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 장

사랑의 기슭


2


들어선 사람은 6호로의 젊은 용해공인 박동길이였다.

중학교를 마치고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대건설장에 자원해갔던 그는 이태, 삼년을 지내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끝내 아버지가 일하는 제강소에 옮겨왔는데 건설에 경험이 있다는것으로 하여 요즘은 확장공사에 동원되여 일했다.

이전에도 자주 놀러 오군 했지만 강기석이 그쪽 일을 맡아보게 된 뒤부터는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번듯하게 잘생긴 얼굴에 눈이 둥실한 박동길은 데트론으로 만든 옷을 입고다녔다. 그런 차림은 현장에 내려오는 시의 일군들을 본딴것이였다.

혈기넘치는 모습을 나타내는듯 모자는 언제나 뒤통수에 제껴놓고 다니는데 지금 방안에 들어와서도 벗지 않았다.

《아니, 벌써 들어왔수?》

그러지 않아도 두리두리한 눈에 놀라움을 품고 뜻밖이라는듯 뇌였다.

《요란하게 멋을 부리면서 처녀를 만나러 나가더라고 하던데… 저쪽호실 동무들이 말이요.》

겉멋을 부리기 좋아하면서도 섬세하지는 못한 축이여서 옷차림뿐아니라 언행에서도 빈 구석이 많은 친구였다.

기석은 넥타이얻으러 갔던 일을 상기했으나 사연을 밝히고싶지 않아 웃고말았다.

《그런 일이 있었지.》

《그래 만나봤소?》

《만났지.》

《멋쟁이요?》

이쪽은 대답대신 웃고있었다.

《어쨌든 잘됐소. 우리 아버지도 기석형님말을 할 때마다 늘 걱정이던데.》

박동길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시름이라도 놓은듯 천연스럽게 중얼거렸다.

얼렁뚱땅 지내는 축들을 좋아하지 않는 기석이였지만 동길이의 부접좋은 성미와 무슨 큰일을 해보겠다고 뛰여다니는 열정을 대견하게 여기고있었다.

《요즘은 동길이네가 괜찮더군. 눈에 띄게 자리를 내던데.》

《겨우 비벼대요. 모두 녀자들 아니면 풋내기니 어디 손발이 맞아야지.》

박동길은 제법 틀지게 대답한다.

《그래두 녀동무들이 괜찮아. 장인숙이랑 보라구. 몸은 약해두 일은 야무지게 하거던.》

《일은 글쎄… 그렇지만 그건 맹꽁이요, 가는데마다에서 호들갑을 떨구.》

《명랑한게 좋지. 괜히 녀자들을 탓하지 말구 자기 일이나 잘하라구. 그쪽에서야 그래두 동길이가 기둥이 아닌가! 건설에도 경험이 있겠다. …》

《그건 그렇소. 로작업에서는 신대원이지만 이런 일에서는 자신이 있소. 그래서 동원이 제기됐을 때두 자진했던게요. 이번 기회에 한번 본때를 보이겠소.》

기석은 긍정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사로청에서도 일만 잘하면 좋은데 추천해줄수 있다던데…》

《여기 공장대학같은데가 좋지.》

강기석이 하는 말을 들은둥만둥 박동길은 제나름으로 계속했다.

《나도 이제는 어엿한 용해공출신이겠다, 아버지도 존경받는 공훈제관공이니 밑바탕은 든든한데…》

눈을 뜨부럭거리는 동길이의 들뜬 표정을 새삼스럽게 여겨보면서 기석은 싱글싱글 웃고있었다.

《여어, 용해공출신을 자랑하기에 앞서 용해공의 성품을 갖추어야 돼. 아버지의 공로를 코에 걸고 나설게 아니라 거기에 손색없이 일을 해야지.》

《좌우간 기석형님을 믿겠수. 많이 도와주우.》

《물론 도와주지. 하지만 자기 앞길은 어디까지나 자기 힘으로 개척해야 돼. 그러자면 공부를 해서 힘을 키워야 해. 모르고서는 큰일은 고사하고 작은 일도 잘할수 없네.》

그 말에는 대답을 않고 공연히 방안을 두리번거리며 흥심없이 중얼거린다.

《일을 좀 잘해보자니 헐치 않구만.》 그러면서 벌려놓은 건설작업이 자질구레하고 시공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푸념을 늘어놓다가 《그건 도대체 어떻게 쓸 건물이요?》하고 물었다.

강기석은 그것이 장차 로시험생산에 필요한 원료장이라고 짐작하면서도 그렇다고 단언할수는 없었으므로 일반적으로 말했다.

《어디에 쓰건 관계없이 중요한 대상이겠으니 책임적으로 일하라구.》

박동길은 더 할 말이 없는듯 일어서서 나가려다가 문득 돌아섰다.

《내 이 정신 보지. 아까 들어설 때까지 생각했던걸 깜빡 잊었군. 지배인동지가 기석형님을 찾는다는것 같습데.》

《지배인동지가… 무슨 일로?》

《그건 잘 모르겠소.》

《지배인실로 오라던가.》

《글쎄… 아까 직장에 들렸던 동무들이 외우더구만.》

그가 나가버린 뒤에 강기석은 한동안 얼떠름해 앉아있었다. 박동길이 왔던 일도 무슨 수수께끼같고 지배인이 찾는다는 말도 애매했다.

저녁때 연구소의 중간공장에서 지배인을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요즈음 늘 그러하듯이 그곳 성구장에서 성구기가 작업하는것을 관찰하고있을 때 지배인과 당비서(당시)가 나타났던것이다. 그때 지배인은 당비서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던 걸음에 그가 서있는것을 흘깃 돌아보았었다.

지나는 걸음에 우연히 돌아봤을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나에게 성구기를 대형화할 과업을 주자는게 아닐가?)

느닷없이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배인과 당비서가 연구소의 중간공장을 돌아본것은 제강소의 공업로에서 시험생산을 준비하기 위해서일것이다.

공업로에서 시험생산을 벌린다면 성구기의 대형화는 더욱 절박한 요구로 제기되기마련이다. 누구에게든지 맡겨야 할 과제인것이다. 그렇다면 중간공장에서 우연히 맞띄우기는 했지만 벌써부터 성구공정에 관심을 품고있는 자기를 지목할수도 있지 않는가? 과업을 준다기보다 의향을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부를상싶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흥분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그런 과업을 받는다는것은 두렵고도 행복한 일이다. 자기 능력이 아무리 딸린다 해도 그런 중요한 과업은 어김없이 수행해야 한다. 아니, 수행하고야말것이다.

기석은 서둘러 옷을 차려입고 방을 나섰다.

밤에 들어서면서 날씨는 차지는듯 했다. 쌀쌀한 대기에 머리를 식히며 공장길을 걸어가느라니 흥분한 자기가 한편 어리석게도 느껴지는것이였다.

시험생산은 벌리지도 않았으니 성구기의 대형화를 아직 시도하지 않았을것이고 설사 제기되였다 해도 제강소에 능력있고 경험많은 기술자들이 수두룩한데 하필이면 자기같은 풋내기현장기사에게 그런 중대한 과업을 맡길것이냐 하는 생각이 비로소 떠올랐던것이다.

게다가 지배인은 강기석이라는 기사가 회전로직장에 있는지 없는지 알지조차 못할것이고 혹 기억하고있다 해도 안중에 두지는 않았을것이였다.

제진장치때문에 어쩌다 한번 지배인을 만나보았던 오래전의 인상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의 가슴에 남아있었다.

그것은 지난해 가을에 있었던 일이였다. 그 제진장치에 대한 도안은 공장안의 기술자들도 좋게 평가했었다. 허나 지배인이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기사장도 더 추진시키지 못했었다.

그때 강기석은 자기 구상에 확신을 가지고 지배인을 찾아갔었다. 도안의 요점을 설명하는데 흥분으로 하여 말소리가 떨리였다.

지배인은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었다. 짤막한 호박물부리에서 담배꽁초가 빠지지 않아 송곳으로 쑤셔내면서 미간을 찌프리고있었다.

《들은바가 있소.》

설명이 끝났을 때 최병기는 그렇게 말했다.

《동무의 그 구상은 기계를 하나 만드는것 같은 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공사요. 새로 설치하는 일이 클뿐만아니라 이미 있던 장치를 해체하려 해도 그보다 못지 않게 방대한 공사를 벌려야 하오. 용수의 공급, 탕크들의 개조, 일체 지하망들에 대한 재편성… 관 하나를 통과시키려 해도 수다한것을 허물어야 할지 모르는 형편에…》

《저는 그걸 모두 예견했고 계산도 했습니다.》

지배인은 청년의 조급함이 불만스러운듯 미간을 찌프린채 물부리를 입에 물고 후욱 불었다.

《국가가 수십만원을 투자하는 공산데… 이름이 뭐드라?》

시커먼 눈으로 주름살도 패이지 않은 청년의 이마며 그우에 내리드리운 머리칼을 뜯어보는 품이 자기는 귀보다도 눈을 더 믿는다는듯 한 표정이였다.

《…동무를 믿고 방대한 공사를 벌릴수는 없소.》

그리고는 더 할 말이 없다는듯 다시 물부리에 눈길을 돌리고 거기에 담배를 붙여무는것이였다.

강기석은 그때 그 자리에 그냥 서있었을뿐이다. 실망보다도 분노가 그를 사로잡았었다.

한때 공업대학의 졸업론문으로 제출되여 호평을 받았으며 그후에도 여러해동안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여 완성한 창의안의 운명이 이렇게 끝난단 말인가.

인간의 창조적지향과 내부적인 열정을 기정된 명성이나 외면적인 인상으로 헤아린단 말인가!

입을 꽉 다물고 돌아서 나오긴 했으나 창조물에 대한 그런 식의 평가에 순응할수는 없었다.

하여 그는 공정한 리해를 기대하면서 그 도안을 부의 기술지도국에 올려보냈던것이다. …

그때의 인상과 관련하여 생각한다면 지배인이 자기에게 중대한 과업을 주리라고 기대하는것은 어리석은 생각일것이다. …

무슨 일로 찾았을가?

기석은 걸어가면서 못내 궁금해했다.

휑뎅그렁한 사무실에서 작업일지를 정리하던 교대부직장장이 의아하게 물었다.

《편지 가지러 우정 나왔소?》

《편지라니요?》

《강동무에게 오는 편지가 있더군.》

부직장장은 책상뽑이에서 편지 한통을 꺼내여 그에게 내밀었다.

기석은 겉면을 읽어보고 뜯지 않은채 옷주머니에 넣었다.

《저를 찾는다기에 나왔습니다.》

《아니, 으음… 아까 전화온걸 가지고 그러는 모양이군.》

부직장장은 웃으며 시들하게 말했다.

《지배인이 찾았어.》

어째서 찾았는지는 모르고있었다.

《다른 말이 없는걸 보면 별일이 없는 모양이야. 피곤할텐데 돌아가 쉬라구.》

그는 망설였다. 허나 찾았다고 하니 만나보지 않고는 돌아설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지배인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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