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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소원과 성취


9


기사장 한명택이 기석이를 정중하게 대했던것은 결코 그때의 분위기나 일시적인 기분때문이 아니였다.

강기석이 내려온다는것을 전화로 알게 된 때부터 장차로는 그를 되도록 멀리해야겠다는 타산에서 그렇게 작정을 했던것이다.

한명택의 그러한 속심을 알지 못하는 기석은 기초굴착작업을 앞당길수 있는 혁신적인 방안을 만들어가지고 방조도 받을겸 일을 성사시키려고 흥분된 심정으로 그를 찾아다녔다.

기사장은 작업이 진행되는 현장근처인 내화물직장사무실에 있었다.

그의 얼굴엔 피로감이 어려있고 현장에 나올 때마다 껴입군 하는 작업복은 앞깃이 헤벌어진채로였다.

《앉소.》 하며 턱으로 한쪽켠 자리를 가리켰다. 내화물직장사람들은 모두 작업장에 나간 모양이였다.

열려진 창문으로 답답하게 막아선 성형장의 벽체가 내다보였다.

《땅파기가 힘들지?》

《괜찮습니다.》 기석은 웃으며 대답했다.

《국장동진 기석동무가 내려온걸 좋아하지 않던데 빨리 올라간다면 반가와할거요. 여기 일이야 뭐 강동무가 없다고 안되겠소?》

찾아간 뜻을 제나름으로 어림하는 기사장의 말이였다.

강기석은 말을 흘려들으면서 미소를 띠우고 주머니에서 도안지를 꺼냈다.

《기사장동지, 우리는 저… 한가지 좋은 방도를 찾아냈는데 좀 봐주십시오.》

거기에는 《저장탕크기초(모래다짐식)작업도형》이라고 밝혀져있었으므로 다른 설명이 필요없었다.

펼쳐놓은 종이우에 씌여진 글줄을 읽어본 한명택은 무슨 먹지 못할것을 삼키기라도 한듯 허리를 펴고 턱을 움츠리는것이였다.

한명택은 도안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의 눈길은 도형과 설명문을 좇아 움직이는것이 아니라 지면우의 한곳에 머무르고있었다. 자기 생각을 더듬는것이였다.

그 시간이 퍼그나 지루하게 느껴졌다.

《이건 사실 태호동무가 착안한것입니다. 만들고나서는 자신이 없다고 하길래 제가 들고왔습니다.》

《착안한 사람이 자신이 없다면 가능성이 없는거지. 그렇지 않소?》

《가능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중에 문제가 생길것 같아서 그러는것 같습니다.》

《같은 말이요. 뒤일을 걱정하는건 자신이 없다는 소리요. 지금처럼 그냥 굴착하는게 나을거요. 괜히 후에 말썽이라도 생기면 야단이요.》

타이르는 말에는 그의 일을 걱정하는 호의도 어려있는상싶었다.

허나 이쪽은 진정을 담아 온건하게 주장했다.

《시간과 로력을 많이 절약할수 있는 좋은 방도가 있는데 왜 그걸 리용하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큰 예비지요.》

한명택은 어이없이 바라보다가 말했다.

《착안한 사람도 자신이 없어하는데 어떻게 시공한다고 그러오? 문제로 되지도 않소!》

《저도 연구해보았는데 가능합니다. 전문가의 의견도 들었고 박운보아바이와 함께 지층도 파악했습니다. 전 자신을 가지고 제기할수 있습니다.》

한명택은 유감스러운듯 머리를 저었다.

《기석이 성미도 어지간하오.… 그러다가 일이 잘 안되는 날엔 큰코 다친단 말이요. 이건 심중한 문제거던.》

《리치가 단순하고 명백합니다.》

《구조물의 기초란 말이요, 기초! 더군다나 이건 ㄱ철생산과 직접 련결된 공정이요. 잘 생각해야 돼. 강동문 누구보다도 심사숙고해야 한단 말이요!》

그의 말에서는 위엄이 울렸다. 강기석은 어리둥절해졌다.

이건 무슨 뜻인가? 기술국에 올라가게 되여있는 사람이니 다른 일에는 참견하지 말라는 소린가, 혹은 지배인의 눈에 잘못 보였기때문에 심중해야 하겠단 말인가. 아니면…

얼떠름해 앉아있는 기석의 표정을 제나름으로 해석하면서 기사장은 얼마큼 갈앉은 목소리로 친근하게 설명했다.

《내가 너무 과하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말을 명심해두라구. 강동무 아버지도 바로 여기서 과오를 범하지 않았소! 아버지의 생활에서 교훈을 찾아야지. 될일, 안될일 분별없이 자꾸 하겠다고만 하면 어떡하오! 사업도 사업이지만 남들이 뭐이라고 하겠소. 처신을 잘해야지.》

강기석은 버젓이 고개를 쳐들고 은근한 미소가 떠도는 기사장의 얼굴을 지그시 보았다. 이 순간 그의 머리속에서는 그 어떤 막연한 의식이 눈뜨고있었고 심장은 이미 거칠게 뛰노는것이였다. 그는 흥분을 누르며 띠염띠염 말을 했다.

《아버지가 당앞에 끼친 손실에 대해서는 나도 책임을 느낍니다. 그러기에 나는 남들보다 더 많이 일하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그 과오때문에 할말도 못하고 할일도 안하면서 죽어지내라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는 잠시 말을 끊고 숨을 돌리고나서 침착하게 이었다.

《나는 나대로의 신념을 가지고 살며 신념을 가지고 일합니다. 아버지의 과오를 내걸고 심중해라, 조심해라 하는 동정이나 충고는 달갑지도 않거니와 받아들이지도 않겠습니다.》

기사장은 마치 어린애한테서 무안을 당한 때와도 같은 멸시와 유감이 뒤엉킨 애매한 미소를 띠우고 어딘가 한쪽켠을 바라보고있었다. 했으나 기석은 태연했다.

《나는 모든걸 타산한데 기초해서 확신을 가지고 이 도안을 제의합니다. 토론해주십시오.》

그것은 값싼 동정과 호의에 대한 사절이였고 자립성을 강조하는 말이였다.

한명택은 입가에 비틀린 웃음을 띠우더니 《좋소, 알겠소!》 하고 딱딱하게 말했다.

《내 단계에서는 결론하기 어려우니 지배인동무한테 제기하겠소.》

책상우에 놓였던 도면을 걷어쥐더니 흥분해있는 기사는 돌아보지도 않고 방에서 나갔다.…

(고집스럽고 미욱하기가 제 애비같다니까…)

한명택은 지배인실을 향해 걸어가면서 속으로 뇌였다.

지금대로 그냥 일한다면 기일이 오래 걸릴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방도가 없는이상 그것때문에 기사장을 나무랄 사람은 없을것이고 추궁받을 일도 없다.

그러나 새 방법을 접수한다면 여러가지 사업을 새롭게 포치하고 전개하는것도 시끄럽지만 후에 잘못되기라도 하면 책임이 돌아오기마련이다.

한명택은 그렇게 생각했다기보다 이미 느끼고있었으니 그것은 체질화되여버린 그의 사고방식이였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자기 견해를 전면에 들고 나서지는 않았다.

불가피하게 시비가 벌어질 문제를 놓고 자기 견해부터 내놓는것은 격전이 준비되는 전쟁마당에 위장도 없이 나다니는것과 같은 미욱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한명택이였다. 그러기에 그는 까다로운 문제가 생기면 작은 일이라 해도 자기가 결론하지 않고 지배인에게 들고가군 했다.

한명택은 가지고온 도안을 지배인의 책상우에 펼쳐놓고 실정을 설명한 후 반걸음쯤 물러서서 상대방의 동정을 살폈다.

《앞당길수 있단 말이지!》

최병기는 사뭇 긴장하게 도안을 들여다보면서 혼자소리로 말했다.

《하루라도 앞당기면 좋은 일인데… 공사도 급하거니와 거기에 너무 많은 공수가 예견된단 말이요.》

《사실 그렇습니다.》

《가능성은 있소? 확신이 있느냐 말이요.》

《글쎄올시다. 본인은 확신이 있다는데 해보지 않던 공사다나니.》

《실패하는 날이면 오히려 손해가 막심하지.》

《사실 그렇습니다.》

《흐음-》

최병기는 다시한번 도안을 들여다보면서 작성자의 이름을 찾아보다가 말했다.

《도안작성자를 밝히지 않았군. 이걸 누가 착상했소?》

《강기석동무입니다.》

《강기석이라니?… 그 동문 기술국에 올라가지 않았소!》

《며칠전에 내려왔습니다.》

한명택은 내려오게 된 경위며 대형성구기에 대한 구상을 가지고 자기를 찾아왔던 일이며를 추려서 얘기했다.

최병기는 묵묵히 듣고있었다.

《대형성구기를 과학자들에게 맡겼다고 하니 다시 이 일에 달라붙었다?- 이 부문에 전문도 아니지?》

《예, 그래도 그냥 할수 있다는겁니다. 성미가 꼭 제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최병기는 못마땅한듯 미간을 찌프렸다. 그런 일을 상기시키는 기사장이 오히려 불만스러웠던것이다.

《누구의 아들이라는게 문제가 아니라 도안의 신뢰성이 문제란 말이요.》

한명택은 어색하게 웃으며 머뭇거리다가 눈길을 들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은 이것을 다른 동무가 착상했습니다. 그런데 창안자가 자신이 없다고 포기하니까 그 동무가 들고나섰습니다.》

최병기는 말없이 오래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중요한 공산데 뭐가 다 석연치 않소. 그만두시오.》

그쯤되면 지배인과의 토론은 다 끝난셈이다.

이런 경우엔 두말없이 돌아서 나가는것이 상례였지만 한명택은 선뜻 돌아서지 못했다.

《저도 여태껏 해설했는데 좀처럼 물러서지 않습니다. 기일을 하루라도 앞당기자는데 왜 받아들이지 않는가 하는거지요. 후에라도 또 무슨 말썽이 생길것 같습니다.》

최병기는 기사장을 피끗 쳐다봤는데 그 눈길엔 불만의 표정이 력연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돌리고 자제하듯 말이 없다가 돌아보지도 않고 짤막히 분부했다.

《나한테 보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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