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흑에서 광명에로 온 후 첫 한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 한 회견 주체88(1999)년 12월 1일
내가 이남땅을 떠나 공화국의 품,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북의 동포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고있는 시기에 의거해왔다.
나에게는 북을 보는 시각이 따로 있었고 북에 대한 내나름의 철학이 있다고 말할가, 어쨌든 신념이 있었다. 8. 15광복과 조국해방전쟁시기부터 평양은 나에게 있어서 희망의 등대였다. 나는 그 등대를 바라보며 노상 힘을 얻었고 그 등대가 비치는 곳에 조국의 통일도 있고 민족의 미래도 있다는것을 굳게 믿어마지 않았다.
그런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지구상에서는 생각못했던 이상기류현상이 발생하였다. 동유럽권의 사회주의나라들이 하나하나 붕괴되고 세계 《사회주의시조》라고 일컬었던 쏘련마저 반격의 총 한방 쏘아보지 못한채 반혁명의 공세앞에 좌절되고만 사태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남의 많은 지성인들이 그러하듯이 동유럽권의 이상사태는 나의 신념을 흔들지 못했다.
어둠이 짙을수록 우주의 총총한 별들이 한층 찬연하게 빛을 던져 사람들의 눈길을 더욱 끌듯이 지구상의 이상기류현상이 심할수록 평양에서 비치는
희망의 등대는 더욱 빛났다. 뜻하지 않은
동유럽권에서의 사회주의좌절이후 《유일초대국》행세를 하는 미국으로 하여금 어쩔수 없이 조미기본합의문에 도장을 찍게 한 이북의 름름한 기상,
《고난의 행군》에서도 지칠줄 모르고 최후승리를 위해 강행군을 벌리고 이어 인공지구위성
지난 1년간의 체험은 과연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지난해 이맘때 마음의 고향인 평양에 막상 당도했을 때 이름할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의거에 성공했다는 기쁨도 컸지만 지난 수십년간 이남의 운동권에서 동분서주하다가 60고개에 들어왔으니 이미 고목이나 다름없는 이 몸이 과연 이제 무슨 큰 일을 할수 있겠으며 도리여 이북형제들에게 짐이나 되지 않겠는가 하는 위구심도 없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나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이라는 중책도 부여해주시고 생활상 구석구석에까지 다심하게 배려를 돌려주신
정말 북에 와서 보니 《고난의 행군》이란 이남에서 말로만 듣던것보다는 훨씬 힘들었다는것을 실감하게 되였다.
여기에서 나는 고귀한 진리를 페부로 느꼈으며 눈으로 새로운것을 발견하는 행운아가 될수 있었다.
줴기밥과 쪽잠으로 인민들과 고락을 함께 하시며 인민을 위하여 끝없는 진펄길을 걸으시고 험산준령을 쉬임없이 넘나드시는
나는 이 자리에서 최근 평양텔레비죤방송에서 방영한 텔레비죤련속극 《열망》을 보며 받은 나의 감동을 피력하고저 한다.
우리 나라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속담이 있다. 말하자면 경치좋은 금강산도 배가 불러야 구경할수 있다는 소리인것이다.
그런데 《열망》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금강산구경도 아닌 어려운 생산문제를 푸는데서 혁띠를 졸라매고 투쟁하였다. 《고난의 행군》길에서 말이다.
자력갱생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라시는
그렇다. 지난 한해는 나에게 있어서 암흑에서 광명에로의 첫 한해였다. 그렇다면 암흑이란 무엇이고 광명이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할수 있겠지만 나는 체험에 따라 내 나름대로 그것을 풀이해볼가 한다.
진정 내 힘으로 이룩하고 내것이 있는 곳이 광명이고 남에게 매이고 남의것이 판치는 곳은 암흑이라고 나는 주장하고싶다.
자주, 자립, 자위를 하고 자력갱생하여 민족의 재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공화국이야말로 광명중의 광명의 땅이다.
내 나이 장년기이지만 《60청춘, 90환갑》이라고 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