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승  벽

 

어느해 박세영의 생일날에 시인들이 그의 집을 찾아갔다. 시인들이 집안에 들어섰으나 박세영은 그들을 보지도 않았다. 작가 송영과 장기를 두며 열을 올리고있었다.

《이거 내놓으라는데… 졸이 차를 먹는 법이 어디 있어.》

그는 송영의 손에서 장기쪽을 빼앗으려 힘을 쓰며 제편에서 큰소리를 치고있었다.

송영은 《한번 졌다고 해보게나. 아니면 코를 쥐고 절을 하던지.》 하며 약을 올렸다.

시인은 장기판을 콱 쓸어버리며 《그럼 다시 시작하세.》 하고 결이 나서 달려들었다.

송영은 《이젠 일수불퇴다.》 하고 장기쪽을 놓기 시작하였다.

박세영도 《어림있나. 일수불퇴지.》 하며 쪽을 놓기 시작하였다.

시인들은 둘러앉아 조용히 보고있었다. 어느 누구의 편을 들면 안될 판이였다.

장기가 다시 시작되였다. 송영이 이번에도 시인을 수세에 몰아넣으면서 시물시물 웃고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세영이 송영의 포를 조겨댔다.

《이것도 못 보고 뭘 해.》

박세영은 기고만장하여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송영이 《그걸 진짜 잡수셨소? 그럼 나도 하나 먹어야지.》 하면서 궁을 슬쩍 옮기며 《일수불퇴》 하고 약을 올렸다.

박세영은 성이 나서 《그따위 속임수가 어디 있어.》 하고 장기판을 통채로 열린 문으로 뜨락에 내던졌다.

송영은 여전히 웃고있는데 박세영은 《이제는 자네하고 장기 결별이야.》 하고 물주리에 담배를 꽂아 물었다. 그러나 5분도 못되여 시인은 뜨락에 나가서 장기판과 쪽들을 걷어안고 들어왔다. 최후결판을 하자고…

아뿔싸! 또다시 《국수》(나라에서 장기수가 일류가는 사람)가 무참히 되지 않겠는지? …

시인들이 모두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볼 때 다행히도 술상이 들어왔다.

그날 먼저 집으로 돌아갔던 한 시인이 다음날 박세영에게 《어제 장기결승이 어떻게 됐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는 《송영을 당할 사람이 없을거네. 그런데 나하고야 뭐 대상이 돼야지…》 하는것이였다. 이렇게 그는 한번도 장기에서 졌다고 말할 때가 없었다. 그러니 시인의 심정을 리해할수 있지 않는가…

시인은 다른 일에서도 늘 지고싶지 않아했다. 그는 술을 석잔도 못했지만 누구의 관혼상제에도 부조를 제일 많이 해야 속이 시원해하고 동료들과 함께 식당에 가도 제가 내야 마음이 편해하였다.

남을 위해주는것도 누구에게 지지 않으려는 그 승벽은 남을 위한 선량한 마음의 발현이기도 하였다.       

 

 

락천가들

 

박태원은 전쟁시기에 송영, 박세영과 함께 인민군군부대에 나가 취재를 하군 했다.

어느날 그들은 행군중에 공습을 당했다.

일행중 제일먼저 길옆의 강냉이밭에 날아든것은 박세영이였다.

나머지 사람들도 뒤따라 그의 옆에 엎드렸다.

그런데 박세영은 어째선지 한쪽다리를 고사포신처럼 우로 쭉 뻗치고있었다.

송영은 이상해서 물었다.

《아니, 다린 왜 들고있나? 내리라구.》

박세영은 시치미를 떼고 대꾸했다.

《움직이면 발견돼.》

송영은 어처구니가 없어 큰 소리로 말했다.

《실없는 소리… 어서 내리라니까.》

그러자 박세영은 큰 눈에 일부러 겁먹은 빛을 띠우며 말했다.

《떠들지 말게. 저놈의 비행기에서 듣겠네.》

《뭐라구?》

송영은 얼떠름해서 그를 보았다.

박세영은 히죽 웃었다.

그제야 그가 자기를 놀렸다는것을 알아차린 송영은 후끈 달아서 그의 잔등을 북치듯 쥐여박았다.

한번은 세사람이 길을 가는데 인민군순찰대가 박태원과 송영은 통과시키고 박세영만을 단속했다.

그는 어머니배속에서 나올 때부터 몸집이 작았다. 그런 형국에 영용한 인민군대의 중좌견장을 보란듯이 달고 다녔으니 어수룩한 농민이 보아도 천진한 중학생의 만용으로 여겨지기 일쑤였던것이다.

본인은 그 이상 큰 모욕이 없다는듯 얼굴이 수수떡처럼 뻘개서 씩씩거렸으나 송영은 앞으로 나서려는 박태원의 옷자락을 슬그머니 잡아당기며 깨고소하게 웃었다. 공습때 한꼴 먹은데 대한 앙갚음이였다.

그런줄도 모르고 박세영은 낡은 난로처럼 화끈 달아올라 떠들어댔다.

《애국가》와 《승리의 5월》을 쓴 작가이니 아주 달변이였다. 무슨 말인들 안했으랴.

했으나 순찰대원들은 그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할수 없이 박세영은 전술을 바꾸었다.

《동무, 애국가 알지? … 내 그 가사를 쓴 사람이요.》

군인들은 그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아무리 너그러움을 품고 보아도 자기들앞에 서있는 체소한 이 중좌가 그 노래를 지었다는 사실이 못미더웠던것이다.

순찰대원들은 그것을 확인하려는듯 뒤쪽을 돌아보았다.

순간 그들은 신임장을 정중히 펼쳐든 위엄스러운 두 군관을 볼수 있었다.

그때에야 순찰대원들은 정색해서 경례를 붙였다.

《종군작가동지, 안됐습니다. 어서 가십시오.》

얼마쯤 걸었을 때 송영이 박세영의 뒤에 바싹 붙어서며 이죽거렸다.

《세영이, 저녁에 한턱 내게. 내가 아니면 자넨 취재는 고사하고 하마트면 영창에 들어갈번 하지 않았나.》

박세영은 코날개가 찢어질만큼 코방귀를 세게 뀌였다.

《흥, 자네가 보증하지 않아도 난 놓여나왔을거네.》

그리고는 잔뜩 골이 나서 앞으로 달아났다.

그바람에 송영과 박태원은 통쾌하게 웃어댔다.

파편이 죽음의 휘파람을 앙칼지게 불고 폭격에 집채같은 바위도 녹아내리는 가렬처절한 전쟁의 불길속에서도 웃음과 랑만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독점물이 아니였다.

박태원이 취재길에 만나본 수많은 영웅전사들의 얼굴에도, 적기의 맹폭격도 아랑곳 않고 《밭갈이노래》를 부르며 농사일을 하는 후방인민들의 모습에도 김일성장군님만 계시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심과 랑만이 흘러넘치고있었다.

박태원은 그들과 함께 먹고 자고 싸우면서 참다운 력사소설가, 애국자로 성장하는 높은 층계를 한계단 두계단 톺아올랐다.

 

 

서울에서 장군님을 만나뵈온 두 로인

 

장군님께서 오신다는 소문을 들은 지방의 한 로인이 평생소원을 풀기 위해 서울에 있는 동생의 집을 찾아왔다.

동생의 집에 묵으면서 장군님 오실 때를 기다렸으나 만나뵙지 못한 아쉬움을 덜지 못하고있는터에 동양극장에서 장군님에 대한 연극을 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두 형제로인은 어이구, 이제야 소원이 풀렸구나 하고 극장으로 달려갔는데 글쎄 아닌게 아니라 극장무대에 장군님께서 나오신것이 아닌가!

연극이 끝나자 두 로인은 무대우로 황황히 올라가 장군님앞에 넙적 엎드려 큰절을 올리였다.

《장군님, 기다리고기다리던 장군님을 오늘 여기서 뵈오니 이젠 저희들의 소원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에서 싸우실 때 축지법을 쓰셨다 하온데 오늘은 어찌 쓰지 않으십니까?》

두 로인의 엄청난 착각앞에서 배우인 박학은 몹시 당황하였다.

《어서 일어들나십시오. 저도 장군님을 그리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무엄하게 그분의 역형상을 하였을뿐입니다.》

그들을 손잡아 일으키는 박학의 두 볼로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 광경을 본 관객들도, 배우들도 다같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산 보

 

어느해 쉬는날이였다.

조령출의 맏아들 호경이 가족들의 심정을 대변하여 아버지에게 아뢰였다.

《아버지, 오늘은 휴식일인데 온 가족이 모란봉에서 산보를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좋구나!-》

조령출의 흔쾌한 승낙에 온 가족이 좋아라 따라나섰다. 조령출은 친구에게 부탁하여 차를 불렀다. 온 가족을 태운 승용차는 칠성문에서 최승대에 이르기까지 높고 험한 모란봉의 구릉들을 단숨에 한바퀴 돌아 집에 당도했다. 차에서 내린 가족들이 영문을 몰라 가장에게 물었다.

《아버지, 뭘 두고 오셨는가요?》

《그건 무슨 소리냐?》

《산보를 하지 않고 집으로 차를 돌리셨으니 말입니다.》

《산보? 산보야 이자 하지 않았느냐?》

《예?-》

어리둥절해하는 가족들에게 조령출이 시치미를 떼고 넌지시 하는 말.

《방금 산을 보지 않았느냐? 산보?》

조령출의 엉큼한 익살에 가족들은 웃음보를 터뜨리지 않을수 없었다. 가장의 익살이 낳은 즐거운 휴일이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