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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소원과 성취


3


시험로에서의 사고가 연구사들에게 충격을 주었던것은 사실이나 그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다른 측면으로 그들을 흥분시켰다.

로체의 파손이후에 제강소 내화물직장에서는 로동자들과 기사들이 힘을 합쳐 내마모성이 강한 내화벽돌을 만들어낼것을 목표삼고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고있었던것이다.

이것은 로의 보수주기를 연장시키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사업이였으나 규산염공학에 대한 지식이 깊지 못한 구단광연구실의 야금연구사들은 거기에 아무런 도움도 줄수 없었던것이다.

(제강소로동계급은 큰일을 맡아하고있는데 과학자들인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이러한 자책감으로 하여 지형민은 마음이 무거웠다.

기초실험에서는 충분히 확인되였던 문제들도 일단 공업로에 옮겨놓고보니 여러가지로 난관이였다. 과학적으로 해명해야 할 문제들은 아직도 허다했다.

특히 중요한것은 곱으로 늘어난 원료와 연료들을 장입하기에 앞서 예비처리하는 공정을 확립하는것이였다.

야금부문의 중요한 직책에서 일해왔으며 최근 10여년동안은 야금연구부문의 사업을 책임지고 일하면서 야금공업의 주체화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오시는 수령님의 로고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지형민은 자기 맡은 사업에서 이렇다하게 뚜렷한 결실을 내놓지 못하는것을 늘 죄송스럽게 여기고있었다.

게다가 륙십이 다된 나이에 여생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까지 더하여 당의 기대에 어떻게든 보답해야 하겠다는 각오를 한시도 잊지 않고있었다.

장입량을 높이는데서 로의 안붙임이 믿음직하게 해결된다면 그다음에 문제로 되는것은 구단광을 대량으로 빚어내는 성구공정이였다.

(박성국이같은 연구사들이 꼭 있어야겠어.)

난국을 타개할 대책을 놓고 머리를 짜면서 그는 박성국이를 남아있도록 설복하지 못한것을 후회했다.

성구공정의 공업화를 진척시키려면 야금기계를 전공하는 유능한 연구사가 전적으로 맡아주는것이 절실히 필요했던것이다.

그는 사업정형을 보고하러 과학원에 올라갈 준비를 하면서 박성국이를 내려보내줄것을 해당 조직에 제기할 작정이였다.

이곳 형편과 걸리고있는 문제들을 알게 된다면 그도 응할것 같았다.

지형민이 자기 생각을 연구사들앞에서 털어놓았을 때 리평은 선선히 수긍했다.

《본인만 응해나선다면 한몫 단단히 막을수 있지요, 그동안 다른 과제가 설정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혜영이도 박성국이 다시 오기를 은근히 바랐다.

과학계에서 유망한 존재로 인정되는 연구사, 더군다나 자기에 대해 호의를 품고 늘 관심해주는 연구사와 함께 일하는것이 어찌 좋지 않겠는가.

다른 연구사들도 박성국의 학구적인 태도를 높이 평가하고있는터이여서 그가 와서 원료예비처리공정을 한몫 맡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심정이였다.

다만 원옥희만은 부원장의 견해에 불만을 표시했다.

《여러가지 과제가 많이 설정되는 조건에서 기계공학연구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저도 동감이예요. 그렇지만 왜 꼭 그 동무를 데려와야 하나요? 우리가 하는 거창한 사업이 자기의 학자연한 식견과 비위에 맞지 않아서 떠나간 사람을 말이예요! 야금기계를 연구하는게 그 사람뿐인가요. 혹은 우리는 자존심도 없는 연구사들이고 우리 집단은 존엄도 없는 집단인가요? 결코 그럴순 없어요!》

박성국이 만일 이 말을 들었거나 이 자리에 있었다면 자기를 규탄하는 이 날카로운 목소리에 어떤 반응을 보였겠는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설사 그가 여기에 있었다 해도 원옥희는 자기 견해를 표명하는데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으리라는것은 명백했다.

정의감이 강하면서도 일상적으로는 침착하고 진지하던 그 녀자는 지금 사뭇 흥분되여 얼굴빛이 창백해졌을 정도였다.

지형민은 온화한 미소를 짓고 너그럽게 말했다.

《문제를 너무 첨예하게 설정하지 맙시다. 사업의 리익의 견지에서 보아야지 지나간 일을 두고 사소한 감정이나 자존심때문에 서로 배척해서야 되겠소? 그건 공동의 연구사업에 해로울뿐이요. 안 그렇소? 원동무.》

《선생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지나간 일이나 자존심때문에만 그러는것이 아니예요. 우리 일의 성과를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 동문 자기의 소총명과 과학지상주의적인 견해로 방해만 줄거예요. 사업에 의혹을 품게 하고 신심을 흔들어놓고…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

리평은 침착하게 타일렀다.

《연구사들 호상간에 있을수 있는 마찰을 지나치게 보지는 마오. 박성국동무로 말하면 아는것도 많지만 야금기계와 관련해서는 이미 경험도 상당히 쌓은 동무니까… 이런 점을 고려해야지.》

《제 생각엔 그 동무 아니래도 그만한 능력이 있는 전문가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봅니다 》

《자, 그만들하고… 이 일은 나에게 맡겨주우.》 하고 지형민은 부탁하듯 또는 요구하듯 엄숙하게 말을 맺었다.

그리고는 무겁게 한숨을 짓고 생각에 잠겨 눈을 감았다.

일이 되지 않아 가슴이 답답한데 사람들 호상관계까지 순탄치 않은것이 언짢았던것이다.

그는 사업을 위해서 박성국이를 반드시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가 온 후에 연구사들사이에서 이러저러한 분규가 있게 되면 원옥희를 림시로 다른 일에 돌리리라 작정했다.

원옥희의 성실성을 모르는바 아니였지만 지금 곤경에 처한 시험조업의 진척을 위해서는 박성국이같은 유능한 야금기계전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또한 그의 사업이 백방으로 보장돼야 할것이였다.

원옥희가 박성국이를 데려오는것을 달가와하지 않은것은 그가 자기 견해만을 고집하면서 사업에 지장을 줄것이라는 우려때문만이 아니였고 또한 자기를 초학도로 보며 무시한데 대한 반감때문만도 아니였다.

자기만을 고집하는 태도에는 학구적인 심오성도 있어 리해되는 점도 있었고 또 자기가 지식으로나 경험으로 보아 수준이 훨씬 못하다는것을 자인하는터이므로 그러한 무시를 참을수도 있었다.

그 녀자가 박성국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보다 심리적인 원인은 과학자연한 언행에서 나타나는 자기본위적인 공명심때문이였다.

게다가 리평에 대한 멸시적인 태도에서 표현되는 교만한 성품도 싫었던것이다.

원옥희는 함께 일하는 동지들을 언제나 존중했으며 리평에 대해서도 동지로서 또 연구사업의 선배로서 존경하고있었다. 높은 책임성과 너그러운 성품, 동무들에 대한 말없는 사려와 어려운 일을 솔선 맡아나서는 고상한 인격을 존중했다. 학술면에서의 부족점도 군대에 복무했었다는 경력으로 하여 두둔하고싶었고 연구사업에서 아직껏 이렇다할 결실을 보지 못한것도 남들이 맡으려고 하지 않는 자리가 나지 않는 과제들을 자진해 맡아하는때문이라고 리해와 동정을 품고 대해오는터이였다.

그러한 리평이에 대해 박성국은 동창생이고 게다가 나이도 훨씬 손아래임에도 불구하고 늘 랭소를 품고 교만하게 대했던것이다.

그것을 통해 인테리적인 자기본위와 영웅심을 보았고 거기에 반감을 느꼈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의 슬하에서 고독하게 자라난 그 녀자에게는 주위사람들에 대한 관찰력이 발달되여있었고 진실과 허위에 대한 감촉이 또한 예민했다.

게다가 대학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받은 교육과 교양에 의한 때묻지 않은 량심이 고이 간직되여있었고 문학에 대한 애착에서 영향받은 진리와 정의감에 대한 결백한 지향이 안받침되여있었다.

그 녀자가 겨우 두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혜영이를 훨씬 손아래사람처럼 너그럽고 은근하게 대하는것도 바로 리지적면에서의 현격한 차이때문이였으며 또한 사람들의 환심을 쉽게 사군 하는 혜영이의 매력있는 외모와 명랑한 태도에 대한 서글픈 양보로써 설명될수 있는것이였다.

이러한 원옥희였던만큼 자기자신에 대해서뿐아니라 남들에 대해서도 부당하게 취급하거나 공정치 못하게 처리하는 경우에는 서슴없이 의견을 털어놓았고 좀처럼 굽어들지 않았던것이다.

연구소에서는 손우사람들이나 선배들도 그 녀자를 존중하면서도 다소 어려워했다.

결혼할 시기가 되였고 그 녀자에게 약혼자가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소개한다거나 혼담과 관계되는 말을 쉽게 하지 못했다.

자립성이 강한 그 녀자에게는 그러한 도움이나 간섭이 부당한것처럼 느껴졌던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녀자의 일을 두고 《옥희가 혼기를 놓치겠는데.… 저렇게 도고해가지고는 마주서려는 총각이 없을테니.》 하고 걱정도 했다.

도고한것은 사실이였지만 그것만이 그의 성품의 전부는 아니였다.

가정생활에서는 곡절도 겪으며 자라온 처녀였던만큼 남을 생각하는 마음도 지극했고 동정심도 깊었다.

대학시절에도 기숙사에서 남동무들이 불편을 느끼는 생활적인 손일거리들을 자진해서 말없이 도와주군 했었다.

그런 때면 마치도 생활의 궁색한 경우를 허다히 겪으며 지내온 아낙네들처럼 허물없이 굴었기때문에 그 소박하고 스스럼없는 진정에 마음이 끌려 그 녀자에게 접근한 청년들도 있었다.

하지만 옥희는 누구의 일이나 공정하게 도와주었고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남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대학을 졸업하자 모두들 뿔뿔이 헤여졌고 그에게 호의를 품고있던 총각들도 모두 짝을 구하여 보금자리를 틀었었다. 다만 한사람, 대학때부터 남달리 친근하게 지내면서 론쟁도 심하였던 청년만이 지금도 가끔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는 편지속에 다감한 정서를 담아 보내오군 하는데 옥희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을만 한 회답을 보내는 정도였다.

그 청년은 공업잡지의 기자였다.

원옥희의 생활과 관련되여있는 이러한 깊은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그 녀자의 성격에 대해서도 아직 깊은 리해를 가지고있지 못하는 지형민은 침통한 기분에 싸여 과학원으로 떠나면서 박성국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데려올것이며 불가피한 경우엔 원옥희를 림시로 본소에 보내든가 중간공장에 나가 일을 보도록 조처하리라 결심을 굳히였다.

지형민이 떠나가는 날 원옥희와 최혜영은 구단광시제품을 포장한 짐을 들고 역전에까지 나갔었다. 돌아오는 길에 둘이는 소년회관옆에 있는 소공원의 의자에 앉아 휴식했다.

무더위가 없는 청명한 여름날이였다.

공원에는 인적이 드물었고 흰 버들숲이 한가롭게 떠다니고있었다. 해빛은 거리에 넘치고 아담하게 가꾸어놓은 화단에서는 나비들이 가볍게 춤추며 돌아갔다. 삼라만상은 6월의 다양한 해빛에 미소로 대답하고있었으나 원옥희의 얼굴에는 수심이 어려있었다.

《난 아무래도 본소에 돌아가게 될것 같애.》 하고 그 녀자는 남의 말을 하듯 혼자소리로 뇌였다.

《왜요, 딴 과업이 있어요?》

즐거운 기분에 싸여있던 혜영은 놀라운듯 물었다. 원옥희는 그 말엔 대답없이 생각에 잠겨 계속했다.

《하지만 난 가지 않겠어. ㄱ철을 완성하는 사업에서 물러서지 않을래. 차라리 중간공장에 나가 일할테야.》

《중간공장에서요?》

《그럼, 로동자들과 같이 일하면서 관찰도 하고 경험도 나누고… 거기 중간공장장아바이는 참 좋은 사람이야.》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해요? 참 언니두.》

《이제 그렇게 하겠지. 나역시 각오하고있고.…》

혜영은 깨달았다.

끝없이 뻗어가는 두 평행선, 언제 가도 접근할수 없는 박성국이와의 관계.…

시름에 싸인 원옥희의 모습을 엿보면서 동정을 느꼈다. 그러자 그와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자기 처지를 의식했다.

혜영은 손에 쥔 꽃송이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지금 가까이에 없는 그 청년을 그려보고있었다.

강기석은 편지에서 몸건강히 잘있으며 맡은 과제도 원만히 수행한다는 소식을 전해왔었다.

혜영이의 안부며 제강소에서의 일이 어떻게 되여가는가를 궁금해하였었다.…

이날 저녁 혜영은 강기석에게 두번째 회답을 썼다.

정겨운 심정을 담아 인사를 보내면서 자기는 언제나 그의 일이 잘되여가기를 바라고있노라고 축원했다. 떠날 때에 자기가 한 말-아버지가 돌아오면 자기들의 관계에 대해 털어놓겠다고 한 말은 아직 실천하지 못했노라고 량해도 구했다.

아버지가 출장에서 돌아온무렵부터 동생의 입원으로 하여 집안이 온통 어수선하고 시험생산에서도 난관이 계속되여 아버지는 전에없이 심각해서 지내는터이여서 그런 말을 비칠수 없었다는것과 그리하여 뒤날로 미루었음을 알렸던것이다. 편지끝에서 혜영은 부디 노력하여 사업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어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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