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10 회)


제 1 장

10


10월 하순(음력) 어느날, 어전회의가 진행될 만월궁의 회경전에로 조정대신들이 모여들고있었다.

황궁의 정문이라는 2층루각 승평문을 거치고 신봉문, 창합문을 지나면 33개의 높은 돌계단우에 웅장화려한 회경전이 장엄하게 솟아있다. 비색찬란한 청기와를 떠이고 눈부신 금단청으로 장식한 회경전은 만월궁의 으뜸가는 궁궐로서 력대 임금들이 조회를 열고 정사를 보는 집이다.

참지정사 겸 수국사 최충은 문하시중 서눌과 문하시랑평장사 황주량의 뒤를 따라 조심히 회경전으로 들어섰다.

넓고 으리으리한 회경전에 들어서면 선참 눈에 안겨오는것은 앞쪽의 좀 높은 단우에 룡그림병풍을 두른 가운데 자리잡은 룡상이다.

조정대신들이 옷매무시를 바로하고 품계에 따라 문관은 동쪽, 무관은 서쪽으로 벌려서자 천천히 서쪽문이 열리더니 자황포(황적색의 도포)를 입고 면류관을 쓴 강헌대왕(정종. 고려10대임금. 재위기간 1035~1046년)이 들어섰다.

그 순간 합문사(조회 및 의례를 맡아보는 합문의 장관)가 《재배요!―》하고 소리쳤다. 대신들은 정중한 자세로 임금을 향해 두번 절을 하고나서 《만세》를 부르며 팔을 너울거리고 발을 들었다놓았다.

황제국의 체모가 넉넉히 엿보이는 옛 고구려의 조회의식을 그대로 보는듯 싶었다.

강헌대왕이 룡상에 앉자 장내는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두손으로 상아홀을 모아잡은 최충은 임금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아직은 27살로 임금이 젊다지만 어려서부터 병약하다보니 겉늙어보였다. 하지만 영특하고 총명하여 국사를 무난히 다스리니 나라앞에 다행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은근한 미소를 머금은 강헌대왕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여러 경들에게 한가지 좋은 소식을 알려주겠소. 북계병마도감에서 수질구궁노라는 〈신기한 병기〉를 또 만들어냈소. 짐이 보건대도 정말 교묘하고 신기함이 끝이 없소. 혼자서도 적진을 손쉽게 불지를수 있는 수질구궁노를 군사들에게 줄수 있게 되였으니 한시름 놓겠소.》

최충은 누구보다 가슴이 설레였다.

어제낮 동지라고 하는 궁성안의 동쪽 늪에서 임금을 모시고 몇몇 대신들의 참가하에 수질구궁노의 위력사격이 있었다. 과녁으로 늪에다 띄워놓은 쪽배 두척이 수질구궁노에서 쏟아져나온 불화살들에 얻어맞고 불길에 휩싸였다.

그것을 지켜보는 임금의 눈가에도 기쁨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었다.

임금은 즉석에서 수질구궁노를 많이 만들어 군사들에게 보내주라는 어명을 내리였다. 그리고 수질구궁노를 발사한 군사들에게 상을 하사하였다.

헌데 마땅히 누구보다 임금의 치하를 받아야 할 박원작은 그자리에 없었으니 수질구궁노를 만들어가지고 개경에 온 당사자가 어이하여 빠지게 되였는지 최충은 그 의문을 풀수 없었다.

회경전의 장내가 희소식으로 술렁거리는데 지중추원사 리자연이 량켠으로 갈라진 가운데로 남먼저 나섰다.

《페하! 북계병마도감사 박공은 근 10년세월 집을 멀리 떠나 객지에서 〈신기한 병기〉들을 수많이 만들어냈소이다. 그가 세운 공을 생각하면 개경으로 전직시켰으면 좋으련만… 군사일이 그걸 허락치 않사옵니다. 박공에게 한품계를 더해서 군기감의 소감(종5품관)을 겸해주고 계속 북계병마도감사를 맡겨주어 시급히 수질구궁노를 많이 만들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셨으면 하오이다.》

문무대신들의 제일 앞반렬에 선 서눌이 천천히 몸을 뒤로 돌렸다. 리자연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이 엄했다.

이윽고 임금을 향해 돌아선 서눌이 낮으나 격한 어조로 말했다.

《페하! 옛말에 좋은 미끼에는 큰 물고기가 걸려들고 인덕을 베풀면 반드시 훌륭한 신하가 나타난다고 하였소이다. 국력을 위해 누구도 견줄수 없는 큰공을 세운 박원작을 그냥 낮은 벼슬자리에 두어서는 안될줄로 아오이다.》

장내에는 그 말에 수긍하여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들이 태반이였다.

임금도 고개를 끄덕이였다.

최충은 마음이 달아올라 급히 한걸음 나섰다.

《페하! 지중추원사공의 의견도 옳고 시중공의 의견도 옳은줄 아오이다. 국사에는 선후차가 있는 법이니 하루빨리 군진들에 수질구궁노를 보내주자면 박원작을 서경에 내려보내야 하오이다. 그다음에 상경시켜 높은 벼슬에 등용하는것이 좋을듯 하오이다.》

리자연은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게 어찌된 판인가. 서쪽에서 해가 떴나. 누구보다 반기를 들줄 알았던 최충이 시중의 의견까지 무시하고 지지를 표하다니…

리자연은 어제낮에 일부러 박원작을 궁성으로 불러들이지 않았다. 임금이 즉석에서 높은 벼슬을 하사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올가을에 리자연은 주로 군사관계의 일을 맡아보는 지중추원사로 승급하였다.

중추원은 병부보다 군사관계에서 더 큰 권한을 가지고있었다. 나라의 군사를 주관한다고 하지만 병부는 6부의 하나로서 중서문하성에 소속되여 시중의 관할을 받지만 중추원은 곧장 임금에게 종속되여 직접 군사일에 참례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군령들은 다 중추원을 거쳐 경군과 지방군들에 하달된다. 하기에 병부를 다스리는 병부상서는 정3품관이지만 중추원에서 군사일을 맡아보는 지중추원사는 종2품의 대신이다.

강헌대왕이 서눌에게 물었다.

《시중공께선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서눌은 가벼운 한숨을 내쉬더니 나직이 대꾸했다.

《여러 대신들의 의견이 그러하다니 소신 생각도 달라졌소이다. 참지정사의 의견이 옳은듯 하오이다.》

《그럼 됐소. 수질구궁노를 만드는 일은 그렇게 락착짓겠소. 다음, 국사를 론하기 전에 세상형편이 어떤지 그것부터 듣기로 하겠소.》

강헌대왕의 눈길을 받은 례부상서가 한발 나서며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페하! 먼저 송나라조정의 동향을 아뢸가 하나이다. 이번달에도 송나라에서는 우리와의 국교회복을 정식 청해오지 않았소이다. 허나 수시로 찾아오는 송상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이 어느때건 반드시 고개를 숙이고 우리 나라를 찾아올것이라는 생각이 확연해지옵니다. 지금 송나라조정의 적지 않은 대신들이 고려와 국교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 하오이다.》

최충에게는 그 소식이 별로 새롭지 않았다. 주변나라의 정세에 누구보다 깊은 관심을 돌리고있는 그였기때문이다.

고려건국이래 오늘처럼 나라의 위신을 만방에 떨친적은 일찌기 없었으니 천하대국이라 자처하며 용맹과 무적을 뽐내던 거란군의 침략을 그것도 세차례씩이나 모두 쳐물리친 나라가 바로 고려였다.

계사년(993년)과 경술년(1010년), 무오년(1018년), 불과 20년 사이에 무려 수십만대군으로 세번이나 쳐들어왔던 오랑캐군의 위세는 얼마나 도도했던가. 경술년에는 거란군주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왔었다.

허지만 노도와 같이 떨쳐일어선 고려군민앞에 물먹은 담벽처럼 기가 꺾이고 녹아난 거란군이였다.

반면에 송나라는 거란앞에 어떤 수치를 당했던가. 수십년전 송나라는 자기 나라에 쳐들어온 거란군과의 싸움에서 여지없이 패하여 굴욕적인 《전연지맹》이란 화의를 하고 해마다 10만냥의 은과 20만필의 비단을 적에게 바치지 않으면 안되는 신세가 되고말았다.

송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거란못지 않은 광대한 령토와 많은 인구를 가지고있어 국력을 자랑하던 대국이 아닌가.

하기에 송나라까지 무릎을 꿇게 한 거란군을 여지없이 쳐이긴 고려를 선망하여 천하의 나라들에서 손을 잡자고 사절들을 다투어 보내는것이다. 오늘날에는 옛 발해땅의 한끝에 웅거한 철리국, 불나국 같은 나라들은 물론하고 적대국인 거란까지도 사신을 보내온다.

천하의 장사군들은 또 어떤가. 동녀진, 서녀진의 장사군들, 거란장사군들, 왜나라며 송나라장사군들은 물론 저 멀리 해지는 나라라는 수륙만리의 대식국(오늘의 중근동일대)에서까지 가지각색 귀물들을 걷어싣고 고려로 찾아오고있다.

최충은 어이하여 송나라조정이 국교회복의 사절단을 파해오지 못하는지 그 속내를 알고도 남음이 있다. 체면이 없다면 어찌 사람이라고 하랴.

두 나라사이의 지나간 관계를 헤쳐보면 얼굴이 뜨거운 불미스러운 사변이 있었다. 60년전 송나라는 날로 급속히 세력을 떨치며 파죽지세로 남하해오는 거란군을 견제하고 나라를 보존하려는 의도에서 고려와의 련합을 청하였고 이어 빼앗긴 연계땅(베이징일대)을 수복하는 싸움에 군사적지원을 줄것을 요청하였다.

고려는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는 송나라조정의 청을 심중히 받아들여 압록강일대에 군사를 증강하였다.

배후에서 위험을 느낀 거란은 고려에 급히 《화친》을 청하였다. 허나 고려조정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거란은 선손을 쓰려고 고려에 전란을 일으켰다.

계사거란란(993년 거란군의 침략)을 겪은 그 이듬해, 고려는 거란을 징벌하여 원정을 할데 대한 제의를 송나라조정에 알리였다. 그때 송나라는 거란을 겁내여 고려조정의 제의에 응할수 없다고 하였다.

이로써 두 나라사이의 국교는 끊어지고말았다.

련이어 일어난 거란란때에도 송나라조정은 강건너 불보듯 하였다.

그러던 송나라는 고려가 여러차례의 거란란을 모두 이겨내고 국력을 떨치자 화친을 뜻하는 의미에서 장사배들을 앞세웠던것이다.

송나라장사배들은 례성강의 벽란나루에 숲을 이루며 밀려들고있었다.

최충은 가까운 앞날에 꼭 송나라조정이 국교회복을 청하는 사절단을 보내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례부상서의 아뢰임은 계속되였다.

《페하! 이번에 장사배를 끌고온 송나라 큰 장사군이 전하기를 자기 나라의 한 조정대신은 임금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오이다. 강포한 거란이 벌써 여러번이나 고려를 쳤지만 그때마다 대군은 몰살당하고 참패만 거듭했다, 그로 인하여 국력이 쇠약해진 거란은 있을수 있는 고려의 보복이 두려워 제편에서 먼저 허리를 굽히고 국교를 맺자고 간청했다, 이러한 때 송나라도 고려와의 국교를 회복한다면 거란군이 쳐들어올 때 고려군이 바다를 건너와서 참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옛적처럼 거란의 배후를 위협할수 있으니 이것만도 송나라에는 큰 도움이 아닐수 없다 하고 말이옵니다.》

할 말을 다했다는듯 례부상서는 제자리로 들어가섰다.

신하들을 둘러보던 강헌대왕이 언성을 높이였다.

《좋소, 송나라와 국교를 회복하면 우리에게도 유익한 일이요.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오로지 자기 힘을 키워 떳떳하게 제힘으로 겨레와 나라를 지켜왔으니 우린 바로 그 바통을 그대로 이어나가야 하오. 송나라조정이 어떻게 나오든 우리가 관여할바는 아니요. 우린 그 누구의 도움을 기대해선 안되오. 세상은 결코 약소국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것이 지나간 세월이 보여준 교훈이요.》

대신들이 일제히 입을 모았다.

《참으로 명철하시오이다.》

최충은 진정으로 임금의 식견과 안목이 무디지 않음을 자랑하고 싶었다.

강헌대왕이 아니였다면 조정은 거란과의 교제를 주동적으로 대처해나가지 못했을것이다.

일격에 고려를 삼키려다가 쓰디쓴 패배만을 당한 거란은 뒤늦게야 실책을 깨달았다. 고려는 비록 령토는 크지 않아도 강한 나라라는것을!

하나의 겨레가 사는 땅, 수천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지였고 천하에 강대함을 과시했던 대고구려의 후손들인 고려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바칠줄 알았다.

거란은 그런 나라를 무모하게 건드리다가는 도리여 제가 망할수 있다는것을 알아차린것이였다.

자주 군사를 일으켜 남의 나라를 치면 백성들은 지치고 군사들은 피페해진다더니 거란이 그러하였다. 거란은 고려와의 오랜 싸움으로 무서운 기근이 들고 도처에서 도적이 성행하였다.

여기에 고려와의 싸움에서 여지없이 녹아난 울분에 심화병을 일으킨 성종이 죽고 어린 왕자가 룡좌에 올랐다. 이를 기화로 어린 임금을 대신하여 성종의 후처인 흠애태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였다. 이때를 기다렸다는듯 부인이 조정을 다스리면 나라를 망친다면서 여러 부마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간신히 흠애태후가 부마들의 목을 치고 집안싸움을 평정했다고는 하지만 거란은 심히 약해졌다.

쇠약해진 거란은 고려의 복수가 두려워 거퍼 두차례의 봉명사신단을 띄워 국교회복을 간청했다.

그들의 간청으로 조정에서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강헌대왕은 등극한 첫해에 화친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조정대신들의 주장을 일축하고 나라의 군력이 비할바없이 강해진 이때에 거란의 제의를 받아들여서 그들을 제압해야 한다는 어지를 내리였다.

하여 3년전 겨울 거란과의 국교가 회복된것이였다.

강헌대왕은 룡상에서 일어나 신하들을 굽어보았다. 임금의 얼굴에 방금전과는 달리 분노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례의를 모르는자와는 사귀지 말라는 말이 있소. 짐이 있을수 있는 전란을 방비하기 위해 림시계책으로 거란과 화친을 하였다만 그것들이 오만무례하게 놀아대는 꼴을 보면 더는 참을수 없소. 그들이 아직도 우리의 성을 차지하고 넘겨주려 하지 않으니 무슨 마련이 있어야 할가 보오.》

그 말에 최충은 의분을 금할수 없었다.

전달에 거란동경의 도지휘사 고유한이 사신으로 왔었다. 그는 담판에서 진땀을 흘렸다. 례부상서가 언제 우리의 두개 성을 내놓겠는가고 들이대자 고유한은 거란왕의 분부를 받아야 한다고 우는 소리를 하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애걸하였다.

두개 성이란 을묘년(1015년) 정월에 거란군이 불의에 압록강을 건너와 보주(의주)와 정원땅을 차지하고 쌓은 성이였다.

두 나라간의 전란이 멎고 국교까지 회복되였지만 거란은 이피탈저피탈을 늘어놓으면서 그 두개 성의 반환을 질질 끌고있었다.

분을 삭이지 못해 오락가락하던 강헌대왕이 룡상에 주저앉았다.

《떡으로 치면 떡으로 갚고 돌로 치면 돌로 갚으라는 말이 있소. 거란이 계속 못되게 구니 그래서 짐은 장성을 마저 쌓아야겠다는거요.》

최충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허나 몇몇 대신들은 서로 마주보며 놀라와하였다. 하긴 그럴만도 하였다.

장성이란 이 나라의 북부지대에 길게 쌓아야 하는 천여리성을 말한다.

50여리의 개경성을 쌓는데만도 무려 21년의 긴 세월과 20여만의 장정로력이 동원되였다는것을 념두에 둘 때 그보다 스무배나 더 긴 장성을 그것도 험한 준령우에 쌓아야 하니 그 간고함과 어려움을 상상이나 할수 있으랴.

하기에 7년전 첫걸음을 뗀 장성공사는 북계의 구간도 채 끝을 맺지 못하고 이태전에 그만 중단되고말았던것이다.

장내는 술렁거릴뿐 누구도 감히 임금앞에 나서 간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사의 간고함에 기가 질려서였다.

조용히 임금을 만날 때마다 장성을 마저 쌓는것이 좋겠다고 아뢰였던 최충이 다시 한걸음 나섰다.

《소신 최충, 한말씀 더 여쭙자고 하오이다.

항간에 담을 쌓지 않으면 미구에 도적을 맞을수 있다는 말이 있소이다. 이웃에 여전히 우리를 넘보는 흉적이 칼을 갈고있는데 어찌 담을 쌓지 않을수 있겠소이까. 일판을 크게 벌리면 페단도 생길수 있고 공사를 오래 끌면 손실도 있기마련이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장성을 마저 쌓아야 백성들이 발편잠을 잘수 있소이다.》

강헌대왕이 룡상에서 벌떡 일어섰다.

《옳소. 의로운 일로 백성들을 인도하면 그들은 피곤한줄을 모른다는 말도 있소. 짐은 여러 경들에게 우리가 장성을 마저 쌓아야 하는 그 취지를 다시한번 상기시킬가 하오.

일찌기 태조대왕께선 거란이 락타를 보내오면서 국교를 맺자 했을적에 그네들의 청을 단호히 거절하시였소. 그 뜻을 굳히기 위해 거란의 락타들을 다리밑에 매두어 굶어죽게 하였소. 동족의 나라 발해를 빼앗은 거란것들이 장차 고려까지 삼키려고 하는 흉악한 심보를 그때 벌써 알아보시였기때문이요.

짐이 태조대왕과 달리 거란의 청을 받아들여 국교를 맺게 한것은 시조의 그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보다 더 강경하게 거란을 제압하기 위해서였소. 거란과 화친을 하여 많은 시간을 얻은 우린 그동안 군력을 더욱 다지였소.

거란이 그전보다 쇠약해진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를 먹으려 하는 그네들의 속심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소. 여전히 그들은 강적이란 말이요. 걱정거리를 국내에 가지고있는자는 강국을 치고 근심거리를 국외에 가진자는 약국을 치라는건 그네들이 념불처럼 외우는 말이요. 오늘 거란의 도처에서 살길이 막혀버린 백성들이 들고일어났다고 하는데 그런 걱정거리를 국내에 가지고있은즉 거란이 민심을 무마하려 해서도 또다시 압록강을 건너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수 있겠소.》

강헌대왕은 잠시 말을 끊고 신하들을 둘러보고나서 빠른 어조로 말을 계속하였다.

《장성을 반드시 쌓아야 하는 까닭은 첫째로, 고려는 거란이 차지한 고구려의 옛땅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그 뜻을 세상에 알리자는것이며 둘째로는 만일 거란이 덤벼들 때에는 다져온 군력을 다해 그 소굴을 요정내여 쌓이고쌓인 원한을 풀자는 뜻이요. 셋째로는 모든 백성들에게 이웃에 우릴 넘보는 흉적이 있는 한 잠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는것을 깊이 심어주기 위해서요. 그렇소.》

신하들은 또다시 입을 모았다.

《참말 지당하시오이다.》

강헌대왕은 최충에게 눈길을 주었다.

《참지정사가 장성공사를 맡아야겠소. 언땅이 녹으면 장성공사를 벌릴수 있도록 공은 설을 쇠고 북계로 내려가야겠소.》

리자연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최충에게 그런 중임을 맡기다니…

장성공사를 주관하는 사람은 맡은 일감이 아름찬것만큼 조정에서 막강한 권세를 부리게 된다. 장성공사의 첫걸음을 뗀 류소가 이제는 고인이 되였지만 얼마나 큰 권세를 부렸던가. 시중 다음가는 평장사의 벼슬을 가지고 온 나라를 움직여 성을 쌓았는데 그때 그앞에서 문무백관들이 쩔쩔맸다.

장성공사에 조금만 태만해도 역적루명을 씌우는 판이였으니 그래서 류소를 범처럼 여겼던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최충이 류소처럼 호랑이로 둔갑해서 조정백관들을 다스리겠으니 이게 바로 야단이 아닐수 없는것이다.

허나 다음순간 리자연은 괜한 겁을 냈다고 바꾸어 생각했다.

최충은 문관인데다 마음이 모질지 못한 사람이여서 아무리 큰 권세가 차례졌대도 백관을 제 맘대로 다스릴순 없다. 쏘는 이가 빠진것처럼 차라리 잘된 일이다. 아름차기 그지없는 장성공사는 한두해에 끝날수도 없는것이니 그동안 최충은 도읍을 멀리 떠나 북방의 산간벽지를 오르내려야 할것이다. 이런걸 가리켜 화가 복이 되였다고 하는것이리라. 최충이 없는 조정을 얼마나 바랐던가. 이 틈에 조정에서 최충의 세력을 뽑아던진다면 그가 돌아온대도 독불장군이라 맥을 추지 못할것이다.

리자연이 간특한 속구구로 쾌재를 부르는데 임금의 음성이 회경전을 울리였다.

《마감으로 천균노라는 병기를 만들것인가 아니면 말것인가 하는거요. 북계병마도감사가 표문을 올려왔는데 3만근이나 되는 큰 화포를 만들겠다는거요.》

3만근이나 된다는 화포소리에 장내는 놀라움에 휩싸였다. 세상에 그렇게 큰 대포도 있는가.

리자연은 천균노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다시한번 쾌재를 올리며 박원작이 본의아니게 자기를 도울 때도 있다고 속으로 기뻐했다.

며칠전 마침 리자연이 집으로 일찍 들어간 그사이에 박원작은 중추원에다 천균노를 만들도록 허락해주십사 하는 표문을 들이밀었다. 그 표문이 고스란히 임금에게 가닿은것이였다.

박원작이 내민 표문을 놓쳤으니 리자연은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그 표문이 자기에게 걸려들었다면 없애버리거나 임금에게 가지고가서 천균노를 만들수 없는 구실을 늘어놓는건데…

화가 난 리자연은 병부에다 당장 박원작을 만나서 천균노가 어떤 병기인지 알아보라는 분부를 내렸다.

박원작을 만나서 알아보니 천균노란 황당하기 그지없어 도저히 만들수 없는것이라는 병부의 대답은 리자연을 기쁘게 하였다.

박원작이 올린 표문을 받아본 임금은 어전회의가 열리면 반드시 천균노를 화제에 올릴것이다.

바로 그 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최충은 분명 천균노를 즉시 만들고싶어할것이다.

그럴 때 그를 앞질러 천균노를 만들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워야 한다.

그러면 최충은 이 리자연을 눌러보려 한사코 천균노를 만들어야 한다고 임금에게 졸라댈것이고 임금은 할수없이 그 의견을 들어줄것이다.

천균노란게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수 없는 도깨비같은것이라니 최충과 박원작은 그것을 부어내느라 씨름질을 할것이며 종당에는 두손털고 나앉게 될것이다.

그때 가서 온 조정은 이 리자연의 선견지명에 탄복하게 될것이고 기가 꺾인 최충의 말은 누구도 들으려 안할것이다.

그래, 이게 바로 적수로 하여금 자기가 빠질 함정을 제스스로 파게 하는 묘한 수가 아니란 말인가!

때는 왔다.

최충이, 어디 골탕을 먹어봐라.

리자연은 누구에게 선손을 빼앗길것 같아 성급하게 입을 열었다.

《페하! 소신이 알아본데 의하면 천균노를 만들겠다는것은 어불성설인줄 아오이다. 그것은 첫째로, 천균노를 만들어보겠다는 당자부터가 말로만 들은것이여서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 그 형체조차 모른다는것이옵니다. 날마다 보는 개를 그리라고 해도 꼭같게 그리기는 힘들겠는데 형체조차 모르는걸 그렇게 그려낼수 있겠소이까. 지금껏 북계병마도감사가 〈신기한 병기〉들을 만들어낼수 있은것은 그의 부친이 그림으로 형체를 똑똑히 남겨놓았기때문이옵니다.

둘째로, 천균노를 만들수 없는것은 쓸데없이 크기만 해서 3만근이나 되는 둔한 화포가 도대체 군사들에게 소용되겠는가 하는 그것이옵니다. 지금껏 만들어낸 〈신기한 병기〉만으로도 얼마든지 적을 요정낼수 있소이다. 마차에 싣지도 못할 3만근짜리 화포는 도리여 군사들에게 짐이 될줄로 아옵니다.

셋째로, 천균노를 하나 만드는데만도 무려 놋쇠 3만근이 드는데 그러다가는 국고를 거덜낼수 있다는 그것이옵니다.

천균노 몇문을 만들 놋쇠면 온 나라 백성집들에 놋그릇을 몇개씩 나누어줄수 있을것입니다.

페하, 장성공사를 하는데만도 이루 헤아릴수 없는 돈이 들어가고 백성들이 고생을 하겠는데 크게 쓸데도 없는 천균노를 만드느라 그들의 원망을 살것까지야 있겠나이까.》

최충은 마치도 백성살이를 걱정하는듯한 리자연의 태도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대체 이 조정안에 가난에 쪼들리는 백성들을 위한 어진 정사를 진심으로 펼치고저 하는 벼슬아치가 있는가.

옛적에도 없었고 오늘도 아니 래일에도 없을것이다.

그래도 이 최충은 굶주리고 헐벗은 백성들을 볼 때면 동정은 하였다.

허나 저 리자연은 자그마한 동정심을 가지기는커녕 도리여 그들을 자기 집의 량식으로 여겨 무지하게 탐오를 일삼는자이다.

조정에는 리자연이 같은 벼슬아치들이 수두룩하다.

리자연이 백성살이를 턱대고 천균노일에 훼방을 놓는것은 다 자기의 검은 속심을 가리우자는데 지나지 않는다.

최충이 장내를 둘러보니 과연 백성살이때문에 천균노를 만들수 없다는 리자연의 말을 수긍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면 그럴테지!)

최충은 끝까지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며칠전 최충은 아침일찍 집을 찾아온 박원작을 만나보고 그의 고충을 알게 되였다.

한번도 본적없는 천균노여서 그것을 만들리라는 용단을 내리지 못하는 박원작에게 나라에 큰 리익을 줄수 있는것이라면 꼭 취해야 한다고 훈시해주었었다. 그 말에 고무된 박원작이 결단코 천균노를 만들리라 강심을 먹고 표문을 지어 임금에게 올린것이였다.

아마도 박원작이 제 말에 추종하는 심복이였다면 리자연은 그렇게 나오지 않았을것이다. 국익에 부합되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해도 제가 싫어하는 사람의 주장이라면 가림없이 짓뭉개자고 드는 리자연의 속됨을 그는 잘 알고있었다.

최충은 임금을 향하여 아뢰였다.

《페하! 국익에 보탬을 줄수 있다면 백성들은 원망하지 않을것이옵니다. 백성을 고달프게 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것이 웃사람때문이 아니라 외적때문이라면 백성들은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소이까. 하물며 백성들에게 해를 주지 않고서도 천균노를 만들수 있는데 뭘 주저하겠소이까.

천균노같이 큰 화포가 있으면 군력을 다지는데 좋으면 좋았지 짐이 될건 없는줄 아오이다.

적을 타승하는데서 병쟁기의 우렬도 크게 관련되는것이니 위력한 병기를 만드는데 돈을 아껴서는 안되오이다. 어떠한 일이 있더래도 천균노를 만들어내여 천하에 그 위력을 시위한다면 적들은 기가 죽어 우리 나라를 두려워할것이니 전란을 미리 막아내는데도 크게 기여하는것으로 될것이옵니다.》

리자연은 일이 예견했던바대로 착착 번져가자 몹시 흡족해졌다.

대결은 이미 승패가 난셈인것이다.

리자연은 이 순간 또다시 천균노를 거들어 요즘도 사이가 버그러져보이는 황주량과 최충을 다투게 하고싶어졌다.

둘사이의 간격이 버그러진것은 황주량이 최충의 세력이 날로 커지는것을 두려워하기때문이였다.

리자연은 자못 심중한 표정을 짓고 은근히 목청을 돋구었다.

《페하! 사리에 밝으신 평장사공의 의견을 들었으면 하오이다.》

강헌대왕의 눈길이 늙은 황주량에게 가닿았다.

황주량은 헛기침을 깇고나서 침착하게 자기 생각을 터놓았다.

《소신 생각에는… 천균노의 형체조차 알수 없으나 그게 꼭 소용되는 병기라고 하니 하나 만들어서 써본 다음 다시 론의해봄이 좋을듯 하오이다.》

그 말에 서눌도 한마디 보태였다.

《하나 만들어가지고 그 위력을 알아본 후 좋고 나쁨에 따라서 뒤일을 락착짓자는 평장사공의 의견이 타당한줄 아오이다.》

리자연은 황주량과 최충의 사이를 잘못 판단했음을 깨닫자 얼굴을 붉혔다.

허나 속으로는 최충을 자기 수에 걸려들게 했은즉 소기의 목적은 이루었다고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천균노 (제60회) 천균노 (제59회) 천균노 (제58회) 천균노 (제57회) 천균노 (제56회) 천균노 (제55회) 천균노 (제54회) 천균노 (제53회) 천균노 (제52회) 천균노 (제51회) 천균노 (제50회) 천균노 (제49회) 천균노 (제48회) 천균노 (제47회) 천균노 (제46회) 천균노 (제45회) 천균노 (제44회) 천균노 (제43회) 천균노 (제42회) 천균노 (제41회) 천균노 (제40회) 천균노 (제39회) 천균노 (제38회) 천균노 (제37회) 천균노 (제36회) 천균노 (제35회) 천균노 (제34회) 천균노 (제33회) 천균노 (제32회) 천균노 (제31회) 천균노 (제30회) 천균노 (제29회) 천균노 (제28회) 천균노 (제27회) 천균노 (제26회) 천균노 (제25회) 천균노 (제24회) 천균노 (제23회) 천균노 (제22회) 천균노 (제21회) 천균노 (제20회) 천균노 (제19회) 천균노 (제18회) 천균노 (제17회) 천균노 (제16회) 천균노 (제15회) 천균노 (제14회) 천균노 (제13회) 천균노 (제12회) 천균노 (제11회) 천균노 (제10회) 천균노 (제9회) 천균노 (제8회) 천균노 (제7회) 천균노 (제6회) 천균노 (제5회) 천균노 (제4회) 천균노 (제3회) 천균노 (제2회) 천균노 (제1회)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