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천초대장
주체37(1948)년 4월초 어느날이였다.
그날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할 남조선대표들에게 보낼 초대장을 쓰고있던 일군들은 한자한자에 정성을 기울이느라 밤늦도록 손에서 붓을 놓지 못하고있었다.
그런데 자정도 훨씬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문기척소리와 함께 조용히 문이
열리더니 천만뜻밖에도
순간 일군들은 한자리에 못박힌듯 서버리고말았다.
그러니 이 한밤중 자기들의 일터에서
그들은 넘치는 환희와 기쁨에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별로 잘 만들지도 못한 초대장을 두고
사실 그들은 정성을 들여 초대장을 만드느라고 했지만 하얀 비단천에 붓으로 일일이 쓰자고 하니 조급성만 앞서고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동안 초대장을 유심히 들여다보시던
이 초대장은 우리가 남반부의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에게 처음으로 보내는 공식초대장입니다. 그런것만큼 우리의 성의가 다 반영되여야 하겠습니다.
지금 써놓은것도 잘되였지만 이제부터 쓰는것은 좀더 정성들여 잘 써야 하겠습니다. 누구든지 초대장을 받으면 우리의 성의있는 노력에 감동되여 하루빨리 우리를 찾아오고싶은 충동을 받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초대장을 쓰는 사업이 회의성과와 직접 관련되여있는것만큼 절대로 실무적인 일로 생각하지 말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시고는 일군들의 어깨를 다정히 눌러앉히시며 어서 초대장을 계속 쓰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일군들이 쓰는 글자의 배렬과 간격, 글자획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바로잡아주시면서 그들과 함께 그 방에서 새날을 맞이하시였다.
얼마후
조선의 특산인 비단천에 붓으로 한자한자 정성스레 쓴, 첫눈에 봐도 애국충정과 민족지성의 기대와 념원이 절절히 흘러넘치는 초대장이 전달되자 그 파문은 대단하였다.
애국적인 정당, 사회단체들에서는 련석회의에 참가할 대표를 선출한다, 초대장을 받은 개별적인 인사들은 려장을 꾸린다 하면서 그 준비사업에 분망하였다.
일찌기 반공벽을 든든히 쌓고 살아왔으며 해방직후 한때는 북반부의 시책들을 비방중상하면서 숱한 테로, 암해분자들을 들여보내여 죄행을 저지르게 한 백범도 비단천초대장을 받아안고는 초대장을 한없이 고귀한 믿음의 증서로 품속에 깊이 간직하고 《민족통일에 이바지할수 있다면 38 선을 베고 쓰러져도 좋다.》고 하면서 평양을 향해 결연히 서울을 떠났다.
정녕 비단천초대장은 회의에 참가하라는 한갖 통지서가 아니였다.
그것은 온 민족을 통일애국의 한길로 이끌어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