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람은 조선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합니다》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가 성과적으로 끝난 다음날인 주체37(1948)년 4월 24일이였다.
남조선대표들은 한결같이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통치밑에서 오래동안 버림받고 파묻혔던 민족문화예술을 찾아내여 시대의 요구와 인민들의
생활감정에 맞게 더욱 발전시킨 공연을 보면서 민족문화예술을 개화발전시키신
공연무대에는 우아하고 황홀한 전통적인 민속무용들도 올랐다.
이때 무용을 보면서 벙글거리던 김규식선생이
《우리 나라 곡과 장단에 맞추어 추는 조선춤이 제일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조선사람에게는 조선춤이 제일 좋습니다. 노래도 조선선률에 맞추어 부르는것이 더 듣기 좋습니다. 우리 나라 곡과 장단에 맞추어 흥겹게 추는 저 춤이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응당 조선사람은 조선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합니다.》
조선사람은 조선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한다!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씀인가.
그것은 북과 남의 전체 인민이 외세를 믿지 않고 자주의 한길을 걸어나갈 때 비록 험난한 길과 중첩되는 난관이 가로놓인다 해도 반드시 통일위업을 성취할수 있다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는 가르치심이였다.
그는 어린 나이때 미국에 가서 로보노오크대학과 프린스톤대학원을 마치고 1905년 25살에 귀국하여 언더우드의
그리하여 조선민족혁명당
그러나 그후 그는 미국의 본심을 꿰뚫어보고 미국에 대한 환상에서 깨여나 남의 장단에 춤을 춘
하기에 그는
(아무렴, 조선사람은 조선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지! 정말 뜻이 깊은 말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