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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 회)


37


리대철의 마음에서는 하늬바람이 일었다.

어제 구상화주철을 만들기 위한 개량제를 뽑았는데 분석시험을 해보니 배합이 고르롭지 못하여 실패하였던것이다.

눈을 까밝히고 분석표를 들여다보며 너무 속상해서 한숨을 내쉬던 엄명선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서 어룽거린다.

구상화주철이 완성되여야 용선로에서 뽑은 쇠물에 첨가시켜 주형을 부을수 있다.

혹시 전압관계로 용해물이 설익어 그런게 아닐가 하는 의견들이 제기되였는데 변압기를 개조하여 전압을 끌어올린 상태에서 저주파유도로를 가동시킨것만큼 그것을 의심할 리유가 없었다.

하다면 원인이 무엇이겠는가.

이렇게저렇게 머리를 쥐여짜며 원인을 꼬집어보았으나 도저히 가늠을 할수가 없었다.

생각에 골똘하여 주물직장에 들어서니 엄명선과 기술발전과장을 위시로 한 기술자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속에 송화 아버지 최금석도 있었다.

《지배인동무! 오래간만일세.》

리대철은 무등 반가왔다.

《안녕하십니까. 건강이 여의치 않다는 말을 듣고도 찾아뵙지 못해 미안합니다.》

《원, 당치않은 소리. 고뿔을 앓은걸 가지고… 소문도 참.》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응, 내가 뭘 좀 도을게 없을가 해서 나왔더니… 이제 보니 난 안되겠어. 낡았거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아바이야 주물에서는 일인자가 아닙니까.》

《말말게. 솔직한 말로 구상화주철에 대해선 자신이 없어.》 하던 최금석이 갑자기 리대철을 한쪽으로 끌고갔다.

《나 좀 보세.》

영문을 모르고 따라서는 리대철에게 최금석이 노여움비슷한 소리를 하였다.

《우리 송화년 말일세, 요즘 그년의 눈치가 이상해. 창근이를 멀리하는것 같단 말일세. 몇번 따져물었더니 자물쇠 한가지인데 왜 그런지 지배인은 눈치챈게 없나?》

리대철은 당황해졌다.

언젠가 창근이가 세상에 처녀가 송화 하나뿐이냐며 불만을 터놓던 일이며 현지지도기념일 체육경기때 있은 둘사이의 좋지 못한 감정마찰이 번개처럼 눈앞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최금석이 정확히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사이가 버그러진것은 사실이였다. 그에 대하여서는 안해도 속상해하고있다.

언제부터 송화와 창근을 불러놓고 화해를 시켜야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일이 바쁘다고 뒤전에 미룬것이 후회되였다.

사실대로 말을 하자니 최금석을 실망시키고싶지 않았다.

《일이야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요즘 송화가 일이 바쁘니까 창근이를 만날 시간이 없어서겠지요.》

《아니야, 그런것 같지도 않아. 그전엔 창근이에 대해 물어보면 신바람이 나서 있는 소리, 없는 소리를 다 끄집어내던 년이 지금 노는 꼴이 딴 녀석이 생기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니.》

《허허허! 의심이 병이라고 그런 말씀 마십시오. 참, 창근이는 요새 집에 자주 옵니까?》

《응, 오긴 오는데 그전처럼 자주 오지는 않아. 와서는 이것저것 몇마디 하다가 인차 자리를 일군 하는데 꼭 무슨 고민을 하는 사람같다니. 무슨 일인지 속시원히 말을 했으면 좋으련만… 그걸 보면 그녀석이 사내답게 속이 탁 트이지 못한것 같아. 허허허!》

《두고봅시다. 요즘 처녀총각들 사랑이라는것이 곧은 길만 있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바이때나 우리때와두 또 다른것 같습니다.》

《하긴 그 말도 옳아. 어쨌든 우리 송화년을 잘 신칙해주게.》

《알겠습니다.》

《허, 여기선 무슨 좋은 일이 있는게지요?》 하는 소리에 두사람이 고개를 쳐드니 언제 왔는지 박영식이 웃음을 짓고 서있었다.

《비서동무, 안녕하시우.》

《안녕하십니까.》

사말사적인 최금석의 이야기가 끝이 없을상싶어 속이 간질간질해있던 리대철은 박영식의 출현이 여간만 다행스럽지 않았다.

그 어떤 기술적인 문제라면 장시간이라도 이야기를 나누련만 어성버성해진 송화와 창근의 관계를 놓고 옴니암니하자니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실패원인을 찾았습니까?》

박영식의 물음에 리대철은 대답이 궁해졌다.

《아직…》 하던 리대철은 명선이쪽에 대고 소리쳤다.

《다들 이쪽으로 좀 오오.》

명선이네가 우르르 밀려왔다.

《생각되는것이 있으면 말해보오.》

리대철의 제기에 모두 서로의 얼굴들만 쳐다보는데 명선이가 한발 나섰다.

《아직까지 딱히 결론하기는 어렵지만 의견들을 종합해보면 마그네시움의 품질에 문제가 있는것 같습니다.》

《마그네시움?》

구상화흑연주철, 일명 개량주철의 구성요소는 규소철과 마그네시움, 희토류와 석회석, 생석회이다.

여기서 마그네시움은 순도가 거의 100프로에 가까운것을 써야 한다.

마그네시움의 품질에 문제가 있다는것은 순도가 낮다는것을 의미한다.

《마그네시움을 세천에서 생산하던가?》

박영식의 물음이였다.

《옳습니다.》

명선의 대답에 박영식은 한동안 생각을 더듬다가 결단성있게 물었다.

《현재 마그네시움재고량이 얼마 있소?》

《50키로그람은 잘됩니다.》

《그걸 차에 싣소.》

리대철이 뜨아해서 물었다.

《어쩌자는겁니까?》

《마그네시움의 순도가 낮다면 세천에 가서 바꾸어와야지요. 시간이 급한데 말공부만 해서야 되겠습니까?》

《비서동지가 가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이 없어서 비서동지가 가신단 말입니까? 여기서 세천이 얼마나 멀다구… 그만두십시오.》

한사코 만류하는 리대철을 보며 박영식은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챠, 이렇게도 눈치가 무디다구야. 내가 거기까지 가겠다고 할 때야 다 쪼간이 있어서인데… 그만두라면 할수 없지.》

《아니, 그건 어떻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허허, 실은 세천에 내 동서벌되는 친척이 있는데 언제부터 한번 왔다가라는걸 언제 몸뺄새가 있어야지요. 더 나이들기 전에 한번 가본다가본다 하면서 이붓아비 제사날 미루듯 했는데 마침 기회가 생겼거던요. 이런걸 보고 뽕도 따고 님도 만난다고 하던가요?》

리대철은 쭝깃해졌다. 박영식에게서 세천에 동서가 있다는 말을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었던것이다.

하긴 조만해서 사적인 일에 대하여 말을 하지 않는 그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수가 없었다.

방금 말한것이 사실이라면 등을 떠밀어서라도 보내야 한다.

공장에 온지 수년이 지났지만 어느 하루 휴식이라는것을 모르고 일해온 박영식이였다.

어느해인가 평양에 사는 사위가 뜻밖에 불상사를 당하였을 때 장마비에 불어나는 강물에 부업지뚝이 넘어날가봐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집사람만 올려보냈었다.

후에야 그 사실을 안 리대철은 박영식을 원망했다.

《너무합니다. 사위도 자식이나 같은데 마지막길이야 바래주었어야지요.》

그때 마음속 고뇌를 달래듯 담배연기를 말아올리는 박영식의 눈귀에는 물기가 내배여있었다.

《내 딸한테도 사위한테도 죄를 지었습니다.》

침통하게 뇌이는 그 말을 들으며 리대철은 가정사보다 공장일을 더 중시한 박영식의 인간됨됨에 머리를 숙이였다.

마침 잘되였다.

이번 기회에 세천에 보내여 푹 휴식을 하게 하자.

《그럼 가서 마그네시움은 차편에 실어보내고 비서동진 떨어져서 동서도 만나보고 며칠 푹 쉬고오십시오.》

《알겠습니다. 허, 오래간만에 호강을 하게 됐군요.》

공장에 재고량으로 있던 마그네시움을 차에 실은 박영식은 그날로 세천으로 떠나갔다.

그런데… 이튿날 순도가 100프로 되는 마그네시움을 싣고 돌아온 차에서 박영식이 내릴줄이야.

리대철은 물론 모두 깜짝 놀랐다. 지금쯤 오래간만에 만난 동서와 회포를 나누며 휴식을 할줄 알았는데 이 무슨 일인가.

알고보니 세천에 동서가 있다는것은 거짓말이였다.

어쩌면 그럴수가 있는가고 나무람하는 리대철을 보며 박영식은 허허 웃었다.

《어찌겠습니까. 분과 초가 귀한 때에 지배인동무를 보내겠습니까, 기술자들을 보내겠습니까. 이런 일엔 무재간인 내가 적임자지요, 허허허.》

박영식은 이런 인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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