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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소원과 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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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이 흘러가는 동안 기석은 문서화되여있는 자료들을 연구한데 기초하여 야금기업소들에 다니면서 실태들을 알게 되였고 과업이 요구하는 방향에서 구상도 무르익혔다.

생소한 분야도 아니였고 그렇다고 크게 관심해온 일도 아니였지만 제진문제와 로동보호라는 측면에서 들여다볼 때 이 부문에도 할일이 많다는것을 느꼈다.

다만 그에게 리해되지 않는 점은 이러한 사업이 어찌하여 바로 주체철시험생산이라는 중요한 사업이 벌어지고있는 때에 일정에 올랐는가 하는것이였다.

넓은 범위로 본다면 기술발전의 전망계획이나 년차별계획에 따라 상정되였을수도 있고 혹은 그 어떤 다른 원인이 작용했을수도 있겠지만 야금공업의 주체화를 위한 중요한 전투를 벌리고있는 기업소의 한 기사의 안목으로써는 그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국장도 시험생산의 중요함을 버릇처럼 말하였고 기술지도에 대해 걱정은 했지만.

《…우리가 참견하지 않아도 그 일은 잘될거요.》 하고 락관적으로 말하는것이였다.

하지만 그러한 호언장담이 강기석에게는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힘겨운 전투를 지원해나설 대신에 그것을 관망하면서 제볼장을 보고있는 사람의 자기변명으로 느껴졌던것이다.

제진시설과 관련되는 사업이 중요한것은 사실이였으나 국장의 그러한 태도를 느끼면서부터 강기석은 자기가 하는 일에 마음을 붙일수가 없었다.

의무감에 따라 일을 하면서도 멀리 떨어져있는 제강소를 생각하는것이였다.

실태료해의 마지막로정으로 예견된 ㅎ제철소로 내려갈 때의 기석의 심정은 그러했다.

처음 와보는 곳은 아니였으나 그동안 많이 변모되고 발전한 제철소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새삼스러운 충격을 받았다.

여러 생산공정에 기계화와 자동화가 실현되고 원격조종까지 도입되고있는 환경에서는 제진시설과 로동보호의 과학기술적수준도 당연히 높은 경지에 이르러야 할것이다.

그는 공정에 침투하여 기계와 장치들의 능력과 호상관계를 관찰하고 분석했으며 문헌자료들을 연구했고 의문되는 점들을 사람들에게 물어보군 했다.

맡은 과제에 열중하여 바쁜 나날을 보내던 어느날 그는 원료처리공정을 돌아보다가 한쪽켠에 버려둔 두대의 성구기를 발견했다.

그들의 제강소에 있는것과 같은 접시형인데 형태가 큰것이 관심을 끌었다.

한때 어떤 구단광을 빚었던 모양이였으나 지금은 쓰지 않고 버려둔대로였다.

틀안에 탄재가 들어차고 축대에는 기름이 말라붙은 그 낯설은 기대는 만리이역에서 만난 고향친구인양 친근하게 느껴졌다.

ㄱ철시험생산에서 애로로 되고있는 성구공정이 마음에 늘 무겁게 걸려있은 기석이였다.

소형성구기들이 줄지어 늘어서고 계통들이 확립되지 않은 원료장일경이 언제나 눈에 삼삼했고 박성국이와의 론쟁이 잊혀지지 않았던것이다.

이게 바로 그 사람이 말하던 그 중형성구기구나 하고 그는 볼품없이 된 기계를 관찰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알만 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던 끝에 그것을 설계했다는 중년의 설계원을 만났다. 다부진 몸매에 머리가 큰 그 설계원의 말에 의하면 과학원에 있는 한 연구사가 성구공업이 발전했다는 나라의 문헌자료들을 참고해서 만들었는데 어째서인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결함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그는 본질적인 문제를 캐고들었다.

《중량은 큰데 회전방향이 경사각이니까.…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주 고장이 생긴다는걸 인정했다더군.》

《중량이 얼마나 됩니까?》

《자체중량이 30톤이요.》

기석은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생각했다.

(원료까지 흘러들면 거의 사오십톤이나 되는 접시가 경사각을 이루며 돌아가게 된다. 거기에 큰 전동기, 감속기 같은것들이 붙어돌아가니 아무리 배렬을 잘한다 해도 편중이 생길수 있다.

그러니 중형보다 더 무거운 중량의 접시형성구기가 편중과 고장이 없이 지속되는 작업을 하기가 어렵다는 리론이 나온거다. )

처음 떠오른 생각은 아니였으나 실물을 눈앞에 보고나니 생각이 더욱 명백해졌다.

《접시의 경사각이 너무 크지 않습니까?》

《안 그러면 빚어진 알이 흘러나가지 못하니까!》

《경사각안에서의 중력의 차이는 얼마나 됩니까?》 설계원은 초학도들처럼 불필요한 점에까지 꼬치꼬치 캐고드는 물음에 대답이 막혀버리자 기석이를 틀림없는 풋내기로 단정해버렸다.

《그런건 몰라도 되오!》

그러자 기석은 기술적인 문제는 더 묻지 않았다.

그날부터 기석은 틈만 있으면 원료장구석의 휑뎅그렁한 지붕아래서 체대가 앙상한 성구기와 씨름했다. 뜯어가버린 전동기와 감속기들의 용량과 능력을 알아보았고 배치에서의 모순을 찾으려고 고심했다.…

그곳을 떠날 때에는 현물을 보지 않고도 부분들의 배치며 그 성능을 환하게 표상할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서도 그 수치들을 따지고 비교하면서 원인을 찾으려고 고심했다.

맡은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도 시간만 있으면 자료를 연구하고 비교와 추리를 계속하면서 대형성구기의 구상에 정력을 기울였다.

보리장마가 질금거리던 6월도 지나 그들이 첫 과제를 끝내가는무렵에 로동보호를 위한 상설적인 기구가 나오는데 제진사업에 망라되였던 기술자들도 그 성원으로 되리라는 말이 들려왔다.

기사들 태반이 그렇게 되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으나 기석은 거기에 관심하지 않았다.

시대에 대한 자각과 뚜렷한 지향을 안고 살아가는 그에게는 마음 기울여오던 직업과 정든 일터를 기쁘게 버릴수 있는 심정이 리해되지 않았던것이다.

한낮동안 달아올랐던 대지가 가쁜 숨결을 서서히 돌리고있는 어느 토요일 저녁무렵에 하루일을 마친 강기석은 열어놓은 사무실창가에 앉아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한가한 시간이면 언제나 불잡게 되는 새로운 장치에 대한 구상을 더듬고있었으나 일에 지친때문인지, 주변의 들뜬 분위기때문인지 사색이 좀처럼 깊어지지 않는다.

국에서는 벌써부터 설계해오던 집단적인 야유회를 청명한 날씨가 예견되는 다음날로 정하였는데 동원되여 일하는 기사들도 망라시켰던것이다. 준비는 모두 원주인들이 할터이니 그들더러는 함께 가서 하루를 즐겁게 보내자는것이였다.

지금 일하는 곳을 어디까지나 림시적관념으로만 대해오는 강기석이로서는 거기에 따라가고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이렇다할 구실도 없이 빠지기도 또한 난처했다. 그래서 그 일은 형세에 맡겨버리고말았던것이다.

전화종이 울리는 소리에 강기석은 창가에서 물러나 탁상쪽으로 걸어갔다.

수화기에서 《평성에서 시외전화입니다.》 하는 교환수의 말소리를 무심하게 들었다.

때각거리는 잡음에 뒤이어 중폭전류의 흐톰소리를 타고 《과학원입니다.… 거기 강기석동무를 바꿔주세요.》 하는 무척 귀익은 녀자의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처럼 울렸다.

그는 흥분으로 하여 숨이 막히는듯싶었다.

《제가 바로 그 사람인데… 혜영동무 아닙니까?》

《아이, 어쩌면… 안녕하세요?》

기쁨을 억제하는 미소어린 목소리.

《난 잘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거기 오셨소?》 하고 그는 다우쳐물었다.

《상반년도총화도 있고 해서 우리 연구소에 가는 길에 들렸어요.…》

그리고는 잠시 말이 끊어졌다. 다음말을 망설이는듯 한 그 짧은 침묵속에서도 만나기를 갈망하는 그들의 심정은 출로를 찾으며 맥맥히 통하고있었다.

《연구소에는 언제까지 가야 합니까?》

《월요일 아침까지 도착하면 돼요》

《그럼 오늘중으로 여기 올수 없겠소? 어렵다면 내가 그리로 가겠소.》

강기석의 말에 혜영은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중으로야 갈수 없지요 뭐, 일도 있고… 래일 아침차로 가겠어요. 급행렬차로, 어때요?》

《훌륭하오. 난 역전에서 기다리겠소.》

강기석은 귀중한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며 송수화기를 놓았다.

행복을 기다리는 밤은 언제나 길다.

도시의 아침은 거리의 소음과 더불어 시작되고 청춘들의 아침은 행운을 예감하는 심장의 고동소리와 더불어 시작된다.…

푸른 하늘에 아침해가 높이 떠오르는무렵이 되자 거리에는 벌써 휴식일을 즐기러 집을 나선 사람들이 물결지어 흐른다.

공동숙소를 나선 강기석은 교외로 가는 동료들과 헤여져 역전으로 향했다.

마중나온 사람들이 서성거리는 넓은 기다림칸을 오락가락하면서 굼뜨게 흐르는 시간을 보내였다.

드디여 기다리던 렬차가 도착하여 손님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쏟아져나오는 사람들속에서 낯익은 모습을 대뜸 발견했다.

마음을 조이며 찾고있었던때문이기도 했지만 혜영의 자태는 유난히 눈에 띄였던것이다.

허리에 띠를 두른 흰 달린옷에 흰 싼달을 받쳐신은 그 녀자의 자태는 이 여름날 아침처럼 청신하고 아름다왔다.

기다림칸에 있던 다른 사람들조차 지나치는 그 녀자의 모습에 눈길을 돌리지 않을수 없는 모양이였다.

웃으며 다가오는 강기석의 모습을 발견한 혜영은 온 얼굴을 미소로 빛내이며 그앞에 와서 멈춰섰다.

《오늘은 날씨까지 좋군요.》

《피곤하지 않습니까?》

《괜찮아요. 평성에서 푹 쉬였어요.》

그리고는 기다림칸 한켠으로 걸어가서 려행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난 사흘전에 떠났어요. 오는 길에 그동안의 시험생산자료들을 부원장선생에게 가져다드리라고 해서 과학원에 들렸댔어요.》

《거기 일은 어떻게 되여갑니까?》

강기석은 궁금해서 물었다.

《여전해요. 모두들 열심히 일하고있어요, 눈에 띄게 달라진건 없지만.…

한데 이제 우린 어디로 갈가요?》 하고 혜영은 상긋 웃으며 말을 돌려 물었다.

그 일을 생각하지 않았던것은 아니나 뜨내기나 다름없는 그의 처지로써는 이렇다할 소견이 없었다.

《글쎄요. 미술박물관이나 다른 전람관에 들려보는것도 좋겠지요.》

《대성산으로 가자요. 거기가 좋아요. 새로 꾸려진 식물원도 구경하면서.》

《거긴 기술국사람들이 갔는데, 가족들까지 데리고.…》

기석은 야유회가 조직된 사연을 설명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못 갈건 없잖아요?》

혜영의 말에 강기석은 웃고말았다.

그 녀자와 함께 사람들앞에 나타나는것을 어색하게 여기고있는 자기자신을 깨닫자 그는 오히려 호기있게 응했다.

《갑시다.》

손짐을 보관시킬 때 혜영은 려행가방속에서 푸른 바탕에 흰 콩알무늬가 박힌 천으로 지은 네모난 구럭을 꺼내드는것이였다. 손잡이끈도 천으로 된 그 구럭을 든 혜영의 자태는 화가가 마지막붓을 가하여 완성한 화폭과도 같이 안정과 조화의 미를 드러내고있었으나 강기석은 어째서인지 한가닥 불안을 느끼였다.

(아버지의 취미와는 대조적인데.…)

류행에 뒤떨어진 자기 옷차림을 조금도 개의하지 않는 최병기지배인의 텁텁한 용모를 그려보면서 생활이 빚어낸 그러한 차이에 서글픈 미소를 짓고있었다.

《이렇게 차리고 나서니 좀 어색해요.》 하고 처녀는 이쪽의 표정을 여겨보면서 명랑하게 웃었다. 그 녀자의 솔직한 실토에 마음이 가벼워진 강기석은 《괜찮습니다.》 하고 고무하듯 부드럽게 말했다.

(사실 아버지가 자라던 환경과 딸이 자라는 환경은 시대가 다르지 않은가.)

강기석은 처녀를 두둔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지하철도역에서 전동차에 올라 곧바로 교외로 나갔다.

가는 길에서 진행되는 시험생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혜영은 떠날 때부터 이곳에 들려 함께 유원지로 갈것을 계획했었다고 실토했다. 다만 날씨가 어찌될지 몰라서 은근히 걱정했다는것이다.

《그런데 참 다행이지요? 얼마나 좋은 날씨예요!》

아침나절인데도 유원지에는 벌써 놀러온 사람들이 구름처럼 흐르고있었다.

웃음소리, 말소리, 부르고 화답하는 소리들이 떠들썩한 낯모르는 사람들사이를 헤치고 다니면서 그들은 오히려 아무런 구속도 느낌이 없이 즐겁고 유쾌했다.

혜영이가 무척 호기심을 품고있었으므로 퍼그나 오랜 시간 차례를 기다리면서 관성차도 탔다.

땀을 흘리고 갈증을 느낀 그들이 사이다를 마시려고 랭차점에 들렸을 때 강기석을 소리쳐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여어- 강동무, 어디 가서 다녔나? 지금 경기가 한창인데.》

동원되여와서 함께 일하는 나이지숙한 기사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강기석은 혜영이를 인사시키면서 동무를 만나 다니는중이라고 설명했으나 저쪽은 막무가내로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러지 않아 국장동지도 아까 기석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찾던데.… 자, 녀동무도 함께 가기요.》

혜영은 상냥하게 웃으며 강기석이쪽을 살피다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국장동지도 찾았다는데 가봐야지요 하는 표정이였다.

솔밭속에 꾸려놓은 크지 않은 운동장에서는 바드민톤경기가 한창이였다.

기석이와 함께 나타난 혜영이의 모습은 한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으나 모두의 주의는 다시 진행되는 경기에 쏠리였다.

혼성복식경기가 벌어질 때 혜영이도 선수로 지명됐으나 웃으면서 사람들의 등뒤에 숨어버렸다.

기석이도 능숙한 선수는 못되였지만 상대편도 그러루한 수준이여서 어렵지 않게 한 경기를 치르어냈다.

경기가 끝난 뒤에 보물찾기 등으로 유쾌하게 시간을 보낸 일행은 점심식사를 하려고 경치좋고 그늘짙은 호수가로 향했다.

호수로 흘러드는 크지 않은 개울에는 물이 넘쳐흐르는데 잔디밭에 가려면 구름다리가 놓인쪽으로 한참이나 에돌아야 했다.

앞서가던 한 젊은이가 가까이에 있는 외나무다리를 건너가자 모두들 그쪽을 넘겨다보았다. 중년남자가 뒤따라 건느면서 교예사가 줄타기하듯 기우뚱거리는것을 보고 모두를 유쾌하게 떠들었다.

그러자 외나무다리건느기가 즐거운 오락으로 되였다.

한 처녀가 신발을 벗어들고 경쾌하게 건너간 뒤부터는 그리로 건느려는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게 되였다.

젊은 부인이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음식구럭을 맡기고 외나무다리를 건너가기 시작하자 먼저 건너간 청년이 사진기를 벗겨들었다. 그 녀자가 중간쯤 가다가 망설이며 눈을 딱 감은 장면은 뭇사람의 유쾌한 웃음을 자아내면서 두번이나 촬영됐다.

했으나 녀인은 끝내 건너서고야말았다.

《운명의 다리!》 하고 누군가가 익살스럽게 웨쳤다. 《행복의 락원은 눈앞에 있습니다. 그리로 빨리 가고싶은 사람은 이 다리를 건느십시오.》

그 말에 모두들 유쾌하게 떠들었다.

《부인이 건너갔으니 세대주도 건느셔야지요.》

먼저 건너간 녀인의 남편인 몸이 뚱뚱한 장정을 부추기며 왁자하니 웃는다.

그 사람은 구럭과 가방을 움켜쥐고 사뭇 긴장한 표정에 싸여 외나무다리를 바라보고있었다.

《우리도 저리로 갈가요?》

혜영은 생기어린 커다란 눈을 들어 기석이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갑시다.》

이쪽은 선선히 응했으나 서두르지는 않았다.

《이 구럭을 들어주세요.》

처녀는 구럭을 기석에게 내밀다가 신발까지 벗어서 그안에 넣었다.

《이럭하면 자신있어요.》

혜영은 통나무다리께로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면서 뒤를 돌아보고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강기석이 그쪽으로 갔을적엔 몸이 실팍한 중년남자가 건너가기 시작했는데 안해더러 건너가지 말라고 말리던 그 남자였다.

자기 가방과 안해가 맡긴 음식구럭을 손에 들고 다리에 들어선 그의 거동은 사람들의 악의없는 웃음거리로 되였다.

중간쯤까지 비칠거리며 건너간 그는 땀이 물흐르듯 하는 얼굴을 씻을념도 못하고 중가운데에 멈추어섰다.

그가 어물어물 돌아서려는 기미를 보이자 사방에서 왁자하게 떠들었다.

《그냥 가야 돼.》

《기운을 내시우.》

《눈을 떠야지.》

《땀부터 씻으라니까.》

《하하하…》

《호호호…》

소란하게 왁자지껄하는 속에서 분개한 녀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구럭을 갈라드세요!》

당황한 속에서도 안해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그는 가방과 구럭을 량손에 갈라들자 얼마큼 자신이 생기는듯 천천히 끝까지 걸어나갔다.

또다시 폭소가 터지고 주위가 떠들썩해졌다.

그러나 강기석은 그 어떤 충격에 놀라면서 그 자리에 굳어져있었다.

혜영이가 경쾌하게 건너가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

그는 사람들속에서 물러나와 천천히 길을 에돌아갔다. 길바닥을 들여다보며 옮겨놓는 그의 걸음은 기계적이였다. 뒤에서 사람들이 유쾌하게 떠드는것도, 혜영이가 자기를 안타깝게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가 구름다리를 에돌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갈 때엔 이미 잔디밭우에 음식들이 차려져있었다.

실망과 모욕감으로 하여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혜영이가 맨발로 천천히 다가오고있었다.

《강동무, 무슨 망신이예요! 젊은 사람이 그것도 못 건너오고.…》

강기석은 그 녀자가 어찌하여 그렇게 흥분했는지 깨닫지 못하면서 중얼거렸다.

《전동기는 하나를 쓸것이 아니라 용량이 작은것 두개를 병렬로 련결하되 회전판의 량켠에 대칭되게 설치해야 하오.》

《그건 무슨 소리예요?》

처녀는 눈이 둥그래져서 물었다.

《그렇게 되면 설비의 편심도 없어지고 치차나 감속기들이 모두 작아지기때문에 전기를 적게 쓰면서도 성능은 2배로 높아질수 있소.

접시형대형성구기는 가능하오.》

혜영은 눈길을 내려깔고 말없이 구럭을 받아들더니 그안에서 신발을 꺼내신었다. 그리고는 뭇사람들의 눈길을 피하여 녀성들이 모여앉은 소나무밑으로 걸어갔다.

《강동문 행복을 쉽게 찾고싶지 않았던 모양이지?》

누군가가 롱조로 건네는 말에 모두들 유쾌하게 웃었다.

기석이도 반사적으로 웃음을 지었으나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는 누구보다도 기쁘고 즐거웠다.

식사후의 오락회때엔 기타를 안고 씩씩한 곡조를 타서 절찬을 받았고 독창하는 처녀들의 요청에 응해 흥겨운 반주도 해주었다.

그러한 분위기에 기분이 전환된 혜영이도 다소곳하니 미소를 머금고있었다.

뽀트놀이가 시작되자 그들은 말없이 함께 뽀트에 올랐다.

기슭을 먼저 떠난 축들은 벌써 멀리 호심을 향해 저어가고있었으나 강기석은 서두르지 않았다.

《난 아까 몹시 흥분했댔어요, 동무가 외나무다리를 무서워서 못 건느는줄로 알고.… 숱한 사람들앞에서 망신스러워서…》

혜영은 면구해하며 눈길을 숙였으나 이쪽은 너그럽게 웃고있었다.

《그쯤한 일을 두고 뭐.…》

《무슨 구상이 떠오른 모양인데 좀 말해주세요.》

《아직은 완전한게 못되오, 그저 착상일따름이지.》

《그래도…》

강기석은 뚜렷하지도 못한 구상을 흥분하여 털어놓았던것을 오히려 게면쩍어했다.

《후에 말합시다. 구상이 완성된 뒤에.》

고개를 돌려 앞서가는 뽀트들을 바라보고는 검스레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혜영동무, 우리 저 뽀트들을 앞서볼가요?》

《그렇지만 너무 떨어졌는걸요.》

혜영은 미타해하며 그의 어깨너머로 앞쪽을 살폈다.

《괜찮소. 가름장을 든든히 붙잡기만 하시오. 내가 한때 선장이 되려고 꿈꾸었다는걸 알지요?》

뽐내듯 그렇게 말하면서 기석은 흰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로앞에서 단련된 억센 두팔이 힘들지 않게 노를 박을 때마다 작은 배는 물면을 가르며 가볍게 미끄러져갔다.

저녁해빛을 받아 노대는 번들거리고 뽀트는 씽- 씽- 앞으로만 나갔다.

《막 어지러울 지경이예요.》

혜영은 가벼운 전률속에서도 희열에 넘쳐 부르짖었다.

앞서가던 뽀트들을 한척한척 따라잡고 뒤떨굴 때마다 그쪽사람들의 선망어린 눈길에 명랑한 웃음을 보내면서 손을 흔드는것이였다.

강기석은 그 모습을 유쾌하게 바라보면서 말없이 힘주어 노만 저었다.

두바퀴를 그렇게 돌고나서 기슭으로 향할 때 처녀는 행복에 취한듯 고물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배전에 손을 드리운채 정겹게 물었다.

《바다로 가자고 약속했던 일을 기억하세요?》

《기억하지요. 언제든 꼭 갑시다.》

《그렇지만 바다보다는 여기가 훨씬 나아요. 얼마나 좋아요.》

강기석은 잔잔하게 파문이 퍼져가는 호수의 초록빛물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술렁대는 강철빛바다를 생각하였다.

《그래도 바다는 바다지요.》

혜영은 자기 생각에 잠겨 방그레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참 즐겁군요. 내가 들리기를 잘했지요?》

《잘했습니다. 》

《그리고 여기로 온것도… 좋지요?》

《정말 좋습니다!》

뇌리에 간직된 착상으로 하여 오늘 하루가 더욱더 귀중해진 강기석은 감동에 싸여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혜영이의 얼굴은 행복감에 빛났다.

《오늘은 정말 잊을수 없는 날이예요.》

그 잊을수 없는 날 이후로는 동원되여 하는 사업이 강기석에게는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머리속에 떠오른 구상을 하루빨리 현실속에서 실현해보면서 ㄱ철의 완성에 기여하고싶었던것이다.

제강소로 돌아가리라고 확고하게 결심한 강기석은 어느날 국장을 만나려고 기술지도국으로 갔다가 청사앞에서 뜻하지 않게 지형민부원장을 만났다.

지형민은 젊은 야금기사가 시험생산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있다는것을 알자 못내 반가와하면서 중요한 소식을 알려주는것이였다.

《시험생산이 난관을 겪고있지만 완성할수 있다는 신심만은 확고하오.》

그렇게 말하고나서 사뭇 심중한 어조로 이번에 ㄱ철시험생산정형을 전면적으로 깊이 분석총화한데 기초하여 각이한 공정에서 나타나는 난관을 타개하고 획기적인 전진을 이룩하기 위하여 현지에 있는 야금연구사들을 포함하여 각이한 부문을 망라하는 유능한 과학자들을 그곳에 파견하게 되였다는것을 알려주는것이였다.

마치 공식적인 모임에서 발언하기라도 하는듯 한 부원장의 진지한 태도는 사뭇 깊은 인상을 자아냈다. 그 엄숙한 표정속에는 이 사업을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해오는 그의 온 심정이 그대로 나타나있는상싶었다.

(그러니 지금 우리 제강소에서 벌리고있는 그 전투를 한정없이 오래 끌것이 아니라 각이한 부문들의 긴밀한 협동으로 집중포화를 퍼붓고 모든 전사들이 다 떨쳐나서서 속도전의 방법으로 섬멸전을 벌려야 한다는것을 의미하는구나!) 하고 강기석은 깊은 감동에 싸여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의 마음은 벌써 일이 들끓고있는 제강소에로 달리고있었다. 돌아가야 하겠다는 결심을 가다듬으면서 국장을 찾아가 심정을 털어놓았다.

했으나 국장은 선뜻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동무 한사람이 없다고 해서 안될 일이 아니요.》 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하는것이였다.

《저는 성구기를 대형화하겠습니다.》

《그건 좋은 일이지. 구상을 무르익히시오, 여기 일을 하면서.…》

《초보적인 구상은 있습니다. 접시형으로 대형화하겠습니다.》

《접시형으로?》

기석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나 종자가 뚜렷한 구상을 설명했다.

다 듣고나서 국장은 생각에 잠겨 머리를 끄덕였다.

《좋은 착상이요. 하지만 아직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여기서 일하면서 완성하시오. 다되면 설계까지 해줄수도 있소.》

《이제부턴 현장에서 일하면서 완성해야 합니다. 로조업과정과도 직접 관계되니까요. 내려보내주십시오 》

《딱한 친구로구만. 하지만 그렇게는 안되오.》

기석이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러저러한 해설에도 아랑곳없이 고집스럽게 나오는 청년의 완강한 태도에 국장은 어쩔수 없다는듯 웃고말았다.

그는 사람을 다루는데서 여러가지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였다.

청년의 의향과 열망이 강렬함을 간파하고는 그것을 막을것이 아니라 물줄기를 돌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로서는 능력있고 성실한 이 젊은이를 어떻게 하나 자기네 성원으로 만들고싶었던것이다.

《정 그렇다면 하던 일을 매듭지어놓고 내려가오.》 하고 그는 엄한 표정속에 한가닥 미소를 띠우고 아량을 보였다.

《내려가서 성구기의 대형화를 완성하시오. 그건 우리로서도 꼭 도와줘야 할 중요한 문제니까. 그렇지만 그 일을 끝내면 다시 와야 하오. 그때엔 다른 의견이 없겠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기석은 선뜻 대답했다.

그에게는 지금당장 여기서 떠나는것만이 절박했으므로 그뒤의 일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국장은 보다 여유있게 내다보았다.

ㄱ철을 생산공정으로 완성하자면 언제까지 끌게 될지 료량할수 없지만 성구기의 대형화는 강기석이 하건 다른 누가 하건 어차피 빨리 해놓지 않으면 안될 선차적인 공정이였다.

그러니 그것을 완성하는 동안만큼 말미를 주는것은 사람을 쓰는데서 충분히 양보할수 있는 조건이였다. 제강소지배인이 강기석을 내놓는데 쾌히 동의하리라는것은 그가 장담할수 있는터이므로 본인의 마음을 움직이는것이 중요했던것이다.

국장의 너그러운 아량속에 숨어있는 깊은 속심은 전혀 알지도 못하고 기석은 자기 소원이 성취된것만을 기뻐하면서 그날로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집에 들렸을 때 무엇을 어찌하겠다는 의향을 똑똑히 말해주지 않는 아들에 대해 노여움을 품고 문밖에 나오지도 않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려있었던것이다.

기석은 편지에서 저번에 집에 들렸을적엔 일이 장차 어떻게 될지 알수 없어서 자세한 사정을 말씀드리지 못했음을 사과하면서 ㄱ철의 완성을 위해 기여해보겠다는 희망이 인정을 받아 사오일후에는 제강소로 돌아가겠다는것과 하루라도 빨리 그 일에 투신하고싶어 돌아가는 길에 집에는 들리지 못하겠다는 사정을 밝혔다.

그리고 어머니가 늘 걱정하고계시는 자기의 혼사문제는 사랑하는 처녀가 있으므로 지금 계획하고있는 성구기의 대형화를 완성한 뒤에 부모님들의 허락을 받아서 락착을 보겠노라고 털어놓았다.

편지를 보내고나서도 그는 부모님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써보낸 사연이 아버지에게 그처럼 큰 충격을 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편지를 발송한 사흘후인 떠나기 전날에 벌써 회답이 도착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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