《일이 중요하니까 그렇지.》

《우린 대휴도 없어. 게다가 시험로때문에 갑절이나 긴장하구.》

《우린 뭐 편안한줄 아니? 그래도 난 재미있어.》

《이젠 가자요. 늦어지면 야단할거야.》

장인숙은 일어서서 백금순의 손을 끌며 앞서걸었다.

《무슨 일을 해요?》

《오늘은 다져놓은 기초우에 휘틀을 앉히고 철근까지 조립해. 모두들 밤부터 타입을 하겠다고 뛰여다니구…》

《수고하누나!》

《박동길동무 있잖아!… 농촌에 갔다온 뒤로는 사람이 달라졌어. 통 말이 없는게 아주 재미있지 뭐.》

《아유- 그 얼렁뚱땅하는 버릇만 없다면야 사람이사 괜찮지, 잘 생기고… 그래 하자는건 무슨 얘긴데?》

《뭐 별다른건 아니고 그저 이러루한 얘기지 뭐. 널 보니 아무 얘기라두 하고싶더구나. 호호호…》

《언니두, 내 그런줄 알았어.》

《근데 영애랑 천심이랑 경옥이랑 뭘하니? 그 애들 본지도 오래구나.》

《뭘하긴… 일하고 학습하고 잠자고, 천심이는 또 학교다니고 영애는 수리반에 있는 제대군인총각한테 반해다니고… 경옥이는 선전실에 있는 기타한테 반해버리고… 그저 그렇지 뭐.》

《얘, 참 회관관장이 예술공연지도하러 다닌다는게 참말이니?》

《참말이잖고… 직장선전실엔 저녁마다 나오는데 이제 며칠 지나선 우리 휴계실에도 다니겠대. 원료장에서는 직장선전실이 너무 멀다구. 얼마나 열심히 가르치는지 몰라. 어떤 땐 신경질도 내요.》

《무섭니?》

《무섭긴 뭐 우습지. 그래도 우린 노여워할가봐 웃진 못해. 재미있는 사람이야.》

《그 집 맏딸도 우리 동문데 재미있는 애야.》

《그렇게 큰딸이 있니?》

《넌 모를거야. 옷공장에 다니는 주근깨박이 희극쟁이가 있어. 하늘색달린옷을 입고 늘 국수바꾸러 다녀. 나보다 한반 아랜데 아버지흉내를 곧잘 내.》

잠자코 걸어가다가 인숙이가 또 말했다.

《너도 인젠 꽤 하겠구나.》

《아직은 멀었어.》

《이전날 사로청에서 조직할 때 나두 배우기 시작했을걸 그랬다야. 너처럼 손풍금을 타거나 경옥이처럼 기타를 배웠을걸.》

《손풍금은 쉬워. 지금부터라도 배우라요. 모두 하는데…》

《글쎄 모르겠다. 이제 돌아가서 봐야지.》

건늠길을 지나서자 백금순은 실험실앞으로 꺾어졌다.

그리고는 원료장쪽으로 난 지름길을 따라 달려갔다.

멀어져가는 동무의 모습을 바라보던 장인숙은 그쪽길로 손수레를 끌고오는 사람에게 주의가 끌렸다.

흔히 손수레는 시내에서도 더러 끌고다녔고 공장구내에서도 파철수집이며 그러루한 일때문에 많이들 리용했으나 나들이옷차림에 넥타이까지 날리며 끌고다니는 사람은 없었던것이다.

호기심 많은 장인숙은 걸으며 돌아보고 돌아보면서 또 걸었다.

그러다가 끝내 걸음을 멈추었다.

걸어가는 사람과 그가 가고있는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 앞쪽에는 행길아래로 아름드리철관들이 도간도간 뉘여있었다.

행길을 따라 파놓은 곳에 매몰하려고 실어다놓은것들이였다.

《그쪽으로 가지 못해요. 막혔어요!》

장인숙은 소리쳤으나 그 사람은 피끗 돌아보고는 알아듣지 못한채 그냥 걸었다.

손수레우에는 무엇인가를 가득가득 채운 포대짝들이 실려있었다.

《관이 있어 못가요- 돌아가야 해요.》

또다시 이쪽을 돌아본 그 사람은 그제야 깨달았으나 멈추지는 않았다.

포장도로는 바로 코앞에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가로놓인 철관들앞에까지 가서는 걸음을 멈추었다.

인숙이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거동을 살폈다. 그 사람은 손수레를 놓고 관쪽으로 다가가 두루 더듬어보고 다시 어디로 돌아갈수 있을가 하고 두리번거리는것이였다.

《시험소뒤쪽으로 돌아가면 돼요. 저리로-》

자기 말소리를 알아들은듯 가리키는쪽을 돌아보았으나 다시 관두리를 살펴본다. 그러더니 웃옷을 벗어 손수레의 앞채에 걸쳐놓는다.

(일할줄은 전혀 모르는 사람인가봐. 관을 혼자서 어떻게 옮겨놓는다구!)

어이없어 웃었으나 그냥 가버릴수도 없었다. 호기심과 더불어 무엇인가 도움될 말을 해줄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 사람은 포장도로로 질주해오는 화물자동차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차가 지나가버리자 다시 관쪽으로 허리를 굽혔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넓은 이마에 눈이 새까만 서른너덧되여보이는 사람이였다. 주름이 산뜻하게 선 바지를 입고 허리를 굽힐 때마다 데룽거리는 넥타이끝을 와이샤쯔의 깃속에 쓸어넣군 하는 그의 모습을 가까이 보면서 이런 일에서는 자기가 그보다 훨씬 나으리라고 직감했다.

곁에 온 인숙이를 쳐다보며 싱긋이 웃었을 때 그의 정기있는 두눈은 지혜롭게 빛나는것이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가는편이 나아요. 저-기까진 제가 밀어드려요. 보세요. 이건 주철관이예요.》

저쪽은 허리를 펴고 호의에 찬 너그러운 표정으로 처녀의 작업복차림을 여겨보았다.

《제강소처녀겠지?… 원료장 전차운전공이라- 역시 로동계급이구만.》

반은 롱조로, 반은 진담으로 감심한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간다는건 억울하단 말이야. 안 그래, 운전공동무?》

《할수 없지요. 이걸 뭐 사람들이 드다룬줄 아세요? 기중기차로 놓았어요.》

《그래…》

그는 관이 놓인 땅바닥을 세심히 관찰하면서 자기 생각에 잠겨 중얼거렸다.

《하지만 기중기차도 사람들이 만들었단 말이야.》

관을 성큼성큼 건느며 철길쪽으로 가더니 로반에서 동실하게 생긴 큰 돌을 들고 왔다. 관의 가운데쯤되는 지점에 돌을 단단히 밀어놓고 한쪽끝으로 가면서 인숙이더러 말했다.

《저쪽에 서서 좀 밀어주오. 저놈의 돌을 넘어가지 않게 지그시 힘을 줘야 해.》

두사람은 량끝에 서서 돌우에 관허리가 놓이도록 끈끈히 밀었다.

《자, 그만-하고 꼭 잡구, 이제부턴 살그머니 돌려야 해. 떨어지지 않게… 동문 앞으로 밀고… 그렇지… 그래 좀더 꼭 잡구…》

고임돌을 축으로 하여 그닥 힘들지 않게 관을 돌려놓고나서 두사람은 허리를 폈다.

《옛날에 한 물리학자는 자기에게 지지점만 주면 지레대로 지구를 움직이겠다고 했대. 동무도 배웠지? 지레대의 법칙을…》

장인숙은 모호하게 웃었다.

《이젠 끌어볼가?》

그는 손을 털면서 채를 잡았다.

장인숙은 뒤에서 밀었다. 포장도로에 올라서자 그는 다시 관쪽으로 걸어갔다.

《그냥 두세요. 아무래도 다시 맞출텐데.》

처녀는 경의와 호기심을 품고 나직이 만류했다.

《그래도 그렇지 않지.》

두사람은 관을 제 모양대로 돌려놓았고 장정은 괴였던 돌을 철길로반에 가져다놓았다.

《아저씬 어디 계셔요?》

다시 손수레 있는데로 왔을 때 장인숙이 물었다.

《허허, 도와주러 온줄 알았더니 신분을 확인하러 왔댔군.》

그는 웃었다. 하지만 호기심어린 처녀의 표정을 일별하고는 덧붙였다.

《동무하고는 아주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요. 내 이제 후에 동무를 찾아가서 단단히 사례하겠어. 이젠 가보라구. 도와줘서 고마와.》

《사례는 안해도 돼요.》

인숙은 어쩐지 키가 후리후리한 이 낯설은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

《이건 뭐나요?》

《이거… 동무가 일하는 곳에서 가져오는거야. 맨밑에 축축한 포대는 연진이구.》

《어마나… 원료와 연진? 그걸 어디 가져가나요?》

《내가 일하는 곳으로, 평성으로》

《아저씬 과학원에 계시는군요?》

《그래.》

《그럼 새 구단광에 대한걸 연구하시는게군요.》

《그래…》

《오- 그렇군요.》

존경어린 눈길로 그를 쳐다보다가 물었다.

《근데 지금 어디로 가세요?》

《역전으로 가지, 이 짐을 붙이려고.》

《여기서 일하시지 않나요?》

저쪽은 난처한듯 웃었다.

《여기서 일할수도 있고 또 다른 곳에서 일할수도 있지.》

대답하고나서 석연치 않은듯 덧붙였다.

《연구실에서 충분히 검증해보고 현장에 도입해야지. 또 연구사업에는 여러가지 비밀도 있으니까…》

장황해지는 자기 설명에 스스로 열적어하며 채를 잡고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 떠도는 어설픈 표정을 눈치챈 장인숙은 그 사람이 어떤 중요한것을 단독으로 연구하는 수준이 높은 연구사이리라고 어림했다.

그리고는 아직도 궁금한것이 많은듯 다우쳐물었다.

《그럼 왜 자동차에 실어가지 않나요. 그렇게 중요한 시료인데.》

《짐이 많다면 몰라도 요만한걸 가지고서야 무슨 자동차까지.》

장인숙은 어째서인지 이 사람을 위해 무슨 일이건 더 해주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럼 어서 가자요.》

《혼자서도 넉넉하다니까. 동문 가보라구.》

《괜찮아요. 어서요.》

처녀의 재촉에 할수 없다는듯 끌기 시작했다. 짐을 어찌나 균형있게 실었던지 다이야로 된 자그마한 바퀴는 짐무게에 눌리며 포장도로우에서 절로 구울러갔다. 장인숙은 뒤따라가다가 정문이 가까와지자 경비실로 뛰여갔다. 경비원에게 사연을 말하고 역전쪽으로 가는 자동차에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자동차가 한대 차단선에 나타나자 운전칸에 다가가서 운전사더러 무엇이라고 력설하며 웃으면서 설복시켰다. 무거운 시료들을 적재함에 다 올려놓았을 때 연구사는 손가락이 가늘고 단단한 장인숙의 손을 잡아주면서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참 고맙소. 동무…》

과분한 치하에 인숙은 해죽 웃는다.

《인숙동무, 한가지 부탁하기요. 이 손수레는 중간공장건데 구단광연구실에 있는 동무들에게 전해주오. 기계공학연구소에서 온 박성국이 보내더라면 아오.》

《알겠어요. 후에 우리한테 또 오세요.》

장인숙은 상글상글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 명랑한 모습을 돌아본 박성국은 가슴이 뭉클 뜨거워졌다.

(참 좋은 처녀야.)

운전실의 등받이에 몸을 기댄채 그는 감동에 싸여 생각했다.

다시 오지 않겠노라고 마음먹고 자기 연구소로 돌아갔던 박성국은 평온치 않은 나날을 보내며 새 연구과제도 설정하지 못하고 지내던터에 그곳에서 지형민부원장을 만났던것이다.

시험로의 일이 잘되지 않으니 다시 내려가자는 권고를 듣고도 망설였었다.

바로 그무렵에 ㄱ철의 완성을 위해 각이한 분야를 망라하는 과학자들의 집단을 조직할데 대한 조치가 취해졌던것이다.

그 조치를 접수하고 과학자집단에 망라되여서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 많은 연구사들의 움직임속에서 과학자로서의 자기 존재가 보잘것없이 되여버리지나 않을가 하는 위구심이 집요하게 남아있었다. 그것은 과학을 위해 준비해왔으며 과학의 길에 한평생을 바치기로 작정한 한 인간의 존엄과 관계되는 자연스러운 심정이기도 했다.…

시험조업과정을 잘 알고있는 그는 거기서 가장 애로로 여기고있으며 지형민이도 극력 권고하던 구단광의 성구공정(알맹이를 빚어내는 공정)을 공업화할수 있는 대형성구기를 완성하리라 작정했다.

광범하고 면밀하게 문헌자료들을 연구하고 비교한 결과에 지금까지 리용되고있으며 알려져있는 구단광성구기들은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지금의 시험과정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자기가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실험하여오던 기계적진동의 원리를 리용한 진동식성구기를 제작할것을 구상했다. 연구소 당조직에서는 그의 발기를 지지해주었으며 중간시험장치를 지체없이 만들도록 도와주었다.

박성국은 조수들과 함께 진동에 의한 성구실험을 한달남짓 계속했고 필요한 지표들을 도출함으로써 성공하리라는 신심을 가지게 되였다.

그리고는 최종적인 검토를 위해 현지시료를 리용하려고 내려왔던것이다.…

박성국이 부탁한대로 손수레를 구단광연구실에 가져다주고 날개라도 돋친듯 작업장으로 돌아온 장인숙은 점심후의 불과 몇시간동안에 형편이 몹시 달라진것에 놀랐다.

어느새 실어왔는지 주변에는 조립한 철근들과 휘틀이 널려있고 사람들은 분주하게 일하고들 있었다.

얼마 안 남았던 기초다짐이 끝나고 밤부터 하리라던 타입공사를 벌리는 판이였다.

《아유- 여태 뭘하고있었니?》

짝패로 일하던 아낙네가 랑패한 표정을 짓고 손을 내저으며 푸념했다.

《여게두 없지, 철근조립하러두 안 갔지, 동길이는 지금 성이 꼭뒤까지 올라 말이 아니다. 너한테 부탁하고 갔던 나까지 야단을 당했다.》

《동무를 만나 좀 얘기하다 왔지요 뭐.》

《에구- 넌 맨날 동무구나. 수남천강변에 조약돌같은 네 동무들… 쯧쯧… 로동행정시간에 얘기는 또 무슨 얘기냐. 공연히 애꿎은 사람들만 말을 듣는다.》

《동길동문 또 꽤나 우둘거렸겠군요. 호호호…》

그러자 넉살좋은 아낙네조차도 어쩔수 없다는듯 손을 훌- 내젓고는 뛰여가는 장인숙의 뒤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박동길은 양수뽐프를 들어내고있었다. 자동차기중기의 팔에서 드리운 갈구리에 걸려나오는 뽐프의 한팔을 붙잡고 균형을 유지하면서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는 피뜩 눈길만을 던졌을뿐이다.

《동길동무, 나때문에 말들었다면서요?》

명랑하게 다가서면서 말했다.

하나 저쪽은 량미간을 긴장하게 찌프린채 데룽거리는 뽐프를 붙잡고 뒤걸음치면서 《비켜서오!》 하고 불만스럽게 한마디 했을뿐이다.

《호스를 뽑지 않았군요.》

《…》

《아이- 냅다 누르지만 말고 그쪽만 잡으세요. 내가 이쪽을 쳐들테니.》

여태까지의 기꺼운 흥분과 또 지금 그를 도와줄수 있다는 즐거운 의식에 사로잡혀 장인숙은 웃으며 말했으나 박동길에게는 이 순간 장인숙이 아양떨기 좋아하는 더없이 경망스러운 처녀로 느껴졌다.

《좀더 올리세요.》

뒤로 회전하던 방향이 달라지면서 뽐프가 기우뚱하는 바람에 기중기운전공에게 신호하던 장인숙은 비칠하면서 넘어질번 했다.

《비켜서라는데 왜 시끄럽게 이래!》

장인숙은 손을 떼고 옆으로 나섰다. 커다랗게 뜬 두눈에는 의혹과 불안이 력력히 드러난다.

《뭘 그래요? 도와주겠다는데.》

《실컷 돌아치다와선 도와준다구?》

《그럴수도 있지요 뭐.》

《썩 비켜서지 못하겠어!》

방향을 바꾸어 힘을 주며 끌리는 호스를 사려놓고나서 박동길은 그 녀자를 등지고 걸어갔다.

《이 동무가 왜 이래! 별스레 젠체하면서.》

처녀는 화김에 그렇게 종알거렸으나 흠칫 그를 뒤돌아보는 박동길의 얼굴은 험상했다. 극도의 격분을 느끼면서도 면박할수 없었으니 문득 성실치 못했던 자기의 이전날이 생각되였던것이다. 그것으로 하여 처녀에게 더욱 강렬한 반감을 품은채 그는 기중기가 돌아간쪽으로 터벅터벅 따라갔다.

(아니, 저 동무가 왜 저래? 갑자기…)

박동길의 험악한 몰골에 어리둥절해진 장인숙은 불안을 느끼면서도 리해할수 없다는듯 망연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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