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용 단
조국통일위업실현에서 또다시 전환적국면이 열리기 시작하던 때인 주체83(1994)년 6월 전 미국대통령 지미 카터가 대통령특사의 자격으로
평양을 찾아왔다.
세계정치원로이시며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께서는 카터를 너그럽게 맞아주시고 그와의
담화에서 조미사이의 대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들을 제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카터에게 조미관계를 해결하자면 오해와 불신을 풀고 얼어붙은 얼음을 깨야 한다고 하시면서 미국이 《핵문제》를 구실로 우리
나라에 《제재》를 가하려고 해서는 아무것도 얻을것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미국이 우리에게 제재를 가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제재를 받는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면서 살아왔지
제재를 받지 않은적이 한번도 없다, 우리 나라에 대하여 미국도 제재를 하여왔고 일본도 제재를 가하였으며 그밖의 다른 나라들도 제재를
가하였다,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면서 우리가 별일없이 살아왔는데 이제 제재를 더 받는다고 하여 못살아갈줄 아는가고 하시면서 우리에게 압력이나
위협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카터는 위대한 수령님과의 담화과정에 그이께 매혹되여 자신이 직접 조미사이에 얼어붙은 얼음을 깨는 선구자가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평양체류기간이 거의 끝나갈무렵에야 카터는 가슴속에서 바재이던 문제를 위대한 수령님께 터놓았다.
카터는 자기가 평양으로 오는 길에 서울에 들렸댔는데 남조선집권자가 위대한 수령님을 한번 만나뵙고싶다고 하더라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말씀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라면 그 누구와도 만날 용의가 있다고 하시며 이미 북과 남사이의 대화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던 첫 시기부터
최고위급회담에 큰 의의를 부여하시고 그 성사를 위해 아낌없는 로고를 바쳐오신 그이시였다. 그래서 남조선집권자가 《대통령》취임연설 때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수 없다.》고 하면서 김일성주석께서 회담하러 백두산에 오라고 하면 백두산으로 가고 한나산에서 만나자고 하면
한나산에 가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겠다고 한 점을 고려하여 그에게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편지로 보내주기까지 하시였다. 그런데 그후
남조선집권자는 그에 대한 꼬물만 한 반응도 내보이지 않았을뿐아니라 최고위급회담을 위한 특사교환과 관련한 실무대표접촉도 공회전만 시키다가 끝내
무산시켰던것이다. 더우기 미국이 공화국에 그 무슨 《핵문제》를 구실로 압력을 가해올 때 자기가 직접 나서서 《핵무기를 가진 사람과는 악수도
하지 않겠다.》고까지 하였다.
남조선집권자의 이런 행위를 놓고보면 민족의 한 성원으로서의 자격마저 상실한것은 물론이고 감히 위대한 수령님앞에 나설 체면도 다 잃은
몸이였다.
그래서 통역원도 그이께서 안 만나겠다고 말씀하실줄로만 알았고 카터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있었다.
하지만 한없이 넓은 도량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을 바라는 7천만겨레의 절절한 소원을 헤아리시여 카터의 말을 너그럽게
받아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는 남조선당국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한적이 없다고 하시며 우리가 《특별사찰》을 받지 않으면 그가 나를 만나지
않겠다고 하기때문에 나는 그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핵무기를 내놓지 않으면 악수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과 무엇때문에 만나겠는가, 그러나 그가
자기가 한 말을 취소하고 오겠다고 하면 만나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집권자가 평양에 오려는 목적이 통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핵소동》에 장단을 맞추는 과정에 거듭
발로시킨 자기의 정치적실책과 그로부터 초래된 통치위기를 수습하고 조미사이의 핵문제토의에서 제외된 저들의 궁색한 처지를 모면해보려는데
있다는것을 꿰뚫어보시였지만 하늘같은 아량을 베푸시여 그를 만나주실 용의가 있다고 하신것이였다.
카터는 즉석에서 남조선집권자를 만나주시겠다고 대용단을 내리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민족단합의 숭고한 뜻과 하해같은 포옹력에 감동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후 카터는 분계선을 넘어 서울에 도착하자 《청와대》에 들려 남조선집권자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그대로 전하였다.
이렇게 되여 북남최고위급회담이 일정에 오르고 평양에서 력사적인 첫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진행할데 대한 합의서가 채택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