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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제 1 장


7


동소옥의 행처불명으로 남계수는 시간이 갈수록 근심이 커갔다. 찾아갈만 한 곳이 없는 앤데 휴가를 받았으니 그조차 미심쩍어 불안을 지울수 없었다. 어데 가서 더 큰 사달을 칠것만 같았던것이다. 까닭없는 후회가 밀려드는가 하면 지나간 일들이 번개불처럼 눈앞에서 번쩍거려댔다.

동윤덕이 엄중한 일을 저지른 뒤 남계수는 어떻게 해서나 그가 관대하게 처분받도록 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그 리유는 공장이 신설인데다 동윤덕의 기술이 아까와서였다.

당시 시내무국은 동흥산기슭에 자리잡고있었다. 그날 남계수는 마지막으로 청원을 해보려고 내무기관을 찾아가고있었다. 동흥산앞 도로에는 다른 곳보다 내무원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다. 평시에 상대해보지 못한 견장을 단 내무원들이 지나갈 때면 이상할만큼 가슴이 울렁거리고 눈길을 돌리게 되였다.

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그는 《치안대》놈들에게 잡혀 하마트면 목숨을 잃을번 하였다. 천행으로 그를 살려준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도 그 일만은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이런 생각에 잠겨 걷던 그는 마주 오는 세명의 내무원들과 눈길이 마주쳤다. 그중 한사람은 어디선가 꼭 본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았다. 불과 댓걸음을 사이에 두고 걸으며 남계수는 내무원인 상대도 자기를 이상하게 주시한다는것을 느끼며 지나쳤다. 가슴 한복판으로 선뜩한 바람이 흘러갔다. 공포감 비슷한 놀라움인데 자기가 그와 같은 감정에 왜 빠지는지 알수 없었다.

시내무국 접수실 옆방에는 신소와 청원을 접수하는 일군들이 나와 있어 찾아오게 된 사유를 설명하고 서면으로 된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남계수는 용무를 마치고 접수실 출입문쪽으로 돌아서다 걸음을 뚝 멈추었다. 아까 본 내무원복장의 낯익은 사람이 들어서는것이다.

《네가 남계수라는걸 우린 안다. 바로 대답해!》

날카로운 목소리가 귀전을 두드리자 눈앞의 환영은 사라져버렸다. 착각이였다. 그것은 인물을 식별하였다는 뇌수의 신호로 하여 빚어진것이다. 그때 자기와 마주섰던 《치안대》완장을 낀 사람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내무원군복을 입고있지 않는가.…

후퇴가 시작된 후 남계수는 시인민위원회의 지시대로 개인철공소지만 설비들을 감추고 뒤늦게 혼자서 후퇴길에 올라 덕산고개를 넘으려다 매복하고있던 《치안대》무리에 붙들렸다. 놈들은 기다리기나 한듯이 잡아서 문초를 했다.

《남계수, 네놈이 빨갱이들의 가랭이에 붙어서 오래 살줄 알았느냐? 네 족속들이야말로 요사스러운것들이다. 누이란 년은 오지랖이 넓게 녀맹사업을 한답시고 평양바닥에서 돌아치고 매부라는 녀석은 하느님을 독실하게 믿던게 언제였던가싶게 제일먼저 공산당과 손을 잡았다. 우린 다 계산하고있었단 말이다!》

남계수는 놈들이 잡도리를 단단히 하고 자기를 주시하고있었다는것을 알았지만 때가 늦은 뒤였다. 그렇게 되여 갇힌 곳이 감자움속이였다. 살륙의 총소리가 밤에도 그치지 않던 시기였다. 그는 한밤중에 다시 끌려나갔다. 《치안대》 두명이 어디론가 그냥 데리고 갔다. 마가을 락엽이 어둠속에서 박쥐떼처럼 날아다니고 산속의 고요를 깨뜨리며 이름모를 밤새가 청승맞게 울어댔다.

《섯!》

등뒤에서 섬찍한 소리가 들렸다. 이제 총성이 울리면 한 생명이 자기의 존재를 마치게 되는것이다.

이렇게 허무한것이 사람의 목숨이란 말인가. 세상에 나서 못할짓은 별로 한게 없는데 서른하고 일곱해를 겨우 살다니.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포승이 풀렸다.

《남계수동무, 이 길로 곧추 달리시오. 앞고개를 넘으면 동흥산쪽으로 갈수 있소. 후퇴길은 막혔으니 시내에 들어가 숨소. 어서!》

그 소리에 와뜰 놀란 남계수는 무작정 시키는대로 죽을힘을 모아 내달리였다. 등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그는 이렇게 살아났던것이다.

한사람이 지니고있는 서로 모순되는 신분으로 하여 남계수는 며칠동안 마음을 진정하지 못했다. 불순적대분자들과의 투쟁이 치렬하게 벌어지고있지 않는가. 신고를 해야 한다. 그것은 공민적인 의무감이였지만 사람을 잘못 볼수도 있다는 우려로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더우기 자기가 확인하려는 사람은 오늘의 내무원이였던것이다.

어느날 저녁 공장사무실에서 생산총화가 끝난 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계획지도원이겠거니 생각하며 무심히 대답했는데 문가에 나타난 사람은 의외에도 내무원이였다. 말없이 보내는 웃음… 《치안대》에서 본 사람이 분명했다.

담이 크다는 남계수지만 가슴이 쿵쿵 높뛰였다.

《지배인동무, 일이 잘됩니까?》

《겨우 걸음이나 뗀 공장인걸요. 앉으십시오.》

《동윤덕의 문제로 시내무국에 청원을 했더군요.》

그러니 자기가 한 청원에 답변을 주자고 온것이다. 나를 알아보지 못한것이 아닐가. 이런 생각을 하며 자리를 권했다.

《예. 기술자가 돼서… 아깝거든요.》

《기술을 가진 사람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동윤덕과 같이 동요하면 나쁜 놈들에게 리용된다는걸 알아야 합니다. 당시 종이공장 화재사고를 일으킨 놈들은 동윤덕에게 혐의를 넘겨씌우려고 꾀했습니다. 우린 동윤덕이 제스스로 고향인 허천에 내려간것만큼 그가 진심으로 개심하기를 바라고있습니다.》

《그랬군요.…》

남계수는 모든것이 석연하기에 할 말이 없었다.

《지배인동무, 한가지 물어봐도 될가요?》

내무원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남계수는 좀 긴장해진 자세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일시적후퇴시기에 〈치안대〉한테 구원된 사실을 왜 내무기관에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나로선 명확한 사실을 알수 없어서지요. 혹시 내가 잘못 볼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우유부단한 대답입니다. 지배인동문 알아야 합니다. 지배인동무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 동지들이 목숨을 내대는 모험까지 서슴지 않았다는것을 말입니다.… 그만큼 지배인동무를 귀중히 여기고 보살펴주는 나라의 은덕을 잊지 말아야죠.》

내무원이 돌아간 후 남계수는 오래동안 깊은 생각에서 헤여나지 못했다. 동윤덕은 물론 자기자신도 나라를 위해 별로 크게 한 일이 없지만 그처럼 어려운 시기에 나라에서는 하찮은 한 생명을 구원해주기 위해 위험천만한 구출작전까지 벌린것이 아닌가.

그래서 남계수는 동윤덕이 림종을 마치는 순간에라도 자기들을 위해주는 나라의 고마움을 느꼈으면 했지만 그는 이것을 다 깨닫지 못했다. 대신 그는 남계수의 손을 잡고 한뉘 저만 품고 산 가슴속을 헤쳐보였다.

《계수형, 나같이 눈뜬 장님은 없을거외다. 세상을 제 저울에 올려놓고 타산만 앞세우다나니 이 모양, 이 꼴이 되였소그려. 후회막급이우다. 사람이 세상에 나서 그림자도 남기지 못하고 가자니 말이외다. 짐승도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데 나 같은 놈은 이승에 남기고 갈게 아무것도 없소그려. 의지가지없는 우리 소옥일 제 자식처럼 여기고 애비처럼 살지 않게 이따금 편지로라도 매를 들어주우. 애를 볼 면목조차 없는 나요. 내 왜 계수형의 말을 듣지 않았겠소. 사람이 죽으면 석자 묻힐 땅이면 된다는걸 모르고 돈을 벌겠다는 제 욕심만 부리면서 지난날의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헛되게 산게 부끄럽구려. 하지만 내 죽기 전에 진정으로 묻고싶은게 있수다. 남형은 제손으로 나라에 그 많은 돈을 바친것이 후회되지 않소?…》

동윤덕의 물음이 지금도 들려왔다. 그 물음은 마음속에서 흐르는 한 인간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문기척이 나더니 강치명이 들어왔다. 이렇게 찾아온것을 보면 긴요하게 할 말이 있으리라고 생각한 남계수는 말없이 자리를 권했다. 봉흥이라는 먼곳까지 갔다오게 한것이 속에 걸려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이 사람과는 수고했다는 말을 하기도 주저하게 되는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두사람이 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축이라 오가는 대화는 언제나 짤막했고 자주 동강이 났으며 다음 말을 누가 먼저 하기를 기다리기가 일쑤였다.

강치명이 미간을 약간 좁힌채 말했다.

《우리 공장에 대한 검열사업이 진행된다는걸 알고있습니까?》

《정상적인 검열이겠지요.》

무심하게 울리는 남계수의 말에 강치명은 눈길을 쳐들어 허공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한숨을 쉬였다.

《준비야 해야지요. 그게 검열을 받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걱정스럽습니다.》

《소옥이일로 너무 속을 쓰지 마시오. 휴가기간이 끝나면 돌아오겠지요.》

누구보다 마음을 써야 할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여서 강치명은 불쾌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지배인동문 생산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문제에도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기업관리란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 아닙니까. 사람들속에서 매우 심중하게 들어야 할 의견들이 제기되고있습니다.》

한손으로 턱을 고인 남계수는 눈길을 내리깐채 듣기만 하였다. 그는 강치명이 바늘 들어갈 틈도 없이 째인 말을 하기에 그 말을 새겨듣는데 습관이 되였다. 메마른 성격은 마음에 안 들지만 론리적인 분석앞에서는 머리를 숙인다. 이따금 타고난 당일군이야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평생 과오를 범하지 않을 사람으로 여겨졌던것이다.

강치명의 어조는 조용하지만 자못 예리한 말들이 울려나왔다. 오늘의 현실은 사회주의기업관리에서 낡은 착취사회의 잔재들을 허용해서는 안되며 철저히 극복해나갈것을 절실히 요구하고있다. 로동생산능률은 높여야 하지만 생산자대중의 권리가 존중되여야 하며 생산환경과 로동보호사업을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소의 실태는 지금 매우 한심한 형편에 있다. 로동자들을 위한 목욕탕 하나도 바로 꾸리지 않아 남자와 녀자가 번갈아 가며 사용하고있지 않는가. 유해로동에 대한 보호시설도 잘 갖추어지지 않은데다 영양제공급도 응당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있다. 상금기준을 새롭게 정하는 문제도 신중하게 대할 필요가 있다. 건달군들에게도 꼭같은 상금을 적용할수는 없다는 견해는 두가지 측면을 가진다. 하나는 로동의 질과 량에 따르는 엄격한 분배로 생산장성을 추동한다는 좋은 점과 함께 집단주의원칙 즉 단결과 협조에 금이 가게 할수 있는 요소가 있다. 때문에 전자는 장려하고 후자는 경계하여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정치도덕적자극을 기본으로 하지 않고 물질적자극 일면에 치우치는 엄중한 편향을 범하게 되는것이다.

《경리형태의 개조는 이루었지만 사람들의 머리속에 리기주의를 비롯한 낡은 사상잔재가 남아있는 현 조건에서 교양사업을 앞세우면서 물질적자극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배인동무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물론 옳은 말입니다. 그렇지만 일한만큼 보수가 차례져야 하는건 응당하지 않소. 조퇴를 자주 하는 사람들과 결근자들은 거의나 고정돼있지요. 작업시간에 일을 하지 않고 돌아치고 기능이 낮아 제품의 오작을 내거나 질을 떨구는것을 방임하고 생활비는 물론 상금까지 같이 준다면 불공평하지 않은가 말이요. 난 교양사업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남계수는 교양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하고있지만 그것이 문제해결의 열쇠로는 될수 없다고 여기였다. 말이나 해준다고 게으른 사람이 일잘할리 만무하고 놀 궁리만 하면서도 남에게 차례지는것을 넘겨다보는 인간들에겐 뭔가 뜨끔한것이 있어야 한다는 고집은 수그러들려하지 않았다. 지금 하도 사회제도가 좋으니 그렇지 일제시기 같았으면 이미 열백번 굶어죽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런 락후분자들에게는 교양보다도 강한 물질적자극을 주어야 한다.

그는 이런 생각을 집요하게 하였지만 내놓고 표현하지 않을뿐이였다.

《내가 말하는것은 시기가 문제라는겁니다. 천리마작업반운동이 벌어지고 앞선 사람들이 뒤떨어진 사람들을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기풍이 차넘치는 때 상금같은 물질적자극을 너무 내세워 사람들사이에 반목이 생긴다면 유익한 일이 못된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남계수는 대답이 없었다. 그것은 긍정이 아니였다. 건달군은 사회적기생충이라고 여기는 그다. 사회주의라는 이 좋은 사회에서 자칫하여 말공부만 하면서 일은 하지 않고 놀고먹는 인간들이 늘어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런 기생충들이라면 그지없이 불쾌한 남계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이와 같은 우려를 당위원장앞에서 내놓고 말할수 없었다. 이것은 그의 제한성이기도 하였다.

《사회적으로 남녀사이에 불순한 교제를 가진것으로 하여 물의를 일으킬수 있는 현상들도 우리 사람들속에서 나타날수 있습니다. 풍기문란이 낡은 사회제도에서 부식되던 타락풍조이며 그 잔재라는것은 두말할것도 없습니다. 내가 우려하는것은 우리가 검열을 받게 된다는것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기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기업관리에서뿐만아니라 종업원들의 정신도덕적인 측면에서도 큰 결함이 나타나지 말아야 하지 않습니까.》

강치명은 이 말을 힘들게 하였다. 그는 남계수의 어떤 고백을 바란것은 아니였다. 직분을 떠나 같은 남자로서 남의 사생활의 리면을 들여다보는것이 좋은 일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여기서 그를 주춤거리게 하는것은 제기되는 문제들의 근거가 불충분하기때문이였다.

최근에 남계수지배인을 둘러싸고 떠도는 여러가지 소문들을 보면 마치도 어떤 기회를 노리고 한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들씌우려고 하는듯 한감을 지울수 없게 했던것이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제기된 자료들이라 하더라도 역시 언제 어디서 누구와라는 물음에 대답을 명확히 주어야 하며 해당한 증인이 동반되여야 한다. 그러나 남계수에 대한 문제들은 여론으로는 검질길 정도라고 하지만 어느 하나도 사실로 확인되지는 않은것들이였다. 험담은 생활력이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남계수라는 한 남자의 인격에 손상을 주는 치정사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할뿐이였다. 이것 역시 시간이 흐르면 진실을 드러낼테지만 현재 본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문제인것이다. 당사자가 직접 밝히면 좋겠지만 남계수라는 인간은 그쯤한 일에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을 사람이다.

잠시후에 강치명은 조용히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

턱을 고인 남계수는 잠든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뇌리에서는 인생사연의 불꽃이 일고있었다. 지나가버린 추억들, 혐오와 환멸, 자책과 반성이 뒤섞인 반디불들이 깜빡이며 흐르고있었다.


철공소를 확대하여 생산물을 늘이면 나라가 갓 해방된 지금 호경기를 맞이할수 있다고 확신한 두사람은 기술자를 찾아 헤매고있었다. 목형을 제작해야겠는데 목수재간이 신통한 사람이 없어서 남계수와 동윤덕은 며칠동안 시내를 뒤지다싶이 하며 돌아다니였다.

지친 하루를 보내고 금시 무너져내릴듯 한 몸을 가까스로 끌며 간신히 걸음을 옮기던 그들은 자그마한 음식점이 눈에 뜨이자 멎어섰다. 둘 다 점심도 건느고 다니다나니 허기가 졌던것이다.

《못 견디겠네. 뭐든지 배를 채워야지.》

남계수의 그 말에 동윤덕은 씩하니 웃을뿐이다. 음식점간판은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고 발이 닿는대로 들어섰다. 겉보기보다는 정갈했다. 구름노전을 깐 방안에 윤기가 도는 둥근상이 놓여있었다. 주방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와 두사람은 귀를 기울였다.

《누님, 한잔만 더 주시우.》

《야, 질기다질기다 너같이 질긴 소힘줄도 있니. 네 집에 가서 마시렴. 손님이 오지 않아 벌이도 안되는데 웬 성화니?》

《흐흐, 내가 왜 이렇게 질겨졌는지 아시우. 누님, 마시는 일두 헐치는 않수다. 내리퍼붓는 오마니 욕사발을 들이키면서 곁에서 악을 박박 써대는 녀편네 앙탈질을 밥먹듯 하며 술잔을 놓지 않는다는게 어디 쉽소. 내 투지는 불굴이외다.》

고작 웃어야 황소웃음인 동윤덕이가 다 참지 못하고 흐흐거리자 남계수는 자기네 남자세상을 보는것 같아 폭소를 터쳤다.

《야, 좀 비켜라. 손님이 온것 같구나.》

《누님, 내 목수일만 시작하면 돈을 벌어 누이한테 뉴똥치마 사줄라오.》

《네 성화엔 못 견디겠구나. 자, 마시렴. 어서, 콱!》

《고마와요, 누님. 천대받는 술군들아 일어나거라, 마음껏 마실 날을 우리가 찾자… 흐흐흐.》

술군의 기막힌 인생구호를 들으며 동윤덕은 머리를 젓고 남계수는 흥미있는 눈길을 주방쪽에 돌리였다.

머리를 쪽진 정갈한 녀인이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은비녀를 꽂은 머리를 약간 숙여보이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뭘 드시렵니까?》

《생선국에 밥하구…》

남계수가 한참 청하는데 녀인이 《술없는 상이야 어떻게 받을가…》하고 혼자말을 하고는 얼굴을 붉혔다.

《하- 우리도 사내가 아니요. 가만, 저안에서 건주정을 해대는 사람이 목수요?》

남계수의 물음에 녀인은 눈길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동생이나 같아요. 한마을 옆집에서 살았지요. 목수재간은 가졌다지만 신통한 일자리가 없어놔서…》

《그 사람 술값은 내가 물어주겠소.》

《예?》

의혹을 품고 바라보는 녀자의 눈빛은 야릇하게 설레였다. 남계수는 그 눈동자를 마주보며 빙그레 웃었다.

굼니는 물결처럼 추억은 번뜩이며 뒤바뀌웠다.

을씨년스럽던 1950년 마가을 어느날 밤. 남계수는 허둥지둥 골목길을 내닫고있었다. 덕산고개에서 반동놈들에게 붙잡혔다 겨우 살아난 그는 은신처를 찾아 해안동에 들어서다 낯을 아는 《치안대》놈들한테 걸려들어 걸음아 날 살려라 하는 판이였다. 이 동네 골목은 미궁이나 같았다. 처음 들어서는 사람은 길을 잃고 밤새 헤매기 쉬웠다.

아무 집 대문이나 무작정 열고 들어서던 그가 마당에 선 녀자를 보고는 흠칠 놀라 다시 내뛰려는데 그편에서 먼저 물었다.

《웬 일이예요?》

《날 잡으려고 하오. 〈치안대〉놈들이…》

녀인이 말없이 응해주자 남계수는 집안이 아니라 마당 한구석 창고에 들어가 숨었다.

이어 대문짝이 부서질듯 하자 녀인의 기겁한 소리가 뒤따랐다.

《에그머니!…》

《여기 웬 녀석이 안 왔어?》

《아니요. 저편 골목으로 뛰여가는 소리가 났는데…》

다급히 멀어져가는 발자국소리를 듣고야 위기를 모면한 안도감을 안고 남계수는 창고에서 나왔다.

《정말 고맙소.》

《왜 쫓겨다니나요?》

《후퇴길이 막혀서 돌아왔는데 찾는 집은 비였길래 헤매다 걸려들었던거요. 하마트면… 덕산고개에서도 잡혔다 겨우 살아났는데… 이거 큰 신세를 졌소.》

《이 밤중에 나서야 또 걸려들거예요.》

《그런들 어찌겠소.》

《우리 집 만장에 숨어있다가 봐가며 움직여보지요.》

《고맙긴 한데. 일없겠소?》

《살구봐야 하지 않나요.》

이렇게 되여 남계수는 고마운 녀자가 이끄는대로 집안으로 들어섰다. 어데서 본것 같은 얼굴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허기진 배부터 채워야겠기에 비위를 내댔다.

《옹근 이틀째 굶고 다니니 뭐든 허기를 끌걸 좀 줄수 없겠소?》

녀인은 마음씨도 갸륵했다. 잠시후에 밥상이 들어왔다.

《때가 땐지라 차려드릴게 없군요.》

소반우에 놓인 밥과 콩나물국이 풍기는 냄새에 허기진 창자가 불같이 다과댔다.

《이거면 큰거지요. 정말 잘 먹겠소.…》

남계수는 평생 살면서 낟알이 귀한것을 느껴보기는 처음인듯싶었다. 볼은 미여지지만 속에서는 그냥 독촉을 해대니 눈알이 튀여나오는것 같고 저도 모르게 코물까지 흘러내렸다.

이렇게 녀인의 도움으로 만장에 숨어지내게 되였다. 한 열흘 지나서 남계수의 은신처로 난데없는 사람이 나타났다. 함께 일해온 양호신이였다.

《이게 우리 호신이 아닌가?》

《계수형! 살아있었구려. …그런데 참, 날구뛴다는 형님이 이런데서 숨어지내시우?》

《허허, 덕산에서 되돌아섰네. 길이 막혔더군. 그러다 귀인을 만나 이렇게 두더지살이를 하지만 배는 안 곯아. 그런데 자네 어떻게 알구 여길 왔나?》

양호신은 술 한병을 꺼내여 척 놓으며 벌쭉이 웃었다. 지금같은 세월에도 술병만은 착실히 건사하고 다니는것이다.

《이제 뒤따라 〈치안대〉녀석들이 올거외다. 내가 고해바쳤으니까요. 흐흐, 또 한번 졸경을 치르어보시우.》

남계수는 해방후 몇해동안 같이 일해보아서 양호신의 사람됨을 안다. 술마시고 주정만 안하면 나무랄데 없는 사내다. 점심참이기에 소반에 밥을 차려든 녀인이 나타나자 남계수는 이마를 쳤다. 그제야 동윤덕과 함께 찾았던 음식점이 생각났다. 거기서 양호신을 만나지 않았던가. 천대받는 술군들아 일어나거라, 마음껏 마실 날을 우리가 찾자던 그의 구호가 금시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아차, 내 이런 멍청이구실을 하다니. 우리 호신이의 누이, 이런놈의 인사불성이라구야. 아니, 귀띔이라도 좀 하면 못쓰우?》

남계수가 그제야 알아보며 껄껄 웃자 녀인은 소반을 내려놓고 한옆에 앉았다.

《동생을 잘 이끌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신세를 지고있는 녀자한테서 인사를 받게 되자 남계수는 손을 내저었다.

《그런 말 마오. 우리 호신인 사내요. 일군이요. 술이야 어쩌겠소. 어떤 남자들은 그 물을 마셔야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니, 허허.》

양호신이 힘을 받았는지 입이 건 말버릇으로 이야기를 했다.

《아무렴요. 술을 마셔야 잘 보이고 또 담도 생기거든요. 흐흐. 룡덕리 외눈깔이 장총을 꺼꾸로 메고 〈치안대〉대장이랍시고 흔들댑디다. 날더러 제밑에 들어오라기에 취한척 하고 받아넘겼수다. 아예 짓밟아 명줄을 끊어주려다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이 생각나 그만뒀지요.》

남계수는 양호신이 허투루 말하지 않는다는걸 알기에 허허 웃으며 녀인을 넘겨다보았다. 사내들사이에 앉았지만 그저 담담한 얼굴이다.

《이 사람 말을 들으니 누인 어떻소?》

남계수의 물음에 녀인은 나직이 대답했다.

《세상은 변해도 사람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봐요.》

말속에 말이 있고 사람이 비낀다고 한다. 남계수는 은인이나 같은 녀인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형님, 우리 누인 보기 드문 녀자외다. 사내들이라면 어느 하나도 사람취급을 안하거든요. 나 하난 강아지새끼같이 고와하지요.》

거칠고 투박한 사나이인 남계수지만 감상적인데도 있었다. 그는 자기가 지금 어떤 원인으로 하여 추억의 갈피속에서 한 녀성의 모습을 찾아보고있는지 알지 못하면서 상념을 이어가고있었다. 사람이 사느라면 인연을 맺기마련이다. 그 인연에 울고웃으며 사는것이 인생이기도 한것인지 모른다.

주숙진은 불우한 운명을 살아온 녀자였다. 열일곱살에 머리를 얹고 시집에 들어갔다지만 남편이란 사람은 한해도 정을 주지 않고 도박에 미쳐 집을 뛰쳐나가버렸다. 고달프기 그지없는 시집살이지만 며느리라는 명분을 지켜 시부모들이 세상을 뜰 때까지 속절없이 빈집을 지켰다. 친정으로 돌아올수 없는 출가외인이라는 운명의 강요였다.

전쟁은 재난임이 틀림없지만 사람들에게 처절한 생활체험을 통하여 민족과 개인의 존재를 가르치는 교단이였다고 생각하는 남계수다. 망국의 수난을 뼈저리게 겪어본 사람들이기에 전쟁은 빼앗겨서는 안되는 조국을 인식시켜주었다. 그것은 글로 배운것이 아니였으니 누구나 해방후 5년동안 가져본 생활의 보금자리가 얼마나 소중한것인가를 스스로 자각한데서 찾은 진리였다. 계급과 계층, 재산의 소유관계와 신앙과 지식을 초월한 새로운 인식은 한 민족을 각성시킨 촉진제였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남계수는 동진항쪽으로 옮겨갔지만 주숙진의 음식점을 이따금 찾아가군 하였다. 일찍부터 외롭게 살아온 녀자는 언제나 남계수를 반갑게 맞아주었으며 그가 하는 이야기들을 새겨들었다. 군기기금헌납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남계수가 그 일에 남다른 성의를 다하는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녀인의 눈길은 이전과 달라졌으며 말이 적은 성미와는 달리 이것저것 묻기도 하였다. 개인기업을 하건 작은 음식점을 차리고 살건 돈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여겨 온 주숙진이다.

남계수가 헌납한 돈의 액수를 들은 날에는 너무도 놀라서 얼이 나간 사람처럼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였다. 50만원을 나라에 바치고도 크다고 여기지 않으며 더하지 못한 자책을 내비치는 남자의 모습에서 그는 돈보다 더 큰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것은 이 녀자에게 있어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이였다. 어느날 저녁 서호쪽에 갔다오던 길에 점심을 건넸기에 남계수는 주숙진의 음식점에 들렸다. 가재미국에 밥이 전부인 독상을 마주하고 먹는데 아래칸에서 술을 마시던 젊은 녀석 하나가 알은체 하며 수작질을 했다. 남계수가 옳으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내키지 않은 대답을 했더니 그편에서 한다는 소리라는게 군기기금헌납을 할 돈이 있으면 자기한테 적선하라는것이였다. 하도 가소로와 귀등으로 넘기니 이번에는 살기를 띤 악담을 내던졌다. 네가 지금처럼 살다간 이해안으로 명을 다한다는것을 알라는 위협적인 협박이였다.

남계수는 먹던 숟가락을 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래웃턱도 가리지 못하는 버르장머리없는 놈 같으니, 혀바닥 놀린 값을 받고싶으냐?》

야질거려댄 까투리같은 녀석이 한걸음 물러서자 술잔을 비우던 여럿이 때를 만난듯이 일어나며 기승을 부렸다.

《버릇을 우리가 가르쳐주지.》 하며 주먹을 내드는데 그중에서 한놈은 고기를 썰던 칼을 들기까지 했다. 판이 편안치 못하겠다고 여긴 남계수는 생각할 사이도 없이 몸을 날려 앞에 선 놈을 번개같이 받아넘기는것과 함께 칼잡은 놈에게 주먹을 안겼다.

《내가 남계수다!》

아직은 피가 펄펄 끓는 남계수인지라 고함을 지르며 잡히는족족 둘러메치고 내던지였다. 술상이 부서져나가고 그릇개비들이 박산나는 소리에 놀라 주숙진이 주방에서 달려나왔을 때는 싸움을 말릴 형편이 못되였다. 방안에서 서너놈을 짓밟아댄 남계수는 마당에 나딩군 두 녀석에게로 다가갔다. 수적으로 많은 제 패거리의 힘을 믿고 날쳐댄 놈들은 방구석에서 어디가 부러졌는지 아우성을 질러댔다.

아직도 칼을 쥔채 마당에 너부러진 녀석의 가슴팍을 짓밟은 남계수가 분기를 이기지 못해 소리쳤다.

《이놈아, 주둥이질을 더 해봐라! 어데다 적선을 하라구? 너 같은놈의 배 채워주자고 버는 돈인줄 아느냐? 이 더러운 놈!》

주숙진이 말려서야 겨우 진정한 남계수는 《이거 안됐소. 마사놓은 상과 그릇값은 변상하겠소.》 하며 품안에서 돈지갑을 꺼내여 통채로 넘겨주고는 자리를 떴다.

남계수로서는 그러루한 일을 여러번 겪었지만 그때마다 못된 망나니들이겠거니만 여기였다.

그후 며칠이 지나서 주숙진이 남계수를 찾아왔다. 남들의 말밥에 오를가봐 몹시 조심하던 녀자가 이때만은 조금도 주저하는것 같지 않아 남계수는 의아해하였다. 만나자바람으로 하는 첫마디가 조용한 곳이 없는가 하는 질문이여서 으슥진데로 데려갔더니 엄청난 말로 남계수를 놀라게 했다.

《이봐요, 이제부턴 우리 음식점에 오면 안돼요. 제발 부탁이예요.》

주숙진은 자기 음식점에 오는 사람들중에 나쁜 놈들이 있다고 하면서 그놈들은 술이나 마시는 불량배가 아니라 못된짓들을 꿈꾸고있는데 폭약도 가지고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쓰려고 꿍꿍이를 하는걸 들었다고 하는것이였다. 남계수가 대뜸 내무서에 신고하라고 이르니 알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녀자는 더듬거려댔다.

《거기 이름을 짚어대며 이번에는 살려두지 않는다고 별렀어요. 무서워요. 조심하세요.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말아요.》

얼마나 걱정스러웠으면 안하던 걸음을 했으랴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가슴을 한가득 채웠다.

《내 걱정은 마오. 무슨 일인들 안 겪었다구…》

《아니예요. 그놈들은 악한들이예요.…》

남계수는 한동안 왼심을 써서야 주숙진을 진정시켰다. 오래 지체하면 안된다는것을 깨달은듯 주숙진은 서둘러 품안에서 종이에 싼것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이건 뭐요?》

《돈… 돈이예요. 제가 가지고있던…》

주숙진은 고개를 숙이며 기여드는 소리로 이었다.

《부탁해요. …이 돈을 거기서 군기기금헌납을 할 때 보태줘요. …그럼 고맙겠어요.》

남계수는 가슴 한구석이 찡하니 울리는것을 느끼며 만류했다.

《군기기금헌납이야 제 이름으로 해야지 누구한테 보탠다는건 뭐요. 말이 안되는 소리요.》

《저야 음식장사나 하는 녀잔데 무슨 생색을 내듯 이름을… 사람에게 돈보다 귀한게 있다는걸 알았으면 되는거지요. 저한텐 그게 제일 소중한거예요.》

주숙진은 이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였다. 한달후 동진항일대에 대한 적들의 대공습이 있었고 음식점이 자리잡았던 성덕마을은 하루밤사이에 재더미로 변해버렸던것이다.…

추억은 인간이 남기는 자취이기도 하다. 그것이 아무리 평범한것이라 해도 남계수는 자기가 더듬은 지나간 생활이 어디에 기인된것인가를 스스로 물어보며 의문을 지울수 없었다.

오래전에 흘러가버린 생활, 아픔을 남기고 사라진 한 녀성의 잊을수 없는 모습… 마음이 이상하게도 불안해나는것으로 하여 그는 소리없이 한숨을 내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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