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차린 환갑연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가 끝난 후인 주체40(1951)년초였다.

당시 허헌선생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두터운 신임과 배려를 받는데 대하여 항상 시비를 걸고 질투하던 일부 사람들은 1950년 후퇴후의 복잡한 정황을 구실로 그를 곤난한 지경에 빠뜨렸다.

그자들은 최고인민회의 의장인 허헌선생이 해당한 물질적대우를 받을수 있도록 실제적조치를 취할 대신에 얼마동안 일부러 모르는척 하였다.

이 사실을 아시게 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게 노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허헌선생에게 극진한 배려를 돌려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허헌동지는 얼마나 좋은분입니까. 우리 당은 허헌동지를 아끼고 사랑합니다. … 지금까지 허헌동지가 굳이 사양하는 관계로 한해 또 한해 미루어온 환갑을 금년에 차립시다. 이제 돌아오는 허헌동지의 생일에 환갑연을 차려드립시다.…》

허헌선생의 생일 예순여섯돐인 그해 6월 11일이 왔다.

당시 전선형편은 매우 긴장되여있었다. 전쟁 1년동안에 군사적으로나 정치도덕적으로 참패를 거듭한 미제는 저들의 패배를 만회해보려고 이른바 《하기공세》를 미친듯이 다그치고있었으며 조선전선에 병력과 포화력, 비행대와 함대를 대대적으로 증강하면서 전선을 돌파하려고 동서해상으로부터 상륙작전을 감행할 기회를 노리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허헌선생의 환갑연을 마련하여주시던 바로 그날 최고사령부의 밤나무숲 그늘에서는 먼지와 흙탕을 뒤집어쓰며 달려온 전투용승용차들이 뜨겁게 달아오른 차바퀴를 식히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긴장된 전선형편과 관련하여 각 군단, 사단의 군사간부들과 정치일군들을 불러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기 위한 조국해방전쟁 제4계단의 전략전술을 밝히시던 바로 그 시각에 평양시교외의 한 민주선전실에서는 창문에 방공막을 드리우고 당과 정부의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허헌선생의 환갑연이 열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하여주신 환갑연을 맞고보니 한가지 서운한것이 있었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시지 못한것이였다.

그날 그이께서는 긴장된 전선형편때문에 참석하실수 없음을 알리시면서 선물을 보내시였다.

그 다음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승용차를 허헌선생에게 보내시여 그를 최고사령부에 부르시였다.

《허헌선생님, 죄송합니다. 어제는 제가 몸을 뺄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선생님의 환갑연을 다시 차렸습니다. 제가 섭섭해서 그럽니다.…》

《장군님!…》

그는 입술이 떨려 그뒤를 잇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재차 마련해주시고 친히 참석하신 그 자리에는 최고사령부회의로 전날 환갑연에 갈수 없었던 군사간부들과 정치일군들이 모두 참가하였다.

그는 갈리는 음성을 겨우 가다듬으며 그이께 비로소 인사를 올렸다.

《장군님! 어제 저를 위해서 그처럼 성대한 자리를 마련하여주시고도 … 또 이렇게 … 참으로 이 은혜야말로 … 죽어서 백골이 되여도 잊을수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두손을 다정히 잡아주시고나서 축배잔을 드시며 자리에 앉은 일군들을 향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이며 최고인민회의 의장이며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단 성원이며 법제위원회 위원장이며 종합대학 총장인 허헌동지의 환갑연을 겸한 탄생 예순여섯돐을 기념하면서 동지의 건강을 위하여, 금후 사업에서의 보다 높은 성과를 위하여 이 잔을 들것을 제의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수 잔에 술을 부으시여 허헌선생에게 권하시면서 《선생님, 조국통일을 위하여, 통일의 그날까지 오래 앉아계셔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량없는 은정에 눈물적시며 그는 목메인 목소리로 수령님께 맹세다졌다.

《장군님! 바다보다 넓은 장군님의 은덕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하여 저의 여생을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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