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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사랑의 기슭


12


《전 지나가다가 기타소리가 들리기에 저기서 듣고있었어요.》 하면서 혜영은 합숙건너편을 눈으로 가리켰다.

《씩씩하고 명랑한 곡조뿐아니라 연주도 무척 귀에 익더군요. 무슨 즐거운 일이 있었던 모양이지요?》

기석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처녀가 자기를 은근히 기다리고있었다는것과 기다리는 심정이 결코 유쾌하지 못했다는것을 비난섞인 어조로써 느꼈다.

이렇다하게 즐거워서가 아니라 구상에 몰두하다가 머리를 쉬려고 기타를 탔으며 바람이라도 쏘이려고 합숙을 나섰던 참이였다.

《참, 혜영동무가 부탁하던 책을 가져올가요?》

강기석은 그 녀자에게 한 약속을 상기하고 그렇게 말했으나 기일이 너무 지나간것으로 하여 스스로도 미타해했다.

《이젠 전혀 필요없을는지…》

《아니예요, 필요해요. 하지만 지금은 그만두세요. 다음번에… 일요일 저녁에 갖고 오세요.》

그 일요일 저녁이 마련되기나 하겠는지… 하고 기석은 속으로 쓸쓸히 생각했으나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들은 말없이 길을 따라 걸었다. 거리에는 가로등이 켜지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차정류소에서는 방금 떠나간 전차를 타지 못한 젊은 축들이 어째서인지 왁자하게 웃고있었다.

사람들의 흥성거리는 분위기도 그들의 기분을 유쾌하게는 하지 못했다.

《우린 만나기가 힘들군요.》

처녀의 목소리는 명랑했으나 그 말에서도 비양조가 울리고있었다.

기석은 응대없이 걸음만 옮기는데 희미한 어둠속에 던져진 그의 눈길은 두사람의 앞날을 내다보는듯 침착했다.

덤덤한 그의 거동을 의아하게 여기며 혜영이가 말했다.

《동문 이상해요. 약속도 지키지 않더니… 이렇게 만나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지요?》

《그동안 좀 바빴습니다.》하고 기석은 생각에 잠겨 대답했다.

제강소에서는 ㄱ철의 시험생산을 준비하면서 구단광 성구작업을 본격적으로 벌리고있었다. 작은 성구기로 빚었으므로 품이 많이 드는데다 생산면적도 많이 차지하므로 공정을 조직하고 흐름을 바로잡느라고 기석은 쉴 틈도 없었다.

게다가 성구기를 대형화해야겠다는 절박한 생각에 퇴근하면 문헌자료의 연구와 구상에 몰두했었다.

바쁘게 지내는 속에서도 혜영이를 잊은적은 없었다.

하지만 처녀에게로 달리는 자기 마음을 한껏 자제하고있었다.

그래서인지 혜영이와 함께 걷고있는 지금도 그의 마음은 명랑하지 못했다.

그들은 광장을 엇비듬히 가로질러 공원입구를 향해 걸어가고있었다.

봄밤의 대기는 푸근했고 공원변두리의 나무숲에서는 보금자리에 찾아드는 새들이 깃을 치며 푸드덕였다. 말없이 걸어가던 처녀는 무거운 기분을 가시려고 해서인지 어둠속에서 미소를 짓고 혼자소리처럼 나직이 말했다.

《여기 봄철은 너무 늦어요. 다른데는 벌써 살구꽃이 지고있는데.》

《…》

《저것 보세요. 나무이파리가 겨우 돋아났을뿐이예요.》

기석은 머리우를 쳐다보았다.

바람에 흐느적이는 나무가지들은 희멀건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더욱 설피여보이는데 엉성한 가지끝에는 무리를 얹은 쪼각달이 걸려있었다.

《난 여기 봄철이 처음이예요.》

《여긴 봄날씨가 찹니다. 서북풍까지 몹시 불고 그대신 여름철은 좋지요. 무더위가 없고 서늘한게.》

《여름이면 여름철답게 더위가 무르녹는것이 좋지요. 해수욕도 할수없는 여름, 그런 바다가가 뭐 좋아요. 여기선 여름옷을 별로 입어볼새도 없더군요.》

《그래도 무덥지 않은게 좋지요. 일하는데서도 능률이 나구. 더군다나 로앞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그래요. 그럴수 있어요.》

처녀는 리해할만 하다는듯 동의하고는 생각에 잠겨 걷다가 말했다.

《전 동무를 만나 하고싶은 말이 많았어요.》

처녀의 명랑한 말에 강기석은 속으로 대답했다.

(그렇지만 이제 아무런 말도 할 필요가 없게 될거요.)

그는 오늘 이렇게 만난 기회에 모든것을 다 밝히고 자기들의 관계를 명백하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면서도 혜영이의 명랑한 기분때문인지 자기가 하려는 말을 선뜻 꺼낼수가 없었다.

《이번에 국장동지가 내려와서 강동무를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지요? 제진장치에 대한 기술자료를 훌륭히 준비했다고… 동무의 능력이 시위됐다더군요.》

혜영은 상글상글 웃고있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괜한 소리입니다. 그 제진장치는 우리 제강소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이지요.》

《왜 그렇겠어요! 기사장동진 장차로는 도입할것이라고 하더군요.》

《다른 모든것처럼 기계나 설비의 가치도 상대적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불필요하게 될수 있지요.》

《어쨌든 지도국의 일군으로부터 능력이 인정되였다는건 좋은 일이예요. 그건 참 훌륭해요.》

《그렇지만 지베인은 인정하지 않지요. 무시해버렸습니다.》하고 강기석은 짐짓 유쾌하게 말했다.

그 말에서 비난의 뜻을 감촉한 혜영은 어둠속에서 방긋이 웃었다.

《동문 나에 대해서 무슨 말을 들은 모양이군요.》

《우연히 알게 되였습니다. 그걸 요즘에야 알게 된것이 우리들의 사이를 위해서는 다행한 일이였지요.》

《그럼, 그걸 진작 알았더라면 우리들의 관계가 지금처럼 될수 없었다는건가요?》

강기석은 대답없이 묵묵히 걸음만 옮겼다.

그러자 혜영은 호기심을 품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아버지가 지배인이라는것으로 하여 나에게 호감을 품고 접근해오는 남자들은 돌아보지도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 점이 오히려 장애로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요.》

《…》

《동문 우리 아버지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창조를 위해 고심한 나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을뿐아니라 나의 존재마저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좋게 생각할수는 없지요.》

기석의 어조는 어디까지나 침착했는데 그것으로 하여 그의 말은 더욱 힘있게 울렸다.

《우리 아버진 그렇게 편협한 사람이 아니예요!》

《자식들은 가정안에서의 부모들에 대해서는 잘 알수 있지만 가정밖에서의 부모들에 대해서는 모를수도 있습니다. 하물며 이 고장의 자연과 계절도 잘 모르는 동무가 이 고장에 와서 진행한 자기 아버지의 사업에 대해서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너무 흥분하진 마세요.》

처녀는 웃으면서 타이르듯 부드럽게 계속했다.

《그 말이 옳을수도 있어요. 하지만 동문 어차피 우리 아버지에게 잘 보여야 할거예요. 자기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나를 위해서도… 그렇잖아요?》

강기석은 생각에 잠겨 걸어가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자기를 잃으면서 환경에 순응할수는 없습니다. 그 환경이 자기 리념에 모순되는 경우에 또 자기를 위축시키는 경우엔 더욱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사랑을 위해선 기꺼이 심장을 바치겠지만 정의를 위해서는 사랑도 기꺼이 바치겠다는겁니다.》

이끌리듯 그의 모습을 쳐다보던 혜영은 《심각하군요.》하고 입밖에 내여 중얼거렸다.

한동안 잠자코 걸음을 옮기다가 미소를 머금고 묻는다.

《그럼 싸울 작정이세요?》

기석은 입을 다물고있었으나 혜영은 명랑하게 말을 이었다.

《맞서는건 동무에게 불리해요. 어느 모로 보나… 그렇잖아요?》

《상대가 강해보이면 굽어들고 약해보여야 도전한다면 리념이나 존엄에 대해 말할 여지도 없지요. 그건 단순히 비굴성입니다.》

《그건 어떻든간에…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제발 어리석은 노릇은 하지 마세요. 그건 동무에게도 나에게도 불리해요.》

《그러나 이미 시작했습니다.》

《어떻게요?》

혜영은 호기심을 품고 그를 돌아보았다.

《나는 당위원회에 찾아가서 털어놓았습니다. 아래사람들의 의견을 심중하게 받아들이고 창발성을 고무하기는 고사하고 랭담하게 대하며 무시하고 억제하는 관료주의적인 작풍에 대해서 의견을 제기했지요.》

처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의 말이 거짓도 롱담도 아니며 그의 가슴속에 자리잡은 불만을 다 털어놓은것도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던것이다.

《동문 괜히 그랬어요. 그러지 않아도 우리 아버진 작풍때문에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걱정스럽게 말하고는 소리없이 한숨을 지었다.

길가 오른편에는 넓다란 련못이 있는데 희벗하니 밤하늘이 어려있는 그 물면에서는 붕어들이 뛰여올랐다.

련못가운데의 자그마한 섬에는 둥그런 정각이 서있고 그리로 통하는 좁은 길이 구름다리를 거쳐 뻗어있었다.

정자에서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이는 한동안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공원은 호젓하고 대기는 신선했으나 어슴푸레한 물면을 배경으로 하여 드러난 나무들의 자태는 추억속에서처럼 정다왔다.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가지 휘늘어진 버드나무아래의 긴의자에서 변성기에 들어선 청년들이 흥청거리는 손풍금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곡조는 가락맞지 않게 울렸으나 씩씩하게 끌고나가는 그 선률이 이밤의 정취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듯 했다.

《괜찮아요. 우리 아버진 야금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을 누구보다도 좋아해요.》

무슨 생각을 하고있었던지 혜영은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강기석에게는 처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도, 흥겹게 울리는 노래소리도 어째서인지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상싶었다.

《왜 아무 말도 없어요? 기분이 언짢아요? 내가 공연히 아버지말을 하는게 아니예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강동문 원래부터 야금기사가 되려고 희망했댔어요?》

《아니요. 난 어려서부터 바다를 사랑했지요. 먼바다로 다니는 기선의 선장이 되는것이 나의 꿈이였습니다.》

《호, 그런데 길이 달라졌군요!》

《생활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하고 기석은 명상에 잠겨 말했다.

《제강소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지요?》

《…》

《회전로가 그렇게 흥미있어요?》

처녀는 호기심을 품고 물었으나 이쪽은 내키지 않게 천천히 대답했다.

《한두마디로 대답하기엔 어려운 질문입니다.》

《어째서요? 자기가 종사하는 직업인데…》

《마음에 든다든가 흥미있다든가 하는것이 언제나 직업을 선택하는데서 결정적인 조건으로 되는것이 아니지요.》

《…》

《난 중학교를 졸업하고 제강소에서 일하면서도 해운대학에 갈 희망을 품고있었지요. 입학원서도 냈댔습니다. 그러나 그무렵에 집이 다른곳으로 이사가게 되였습니다. 아버지는 제강소에서 지배인으로 있었는데 일을 잘못하여 해임되였던겁니다. 나는 해운대학에 가려던 꿈을 버리고 제강소에 남아 일하면서 여기 공업대학을 다녔지요. 마음에 든다거나 호기심때문이 아니라 그 어떤 결심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처신하게 했습니다.》

《그렇군요.》하고 혜영은 풀기없이 애매하게 뇌였다. 방금 들은 말이 그 녀자에게는 너무나 뜻밖이였던것이다.

그의 아버지에 대해 더 묻고싶었으나 그를 괴롭히게 될가봐 묻지 않았다. 그렇다고 침묵을 끈다는것은 더욱 어색한 일이였다.

《그럼 지금은 어때요? 애착심이 생겼는가요? 여기 일터가 말이예요.》

《동무도 아다싶이 야금기업소란 대체로 다른데 비해 작업장이 거칠고 고열을 받으며 일해야 합니다. 어느 누가 깨끗한 작업장에서 힘들지 않게 일하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난 로앞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을 알게 되였습니다. 회전로는 나의 집이나 다름없고 로장이며 용해공들은 형제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은 내가 괴로와하는 눈치면 꾸짖기도 했고 힘들어하면 도와주었고 앓기라도 하면 쓰다듬어주었습니다.

그들은 교대를 바꾸어가면서 끊임없이 로를 돌리고 땀과 지혜로 철을 뽑아 나라의 재부를 이루어갑니다.

그러기에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용해공들을 지극히 사랑해주시며 크나큰 은정과 배려를 돌려주십니다.

식견있는 사람들은 의례히 용해공이라면 성실하고 강직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며 존경해줍니다.

나는 대학에서도 배웠지만 로동속에서, 생활속에서 더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용해공이라고 해서 어떻게 다 처음부터 성실하고 훌륭한 사람들로만 꾸렸겠습니까. 그러나 뜨거운 로앞에서 일하는 과정에 단련되기도 하고 혹은 견디여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데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러니 결국 오랜 용해공이고보면 다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이지요.》

공원변두리의 불빛휘황한 갈매기식당이 저켠에 바라보였다.

외등빛이 푸르스름한 유보도를 뒤에 두고 손풍금소리도 멀어져갔다.

처녀는 머리를 다소곳하고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문득 그쪽을 돌아본 강기석은 그 녀자가 지금 자기 말을 듣지 않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가 흥분한 나머지 하려던 말을 아퀴짓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난 사실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건 아닙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러자 혜영은 불안에 싸인 검은 눈으로 어둠속을 바라보며 자신없이 속삭였다.

《괜찮아요. 계속하세요.》

《아니요. 난 동무에게 진작 다른 말을 하려고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우리 두사람의 관계를 명백하게 하기 위해서. 난 자기자신에게서도 남에게서도 허위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 나를 막론하고 동무를 탓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다 알기 전에는 그를 사랑했다고 말할수 없으니까.》

《그래 어떻게 됐어요, 아버지는?》

《자그마한 제철소에 가서 일합니다. 평범한 로동자로.》

혜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야릇한 정숙이 깃들었다.

해변을 휩쓰는 파도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듯 했다.

이윽고 처녀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물론 지배인으로 그냥 일하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평범한 로동자로 일했었다면 더 좋았을거예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렇게 된걸. 난 동무를 믿어요.》

기석은 까딱않고 서있었으나 심장은 서서히 고동치고있었다.

《동무는 모든걸 충분히 생각해야 합니다. 일시적인 감정이나 동정심에 싸였다가 후날에 가서 오늘일을 후회하지 않도록. 그리고 동무자신의 견해뿐만아니라 부모들의 견해도 고려하여야 합니다.》

이윽고 처녀가 말했다.

《강동문 우리 아버지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나를 외면하겠어요?》

《그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건 개인적인 관계이고 개인적인 견해와 감정에 국한되는것이지만 이 경우엔 사회적인 평가와 인식이 문제로 되는거니까.》

《됐어요, 그만하세요.》하고 혜영은 기분없이 쏘아붙이고는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무안하게 여기며 나직이 정겹게 말했다.

《난 동무를 믿어요. 동문 좋은 사람이예요.》

잦아드는듯 한 그 말끝은 떨리고있었다, 당장이라도 터질듯 한 격정을 누르며 혜영은 차분히 고개를 숙였다.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선 청년은 흥분에 떠는 처녀의 모습을 걱정스럽게 굽어보았다. 믿음으로 하여 뜨거워지는 가슴에 애틋한 련민의 정이 흘러들어 처녀가 더욱 살뜰하게 느껴졌다.

그는 처녀를 포옹하지도 않았다. 로앞에서 굳세여진 커다란 두손으로 처녀의 머리칼을 가볍게 쓰다듬고 가냘픈 어깨우에 듬직하게 얹었다.

《혜영이, 동문 나에게 더없이 귀중한 사람이요, 동무가 원하는것이라면 나는 무엇이든 다 성취하겠소.》

감동에 싸인 처녀의 얼굴에 한가닥 미소가 어리였으나 그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있었다.

처녀는 그의 손을 어깨우에서 내리워 정답게 한옆으로 끼면서 나란히 서서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정각이며 구름다리 등으로 아기자기하던 공원풍경과는 대조되는 파도설레이는 해변이 눈앞에 펼쳐져있었다.

희끄무레한 어둠에 덮인 광막한 바다를 바라보며 청년은 가슴가득히 대기를 들이켰다.

바다는 잠들수 없는듯 술렁거렸다.

갈기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파도가 기슭에서 태를 치고 어둠속으로 물러가버리면 밀려오는 다른 물결이 비발을 뿌리며 모래톱으로 기여올랐다.

어리광부리듯, 발부리를 허비려는듯…

혜영은 어깨를 움츠리고 그의 곁에 바싹 다가서며 속삭였다.

《돌아가자요. 춥군요.》

기석은 박힌듯 까딱않고 서있었으나 이윽고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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