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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13


송영숙은 점심시간이 되기 바쁘게 운수직장으로 향했다.

그의 온몸은 땀에 떠있었다. 1년중 어느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지만 요즈음처럼 바쁜 때도 쉽지 않았다.

설전까지 군안의 협동농장들에서 받게 되여있는 계획분 배합먹이를 전량 집중수송해야 하였다. 생산지휘를 하면서도 주변농장들에 나가 수송에 대해 알아보고 공장에 들여온 알곡사료를 보관하기 위한 전투를 하느라 눈코뜰새가 없었다.

배합먹이수송뿐이 아니였다. 오리깔개짚도 이 계절에 마련해놓아야 한다. 농장들과 계약된대로 오리배설물을 거름용으로 넘겨주고 대신 오리깔개짚을 들여오게 되여있지만 그것도 계획대로 잘 진척되지 않았다.

불비한 운수수단때문에 속이 까맣게 타서 뛰여다니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송영숙은 어느 하루도 먹이유인제를 찾기 위한 연구를 중단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는 점심시간을 리용해서 실험실로 가는 길이였다.

배합먹이직장의 창고를 돌아보고 운수직장으로 향하던 송영숙은 멀리에서 자전거를 타고오는 정의성을 띄여보았다.

요즈음엔 시험호동에 나가보지 못하여 망간토를 찾았다는 소식도 남편과 유상훈박사를 통해 전해듣다보니 정의성을 만나본지도 퍼그나 되였다.

《…사람이 괜찮더구만. 지성인답게 점잖은데다가 정열도 있구… 어떻든 힘을 합쳐서 첨가제를 꼭 성공시키오. 집생각을 아예 말구.》

출장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정의성을 만나본 남편은 이렇게 말하면서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송영숙은 남편의 말을 새겨보며 망간토를 찾아낸 그를 축하해주고 신심을 주리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큰길을 따라 달려오던 정의성의 자전거는 가공직장옆길로 쑥 들어가버리는것이였다.

송영숙은 조금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의성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았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과학과 기술앞에 성실한 그였다.

송영숙은 생활에서 눈물이 없는 녀성과 눈물이 헤픈 남성을 싫어하였다.

녀성은 녀성답게 자애롭고 다심해야 하고 남성은 남성답게 억세고 웅심깊어야 한다는것이다.

그는 또한 직위의 높이를 인간의 높이로 생각하면서 무턱대고 머리를 숙이고 어깨를 낮추는 사람도 경멸하였다.

송영숙의 마음속 기준으로 볼 때 정의성은 결코 사나이답게 활달하거나 호탕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까다롭고 매정스러웠지만 자기의 리상과 목표가 뚜렷하고 명백하였으며 생활에서도 시시하거나 잡스럽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해도 쪼물짝하고 쬐쬐하지도 않았다.

그의 인간됨에 대하여 되새겨보던 송영숙은 멀리로 사라져가는 정의성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정의성동무! 망간토를 찾아낸 동무를 축하해요. 그리고 동무의 연구가 더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래요.》

이윽고 송영숙은 운수직장안으로 들어갔다.

실험실에 들어선 그는 창문과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은 다음 선풍기의 스위치를 넣었다. 위잉- 소리를 내며 선풍기가 바람을 일구었다. 순식간에 실험실안에 찬바람이 휘몰아치며 모든것을 랭랭하게 얼구었다.

송영숙은 저도 모르게 몸을 옹송그리며 솜옷자락을 여미였다. 그러나 선풍기를 끄고 문을 닫을수는 없다. 페설물의 독성을 조금이라도 제거하기 위해서는 실험 전기간 배풍상태를 소홀히 하면 안되였다.

송영숙은 목수건을 풀고 마스크를 낀 다음 페설물이 담겨진 유리용기를 교반기쪽으로 날라왔다.

그는 스위치를 넣은 교반기에 페설물을 조금씩 넣었다.

잠시후엔 가성소다용액도 넣으며 반응상태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교반기가 뚝 멎어버렸다. 기승스럽게 바람을 일구던 선풍기도 암전해졌다.

(정전이구나!…)

송영숙은 이마살을 찌프리며 어깨를 떨구었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연구조건은 점점 어려워졌다. 우선 추위를 이겨내기가 제일 힘겨웠다.

그러나 더 어려운것은 정전이 되여 설비가 멈춰서는것이였다.

(빨리 전기가 와야겠는데…)

그렇다고 앉아서 기다릴수는 없었다. 송영숙은 와락와락 솜옷을 벗은 다음 세타를 입은 오른팔을 높이 걷어올렸다.

그다음 교반기앞으로 다가가 그안에 손을 쑥 밀어넣었다. 페설물에 가성소다용액을 넣은 걸쭉한 액체가 피부에 닿는 순간 송영숙은 자라목처럼 몸을 옹송그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입술을 옥물고 교반기의 날개를 잡은 다음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얼마쯤 지나니 피부의 감각이 마비되였는지 차거운 느낌은 사라지고 대신 뼈마디가 욱신욱신 저려들면서 온몸이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교반기의 날개를 놓지 않고 그냥 돌리였다.

한동안 페설물의 반응상태를 살펴보며 교반기를 돌리던 그는 문가에서 들려오는 당비서 김춘근의 목소리에 눈길을 들었다.

《날씨가 찬데 문은 왜 열구있습니까! 아이구! 이 추운 날씨에 팔까지 걷어올리고…》

당비서는 예상 못했던 광경앞에서 눈이 커진채 굳어지였다.

송영숙은 열적은짓을 하다가 들키운 사람처럼 얼굴을 붉히며 황황히 일어났다. 그가 서둘러 찬물에 팔을 씻고 팔소매를 내리는것을 지켜보던 김춘근당비서는 아낙네들처럼 끌끌 혀를 차기까지 했다.

송영숙이 솜옷을 입고 목도리까지 두르는것을 보고서야 당비서는 실험실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낯익은 점심밥꾸레미가 들려있었다. 당비서는 그 꾸레미를 실험탁우에 올려놓고 말없이 실험실을 둘러보았다.

이때 전기가 왔는지 멈춰섰던 선풍기가 다시금 윙- 소리를 내며 바람을 일으켰다. 교반기도 여봐란듯 빙빙 돌기 시작했다.

송영숙은 당황한 눈길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이쪽저쪽 스위치를 끈 다음 의자를 내놓았다.

《여기 앉으십시오.》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당비서는 자기와 눈길을 마주하기 저어하는 기사장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무척 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점심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집에서 나오다가 경아 할머니를 만났기에 내가 가져다주겠다구 했지요. 그런데 늘 이렇게 추운 방에서 점심식사를 하구 밤늦게까지 연구를 합니까?》

그는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다시금 실험실안을 둘러보았다.

그는 송영숙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사장이 지금 남모르게 무슨 큰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애써 숨기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지난 여름철에 실험실 꾸리는 문제를 내놓으며 《장난삼아…》하고 말할 때에는 그저 무심하게 생각했던 당비서였다.

그런데 오늘 송영숙의 어머니를 만나 매일 점심을 건느다싶이 하면서 자정이 넘을 때까지 무슨 실험인지 연구인지 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결코 《장난삼아…》하는 일이 아님을 직감했던것이다.

정작 실험실에 들어와보니 의혹은 더 커졌다.

기사장이 골라골라 남들의 눈에 잘 띄우지 않는 구석진 곳에 실험실을 정한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였다.

《기사장동문 지금 몇달째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면서 무언가 하고있는데… 큰 비밀이 아니라면 나한테 말해줄수 없습니까? 예?》

당비서의 말에 송영숙은 눈길을 들었다.

그는 어쩔수 없는 운명에 봉착한듯 심호흡을 하였다.

《비서동지! 제가 미처 자기의 사업과 생활에 대해 당조직에 보고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모든걸 터놓으려 하니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나 한가지… 조건부가 있습니다.》

《?!》

《그건 저… 제가 하는 일을 당비서동지만 알구계셔달라는겁니다.》

김춘근은 기사장의 얼굴을 유심히 건너다보았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끄덕끄덕하였다.

그제야 송영숙은 책상우에 쌓여있는 몇권의 책을 당비서앞에 밀어놓았다.

《이건 제가 닭공장에서 지배인으로 사업하던 그때부터 몇년동안 정리해온 실험일지들입니다.》

《닭공장에서부터 정리해온 실험일지라구요?》

김춘근은 그의 말을 되물었다.

《예, 전 그때부터 새로운 첨가제를 연구하였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기사가 지금 연구하는것과 거의 같지 않겠습니까?》

《?!》

당비서는 시약으로 얼룩지고 누렇게 퇴색된데다가 보풀진 실험일지들과 기사장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풀기 어려운 난감한 문제와 맞선듯 그는 미간을 쪼프리였다.

송영숙은 눈길을 떨구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전 남편의 뜻대로 제가 지금껏 연구한것들을 정기사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모두 넘겨주었습니다. 정기사동문 남달리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아닙니까? 만약 자기가 남의것을 받았다면 모욕으로 생각하고 받지 않을것입니다. 그래서…》

《…》

《그리구 지금은 먹성인자를 찾기 위한 연구를 하는중입니다.》

그는 모든것을 솔직하게 터놓았다.

《먹성인자연구를요?》

당비서의 눈은 또다시 커졌다.

송영숙은 지난 여름 공장첨가제와 수입첨가제의 비교측정때 먹성인자를 반드시 찾아야겠다고 결심하였다는데 대하여 덧붙여 말했다.

김춘근은 한동안 그를 유심히 건너다보았다.

하면서도 의혹의 실머리를 놓치지 않았다.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온다는 이 추운 겨울에 문을 열어놓고 선풍기까지 돌리는것은 과연 무엇때문인가?…)

그는 연구에 필요한 설비와 자재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묻기 시작했다. 그는 곧 와뜰 놀라며 굳어졌다.

군부대정치위원으로 복무하다가 제대되여 화학공장당위원회 부원으로 몇달간 사업했던 그는 거기서 나오는 페설물이 어떤것인가를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화학공장페설물로 연구한다구요? 그게 어떤거라구… 안됩니다! 절대루 안됩니다!》

김춘근당비서는 끔찍한 일이라도 목격한듯 목소리를 높이였다.

송영숙은 언제나와 같이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근심마십시오. 저의 건강에 대해선 제가 잘 알아서 주의할테니 제발 다른 사람들에겐 얘기하지 말아주십시오. 사실 이 페설물에 대해선 저의 남편과 어머니두 모르고있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나더러 눈을 감으라는건데… 난 그렇겐 못하겠습니다.》

그는 여전히 격한 어조로 말하며 홱 머리를 저었다.

송영숙은 야속한 눈길로 당비서를 건너다보았다.

잠시후 그는 첫사랑을 약속하는 처녀의 숫된 심정이런듯 얼굴을 붉히며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비서동지! 전 기사장이기 전에… 이 나라 공민입니다. 공민으로서 나라의 가금업발전을 위해 적은 힘이나마 다 바치고싶은게 소원입니다. 그리구 전 지금… 당분공을 수행하고있습니다. 첨가제연구를 힘껏 돕는건 제가 받은 첫 당분공이 아닙니까, 예?》

너무도 조용히, 그러나 너무도 절절하게 말하는 그를 건너다보며 당비서는 마음이 뭉클 젖어들어 눈길을 떨구었다.

이윽고 그는 한폭의 인물화앞에서 그 아름다움과 생동함 그리고 수백마디의 언어로써 표현되는 주인공의 심리를 감상하듯 오래도록 송영숙을 바라보았다. 얼마후에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약속을 했으니 기사장의 부탁을 지켜야지요. 하지만 내 당비서로서 권고하구싶은건 실험을 한다해도 이 겨울엔 중지했다가 따뜻한 봄날에 시작했으면 합니다. 그러지요, 기사장동무?》

그는 마치 웃사람에게 간청하듯 말했다.

송영숙은 빙긋이 웃으며 량해를 구했다.

《지금 가져다놓은 저 페설물을 다 쓸 때까지만…》

송영숙의 크고 정기어린 눈은 애타게 호소하고 절절히 간청하고 심심히 애원하고있었다. 어떤 거역할수 없는 억센 힘까지 발산되였다.

그 힘에 끌려 당비서는 머리를 크게 끄덕이였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김춘근당비서는 또다시 실험실에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키높은 선풍기를 넣은 지함이 들려있었다.

실험실에 들어선 당비서는 말없이 선풍기를 조립하여 교반기옆에 놓아주었다. 그다음 도람통을 기울여 페설물을 실험용기에 담아주고 어설프게 놓여있는 전기선들도 한켠에 밀어놓았다. 무엇이든 도우려고 실험실을 둘러보던 그는 송영숙이 몹시 따분해하는것을 느끼였다.

그는 자주 찾아오겠다고 한마디 하고는 실험실을 나섰다.

송영숙은 말없이 당비서를 바래웠다.

(비서동지! 고맙습니다! 내 기어이…)

문가에서 물러선 그는 세차게 돌아가는 선풍기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불뭉치같은 뜨거운것이 울컥 솟구쳐올랐다.

송영숙은 눈을 슴벅이였다. 이윽고 그는 다시 교반기곁에 다가섰다. 교반기는 힘차게 돌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두대의 선풍기도 경쟁바람을 일으키며 신나게 돌고 또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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