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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사
신라 신문왕때 어느해 여름날이였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드는 궁궐의 정원에서 한가하게 부채질을 하고있던 왕이 설총을 불렀다. 《오늘은 궂은 비가 멎고 남풍이 불어 서늘한데 술맛도 나지 않고 음악도 듣기 싫어 마음이 울적하니 그대가 요즘 색다른 소문이라도 들은것이 있으면 나를 위로하여 한마디 하지 않겠는가?》...
[2014-12-01]
우륵은 6세기중엽의 가야사람으로서 가야금을 제작완성하고 수많은 곡을 창작하였다. 그러나 당시 가야국의 정사가 어지러워져 장차 나라가 망할 징조가 보이자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에 넘어왔다.신라왕은 그를 받아들이여 안착시키고 그에게 악공들인 계고, 주지, 만덕 등을 붙이여 가야금을 배우도록 하였다.우륵은 그들에게 가야금을 배워주고 좋은 곡을 골라 익숙시킨 다음 왕앞에서 연주하게 하였다....
[2014-12-01]
솔거는 신라사람이였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그리기를 몹시 즐겨하였다. 생활이 가난하여 끼니를 번지는 때도 많았어도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날은 없었다고 한다.그의 그림솜씨는 당시 누구도 따를수 없는 경지에 이르고있었다.그는 560년경에 건립된 황룡사벽에다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았다.그가 그린 그림은 한그루의 늙은 소나무였다....
[2014-12-01]
신라왕궁의 악공인 만덕은 궁궐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이 더딘것만 같았고 가슴에 높뛰는 기쁨을 금할수 없었다. 집안의 복이 되고 딸에게는 행운이 되는 소식을 안고오기때문이였다. 가야금을 만들어 온 나라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스승인 우륵이 자기 딸을 며느리로 삼겠다니 이아니 경사이겠는가.우륵의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 인물도 잘난데다 총명하여 학문에 뛰여나므로 궁궐의 관리들이 은근히 침을 흘리는 신랑감이였다....
[2014-12-01]
고구려 대무신왕 11년 7월 어느날이였다.뜻하지 않게 외적(한나라 료동태수)이 수만의 군사를 몰아 고구려의 국경을 넘어 침입해온다는 급보가 궁궐에 전해왔다.왕은 곧 여러 신하들을 불러들여 외적을 막을 계책을 의논하였다.우보 송옥구는 험한 지세를 먼저 차지하고 달려드는 적을 불의의 기습으로 치군하면 적은 힘으로 대적을 능히 막아낼수 있을것이라고 하였다.그러나 좌보 을두지의 의견은 그와 달랐다.《수적으로 우세한 적은 힘으로가 아니라 꾀로써 물리쳐야 한다고 봅니다.》...
[2014-12-01]
왕산악은 고구려때의 사람이다.어느해인가 진나라에서 고구려에 칠현금이라는 악기를 선물로 보내여왔다.칠현금의 생김새나 그 연주수법이 우리 나라의 현악기와 달라 당시 궁궐의 악공들이 제대로 다루지를 못하였다.귀한 선물이라고 보내온 악기가 버림을 받게 되자 왕은 아쉬워 지시를 내렸다. 칠현금을 제대로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하면 후한 상을 주겠다는것이였다....
[2014-12-01]
담징은 고구려의 이름난 화가였을뿐아니라 일본에 먹과 종이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준 기술자였다.그가 세계적으로 걸작이라고 일러오는 일본 법륭사(호류지)의 금당벽화를 그릴 때 있은 일이다.초청을 받고 일본에 간 담징은 그 나라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법과 채색감을 만들어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고있었다.이때 법륭사를 세운 일본의 중들은 그림에 유명한 담징을 찾아와 금당벽에다 그림을 그려줄것을 요청하였다....
[2014-12-01]
부분노는 고구려의 명장이였다. 류리왕이 즉위한 후 어느해 여름날이였다. 왕은 부분노를 비롯한 여러 장수들을 불러놓고 근심어린 어조로 말하였다.《선비족은 지세가 험한것을 믿고 우리와 화친하려 하지 않으면서 정세가 유리하면 나와 로략질을 하고 불리하면 들어앉아 지키고있으니 우리 나라의 걱정거리이로다. 이 일을 어찌하면 끝장을 낼수 있겠느냐?》여러 장수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면서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이럴 때 부분노가 왕앞에 한걸음 나서며 말하였다...
[2014-12-01]
고구려의 류리왕때에 있은 일이다.수도를 국내성으로 옮긴 뒤에 옛 수도에 남아있던 왕의 아들 해명이 군사들을 훈련시키고있던 어느날 사신으로부터 왕이 보내는 지시문과 칼 한자루를 받았다.지시문을 뜯어보던 해명의 얼굴은 금시 까매졌고 부하장수들도 놀라와 굳어졌다.지시문에는 이웃나라와 화목을 도모하여 나라와 백성을 편안케 하려는 부왕의 뜻을 어기였으니 신하된 본분에 앞서 자식된 도리로도 마땅히 죽어야 한다면서 보내는 칼로 즉시 자결하라는것이였다.왕이 자기 자식을 죽이다니....
[2014-12-01]
부여왕 대소는 남쪽의 이웃인 고구려가 날로 번성하는데 은근히 불안을 느끼면서 어떻게 하면 고구려가 더 장성하기 전에 병합할것인가에 골몰하고있었다.어느날이였다. 부여왕의 한 신하가 머리가 하나고 몸뚱이가 둘인 붉은 까마귀를 얻어가지고 와서 왕에게 바쳤다. 《이게 무슨 불길한 징조인가?》부여왕은 보기에도 끔찍하고 괴이한 까마귀를 놓고 얼굴을 찡그리였다.《이것은 불길한 징조인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가 대길할 징조입니다.》...
[2014-12-01]