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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사랑의 기슭


11


최병기는 50이 훨씬 지난 나이로서 기업관리의 경험도 풍부하고 야금만이 아니라 기계며 전기부문 등에 대해서도 막히는데가 없는 지배인이였다.

아는것이 많은데다 책임성이 높고 성미까지 완강한 그는 사업에 대한 요구성이 또한 강했다.

편협하진 않았으나 매사에 주견이 뚜렷했으므로 한번 마음먹은 일이면 끝까지 내밀었다. 일단 변변치 않게 본 사람에 대해서는 자기 견해를 드티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아무 일에서나 확신을 가지고 림했다.

그는 몇해전에 이 제강소에 왔었다. 그때까지는 해임되여간 강정민을 뒤이어 기사장이 지배인사업을 대리했었다.

기사장 한명택은 성벽이 드센 전 지배인과 용케 어울리였고 나중엔 남다른 신임까지 받았으나 새 지배인과는 그렇지 못했다.

어쨌든 최병기지배인이 처음 왔을 때부터의 일들은 여러 사람들의 기억에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최병기는 키크고 꿋꿋한 체구에 눈섭이 더부룩하고 무뚝뚝해보이는 외모부터가 범접하기 어려울것 같은 위압감을 주었다.

(먼저 지배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겠군.)

그의 체취에서 풍기는 완강한 인상에 불안을 느낀 사람들은 그렇게들 생각했다.

걱정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부임된 직후에 열린 공장행정일군회의에서부터 그의 면모가 나타났다.

지정된 시간이 되였는데도 직장장 2명과 과장 1명이 오지 않았다.

모두들 기다렸다. 지배인도 자기 자리에서 길다란 탁상우에 깍지낀 두손을 올려놓고앉아 기다리는것이였다.

강정민지배인 같으면 들어서기 바쁘게 회의를 시작하거나 혹은 오지 않은 사람들을 욕설했을것이지만 최병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또한 회의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한동안이 지나서 다른 사람들은 왔으나 직장장 한명은 의연히 늦어지는 모양이였다.

이윽고 지배인은 일이 바쁜 때에 오래 기다릴수 없으니 다들 돌아가고 래일 같은 시간에 다시 모이라고 간단히 말했다.

그것은 먼저 지배인의 욕설과는 비교할수 없는 강한 충격을 주었다.

직장장들은 정신을 차렸다.

새 지배인은 생산기지도 후방기지도 어느것 하나 변변히 꾸려놓지 않은 먼저 지배인에 대해 심히 불만을 품고있었으나 입밖에 내여 비난하지는 않았다.

비난을 해야 부질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원체 그의 능력을 알고있었으므로 비난할만 한 대상으로 치부하지도 않았던것이다.

최병기는 또한 기사장의 너그럽고 선량한 성품에 아무런 의의도 부여하지 않았으며 그의 호인다운 미소며 자기를 점잖게 받들어올리는 곰살궂은 태도에 오히려 외면을 하는듯 했다.

그는 기사장도 역시 무뚝뚝하게 대했다.

사업보고를 받을 때면 기사장더러 앉으라는 권고도 하지 않았고 현장에 나갈 때에도 찾는 일이 없었다.…

기업소의 형편을 료해하면서 한달쯤 지나서는 회전로직장의 생산을 중지시켰다. 현장주변이 어지럽다는것이였다. 계획수행이 빠듯하다고 의견을 말하는 기사장을 치떠보고 알릴듯말듯 눈섭을 찌프리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온통 슬라크들이 가득차고 사방이 너저분한데 무슨 생산이 바로되겠소?》

그 말은 그동안 공장을 책임지고 관리해온 기사장을 질책하는 소리처럼 준절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 모든것들은 아직 약과였다. 생산이 궤도에 올라서자 공장에서는 새로운 일을 벌려놓았다.

구내도로를 포장하고 후문에서부터 해안창고근처까지 긴 울타리를 쌓아야 했다. 그 일대는 갈대와 늪으로 뒤덮인 훤한 공간지대였는데 저쪽에 시에서 건설한 공원이 차츰 자리를 뻗쳐오다나니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게 되였던것이다.

작업은 직장들에서 맡아하기로 하고 구역들을 분담했다.

당비서(당시)도 첫 구간을 맡은 축로직장동무들과 함께 아침부터 현장에 나와 일했었다.

이날 수송문제때문에 철도분국에 나가있던 지배인이 돌아온것은 저녁무렵이였는데 첫 구간 작업이 끝난 뒤였다.

최병기는 후문앞에 차를 세우고 쌓아놓은 담벽을 한동안 지켜보더니 축로직장장을 찾았다.

《이걸 그래 축로공들이 쌓았소?》

후렁후렁한 외투자락을 뒤치고 주머니에서 짤막한 물주리를 꺼내면서 어리둥절해 달려온 직장장을 흘겨봤다.

《축로공들이 쌓았는가 말이요?》

대답을 우물거리는 직장장의 앞을 지나 담벽앞에 가더니 구두바닥으로 어렵지 않게 그것을 밀어버린다. 미장은 했으나 아직 굳어지지 않은 축조물은 완강한 힘에 지그시 밀리면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직장장은 구원이라도 청하듯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이렇다할 말 한마디 하지도 못하고 뗑하니 서있기만 했다.

《첫 구간을 맡았으면 본보기가 되게 책임적으로 해야지. 이게 그래 축로공들의 솜씬가!》

이 일을 현장에서 목격한 기사장은 불안에 싸여 버쩍 긴장해졌다.

당비서가 축로직장동무들과 함께 첫 구간에서 일한것을 알고있었기때문이였다.

하지만 이튿날 아침에 벌어진 일은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지배인이 직접 그 자리에 다시 담벽을 쌓는것이였다. 어뜩새벽부터 나온 모양으로 작업복차림이였는데 축조할 구간에 말뚝을 박고 아래우로 사방에 표식줄을 띠우고 거기에 맞춰 블로크를 쌓아가는것이였다. 세다리축량기와 표식대도 있었다.

어제 축로공들이 쌓은것도 울타리로서는 흠할데가 없었지만 지금 지배인이 쌓아놓은것을 보니 과연 비할바가 못되였다. 자를 대고 그은듯 아래도 우도 기하학적인 직선이였다.…

추운 계절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근 한달이나 복새를 놓으며 생산과 함께 도로작업을 밀고나갔다.

직장과 부서단위로 대상들을 분담하고 참모부서의 책임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직장통계원들에 이르기까지 사무원들을 모조리 끌어냈다. 시작하던 날 아침엔 인원보고를 받아 두루 대조해보다가 《왜 문화회관은 없소?》하고 거칠게 물었었다.

《거기 사람들도 제강소밥을 먹겠지?》

기사장은 되도록 온화하게 공장구내에서 떨어져있고 하여 이런 일에는 망라시키지 않았었다고 설명을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15분이내에 착수시키오.》

기사장도 하는수 없었다.

앉을자리가 우묵하게 꺼져들어간 볼품없는 안락의자가 놓인 관장실에서 자기를 한낱 영화관책임자 이상으로밖에 보아주지 않는 관리원들에게 공연히 짜증을 내며 지내는 이전날의 예술인에 대한 서글픈 동정을 품고 지시를 전화로 전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되지 않는 회관성원들이 나타났다. 뾰족한 얼굴에 안경을 쓴 관장은 멀리서부터 불만어린 눈길로 지배인을 쏘아보며 오고있었다. 깃이 헤벌어진 와이샤쯔우에 뼁끼가 소매에 달라붙은 홑섶양복을 걸친 그는 추위도 느끼지 못하는듯 했다.

한때 어느 연주단체에서 클라리네트를 분 경력을 가지고있는 관장은 회관에 찾아오군 하는 예술애호가들로써 아담하고 생기넘치는 악단을 꾸려볼 소원을 품고있었으나 은근한 그 희망은 고사하고 건물의 보수며 관리운영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조차 관심이 없는 지배인이 예술활동과는 인연도 없는 작업에 동원부터 시키는데 대해서 모욕감을 느끼고있었다.

하여 그는 지금 예술도 문화사업도 안중에 없는 이 무지한 사람에게 도전함으로써 자기의 존엄을 보여줄 작정으로 추궁이 있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최병기는 관장의 그러한 속심은 고사하고 그의 존재에조차 주의를 돌리지 않은채 도착한 인원수만 보고받더니 작업구간을 돌아보러 떠났던것이다.

정문으로부터 해안까지 직선으로, 후문으로부터도 거기에 직각으로 련결되는, 폭이 열네메터나 되는 도로에 세멘트포장을 하고 량옆에는 연석을 박고 걸음길에는 블로크를 깔았으며 철길건늠길의 차단봉들에는 알락달락한 경계표식도 했다.

지배인은 정갱이까지 오는 고무장화를 신고다니면서 자갈씻는 물을 끓이지 않았다고 꾸중을 했고 시원치 않게 된 구간은 서슴없이 퇴짜를 놓으며 골탄같은 시커먼 눈으로 책임자를 응시했다.

《일이란건 두번다시 손이 가게 해서는 안되는거요.》

그때부터 사람들은 지배인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했고 그의 눈에 나게 될가봐 조심했던것이다.…

금속공업부의 국장은 제강소에서 시험생산준비에 한창 분망한 때에 찾아왔다.

뒤쌓인 일에 몰리여 자기를 심드렁하게 맞이하는 지배인의 태도에는 개의치 않고 요즘 제철소에서 생산이 되여가는 형편을 이야기하더니 실무적인 문제를 꺼냈다.

《그동안 준비는 충분히 했겠지요?》

잠시후에 기사장이 들어왔다.

가져온 자료들을 국장앞에 내놓고 한걸음 물러서서 인사삼아 물었다.

《숙소가 불편하지 않습니까?》

《괜찮소.》

《어지간하면 우리 제강소쪽에 오십시오. 손님 적은 동네가 인심은 후하답니다.》

그의 말은 례절겹고 부드러웠으나 최병기는 굳어진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있었다. 국장은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고맙소. 한데 이 동무를 좀 불러줘야겠소.》

얼마후 강기석이 그 방에 들어섰을 때 최병기는 랭담하고 무관심하게 대했다.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웃음으로 완화시키며 국장이 말했다.

《동무의 도안을 보았소. 이번에 준비한 자료도 나무랄데가 없소.》

그는 미소어린 눈길로 호기심을 품고 바라보며 말했다.

《젊은 동무가 아주 훌륭한 일을 했소. 수고가 많았소.》

말보다도 그의 얼굴에 넘치는 너그러운 표정이 강기석을 감동시켰다.

그는 대답도 못하고 그 자리에 정중하게 서있었다.

국장이 이날 이곳에 나타난것은 기술지도국의 당면과제수행에 필요되는 제진장치에 대한 도안과 기술자료때문이였다. 하지만 그는 제강소에서 새로 벌려놓은 시험생산정형을 외면하고 갈수는 없었으므로 건성으로나마 현장을 돌아보기로 작정했다.

회전로를 돌아보는동안 국장은 기석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도안이야기는 적게 하고 언제부터 제강소에서 로동했으며 어떤 분야에 취미를 갖고있는가, 무슨 학교를 나왔고 어떤 자료들을 연구했는가 등 생활과 학습, 지향 등에 많이 관심하는것이였다.

최병기는 손님을 안내하기 위해 마지못해 다니면서 그들의 대화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 설치되여있는 제진장치와 관련된 국장의 물음에도 한두마디씩 짤막히 대답하군 했다.

하여 강기석은 지배인이 불쾌해하는 까닭이 사업이 분망한 때에 당면한 과제와는 상관없는 일로 찾아온 상부의 손님때문인지 아니면 지배인으로서는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불쾌하게 여기고있는 젊은 기사의 도안을 상부의 일군들이 인정하고 관심하는때문인지 그 심리를 헤아릴수 없었다.

어느 경우이든간에 그것이 자기와 관계되여있었으므로 지배인이 불쾌해하는것은 결국 자기때문이라고 생각되였다.

하여 그는 저으기 주의를 가다듬고있었다. 혜영이가 그의 딸이라는것으로 하여 더욱 긴장해지는 심정이였다.

그렇다고 해도 자기를 잃으며 지배인의 환심을 사고싶은 생각은 결코 없었다.…

최병기는 이날도 강기석이를 무관심하게 대했지만 그가 불쾌감에 싸여 침울했던것은 강기석이나 그가 참여하는 사업과 관계되는 일때문이 아니였다.

보다는 집안에서 있은 일때문이였는데 늘 걱정거리로 되여있는 아들이 오늘 점심때에 또 그의 기분을 잡쳐놓았던것이다.

공차기에 미쳐돌아가는 녀석인데 한때는 체육선수단에 보내달라고 아버지보고 졸랐었다. 최병기는 아들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을뿐아니라 단단히 오금을 박아놓았었다.

《애비가 힘을 써야 체육선수로 가는 형편이면 무슨 온전한 재목이 된다고 그래! 쓸데없는 생각은 아예 거두고 공부나 해라.》

아들은 그 말에 응하지 않았을뿐아니라 공연히 트집을 부렸고 학교를 졸업하고 철도공장에 다니기 시작해서도 그냥 뽈이나 차며 돌아갔었다.

그런데 이즈음 와서는 무슨 궁리를 하는지 일하러도 나가지 않았다.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은근히 남편을 나무람하던 안해는 아이가 아파한다느니, 입맛이 떨어져 밥을 안 먹는다느니 하면서 싸고돌았다.

오늘 점심때에는 집에 들어가 뜰앞에서 어정거리는 아들이 눈에 뜨이자 최병기는 분통을 터뜨렸던것이다.

《일을 해라, 일을! 로동을 꺼리는 녀석은 사람구실을 못해. 나두 로동으로부터 시작했다.》

아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비실비실 사라져버렸으나 최병기는 좀처럼 분을 삭일수 없었던것이다.…

두사람을 따라 원료장으로 가던 기석은 성구작업장근처에서 혜영이를 보았다.

그 녀자는 동무들의 어깨너머로 이쪽을 빠금히 지켜보는데 크고 검은 두눈에 기쁨이 함뿍 어려있었다. 국장이며 지배인과 함께 현장을 돌아본다는 사실로 하여 강기석이 훨씬 돋보였던 모양이다.

사람들 많은 곳이여서 말은 나누지 못했으나 삼각으로 접어쓴 하늘색나이론수건밑에서 이쪽을 여겨보고있는 처녀의 눈길엔 행복감이 빛나고있었다.

그 짧은 동안이 기석에게는 잊을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던 뒤의 어수선한 기분은 씻은듯 사라졌다. 그는 행운의 예감으로 흥분되였으나 가슴 한구석에서는 이런 목소리가 울리고있었다.

(하지만 혜영이는 우리 아버지에 대해선 모르고있지.)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그곳을 지나쳐버렸다.

현장을 돌아보고난 그들 일행은 저녁무렵에 공무직장 건너편의 넓다란 공지에 와서 걸음을 멈추었다. 회전로선과 원료장으로 통하는 철길이 갈라져나간 그 지대는 휑뎅그렁하였고 그리로부터는 공장의 중심구역이 잘 바라보였다.

5월의 석양이 구내를 멀리까지 밝게 비치고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을 더듬고있던 국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장차 이 제강소에서 새 제진장치를 도입하려면 공사전망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적게 잡아서…》

지배인은 잠시 생각하고 간단히 확신있게 수자를 렬거했다.

《허어, 이런! 당신은 언제보나 엉큼하오. 많이 타내서 여유있게 쓰자는 배심이겠지.》

《롱담이 아니요!》

최병기는 상대방이 무안해지리만큼 거칠게 말했다.

《새로 시작하는 공사라면 오히려 로력도 자금도 적게 드오. 하지만 이건 원래 있던걸 뜯어내고 해야 하니… 어림도 없소.》

《글쎄 그렇긴 하지.》

국장은 어쩔수 없는듯 수긍했다.

한켠에 서서 자기 생각에 골몰해있던 강기석이 겸손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계산한바에 의하면 그보다 훨씬 적은 자금으로도 공사를 완공할수 있습니다.》

두사람은 피뜩 그에게로 얼굴을 돌렸는데 표정은 판이했다. 지배인은 시커먼 눈섭을 찌프리고 마뜩지 않게 굽어보았고 국장은 대견하게 웃고있었다.

강기석은 자기 말이 야기시킨 인상들에는 개의치 않고 기억을 더듬으며 침착하게 계속했다.

《기초를 요란하게 준비하지 않고 또 장치들도…》

허나 그 말은 지배인의 거치른 목소리에 중둥무이되여버렸다.

《공사자체도 많은 투자를 요구하지만 공사를 위한 수단들이 없기때문에 더 그렇소. 우리 공장엔 지금 중기계가 많지 못하오. 생산에 지장없이 공사를 빨리 진척시키려면 중기계들이 많아야 하오.》

《〈금속건설〉에서 빌려쓰면 되지 않소!》

《중기계들은 다른 일에도 자주 소용되오. 밤낮 비라리할수야 없지 않소.》

국장은 껄껄 웃었다.

《언제보나 당신은 엉큼한 사람이라니까!》

웃고나서 말을 이었다.

《공사를 벌리면 그 턱을 대고 중기계와 설비들을 든든히 갖추어놓자는 속심이구만… 엉?》

《아무런 속심도 없소. 그 공사는 어차피 벌리지 못할테니까!》

《어째서?》

《지금 벌리고있는 시험생산이 제대로 되자면 이삼년은 걸리는게고, 그것도 잘되는 경우에 말이요. 그걸 전반로에 도입해서 공정을 완성하자면 훨씬 더 많은 시일이 걸릴거요. 그러니 그뒤의 일을 어떻게 알겠소.》

《그러니까 제진문제는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거구만.》

최병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허나 침묵이 오히려 그의 의향을 더욱 뚜렷이 강조하는상싶었다.

최병기는 찌뿌둥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기석이쪽을 돌아보고 마치 잊었던 일을 상기한듯 간단히 말했다.

《동문 가도 되오!》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이였으나 그 한마디로써 여러해동안의 고심끝에 완성되였고 곡절많은 경로를 거쳐 바야흐로 성공의 빛발이 비칠듯 하던 새 제진장치의 운명은 끝장나버린듯싶었다.

기석은 걸음을 멈추었다.

어정쩡하던 첫 순간이 지나가자 모욕감이 얼굴을 뜨겁게 불태웠다.

자기 존재같은것은 아랑곳하지 않을뿐더러 무시하고 모욕하기를 털끝만치도 저어하지 않는 몰풍스러운 지배인에 대한 반감이 새삼스럽게 끓어오르는것이였다.

국장은 강기석을 동정하듯 걸음을 멈추고 무슨 말을 할듯 했으나 다시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 순간 그의 머리에는 부서의 당면과제수행에 필요한 하나의 좋은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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