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4 회


제 1 장


3


이른새벽, 검푸른 밤하늘에서 새별이 마지막 빛을 뿜으며 유난히 반짝였다.

멀리 동녘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왔다. 쌀쌀하고 상쾌한 새벽 들바람이 금방 깨여나서 밖으로 나온 동익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그는 작업반선전실을 나와 기지개를 한껏 켰다.

먼곳에서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고요한 농촌의 새벽대기를 깨뜨리며 작업반선전실앞에서 탕탕탕탕… 뜨락또르의 발동소리가 울리였다. 이처럼 일찌기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는 뜨락또르의 동음을 들어보지 못했던 마을사람들이 놀라서 잠에서 깨여났다.

뜨락또르는 무한궤도를 절그덕거리면서 마을을 나와 큰길을 건느고 최뚝을 넘어 논에 들어섰다. 뜨락또르는 크지 않은 포전에 들어서며 보습날을 내리고 갈아나가기 시작했다.

귀때기에 이르러서는 후진시켜 구석에다 보습날을 박아가지고 다시 나오며 깨끗하게 갈아치웠다.

이어 낮은 논뚝을 무너뜨리고 뙈기논에 들어가 전진과 후진을 거듭하며 그 포전도 말끔히 갈았다.

논뚝에 작업반장이 어느새 나왔는지 까딱하지 않고 서서 그 모습을 이윽히 바라보고있었다.

그는 묵묵히 담배를 태우고 또 태웠다. 파란 담배연기가 들바람에 날려 흩날리고 또 흩날린다.

그는 해가 들판우에 떠오를 때까지 그렇게 서있다가 돌아서서 마을로 들어갔다.

이윽하여 보자기에 아침밥을 싸든 어제 저녁의 그 처녀가 나타났다. 그 처녀는 작업반장인 영준의 딸이였다. 봄바람에 머리에 쓴 파란 머리수건과 검정치마자락을 펄럭이며 포전에 다달은 처녀는 뜨락또르를 향하여 소리쳤다.

《세우세요! 세우라니까요.》

뜨락또르를 세운 동익이가 머리를 내밀었다.

《왜 그러오? 처녀동무.》

《내려오세요. 아침식사를 하셔야지요, 예? 반장이 나를 보냈어요.》

동익은 뜨락또르에서 내려 장갑을 벗고 논뚝으로 나왔다. 논뚝에서는 지난해의 묵은 풀대들이 들바람에 흔들리고있었다.

어느덧 하늘의 해가 높아지면서 들에는 찬란하고 청신한 기운이 넘쳐났다.

처녀의 발그레한 얼굴에는 따뜻한 빛이 감돌고있다.

연유냄새를 물씬 풍기면서 동익이는 처녀의 옆에 앉았다.

《배고프던 참인데 마침 가지고 나왔구만, 고맙소.》

처녀는 보자기를 풀고 밥과 찬을 꺼내놓으며 《고맙다는 인사는 제가 해야지요.》 하였다.

《할일을 하는데 무슨…》

처녀는 수저를 집어 동익의 손에 쥐여주었다.

《어서 들어요. 이 물부터 마시구요. 그래야 체하지 않아요.》

처녀는 물병에서 고뿌에 물을 따라 내밀었다. 동익이 고뿌를 받으며 물었다.

《이름이 뭐요?》

《미순이예요, 박미순이.》

《나는 최동익이라구 하오.》

《원래 그렇게 뚝해요?》

처녀는 동익을 할낏 쳐다보았다.

《원래 그렇소. 이 두부찌개가 맛있구만.》

처녀는 살짝 웃었다.

《그건 내가 된장을 두고 끓인거예요.》

《솜씨가 있군. 우리 작업소 합숙식모가 된장국을 참 맛있게 끓이오. 별명이 〈뚱보〉인데 마음씨가 얼마나 고운지 모르오.》

미순이는 재미나서 방싯방싯 웃었다.

《운전수동무는 재미난 사람이였군요. 뚝하긴 뭐… 》처녀는 밥을 달게 먹고있는 동익이에게 다시 물 한고뿌를 내밀었다.

《어제 저녁에 작업소로 가겠다고 한건 진심이 아니였지요?》

《미순동무가 나보고 가겠으면 가라고 한것도 진심이 아니였지.》

《음- 남의 속을 다 들여다보구있었네.》

미순이는 눈을 곱게 흘겼다. 그는 무릎에 턱을 고이고 맛있게 먹는 동익을 재미나서 바라보았다.

동익은 맛스럽게 그러면서도 서둘러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끝낸 동익은 미순이에게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이미 갈아번진 거무스름한 논흙을 밟으며 뜨락또르를 향해 걸어갔다.

점심시간이 박두하여 영준반장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만족한 눈으로 동익이가 갈아번진 논들을 살펴보았다.

동익이가 갈던 논을 마저 끝내기를 기다렸다가 그는 뜨락또르에 다가갔다.

《운전수동무, 식사도 하고 좀 쉬기요.》

《예, 그러지요.》

동익은 선선히 응하며 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리였다. 오전내내 운전칸에 앉아있은탓에 다리에 강직이 와서 비칠거리다가 겨우 몸을 가누었다. 영준반장이 다가와 부축했다.

《괜찮습니다.》

《이 사람 운전수. 나를 용서하게.》

영준반장이 머리를 수굿하고 진정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저녁에는 내가 우정 자네를 박대했어. 그러면 가버릴줄 알았지. 작업소 뜨락또르라면 진저리가 났으니까.

그런데 가지 않고 선전실에서 자고있다지 않겠나?

내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더군. 용서하게. 우리 농군들은 좀 투박해도 마음은 그렇지 않아. 사실 우리 농사일을 자네처럼 주인답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손님행세를 하다가 대접이나 받고 간단말일세.》

그는 무엇인가 꿀꺽 삼키며 목이 메여 더 말을 못했다.

동익은 온종일 논을 갈았고 밤에도 늦도록 논벌을 떠나지 않았다.

농민들이 그가 일하는것을 구경하느라 모여들었다. 영준반장은 거듭 쉬라고 권고했다.

새벽녘에야 마을에 들어가 작업반선전실에서 잠이 든 그는 아침밥도 먹지 못하고 내처 잤다.

실컷 자고나서 눈을 뜨는데 자기를 등지고 서있는 사람이 있었다. 관리위원장이였다.

차마 자고있는 동익을 깨우지 못하고있었던 모양이다. 동익이가 일어나자 그는 돌아섰다.

《내가 깨운건 아니요?》

《아닙니다. 다 잤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이야기나 좀 합시다.》

관리위원장은 장판구들에 앉아 담배를 꺼내였다. 그리고 이불과 모포를 개여 베개와 같이 구석에 밀어놓고 돌아앉는 동익에게 권했다.

《같이 피우기요.》

《생각이 없습니다.》

잠에서 방금 깬 동익은 정신이 아직 맑지 못했고 담배생각도 없었다.

관리위원장은 담배연기를 날리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분명 영준반장한테서 동익이가 어떤 운전수인가 하는 소리를 듣고 어제 너무 랭대한것을 미안해하며 찾아왔을것이다,

그 심정을 입밖에 꺼내기 저어하는것 같았다.

미안한 생각, 고마운 마음이 담겨져있는 그의 얼굴에서 동익은 그러한 심정을 읽으며 이 관리위원장은 자질구레한 감정따위를 내색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짐작했다. 자기의 감정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영준반장과는 대조되는데 차라리 말없는 관리위원장쪽이 더 좋았다.

《이것 보오, 운전수동무.》

그는 탁 트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부드럽게 말할줄 모르오. 협동화이후 작년 봄 수상님께서 보내주신 뜨락또르가 처음으로 나타났을 때 굉장했소. 그날은 조합이 온통 명절분위기였소. 로인들은 춤까지 추었소.》

동익은 고향마을사람들과 특히 아버지가 너무 좋아 입을 다물지 못하던 광경이 떠오르면서 그날의 분위기가 충분히 짐작됐다.

《그런데 첫 작업이여서 그런지 땅을 너무 깊이 갈아 생땅이 나오는 바람에 조합원들이 실망했드랬소.

그래도 우리는 고맙게 생각했고 성의를 아끼지 않았소. 운전수도 곧 자기의 결함을 고쳤소.

뜨락또르와 운전수를 대하는 우리 조합사람들의 마음은 이렇듯 뜨거웠소.…》

관리위원장은 이야기를 더 계속하기가 괴로운듯 말을 끊고 담배연기만 날리였다.

《관리위원장동지! 그후 작년가을에 왔던 운전수이야기는 더 하지 맙시다.》

따분해할 관리위원장의 립장을 앞질러 생각하며 동익이 이렇게 말했다.

《알겠소. 그럽시다. 하지만 작년에 왔던 그 운전수만을 념두에 둔것은 아니요. 일부 사람들이 농촌에 와서는 티를 내고 재세를 부린단말이요. 마치 그들은 쌀을 먹고 사는것 같지 않소.》

《앞으로 많이 지켜보십시오.》

관리위원장은 철썩 무릎을 치며 시원스럽게 말했다.

《좋소, 이제 하숙집도 정식으로 정하고 차고도 이 마을에 지읍시다. 그럼 아침식사하러 가야지요.》

관리위원장은 동익을 안내하여 하숙할 집을 보여주고 마음에 드는가 의견도 들었으며 현재 림시로 식사를 하고있는 반장네 집에까지 같이 갔다.

미순이 어머니가 토방으로 달려나왔다. 그 녀인은 얼마나 피곤하고 배고프겠는가며 살뜰하게 동익을 푸짐한 밥상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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