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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소원과 성취


6


…그는 바다가에 서있었다.

멀리서 배고동소리가 나고 해변에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모두 낯모를 사람들이였다.

《늦지 않았나?》 하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그는 초조해졌다.

낯선 사람들사이를 돌아가며 찾아보았으나 혜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부두를 떠난 배가 그들이 있는 해변쪽으로 가까이 왔다. 선체가 눈부시게 하얀 아름다운 려객선이였다.

주변에 서있던 사람들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혜영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몹시 안타까와하는데 배는 유유히 그들에게로 접근해오고있었다.

《용한데…》

보고있는사이에 기선은 해변에 멎어서고 내려놓은 배다리로 사람들이 오르는것이였다.

문득 자기를 부르는듯 하여 쳐다보니 갑판우에서 처녀가 손을 흔들며 빨리 오르라고 소리치고있었다.

단숨에 뛰여올라가보니 혜영이였다.

진한 눈섭이며 크고 아름다운 눈, 가쯘한 이발을 드러내고 웃는 모습에 가슴을 설레이며 다가서는데 웬 사람이 불쑥 막아서는것이였다.

《넌 내려야 돼!》

《당신은 누구요?》

그는 버젓하게 맞섰으나 저쪽은 눈섭을 사납게 찌프리고 우묵한 눈으로 노려보면서 거듭하는것이였다.

《넌 내려야 돼!》

그가 성이 나서 다가서는데 옆에서 뾰족하게 생긴 안경쓴 사람이 웃어대고있었다.

《저 사람은 관료주의자야.》

《넌 내려야 돼. 그러기 전엔 배도 떠나지 않아.》

그가 몹시 당황해하는데 문득 아주 낯익은 사람이 나타났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선량한 미소를 띠운 그 사람은 서글픈 목소리로 《발동기를 꺼버렸어.》하고 걱정했다.

《나는 방법을 압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전동기 하나를 쓸게 아니라 두대를 병렬로 련결해야 합니다.》

그러자 모두들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식사하러 가자구.》 하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렸다.

보이지 않던 혜영이가 연한 자주빛꽃무늬가 돋은 담갈색달린옷을 입고 나타났는데 선들이 선명하고 윤기가 도는 그 녀자의 얼굴에는 어색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이 옷이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지요? 난 선명한 색갈이라야 좋은데…》

그러고보니 그 자태가 어딘지 허전해보였다.

《괜찮아요. 이제 갈아입겠어요. 우린 선실로 갑시다.》

그렇게 말하면서 처녀는 그의 손을 잡아 이끄는것이였다.

고동소리가 나고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처녀와 손을 잡고 선실로 갔으나 그것은 아담한 방이 아니라 해빛이 쨍쨍 내려쪼이는, 사방이 터쳐진 갑판 비슷한 곳이였다.

《좋지요?》하고 처녀는 그를 돌아보며 웃었다.

《정말 좋소. 우린 언제나 여기 있읍시다.》

혜영은 머리를 끄덕이며 그의 곁에 다가섰고 그는 처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수평선 멀리를 바라보았다.

목적지까지는 인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해빛이 어찌나 따갑게 내려쪼이는지 더워서 견딜수가 없었다.…

깨여나는 의식속에서 꿈이였구나- 하고 아쉽게 생각했다. 다시 잠들려고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창문으로 비쳐드는 해볕에 눈이 부시였다.

(벌써 이렇게 됐나?) 하는 생각에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식사하러 가자구, 고동이 났어.》

태호가 옷을 걸치며 하는 말이였다.

그의 얼굴은 해쑥했고 눈에는 열기가 번뜩였다.

기석은 그의 이마에 손을 대보고 얼굴을 찌프렸다.

《어제저녁에 공연히 벗세웠군.》

《여름감기가 너절한데… 제-길.》

태호는 목쉰 소리로 두덜거렸다.

《누워있으라구, 내 가져올게.》

《가서 먹는게 나아.》

식사를 마치고 약을 먹은 태호가 자리에 눕는것을 보고서야 공장으로 나갔다.

꿈을 믿지는 않았으나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을듯 한 예감을 금할수가 없었다.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출근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활기에 넘쳐있었다.

아침녘인데도 구내도로에는 짐실은 자동차들이 분주하게 다녔고 방송선전차의 확성기에서는 노래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반갑게 맞아주는 직장사람들의 인사와 웃음에서도 흥분한 기분이 느껴졌다.

기석은 사람들이 어째서 이렇게 흥분해있는가 하고 의아해했으나 의문은 쉽게 풀리였다.

당에서는 ㄱ철시험생산을 위해 분투하고있는 제강소의 로동계급을 고무격려하라고 《피바다》가극단을 파견해주었던것이다.

사무실에서도 휴계실에서도 모두들 가극단이야기로 흥성거리고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기석동무가 때를 맞춰 왔군.》

인사하는 동무들이 덤으로 보태는 말도 그에게는 기쁘기만 했다.

모든것이 자기의 도착과 앞으로의 성과를 축하하는것만 같다.

불길이 이글거리는 로앞에서는 용해공들이며 연구사들이 작업에 분망해있다.

땀을 흘리며 일하는 그들은 강기석이를 알아보고도 그저 고개만 끄덕였을뿐이다. 이런 때에는 그 어떤 반가운 사람이 나타났다 해도 인사를 나눌 경황이 없으며 로앞에서 어물거리는 사람들이 일에 방해될뿐이라는것을 그는 체험을 통해 알고있었다.

운전실에서 달라진 조작지표를 알아보려고 일지를 뒤적이고있는데 작업복을 입은 로장이 들어섰다. 륜곽이 뚜렷한 얼굴에 키가 좀 큰편인 엄학준은 동작이 완만하고 침착했다.

가슴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문지르면서 미소를 띠우고 다가왔다.

《내려왔다는 소리는 들었소. 한데 이제 또 올라가야 하우?》

《전 여기서 그냥 일할 생각입니다.》

엄학준은 그를 지그시 여겨보는데 사려깊은 눈길은 청년의 심정을 헤아리는듯싶었다.

《좌우간 잘 왔소. 많이 도와주우. 기술자들이 해야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지는것 같소.》

《도와주는게 아니라 제가 해야 할 일이지요.》

엄학준은 자기가 잘못 말하였음을 깨달으면서도 만족한 기색이였다.

《사실 그렇지!》

그는 빙그레 웃어보이고 조종대앞으로 걸어갔다.

로장과의 이 범상한 대화도 기석에게는 커다란 고무로 느껴졌다.

한시바삐 일에 달라붙고싶었다.

기사장을 찾아 현장지령실로 갔다.

방안에서는 생산과의 지도원이며 운수사령 그리고 중기계직장장과 그밖에 모를 사람 두셋이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기사장은 들어선 기석이를 보자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걸어나와 인사를 하고는 《수고했소. 수고많았소》하고 정중하게 치하하는것이였다.

《앉소. 저기 앉아 좀 기다리오.》

그리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자기를 대하는 기사장의 태도가 전에없이 정중한것이 야릇하게 느껴지긴 했으나 별다르게 생각지는 않았다.

이제 자기가 품고 내려온 모든것, 돌아온 사연이며 성구기에 대한 착상이며 완성할 계획까지도 그에게 털어놓을것이다. 기사장은 아마 뜻하지 않은 선물에 어리둥절해졌다가 자기를 안고 둥실둥실 춤을 추자고 할것이다.

물론 자기는 겸손하게 사업의 요점만을 간단히 밝힐것이다.…

구석쪽 긴의자에서는 밤을 새운 책임기사가 작업복을 입은채 자고있었다.

얼굴은 모자로 비스듬히 가리워지고 로동화를 신은 한쪽발이 의자밖으로 거북하게 드리워있다.

기석은 다리를 바로잡아주고 그옆에 걸터앉아 진행되는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원료하차, 연료장, 운반… 등의 이야기를 하다가 한사람이 나가자 용접봉, 건조로, 교차생산 등의 문제가 론의되는것이였다.

이야기가 한창인 때에 당위원회 지도원(당시)이 들어오더니 《피바다》가극단의 공연준비를 토론했다.

제강소종업원들을 위해 낮에는 구내에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공연하며 밤에는 시립극장을 리용하게 된다는것이였다.

야외무대설치를 위해 직장들에 분공을 조직하는것이였다.

기석은 마치도 대사를 치르느라 분주한 집에 할일도 없이 불쑥 나타난 사람같이 어색한 기분이였다.

(나도 이제 한몫 해야지.) 하고 그는 마음든든하게 생각했다.

전화종이 울리고 또다시 이야기가 계속되고 문이 여닫길 때마다 송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날아들었다.

얼마후에 용무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나가버리고 둘이만 남게 되자 그는 기사장앞으로 다가갔다.

《내려온다는 전화는 받았소. 마침 좋은 때에 왔구만.》

기사장은 너그럽게 웃었다.

기석은 품속에 간직하고있던 도안을 꺼냈다. 그것은 8절지짜리 백지에 품을 들여 그린 미완성의 구상이였다.

《접시형으로 대형성구기를 만들어보겠습니다.》

자기 말이 너무 요란하게 들리지 않도록 흥분을 누르며 침착하게 말했다.

기사장은 그것을 오래동안 들여다보았다.

《으음- 동력을 이렇게 배치했구만. 이건 새로운 방법인데… 괜찮군.》

기석은 소리없이 큰숨을 쉬였다. 대형성구기가 목마르게 요구되는 때에 이런 착상이 떠올랐다는것이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렇지만 아직 완성은 되지 못했습니다.》하고 겸허하게 말했다.

《할일이 한두가지가 아니군. 눈코뜰새가 없다니까. 요즘은 내화물공사가 벌어져서 온통 거기 집중이요. 기초를 파는데 수렁판이 나와서 애를 먹소.》

피로가 어린듯한 그의 말을 들으면서 (기사장동진 정말 바쁘구나.) 하고 못내 감심했다.

이때 작업복을 입은 허우대 큰 선별직장장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로 들이댔다.

《쇠바줄을 빨리 보내주시오.》

기사장은 너그럽게 웃었다.

《거기 갈 자동차를 급한 일에 돌렸으니 가서 기다리오. 곧 보내겠소.》

《돌아갈수 없수다. 젠-장, 철을 뽑아내는 기업소에서 철제품을 동냥하러 다니다니.…》

그러면서 마련을 보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을 잡도리를 하면서 의자를 끌어당겨놓고 제빠듬히 틀고앉았다.

기사장은 피곤한 미소가 어린 얼굴을 기석이쪽으로 돌렸다.

《이거 변변히 이야기할 겨를도 없구만. 강동무, 후에 만나기요. 저녁에 오던지… 그새 좀 토론해보겠으니.

우선 〈피바다〉공연이나 구경하오.》

기석은 선선히 일어섰다.

기사장의 립장도 심정도 리해되였다.

기사장이 안타까와하는 일을 한가지라도 도와주고싶었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로 되였다는 내화물기초굴착장으로 향했다.

기중기차가 철골이 늘어선 경간에 트라스를 올리고있는데를 지나니 그 저쪽공지에 기초공사터가 펼쳐져있었다.

큰 건설장에서처럼 붉은기가 나붓기고 웃음소리, 말소리들이 왁자한 속에서 작업이 들끓고있었다.

언제나 용해공들만 으뜸으로 내세워주는 제강소에서 이붓자식취급을 당하다싶이하는 보조부문직장들은 이런 일에서까지 뒤질가보냐고 승벽을 내여 일하는것이였다.…

저녁때까지 흥분된 심정으로 희망에 넘쳐 일했다. 《피바다》가극단공연에 대한 소문과 기대로 하여 작업장은 더욱 흥성거렸다.

교대하러 나온 동무들이 구경하고온 소식들을 즐겁게 퍼뜨렸다.

작업을 끝낸 축들은 총화를 서둘러 마치자 바람같이 사라졌다.

함께 가자고 이끄는 동무들을 떠나보내고 기사장이 기다리고있을 현장휴계실로 향했다. 구경하러 가는 사람들이 구내길에 넘치고있었다. 흥겹게 떠들며 가는 사람들의 흐름을 거슬러 걸으면서도 기석은 오히려 보람을 느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한주일이나 열흘이면 완성할수 있을거다. 사업방향만 토론되면 래일부터라도 착수해야지.) 하고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생각했다.

작업장들을 지나 현장지령실에 올라가니 방은 텅 비여있었다.

기사장이 늘 앉군 하는 책상우에는 전화기 한대만이 댕그렇게 놓여있다.

어찌된 일인가 하고 두리번거리는데 나이지긋한 지령원이 들어섰다.

기사장동지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구경을 갔다는것이다.

《구경이요?》

강기석이 놀라는 표정에 저쪽은 싱글벙글 웃었다.

《왜, 기사장은 구경 못하나? 다른 구경은 못해도 이것만은 봐야지.》

《…》

《무슨 일이 있소?》

《오늘은 만나기 틀렸으니 빨리 구경이나 가라구.》

기석은 우두커니 서있을뿐이였다.

《낮에 구경했소?… 못했으면 빨리 가라니, 못보면 한이 되네. 얼마나 잘한다구! 이자두 저쪽에서 그 얘기를 하던 참이야. 그 녀성독창가수 있지? 텔레비죤에서 자주 나오는 인민배우 말이야.… 그 녀자도 왔어.》

(혹시 무슨 일이 있어 못 갔을수도 있지. 못 가고 현장에 나갔다가 들어올수도 있어.)

사업에 분주하던 기사장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려보면서 기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목장에서 일하다가 배우가 됐다는 남자독창가수 말이네, 시험생산을 맡고있는 6호로의 용해공들에게 인사를 보낸다면서 특별히 한곡을 더 불렀네.》

《혹시 자기 사무실에 있지 않을가요? 기사장동지가 말입니다.》

《허어, 이 친구 믿지 않는군. 구경갔다니까 글쎄.》

지령원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책상을 에돌아 전화기앞으로 가더니 기사장실을 찾았다.

눈길을 숙이고 대답을 기다리던 지령원은 송수화기를 잡은채 허리를 구부리더니 바닥에서 신발자국이 꺼멓게 찍힌 종이장을 집어올렸다.

《이건 뭐야?》

혼자소리로 뇌이며 8절지의 앞뒤를 살펴보더니 책상끝에 올려놓았다.

기석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그처럼 귀중하게 품고다니던 성구기에 대한 도안이였다.

실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가슴속에 그늘을 던지는것이였다.

그러나 그는 (책상우에 놓은것이 떨어졌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먼지를 털고 접어서 주머니에 간수했다.

《나오지 않소. 구경갔다니까.》

지령원은 송수화기를 놓으며 알려주었다.

두시간쯤 더 기다리다가 기사장네 집으로 찾아갔다.

한명택은 방금 식사를 마치고난 참이였다.

공연종목이며 출연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하면서 기석의 표정을 더듬고있던 한명택은 화제를 돌렸다.

《강동무가 제기하던 문제 말이요, 그동안 노력은 많이 했던데 이젠 강동무가 수고하지 않아도 되게 됐소》

기석은 선뜻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그 일은 이미 과학자들이 맡아서 하고있소.》

《성구기를 말입니까?》

《그래, 이전에 벌써 론의가 있었지. 중요하고 절박한 문제인데 우리 공장력량으로는 자신이 없어서 과학자들이 하기로 결정했댔소》

《과학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합니까?》

커다란 관심과 호기심을 품고 그는 물었다.

《그건 아직 우리가 관계할바 아니지. 부원장선생이 책임졌으니… 이제 완성된 도안이 나오면 합평도 하고 설계도 하겠소.》

《어떤 방법입니까?》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연구사에게 맡겼는데 지금 자기네 연구소에서 시험중이라오. 아마 멀지 않아 여기로 내려오겠지. 모르긴 하겠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법과는 전혀 다르게 착상한 모양이요. 과학자들인데 어련히 잘해놓을라구.》

기석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런 말이 뜻밖이기도 했거니와 성구기의 실태와 전망이 막연하게 들렸던것이다.

그의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듯 한명택이 말을 이었다.

《올라가있는데서 그냥 일하지 무엇하러 내려오면서 그러오? 갈 때에도 내가 말하지 않았소! 거기서 일하는게 여러가지로 유리하다구.》

(그러니 내가 만든 도안은 쓸모가 없다는건가. 새로운 발견임에 틀림없는 그 착상이.)

기사장의 말이 석연하게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자 차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오늘 저녁의 일들, 자기를 오라고 하고도 구경을 가버렸던 일이며 고심어린 노력이 반영된 자기 도안이 바닥에서 밟히고 돌아가던 일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고 그 모든 현상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였음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국장동무도 말하던데 지금이라도 올라가는편이 나아.》

망두석처럼 앉아있는 기석이를 보면서 한명택이 충고하는 말이였다.

《국장동지가 무슨 말씀이 없었습니까?》

생각되는바가 있어 그는 성실한 눈길로 기사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강동무를 빨리 올려보내달라는 말이 있었소.》

《아니, 성구기에 대해서 말입니다. 국장동지도 착상이 좋다고 했습니다.》

《좋다고 할수야 있겠지.》

《도안을 완성시키고 추진시키라는 말이 없었습니까?》

그의 소박한 생각에 기사장은 웃고있었다.

《아무리 상급기관일군이라 해도 그런 말을 어떻게 하오? 여기서 사업이 어떻게 조직되는지도 모르는데 그런 의견을 주었다가 후에 무슨 말썽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책임지자구!》

말뜻이 석연하게 리해되진 않았으나 입을 다물고있었다. 가슴이 몹시 답답해졌다.

사이문이 열리고 기사장 부인이 올사과를 담은 과일접시를 들고 들어온것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기석아저씨, 오래간만이군요!》

녀인은 상냥하게 웃었다.

그는 당황히 인사하고는 눈길을 숙였다.

《사과라도 좀 깎으면서 이야기하세요.》

부인이 가자 기사장도 권했다.

《자, 어서 깎소. 내 깎아주지.》

그는 전혀 먹고싶지 않았으나 마지못해 사과를 집었다.

《어느모로 보나 올라가는게 좋소. 잘 생각해보라구.》

가슴이 터질듯 한 의분을 누르면서 기석은 태연하게 머리를 들었다.

《전 여기서 일하겠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고 잘 타산해보라니까! 여기 있는대야 강동무에게 따로 맡길 과업은 없소. 회전로에서도 요즘 로에 붙은 인원들만 내놓고는 총동원이요. 땅파는데 한사람이 더 붙었다고 해서 달라지는건 없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두번 말할 필요가 없었기때문이였다.

이윽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사장은 더 놀다가 가라고 권하면서도 따라일어섰다.

부인이 준비해두었던 사과구럭을 들고 나왔다.

《가서 태호랑 같이 잡수세요.》

거절하기 난처한 권고였으나 그는 사양했다.

《우리한테도 있습니다.》

기사장내외의 호의와 친절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괴로운 심정에 싸여 그곳을 나섰다.

가슴은 몹시도 허전했다.

허전해진 가슴속 바닥에서부터 의분이 끓어오르는것이였다.

그는 나라의 야금공업을 위해 이바지하려는 크나큰 포부를 안고있건만, 제강소를 사랑하며 제강소에서 벌리고있는 새 야금법의 완성에 남다른 의무감까지 느끼고있건만 그의 포부며 절절한 심정을 알아주려고 하지 않는것이 억울했다.

하지만 전투가 벌어진 이 마당에서 해놓은 일도 없는 기사로서 자기에게 중요한 과제를 맡기지 않는다 해서 어느 누구를 탓하며 그의 포부나 지향, 남다른 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 해서 어디에 하소연하겠는가!

(누구를 탓할것도 없고 하소연할것도 없다. 주체철의 완성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면 땅파기라도 하자.) 하고 그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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