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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소원과 성취


2


체소한 몸에 머리가 반나마 센데다 말없이 조용한 지배인의 안해 지어금은 뻘겋게 충혈된 눈을 내려깔고 의자 한끝에 앉아있었다.

장대한 체구에 백설같이 흰 위생복을 팽팽하게 입은 의사는 푸접없이 말했다.

《사람이 이 지경이 되도록 부모들은 대체 무얼했소? 본인도 본인이지만 부모들은 왜 그렇게 무관심했느냐 말입니다.》

《진료소에 갔댔습니다.》

부인의 목소리는 잦아드는듯 했다.

《아프다고 했다면 자주 가봐야지요. 한번 가서 안되면 두번, 세번 찾아가고 그 병원에서 안되면 더 큰 병원에 가보고… 워낙 잘 나타나지도 않는 증상입니다.》

《선생님, 어떻게든 아이만…》

의사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수술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강요할수는 없지만.》

《선생님, 제발…》

의사는 처치실쪽으로 나가버렸다.

녀인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지었다.

그러자 온몸의 생기가 그 한숨과 함께 빠져버린듯 더욱 풀이 죽고 가련해졌다.

뚜벅뚜벅 층계를 올라오는 발자욱소리가 나더니 심득수가 들어섰다.

그는 가쁜숨을 몰아쉬면서 방안을 둘러보았다.

웅크리고앉은채 사색이 되여있는 녀인쪽으로 걸어갔다.

《아이는 어떻습니까?》

녀인은 얼굴을 들어 그를 보더니 울기 시작했다.

《비서동지, 우리 영철이를 살려주십시오.》

심득수는 괴로운듯 눈길을 떨어뜨렸다.

나이지숙한 간호장이 들어오더니 물었다.

《환자의 아버집니까?》

《아버지는 출장지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우린 아버지를 찾았는데요. 어머니는 그저 자기 말만 하지 우리 권고를 듣지도 않습니다.》

간호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녀인을 데리고나갔다.

(엎친데 덮친다더니.…)

그렇게 생각하면서 비서는 의자우에 무겁게 앉았다.

한시간전에 공장에서는 시험로의 입구가 무너졌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하여 분위기가 소란했다.

그도 현장에 나가있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지배인의 아들이 입원했는데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는 전화가 왔다.

하여 그는 곧 이리로 온것이다.

간호장은 뚱뚱한 의사와 함께 다시 나타났다.

의사는 관자노리가 희숙희숙하고 표정이 심중한 심득수의 모습을 눈여겨보더니 쥐고있던 종이를 탁상우에 놓았다.

《아버지가 오늘래일 온다면 기다릴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환자에게는 몹시 불리합니다. 지금은 시간을, 분을 다툽니다. 며칠만이라도 일찌기 병원에 왔더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겁니다. 의사협의회는 수술과 관련하여 환자의 생명에 대한 보호인의 보증을 요구합니다.》

심득수는 탁상우에 놓인 누르스름한 얇은 종이장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한 젊은이의 생명이 놓여있었다.

그는 지배인이 딸을 무척 귀중히 여기고 살뜰히 사랑하면서도 아들은 엄하게 굴고 궂은일을 시키며 바르지 못한 소행을 용서하지 않는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지배인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였다.

무거운 책임에 대한 의식이 그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혈기가 올라 불그레해진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내돋았다.

그는 무겁게 한숨을 짓고 종이장을 자기앞으로 당겨놓은 후 보호자를 대신하여 서명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의사를 향해 무엇인가 절절한 당부를 하고싶었으나 그만두었다.

그러한 당부가 전혀 불필요함을 알고있었던것이다.

의사는 자기의 무거운 책임을 조금도 덜어줄수 없는 그 얇은 종이를 대수롭지 않게 집어들더니 수술실로 가버렸다.

방안에 홀로 남은 그는 담배를 붙여물었다.

공장에서는 지금 로의 복구사업이 벌어지고있을것이였다.

하지만 그는 이 자리를 떠날수가 없었다.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자그마한 소리에도 날카롭게 귀기울이며 바야흐로 한 인간의 생명이 결정되고있는 수술실로 그의 상념은 달리고있었다.

지금 그곳에서는 의사들이 수술칼을 들고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여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숨가쁜 로동을 하고있을것이다.

심득수는 의사들의 책임적인 사업과 흥분된 심정을 리해할수 있었다.

그자신도 근 삼십년전의 어느 가을날 인사불성의 중태에 빠져 생사의 지경을 헤매며 수술칼을 든 의사들의 손에 운명을 맡긴채 쓰러져있은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설비들이 제대로 갖추어지고 촉수높은 전등으로 밝혀진 흘륭한 수술실이 아니라 부랴부랴 차려놓은 야전병원이였다.

련합부대의 기동을 보장하기 위해 도로가의 야산들에 포진했던 대대는 밀려드는 적기갑부대의 선견대와 맞붙었었다.

작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시간을 쟁취하기 위해 치렬한 격전이 벌어졌었다.

힘겨운 전투를 치르면서 대대는 반나마 손실을 입었었다.

중대장도 희생되였다.

야산코숭이의 반땅크총좌지에서 심득수는 사수에게 탄알을 섬겨주고있었다.

그는 중대의 정치일군이였다.

전투경험은 많지 못했으나 온 전투구역이 그 좌지를 주시하고있음을 깨닫자 그곳으로 달려왔던것이다.

적땅크직사포의 타격에 그 좌지가 소멸된것은 철수명령이 전달되기 직전이였다.

화약연기와 흙먼지가 매캐한 속에서 탄창을 더듬어쥐고 일어서던 그는 맥없이 그 자리에 쓰러졌었다.

군복바지가랭이를 물들이며 흐르는 피가 메마른 가을땅을 질펀히 적시는것을 보았다.

사수를 찾다가 또다시 그 자리에 쓰러졌었다.

누가 자기를 업어냈으며 어떻게 야전병원에까지 후송되였는지 알지 못했다.

수술한 뒤 의식이 회복되여 처음으로 보게 된것은 별이 총총한 밤하늘이였다.

뜰앞에는 부상병들이 누운 담가들이 놓여있는데 군의들과 간호원들이 그사이를 말없이 부산하게 지나다녔다.

그가 눈을 뜬걸 보고 간호원이 허리를 굽히며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었다.

상처자리에는 심장이 하나 더 생겨난듯 툭툭 세차게 울리며 쏴났으나 아픔을 하소연하지 않았다.

허전해진 심정에 싸여 고요히 누워있었다.

먼곳에서 포사격소리가 울리고 총성이 소란스럽게 들려왔다.

《아군이 공격을 시작했소.》

마스크를 턱에 내리운 키가 큰 군의가 뜨락을 지나 집쪽으로 걸어가면서 흥분해서 뇌였다.

《아군이 공격을 시작했대요.》

곁에서 간호원이 허리를 굽히고 살틀하게 말하는것이였다.

그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간호원의 손을 꼭 쥐였다.

뜨거운 눈물이 고여올라 밤하늘의 별들도 흐릿해졌다.

함께 싸우던 전우들이며 지금 저곳에서 싸우고있을 전우들이 그리워지는것이였다.

자기를 구출해준 동지들이며 생명을 지켜주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군의며 간호원들에 대한 감사의 정이 가슴에 넘치는것이였다.

그것은 그 별빛흐르는 밤에 눈시울이 뜨겁도록 심장에 새겨진, 위대한 수령님께서 진두에 서계시는 조국이였다.

발자욱소리가 단조롭게 울렸다.

지배인 안해는 안정을 잃고 복도에서 서성거린다.

의자에 앉았다가는 수술실앞에까지 걸어가보고 다시 돌아와서는 한숨을 짓고.

딸은 돌려보냈으나 부인은 돌려보낼수가 없었다.

아들의 생명을 우려하는 어머니의 심정이 오죽하랴.

생명은 소생한다 해도 아들의 몸에 어떤 이상이 생길는지 어머니는 마음을 놓지 못할것이다. 어머니들이란 그러기마련이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던 때의 일들이며 기쁨과 실망에 싸여 눈물짓던 어머니의 모습도 어제런듯 떠오른다.

기차역에서 내려 얼어붙은 눈길을 따라 마을로 올라갈 때 소발구우에 비스듬히 의지하여 바라보았던 달빛어린 낯익은 산천들이며 못내 그리워하던 고향집웃방에 누워서도 잠들수 없었던 흥분이며 야밤삼경에 아들이 짚고온 짝다리지팽이를 남몰래 집어보며 소리없이 한숨짓던 어머니의 모습은 세월이 흘러가도 잊혀지지 않는다.

시대는 전진하고 생활은 도처에서 들끓고있었다.

투쟁하는 대오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려고 분연히 일어섰고 전쟁의 상처를 드러내는 거치장스러운 지팽이를 버렸었다.

준엄한 환경에서 자기를 검열해보려고 또다시 그는 길을 떠났었다.

전선에서 돌아온 병사를 알아보고 자리를 내여주고 친절을 베풀며 불편이 있을세라 돌보아주던 그 귀중한 사람들은 지금 모두 어디서 일하고있는가?

전선병사의 표적만 보고도 경의를 품고 따뜻이 맞아들이며 정겹게 고무해주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낙네들, 소년들, 공장사람들…

그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이끄시는 귀중한 내 조국이였다.

그때로부터 심득수는 자기의 붉은 피가 흘러 적시던 이 땅과 이 땅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것에 대하여 무심하게 대하지 않았고 사람들과 생활에 대해 뜨거운 애착을 느꼈었다.

복구와 건설이 들끓는 일터에서 청춘의 정열을 바쳐가며 로동에 헌신했고 가슴에 넘치는 신념으로써 사람들을 투쟁에로 고무했었다.…

문이 소리없이 열리며 지배인 부인이 조용히 들어섰다.

주름진 자그마한 얼굴에 수심과 불안이 어리여 더 초췌해보인다.

《비서동지, 일이 바쁘실텐데 돌아가지 않고…》

《이쪽에 와앉으십시오.》

자리를 권하며 따뜻하게 말했다.

《수술이 끝나는걸 보고 가겠습니다.》

녀인은 안도감에 싸여 의자에 앉았다.

꺼질듯 한 한숨끝에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린다.

《저렇게 골병이 든 아이를 글쎄 자꾸만 일하기 싫어서 게으름을 피운다고 했으니…》

《나도 듣긴 했는데… 등한하다나니 형편이 이럴줄은 몰랐습니다.》

《제 부모도 모르는걸 남들이야 어떻게 알겠습니까. 미타한 생각을 하면서도 애들 아버지 말이 옳겠거니만 여겼지요.》

《지배인동지야 일이 바쁘니까 집형편을 언제 돌보게 됩니까.》

《경황이 없어 차라리 내쳐두기라도 하면 좋지요. 꾀병을 한다고 나까지 꺼들여 꾸중만 했지요.》

《아주머니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으면 제 주장도 좀 하셔야지요.》

침통한 분위기를 가실양으로 웃으며 말했다.

녀인은 사뭇 결연한 표정이였다.

《이날이때까지 그저 그렇게 살아왔지요, 하고싶은 말이 있어도 참고. 내가 그저 소견이 좁고 몰라서 그렇겠거니만 생각했어요.》

《그러니 앞으로는 가정에서도 옳다고 생각되는 점은 주장도 하십시오. 가정에서도 비판으로 서로 도와주군 해야지요. 그런 분위기가 있어야 합니다.》

부인은 그 말을 곰곰히 새겨듣고있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생각되는바가 많습니다. 저도 이번일을 통해 크게 깨달았어요. 후회되는 일이 많지요.》

《그렇다고 집안이 소란스러워져서는 안되지요. 어쨌든 많은 면에서 지배인동지가 옳으리라는것은 저도 담보합니다. 원칙이 있고 사리가 밝은분이니까요.》

《백번 사리밝으면 무얼합니까, 한번 이런 변이 생기는데야.》 하면서 지어금은 또 한숨을 지었다.

《사람의 생활에 어찌 실수가 없겠습니까. 하지만 모든 일이 다 잘될겁니다.》

녀인은 어깨를 떨어뜨리고 다소곳이 앉아있었으나 초조감을 이길수 없는지 조용히 일어서 나가버렸다.

(가정문제이긴 하지만 이건 그저 지나칠수 없는 일이야. 지배인동무의 사람됨이 어느모로나 나타나있거던.) 하고 비서는 생각했다.

이 일과 관련하여 사업을 놓고 이것저것 더듬어보았다.

(책임성도 요구성도 다 좋은데 주관이 너무 강하고 남들의 말을 믿지 않거던.)

생각은 어느덧 시험조업에 이르렀다.

만약 이번 조업을 지배인의 주장대로 했더라면 어떻게 되였을것인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로의 머리부는 붕괴되지 않았을것이지만 조업은 부족점을 드러내지 않은채 진전이 없이 시간만 끌었을터이지. 그러니 비록 실패는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내민게 잘된 일이야. 시험조업그루빠의 적극성을 지지한것이 잘된 일이였어. 그러나…

결함은 로출시켰지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이 문제였다.

환자의 수술과 치료는 담당의사 한사람의 기능에 달린것이지만 야금로의 시험조업은 한두사람의 기능이나 기술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너무나 크고 많은 문제들이 걸려있는것이다.

어떻게 극복하고 전진할것인가?

당사업을 책임지고있는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에서 그의 생각은 모대기고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아퀴짓지 못한채 또다시 문밖의 동정에 귀를 기울이며 수술의 경과에 마음을 조이였다.

너무나도 시간을 끄는것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혹시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기지 않겠는가?

그는 한숨을 짓고 멍청하니 창문쪽을 보고있다가 불안을 덜어보려고 또다시 담배를 붙여물었다.…

세시간쯤 지났을 때 간호장이 나타났다.

수술이 끝난것이다.

그때까지 한자리에 그대로 앉아있던 심득수는 흥분하여 일어섰다.

모든 일이 원만하게 진행되였다는 말을 듣고도 그는 돌아갈수 없었다.

수술의사를 만나 자세한 내용을 알고싶었다.

간호장은 망설였으나 이쪽의 절절한 소원을 물리칠수 없어 하는수없이 안내했다.

몸이 뚱뚱한 외과의사는 자기 방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있는데 다른 의사 한명이 그의 팔에 강심제를 주사하고있었다.

그의 얼굴을 찬물로 찜질하던 간호원이 귀가에 대고 속삭여서야 외과의사는 눈을 떴다.

《생명은 담보되였습니다. 경과만 좋으면 회복도 빨리 될겁니다. 생명력이 왕성한 젊은이니까!》

눈자위가 푹 꺼져들어간 외과의사는 간신히 입을 놀리고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의사선생, 수고하셨습니다. 》

심득수는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이 말을 거듭하여 뇌이면서 그의 손을 꽉 잡고있었다.

얼마후에 병동을 나서던 그는 현관앞에서 막 들어서고있는 최병기와 마주쳤다.

《언제 오셨습니까?》

비서의 묻는 말은 여겨듣지도 않으면서 《아니, 비서동문 어떻게 여기 와있소?》 하고 놀라와하는것이였다.

《수술은 조금전에 끝났습니다. 경과도 아주 좋고…》

《오,참 그래.…》

당황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무엇인가 말하려 했으나 어쩐 일인지 훌 내젓고는 딸이 들어간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차를 타고오면서 딸에게서 상세한 전말을 들었던 모양으로 흥분하고 안정을 잃은 모습이였다.

심득수는 운전사더러 먼저 가라고 이르고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등넝쿨아래의 긴 의자에 가서 앉았다.

위로도 할겸 지배인과 함께 갈 생각이였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최병기는 병동에서 나왔다.

기다리고있는 비서를 보자 뚜벅뚜벅 마주 걸어오면서 《병실에는 들여놓지 않는구만.》 하고 어설프게 웃었다.

《아마 그럴겁니다. 환자가 중태에 처해있으니까. 담당의사나 만나보면 되지요.》

《거기서도 면회사절이요. 의사선생의 혈압이 높아졌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딱 막아서누만.》

병원사람들로부터 랭대를 받았던 모양으로 말끝에 얼굴을 찌프리는것이였다.

《후에 만나봅시다, 아무래도 치료를 많이 받아야 할 형편이니까.》 하고 심득수는 그를 안심시켰다.

《좌우간 비서동무가 우리 애때문에 수고했수다.》

최병기가 하는 말이였다.

자기의 부드럽고 따뜻한 심정조차도 거치른 말로 나타내는데 버릇된 그에게는 다른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묵묵히 앉아 담배를 피우던 최병기는 푸우- 하고 숨을 내뿜었다.

《화는 쌍으로 온다더니, 오늘은 무슨 날인지.…》

그리고는 얼굴을 찌프리고 생각에 잠긴다.

심득수는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아들의 뜻하지 않은 병고가 충격을 주어 가정에서의 자기 처사를 뉘우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은 사업에서의 자기 태도를 반성하는 계기로도 될것이다.

생각하고 스스로 깨닫는것은 좋은 일이지.…

하지만 최병기는 지금 공장일을 생각하고있었다.

《내 오자마자 현장에 들려 부원장이랑 있는데서 단단히 얘기를 했소. 하루이틀에 되는 일이 아니라구 그만큼 말했는데도 기를 쓰구 내밀더니… 이게 무슨 꼴이요. 로를 못쓰게 만들구.》

지배인의 표정은 사뭇 심각했다.

비서는 처음 듣는 소리가 아닌 그의 말에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그 무거운 침묵속에는 자기자신에 대한 불만도 스며있었다. 동시에 당일군으로서 자기가 가져야 할 자각도 뚜렷해지는듯 했다.

《로가 붕괴됐다고 해서 사업이 온통 실패한건 아니지요. 오히려 이걸 계기로 부족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것인가 하는 과제들이 더 명백히 설정되였고 전진을 위한 방도들이 탐구되게 되였지요. 나도 아까 사고현장에 있었지만 내화물기사들도 로기사들도 이제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겠는가를 똑똑히 알게 되였다고 했습니다.》

《…》

《지배인동무는 늘 자기 주견만을 내세우는데 나는 거기에 찬성할수 없습니다. 로동자들이나 기사들, 과학자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지요. 그 사람들도 다 생각이 깊은 사람들이고 만난을 무릅쓰고 ㄱ철을 해내겠다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다른 경우에 이런 담화가 진행되였더라면 최병기는 사실들을 례중하면서 반박했을수도 있었으나 오늘은 어쩐지 입을 다물고있었다.

오늘 로앞에서 겪었던 일과 더불어 아들의 입원과 관련된 사실이 그로 하여금 생각에 잠기게 했던것이다.

그는 담배를 찾다가 찾지 못하고 비서가 내민것을 집어서 붙여물었다. 한모금 깊이 빨고는 무슨 생각에 잠겨 묵묵히 앉아있었다.

《털어놓고 말하면 나는 여태까지 지배인동무가 주견이 확고한것을 좋게만 보았습니다. 사람들을 지도하고 기업을 관리하는데서 지휘관이 주견없이 흔들린다면 무슨 일이 바로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뛰여난 지휘관이라 해도 그의 주견 하나만으로는 아무 일도 성사할수 없습니다. 독불장군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창조적능력을 최대한으로 계발하고 동원하며 옳게 조직할줄 아는 사람만이 지도일군으로서의 책임을 훌륭하게 다할수 있습니다. 결국은 대중이, 사람들이 모든걸 다 해놓지 않습니까!》

《…》

《나는 강기석동무를 다른 일에 동원시킨 사실도 요즘에야 알았습니다. 물론 기사 한두명을 다른 일에 동원시킨다고 해서 안될것은 없지요. 하지만 그 동무는 ㄱ철의 완성을 위해 무엇인가 기여해보려고 마음쓰는 기사가 아닙니까.

기사장동무에게 물어봤더니 사실은 자기도 보내고싶지 않았지만 지배인동무가 출장을 떠나면서 지시했기때문에 어쩔수 없었다고 합니다.

상부의 요구에 응해야겠지만 그 동무가 꼭 가야 하는지 또 후에 가면 안되는지 하는것도 알아보고 다른 일군들의 의사도 참작해서 결정하는 편이 훨씬 좋지 않겠습니까!

작은 일이긴 하지만 이것도 다 사람에 대한 문제, 사람들과의 사업에 대한 문제지요. 사람들의 마음을 속단하지 말고 그들의 의사를 심중히 고려해야지요.》

《…》

《털어놓고말하면 나는 여태까지 많은 면에서 지배인동무의 견해를 지지했지만 이번에 ㄱ철을 하면서부터는 생각을 여러가지로 하게 됩니다. 주견이 확고한 지휘관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상도 확고하다고 볼수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이건 지배인동무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의견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ㄱ철생산이 단순한 생산공정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했는가 못했는가,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일을 하는가 못하는가, 문제는 이렇게 설정됩니다. 중간은 있을수 없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무장됐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는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배인동무의 경우에는 명백하지 않습니까. 몇년씩 불궈두고 천천히 해야 한다는 리론도 결국 질질 끌자는것인데 그건 일을 망치는 길입니다. 확고하지 못하단 말입니다.》

《나도 하자는 사람이요!》 하고 최병기는 성이 나서 툭 쏘았다. 《책임이 무겁고 방도가 막연해서 그러는거지.》

비서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어딘가 눈앞을 지그시 내다보는 그의 량미간에는 심각한 주름이 패워있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흥분할줄 모르는 최병기였건만 지금은 손에서 담배불이 그냥 타들어가는것도 모르고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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